홍세화가 떠났다. 그는 낯선 타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겪은 일과 얻은 통찰을 묵직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직조해 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두 번이나 입학했을 정도로 수재였던 그는 꽤 오랜 세월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가 ‘똘레랑스(관용)’라는 키워드를 한국 사회에 제시한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똘레랑스는 사라졌다. 정치가 됐든, 경제가 됐든 극단으로만 치닫는 이 사회에서 똘레랑스가 자리할 공간은 넓지 않다. 홍세화는 똘레랑스가 앵똘레랑스(불관용)를 용인하는 순간 사라진다고 말했다
대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마지막 주에는 사내에 휴가자가 많다. 그간 사용하지 못한 휴가를 몰아 쓰는 것이다. 휴가를 올린 직원들은 오늘이 올해 마지막 출근이라며 새해 덕담을 건넨다. 휴가를 소진해 자리에 남아 있는 직원들도 유쾌하게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다. 부산했던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평소보다 오는 전화도 거는 전화도 줄어든다. 우리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휴가자가 많기 때문일 테다. 이게 상례인데, 이번 연말 연초엔 유독 바빴다. 보고할 일도, 결재받을 사안도 많았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이테가 쌓이다 보니, 보고받을 일
아들이 낮잠을 잔다. 실컷 뛰어놀고 간식도 잘 먹고,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청한다. 천사가 따로 없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24일이다. 아빠인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나는 산타 할아버지다. 발신인은 아빠가 아닌, 산타 할아버지다.아직 글을 읽기엔 너무 어린 아기지만, 산타 할아버지의 입으로 편지를 들려주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내일의 대독(代讀)이 기대된다. “우리 왕자님! 오늘 말 잘 들으면, 코~하고 있을 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이랑 편지를 갖고 오실 거야”라고 말할 생각에 벌써 신이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사력을 다해 달리는 한 축구선수. 그는 결국 상대편 골망을 흔든다. 그러고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눈물을 흘리는 것. 그토록 간절했던 골일까. ‘슈틸리케의 황태자’라 불리던 그의 눈물이 유달리 애처로워 보인다. 경기 종료. 그 선수는 인터뷰를 한다. “정말 제가 많이 존경했거든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도 꼭 장인어른의 사위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장인어른이 경기 당일 새벽에 영면한 것. 빈소를 지키는 것보다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바라셨을 장인어른을 위해 그는 서글
퇴근 후 다소 늦은 저녁 시간, 아이를 데리러 처가댁에 차를 타고 부랴부랴 갔다. 장모님께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계셨고, 나와 아내는 아이의 옷과 장난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린 이 장난꾸러기의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바쁘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고, 천사 같은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애교 섞인 미소를 날린다. 진짜 심장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럽다. 이제 아이를 빨리 재우면, 우리 부부는 넷플릭스를 틀고 맥주 한 캔과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직장생활을 나름 누구보다 재미있고 힘차게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몸과 마음은 마냥 가볍지는 않다. 주말 아이를 데리고 메트로폴리스를 횡단하느라 피로가 가중되었고, 이번 주 해야 할 일(미팅, 보고, 결재 등)들이 머리에 스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비슷하지 않을까. 의 저자 김민영 작가는 출근길을 “적당한 피로와 절반 정도의 무기력과 나머지 절반 정도의 활기”로 표현한 바 있다. 피로, 무기력, 활기의 비중을 잘 조절하는 것이 긴요할 터이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앞에
#장면1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었다. 두 분의 연사가 회사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중 한 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유창하게 강의를 전개하기에 전혀 알지 못했는데, 중간에 퀴즈를 내겠다고 말한 후 음성이 아닌 손짓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답을 알 것 같은 문제에 손가락으로 3번을 표시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는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강연을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사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고, 한때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의 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안에 들어오셔서 몸 녹이시고버스 기다리셔도 됩니다.부담 갖지 마시고요~! 최근 종로에 갈 일이 있었다.운전해서 가기엔 복잡할 것 같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차례 환승을 해야 해서 정류장을 배회하던 중, 한 가게에 부착된 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급강하했던 기온으로 겹겹으로 옷을 껴입어 한파에 대비해야 했던 날이었다. 이름 모를 낯선 이들에게 부담 갖지 말고 매장에 들어오라고 한 저 호의에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 데 익숙해진 우리. 서로 ‘부담’을 팍팍 주는 일에 열을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석혜탁] 아침에 길을 나설 때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며칠 전보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 더 미끄러워진 길 때문에 몸이 긴장된 탓이다. 목도리와 장갑으로 바람을 막고, 외투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린다. 겨울이다. 그리고 한 해가 저문다. 회사의 올해 업무도 거의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간만에 책에 눈을 돌려본다. 일상이 바쁠 때는 어떤 지식을 빠르게 얻기 위한 책을 겨우 읽어대곤 했는데, 연말이 되니 에세이나 소설에 손이 간다.그렇게 ‘불쑥’ 짚게 된 책, 서석화 시인의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석혜탁] 어렸을 때부터 힘차게 주말 아침의 시작을 알리던 송해 할아버지. 늘 정정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의 건강을 언제부터인가 ‘상수’로 인식했던 것 같다. 1927년생 최고령 현역 연예인의 존재 자체를 너무도 간편하게 당연시했던 것이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의 음성, 몸짓, 그리고 웃음.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선사했던 그는 이제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내려놓게 됐다. 그의 ‘선창(전국~)’에 관객들의 ‘후창(노래자랑~)’으로 개시되던 경쾌한 노래 경연. 대국민 참여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석혜탁] 이달 초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학고재 갤러리에 들렸다. 이라는 이름의 기획전을 보기 위해서다.초현실주의 조형 양식의 영향이 배어 있는 천병근의 1957년 작품 에 눈길이 간다.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저 갈색 눈은 그림 속 인물을 보는 것일까, 연초부터 잡다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제1회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출품작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의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석혜탁] ESG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유엔글로벌콤팩트(United Nations Global Compact, 이하 UNGC)에 가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1999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코피 아난(Kofi Annan) 전 UN 사무총장이 글로벌 콤팩트를 제창했고, 이듬해 미국 뉴욕의 UN본부에서 글로벌 콤팩트가 발족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발적 기업시민 이니셔티브로 평가받는다.UNGC의 목표는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을 비즈니스 전략과 활동에 통합하고,
[오피니언타임스 = 청년칼럼니스트 석혜탁]대체육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단어에 ‘육(肉)’이 들어가니 고기인 것 같기도 하고, 고기를 ‘대체’한다고 하니 고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고기 특유의 맛과 향을 갖고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고기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일차원적인 논의는 잠시 제쳐 두자. 대체육은 이제 대체육이라는 별도 범주로 바라봐야 할 정도로 위상이 격상됐다.미국 시장조사업체 CFRA는 글로벌 대체육 시장이 2018년 약 22조원 규모에서 오는 2030년에는 무려 116조원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석혜탁] 8천만 쌍, 즉 1억 6천만 명. 전 세계적으로 불임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략적인 규모다. 대한민국 인구의 3배에 달한다. 필자 주변에도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커플이 적지 않다. ‘노력’이라는 단어로는 그들의 고민, 눈물, 걱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오늘도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병원에 간다. 그리고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재보선이 다가오니 정치판이 시끄럽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오피니언타임스 = 청년칼럼니스트 석혜탁]지금부터 연설문의 문법을 빌려 앞으로 어떤 남편이 되겠다는 다짐을 피력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부부’로 알콩달콩 예쁜 추억을 만들어가며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설렙니다. 물론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는 것을 보며 걱정도 많이 되고, 무엇보다 당신의 안전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빠’가 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가
[오피니언타임스= 청년 칼럼니스트 석혜탁]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전 국민의 입에 찰싹 붙어 있는 노래 가사이다. 하나의 관용어구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 짧은 표현에 문제 제기를 할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의 소원’도 아니고 ‘우리의 소원’이라는데, 괜히 정색하고 다른 얘기해봐야 ‘우리’라는 안온한 무리에서 이탈되기 십상이다. 개인의 고유한 특질을 존중하기보다는 아직도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치명타다. 또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에 담긴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이미지에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석혜탁] 문재인 대통령과 현 집권 여당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입장 차이는 잠깐 내려 두고 이 말을 들여다보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힘주어 말했던 이 말이 주는 울림은 분명 컸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이 메시지에 적잖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정권교체를 원했던 진영에서는 이 말을 듣고서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실감했다. 반대
[석혜탁의 말머리] 군 입대를 앞둔 ‘그놈’이 죽었다.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군 입대를 앞둔 ‘그놈’이 죽었다. 아침 일찍 문자를 받았다. 회사에서 밀린 메일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어머니의 문자였다. 아들세훈이 죽었다.교통사고란다...로 시작하는 메시지였다. 그 아래에는 지금 병원을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놀란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그의 이름은 편의상 세훈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 pixabay 죽었다.나는 살면서 이런 문장을 처음 봤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끼리 “죽을래”라고 말하며 짓궂게 장난친 것 제외하고, 딱히
[석혜탁의 말머리] 키치적 감성을 받아들인 리테일의 모습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슷’. 을지로지하쇼핑센터에서 볼 수 있는 B급 감성의 레트로 편집숍이다. 이름부터 특이한 이곳은 공간중개 플랫폼 스위트스팟이 기획한 이색 매장이다. 조악함이 매력이다 Ⓒ석혜탁 촬영 스위트스팟의 작품을 여러 곳에서 접한 적이 있다. 이 매장이 유독 재미있는 것은 대기업 계열의 유통 공간이 아니라, 지하철을 타러 오가는 고객들이 지나치는 지하상가에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또 ‘을지로’라는 공간에 들어섰다는 점도 이채롭다. ‘힙지로’라 불리며 밀레니얼 세대에게
[청년칼럼=석혜탁] 싱가포르는 600만이 안 되는 인구를 가진 도시국가다.중국계,말레이계,인도계 등 다양한 민족이 싱가포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중 중국계가 7 할이 넘고, 말레이계가 13%, 인도계가 9%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다양한 문화가 숨 쉬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각기 다른 매력적인 문화를 체험해 보자. ‘싱가포르 속 3개국(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여행’이라는 테마로 이채로운 공간 세 곳을 소개한다.# 싱가포르 속 중국, 차이나타운싱가포르의 웬만한 곳은 다 지하철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출국하기 전 한국에서 싱가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