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최미주]한 때 ‘당연하지!’ 게임이 유행한 적 있다. 상대가 ‘너 나 좋아하지?’와 같은 곤란한 질문을 던지면 이에 ‘당연하지’라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혹 당황스러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게임에서 지게 된다. 어떻게 할지 우물쭈물 고민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우리말에는 선인들의 말 문화가 담긴 속담들이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등만 봐도 같은 말도 가급적 상대가 듣기 좋게 하는 편이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움을 짐작할 수 있다.이
[청년칼럼=최미주]코로나 바이러스 대란으로 밖에 나갈 수 없어 헬스장 대신 집에서 맨손체조를 했다. 운동복 입고 요가 매트 깔아 기껏 준비 다 해놓고는 윗몸일으키기 몇개 하다 지쳤다. 힘이 없고 흥도 나지 않았다. 오빠에게 개수 좀 세 달라 조르기도 하다 물 한잔 먹고, 벌러덩 누워버렸다.학창시절 수련회 갔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1, 3학년은 수련회, 2학년은 수학여행을 갔는데 해마다 수학여행 가는 학년이 제일 부러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험한 결과 수련회는 언제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군부대처럼 생긴
[청년칼럼=최미주] 잘못된 일에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는 친구를 만났다.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월급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괜찮은 자리 소개시켜줄게’라는 말이 나오려했으나 참았다. 아마 친구가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며 단순히 친구의 감정을 한 번 더 말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소 탄산을 싫어하는 친구는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예상대로 그녀는 자기가 처한 상황보다 ‘너 답답해. 그냥 그만두고 다른 데 가’하는 말이 더 고통스럽다 했다. 논
[청년칼럼=최미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끼던 옷이 하나씩 사라진다. 올해는 작년에 자주 쓰던 모자가 사라졌다. 또 새로 사야 되나 싶어 속상했다. 못 찾을 줄 알면서 옷장 문을 열었다. 우두두. 겨울 옷장을 여니 정리 안 하고 쌓아놓은 옷들이 쏟아진다. 언짢은 기분이 겹겹이 쌓인다. 애초에 모자 찾기는 포기하고, 떨어진 옷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갰다. 후드 티, 니트, 원피스까지 종류가 많다. 어떤 스타일로 입으면 날씬하고 길어보일지 생각 없이 이것저것 많이 사놓은 까닭이다. ‘몇 년 손 안 대면 내다 버려라.’는 아버지 말이 떠올
[청년칼럼=최미주] “바로 그거야. 나는 그 사람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됐는데 상대는 아니라는 거. 나도 일하고 당연히 똑같이 피곤하지. 나라고 안 쉬고 싶겠냐? 그래도 보고 싶으니까 주말마다 고속버스 타는 게 행복하더라.”올해 설날, 작년부터 연애 시작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고향 떠나 가족, 친구도 자주 못보고 타지에 혼자 있는 친구라 신경이 쓰였다. 외로움 많이 타는 그녀에게 남자친구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힘들어 하고 있다니 맘이 편치 않았다.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학원을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모르
[청년칼럼=최미주] 종이컵 두 개와 실로 전화기를 만들어 본 적 있나요? 종이 끝에 구멍 뚫고 실을 연결하면 간단하게 전화기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종이컵 한 짝은 내 귀, 나머지는 친구 입에 대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후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합니다. 짓궂은 친구가 손으로 실을 잡아 전달을 막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친구의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함께 노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을 잡은 친구가 히죽히죽 웃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친구와 유선 이어폰 한 짝씩 나눠
[청년칼럼=최미주] 교원 연수에 간 친한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수원에서 내 중학교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둘 다 나와 친분이 있을 뿐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을 어떻게 알아봤단 말인가?사연은 이랬다. 연수원에 온 선생님들이 소속 학교, 과목, 이름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렸단다. 혹시나 했는데 전공이 음악이라는 걸 듣는 순간 확실하다 싶어 그분께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언니한테 중학교 은사였던 선생님 관련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었나?
[청년칼럼=최미주]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중등부 수업 후 복도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영어 수학을 배우러 온 고1 학생들을 만납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하품하는 아이들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착잡합니다. 학년 올라가며 국어 수업이 주말로 밀리게 돼 평소보다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구요.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종 치기 직전까지 말을 건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급식은 맛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순식간에 종이 울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면 그렇게 퇴근합니다. 다음엔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미지의 세계’에 다녀왔다. 미지의 세계는 대학교 때 뭉쳐 다녔던 동기, 선배들이 만든 모임명이다. 각각 이름에 ‘미, 지’가 들어가 우린 ‘미지’가 되었다. 졸업 후 공부하랴 취직하랴 다 같이 모인지도 참 오래됐다. 학부 시절 각자 생일마다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 깜짝 파티하기 바빴던 우리. 그 시절 미지의 세계는 좌절, 이별, 상처를 어루만지는 만병통치약이었다.모임 구성원은 유정(有情) 두 명과 무정(無情) 두 명으로 나뉜다. 무정라인은 생일 때 당사자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직접 물어보길 원한다. 또 연락과 소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학원에서 겨울 캠프를 갔습니다. 겁이 많아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고 물놀이도 즐기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좋아 따라간다 약속했습니다. 하루는 종일 놀이기구 탄 후 삼겹살 파티. 다음날은 집 갈 때까지 워터파크에서 놀기. 이 모든 걸 소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체력과 책임감, 용기가 필요했습니다.자이로드롭 앞에서 도망가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개그라도 보듯 웃어댔습니다. 한 번만 같이 타면 안 되냐 졸라댔으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어렸어도 눈 찔끔 감고 도전했을 법한데 어느 순간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자신을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언젠가 귀여운 중3 학생 커플이 찾아와 왜 자신들 이름은 글에 실어주지 않느냐고 입을 삐죽거렸다. 은혜와 준혁. 이 아이들은 같은 학교 공식 커플이다. 준혁이는 은혜가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지하철역을 지키고 있다. 그 시간에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지 라는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도 날이 궂으면 혹여 비라도 맞을까 한달음에 달려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바치는 준혁이가 그만큼 대견했기 때문이다.얼마 전 은혜의 단짝 보민이도 같은 학원, 옆 학교 종익이와 소꿉장난을 시작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운동도 안하면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친구 녀석 역기를 들고 집에 찾아왔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비실거릴 거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더군요. 서서 일하는 사람은 허리가 곧아야 한다며 데드리프트란 운동을 강제로 시킵니다. 어쩌겠습니까. 퇴근 후 한 시간 반을 차타고 온 성의를 생각해 낑낑거리며 몇 개 따라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녀석은 자세를 몇 번 잡아주더니 시골에 김장하러 간다고 쏜살같이 사라집니다.그러고 보니 김장철이 다가왔습니다. 이맘때면 엄마는 혼자 바빴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들락거리며 배추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며칠 전 ‘만신(萬神,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불렸던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때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하며 살았을 때 공식 커플의 결혼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수험생으로 만나 결혼까지 하는 그들이 너무 신기했다. 만신 오빠의 근황이 궁금했으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 잠시 노량진 시절의 생각에 잠겼다.2015년 겨울, 1차 불합격 통보를 받은 수험생들끼리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자주 가던 술집에 모여 신세한탄을 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당시 중등 교원임용고시 1차 합격자 공고에는 ‘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주변 어른들은 한창 예민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청년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이 내 앞길을 막는단 생각과 나보다 잘난 친구를 향한 시기·질투가 그 나이쯤에 한꺼번에 찾아오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랬다. 그 나이쯤이면 응당 겪는 고뿔에 걸려 2018년 상반기를 매일 눈물로 보냈다. 친구를 만나 위로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올 때마다 일기를 썼다.‘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성장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다지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성장통을 겪는 것일까. 그래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어린이집 시절, 배려를 한답시고 오빠 필통의 샤프심을 산산조각 낸 일이 있습니다. 샤프심을 더 많이 만들면 칭찬받겠지 하는 생각에 저지른 일입니다. 기분이 들떠 ‘오빠, 나 잘했지?’ 하고 샤프심을 내미는 순간 오빠는 이게 뭐냐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칭찬 받으려 한 행동이 영문도 모른 채 수포로 돌아가 무척 속상했습니다.위와 같은 사건들은 세상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가난하게 살던 부부가 늘 식빵으로 허기를 채웠는데,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식빵 끝부분만 주더라는 겁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서운함을 표출하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기말고사 시험기간, 한숨 돌리려던 찰나에 재형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제티 캔 여러 개를 꺼냅니다. 항상 ‘이번 시험 망할 것 같아요. 인문계 못 갈 것 같아요’를 입에 달고 살던 중3 재형이와 앞으로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제티를 받기로 약속했지요.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지 어려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재형이는 ‘못하겠어요. 어려워요. 공부해도 성적 안 오를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제티 하나, 제티 둘’ 개수를 세곤 했지요.어느덧 재형이가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모처럼 엄마와 함께 하는 평일 데이트. 목욕 바구니를 털레털레 들고 나오며 머릿속으로 맛집을 하나 둘 떠올렸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엄마가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기’라고 말씀하신다. 눈을 마주치지 않다니. 들켰다. 고기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딸을 향한 여느 엄마와 같은 절절한 사랑. 엄마랑 식사할 때마다 항상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지난주 금요일도 거짓말 잔치였다. 지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그랬고, 매일 보는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쉬는 시간이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달력에 모여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가뜩이나 기념일이 많은 5월 달력 한 장이 꽉 찼다. 국어 교실이라는 우리의 이름 아래.‘은실이 생일! 쌤 알죠?♥’‘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중 2학년 수학여행’‘1학년 수련회’‘재형님 탄생일’피식. 웃음이 났다. ‘나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을까봐 한 달 전부터 생일을 알리던 그런 학창 시절이 있었지.’그 때 공부는 안하고 늘 개구쟁이 역할이던 한 녀석이 ‘선생님 생일은 언제예요?’ 한다. 날짜를 말해주니 빨간 펜을 꺼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