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살아서 만나리.......21일이었던가?혹은 하루였던가?길고 긴 시베리아대륙횡단열차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여행은 낯선 나를 찾아 떠나는 험로이며,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공감하고그 속에서 잊혀진 나를 발견하면그것만으로 충분하다.모스크바 역이었던가?광장 한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생생하면서도 가슴 시린 동상.전장으로 떠나는 병사와 그를 보내는 여인...서로를 애절히 바라보는 눈에서 사랑의 불꽃이 튄다.이 병사가 무사히 돌아왔는지아니면 어느 참
참기생꽃·달구지풀 등 대표적 북방계 식물을 만나다‘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호는 둘레에 무더기로 핀 분홍바늘꽃을 선사하며 이방인을 반겼다. 열차가 바이칼에 다가섰다 멀어졌다 반복하는 사이 동은 트고, 새벽 햇살을 받은 분홍바늘꽃은 푸른 물결을 배경으로 출렁인다.바이칼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인 안가라강 상류에 위치한 ‘건축-인류학 박물관 탈치’ 탐방의 날. 전세버스가 우리나라 민속촌과 흡사한 분위기의 박물관에 도착했다. 목조건물 사이사이로 안가라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른 풀밭 곳곳에 러시아어로 ‘이반차이’라 부르는 분홍바늘꽃
북방계 식물의 본향(本鄕)을 가다시베리아는 한반도에서 사라져 가는 북방계 식물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다. 북방계 식물은 한마디로 아한대(亞寒帶), 즉 북위 40도 이상이 고향인 식물이다. 북극권 아래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부 지역이 아한대에 해당한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 추위가 심한 것이 기후적 특징이다.한반도에서는 평북과 함경도가 아한대에 속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북방계 식물은 이들 지역 외에도 멀리 제주도에까지 서식하고 있다. 가깝게는 만 년 전,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
사람들이 살거나 살았던 건물들애초에 동굴에서 살았던 때가 가장 편한 시절이었을 것이다.비와 눈을 겨우 피하면서빗살무늬토기에 음식을 담고벽에 들소를 새기고...이제 첨단 냉장고와값비싼 그림으로 장식을 하는 시대이니우리는 동굴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불을 환하게 밝힌 바르샤바 구 시가지의 건물.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조명을 밝힌 듯싶다.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려 지은 멋진 교회,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아 쓸쓸하기 그지없다.러시아의 기차역들. 그 어디를 가든 현대식이 아닌 19세기의 건물들이고 천장에는 혁명시대의 그림들이 웅장하게 그려져
기념하거나 숭상하거나한국의 대표 동상 이순신은 수도 광화문 앞에 칼을 들고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데, 한 외국인이 보고는 “제너럴 리는 왼손잡이였습니까?” 물었다 한다.칼을 왼손에 들어야 하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으니 왼손잡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그것이 옳은 지적이기는 해도 이순신은 오늘도 왼손잡이인 채로 서 있다.러시아, 폴란드, 독일에도 엄청 많은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그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가 전쟁 영웅(이순신, 김유신, 을지문덕, 맥아더 등)이 주류인 한국과 달리 다양한 동상이 수려한 자
무엇을 살까? 고민하지 말지어다내가 고등학교 2학년 정도(1978년)까지만 해도 펜팔(Pen pal)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울의 남학생이 부산의 여학생과 편지로 사귄다는 것인데, 시야를 넓혀 해외에 친구를 만드는 국제펜팔을 하는 녀석도 간혹 있었다.한 녀석이 미국 여학생과 한 달에 두어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대나무로 만든 20cm 짜리 지게 모형을 학교로 가지고 왔다. 무어냐고 물으니 미국 여학생에게 보낼 선물이란다. 대나무 지게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그로부터 40여년이 지
세상을 향해 외치다유관순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상의 소녀는맨발이다.왜누구를 향해무엇을외치고 있는 것일까?깃발도 없이확성기도 없이뒤따르는 사람도 없이그 흔한 신발조차 없이고독하게 홀로 서서무엇을 외치는 것일까?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을 향해 도전하라, 그대의 온몸을 내던져라...하지만 나는 그러한 용기가 없다.어쩌면 그대 또한 그러할 것이지만그대 귀에 들려오는 외침을 모른 척하지는 못하리라.그것만으로도 소녀는그 누군가의 등대가 되었다. 파괴되어 더욱 아름답다어쩌면 여신이었을 것이다. 고대 신화 속에는 남신보다는 여신이 더 많고, 사연도
노동은 가장 신성하다땅을 파고못을 박고시멘트를 바르고벽을 칠하고전기선을 잇고힘든 이 노동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삶은 이어지지 않는다.다들 책상에 앉아 펜만 굴리고, 키보드만 두드리고, 지시만 내리면인간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노동은 영원해야 하고우리의 터전을 가꾸어 가는 것이기에가장 신성하다.*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벽에 붙은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아마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기 위해 붙여놓은 듯하다. 책임감과 신뢰를 주기 위해.
이것은 현란한 아우성처음에 붙인 놈이 제일 잘난 놈이다.그걸 보고 옆에 놈이 따라서 붙였을 게고세 번째부터는 너도나도 우르르 붙였을 게다.술집 전단지인지, 공연 안내문인지, 사원모집 공고인지의미없는 딱지인지 알 수 없으나전봇대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그렇게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라현란한 아우성이 되었고붙인 사람의 바람과 상관없이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현란하되 쓸모없는 몸짓일 뿐이다. 탈 것은 진화한다옛날에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폰 훔볼트가 세운 대학이라 하는데황태자의 여름별장이었다는 설명도 있다.처음
내 몸은 속박되었으나 영혼은 자유롭다베를린 교외의 어느 큰 호텔 (이름은 알지 못한다)앞에 있는 박물관 (이름은 알지 못한다)마당에 세워져 있는 청동 동상.녹이 슬지 않아 더욱 선명한...색출되어 붙잡힌 유대인으로 추정되며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로 목숨을 달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면...더 이상의 추정은 하지 않는 것이이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늘 그렇듯동상의 남자 꼬추는 너무 많은 사람이 만져서윤이 반들반들 나면서도눈에 담긴 깊은 슬픔과 그리움,그리고 모든 것에의
내 생명을 걸어야 한다먼저 3초 동안 묵념을 올린 뒤어느 쪽이 동쪽이고, 어느 쪽이 서쪽인지 파악하라.자동차에서 내렸건, 걸어서 도착했건베를린 장벽 앞에 서면 동서남북의 구분이 애매해진다.방법은 간단하다.양쪽을 다 본 후앙상한 갈비뼈를 떠올리게 하는 벽속의 철근이 더 많이 패인 곳이 동쪽이다.즉 동독 시민들이 장벽을 넘기 위해콘크리트 벽을 죽자사자 파괴했다.그런 다음 그 앞에 서서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해보라.그대가 혈기왕성한 청춘이라면 능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장벽을 세운 사람은 그것을 충분히 감안해서 높이 세웠
무엇을 기원하는가우리나라가 통일되면 ‘통일문’을 어디엔가 세울 것이다.판문점이 될 확률이 높다.그 문의 이름은 무엇일까?위치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이다.과연 언제 통일이 될까? 이 문은 개선문(凱旋門)이다.가장 유명하기로는 프랑스 에투알 개선문(Triumphal Arch)이고로마에 가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이 있고북한의 평양에도 개선문이 있으며, 한국 서울에도 비슷한 독립문이 있다.그리고 베를린에는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 Gate)이 있다. 그 위치와 역사, 의미, 건축
신나게 놀아보아요오늘 해가 떴으니맥주 한 잔!해가 뜨지 않고 비가 온다면그래도 맥주 한 잔!해가 뜨지 않고, 비가 오지 않고, 바람만 불어도그래도 맥주 한 잔!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도 맥주 한 잔! 10명까지 앉아서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는자전거식 자동차는 맥주 홍보차 겸 놀이차 겸그냥 제멋대로 즐기는 차. 만든 사람은 기특하고그것을 즐기는 청년들은 부럽다. 외로울 땐 그저 커피 한잔혹 ‘300원’이라는 노래를 아시는가?뚜띠(Ttutti)라는 쌍둥이 자매가 부르는 트로트이다.“당신의 빈 지갑에 동전뿐이면 / 300원 커피도 맛있
벽화가 위엄있는 기차역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7시 50분인데아직 밖은 환했다. 7월 말이었으니까.베를린 기차역에 내려 밖으로 나가니귀에는 귀걸이, 입술에는 쇠구슬을 박은 남자들과머리를 짧게 깎은 특공대 같은 여자들이한여름인데도 색 바랜 가죽점퍼를 입고팔에는 그로테스크한 문신이 가득 하고기타를 치며, 요란하게 노래를 부르며괴성을 내지르며...러시아-벨로루시-폴란드를 거쳐 도착한베를린 기차역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아니라 유리집.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거리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눈매는 칸트처럼 매섭고단지 마음에 드는 것은 기차역
침묵 속의 맹약약속을 한 후 여섯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 약속은 허공에 흩어지는 먼지가 된다.오른손이 4개, 왼손이 2개.그 앞과 옆에 놓인 잔은 6개, 그 잔에 담긴 것은 붉은 포도주.피만큼 붉은 포도주를 놓고 그들이 지킨 약속은 영원한 비밀.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은 국경을 넘어 폴란드를 침공했고,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폴란드의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소련이 가세해 이후 6년 동안 두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세웠고, 그 시기의
서로 사랑하시나요?인형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주술사였을 것이다.짚이나 나뭇가지로 누군가를 꼭 닮게 만든 뒤마구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그것을 훔쳐본 여자가사랑을 배신한 남자를 만들어 더 심한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그러다 가슴이 너무 쓰라려 펑펑 울었을 것이다.그러다 껴안고 잠에 들었을 것이며그것을 훔쳐본 남자가흥, 콧방귀를 뀌고는 짝사랑하는 예쁜 여자를 만들어칼끝에 매달고 다녔을 것이다.그것을 본 다른 남자와 여자들 모두누군가를 닮은 인형을 만들었고그렇게 4~5천년이 흘러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태초에 저주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멈추지 않는 K-POP 열기해외에 나가“I'm from Korea.”라고 말하면, 간혹 North Korea? or South Korea?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순간적으로 North가 북인지, 남인지, South가 북인지, 남인지당황스럽다.그럴 때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면 된다. 갤럭시 혹은 LG G5면 만사형통이다.만일 아이폰이라면 South Korea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발음이 시원찮다면‘갤럭쉬’ 혹은 ‘엘쥐 쥐퐈이브’아니면 ‘헌다이 오토모빌’(현대자동차)혹은 ‘싸이, 걩냄스타일’이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
밤의 이미지는 아름답다슬픈 역사쯤이야 극복하면,-그만큼의 아픔과 세월이 요구되지만-극복하면 그만이다.어느 민족인들 아픔이 없으며, 어느 나라인들 고난이 없을쏘냐.그러므로,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하여 슬픔이 묻히지야 않겠지만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위로와 희망을 준다.보여주기 위한 관공서용 조명도 필요하지만작은 가게의 작은 등불도 있어야 한다.창 위에 매달린 LOTTO 간판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불확실성의 시대에서전 세계 어디를 가든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살아간다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누군가는 떠나려 하고누군가는 하루의 피로를 풀려 한다.그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용서하고...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다.이름을 남기기 위해권력을 잡기 위해거부가 되기 위해 살기보다하루를 보람있게 사는 것그것이 삶의 참된 모습이다.반드시 베고야 말리라폴란드는 1572년 야기에오(Jagiellonian) 왕조가 끝나고, 귀족 공화정이 등장하면서 국왕의 권력이 귀족들에 의해 제한되었다.1596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길가에 너무 흔히 굴러다니기 때문에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거나 적어도 인식되는 일이 없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는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고 일깨워주면 크게 놀란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수천 수만 개나 돌아다니지만 발견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1925~27년 발간된 히틀러의 자서전 (Mein Kampf) 제1권 ‘민족주의적 세계관’의 11장 ‘민족과 인종’에 실린 글이다.매우 멋진 말이고, 옳은 말이다. 이 잘못된 옳음에 기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