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애장품을 하나씩 가져와 주세요”한 연말 모임 주최자의 요구였다. 뭐든 고르면 되리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방안을 살폈다. 키보드와 책 몇권, 각종 영양제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매일 먹고 사용하는 물건들이긴 하지만, 내겐 애장품보단 호미나 몽키스패너 같은 공구에 더 가까운 물건들이다. 밥벌이와, 밥벌이를 감당할 몸을 유지하기 위한 공구들을 애장품이랍시고 가져가고 싶진 않았다.이번엔 침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실내 자전거와 아령, 책들 따위의 공구들이 있었다. 이쯤되니 막막함보단
“곧 사회생활을 시작할 학생 여러분들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쉽게 사과하지 말라는 것을 당부합니다”10년쯤 전 철학과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이게 나올 말이 아닌데?’ 싶은 한 마디에 졸음이 달아났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 강사가 펼친 대강의 논리는 이러했다. 먼저 사과한 당신은 아마 선한 사람일 것이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객관적으로 잘못한 바가 없어도 마음의 상처를 호소하는 누군가에게 선의를 담아 먼저 사과를 건넸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 객관적으로 그릇된 언행을 한 상황에서의 사
인간은 일반화를 좋아한다. 일반화의 효용은 쉽고 편하다는데 있다. 일반화에 싸잡힌 집단 개개인의 사정과 맥락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고려하지 않으니 혐오하긴 더 쉽다. 딸배는 딸배고, 기레기는 기레기이며, 맘충은 맘충이다. 저쪽을 향해 준엄한 윤리적 비판을 가하는 이쪽의 도덕성은 절로 드높아진다는 추가 효용까지 갖췄으니 이정도면 ‘가성비 甲’의 칭호가 타당하다 하겠다.위에 언급한 혐오 표현들을 직접 사용한 적은 없다. 그러나 특히 배달원들을 향한 내 시선이 과히 곱지 못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내
“아참, 댓글창에 기레기네 뭐네 하는 말들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모 언론사 인턴기자로 입사했을 때 교육을 맡았던 한 선배의 당부였다. 선배의 당부가 단순한 노파심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우리 새파란 인턴 기자들이 ‘기레기’란 단어에 익숙해 지는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걸 기사라고 썼냐 기렉아’, ‘넌 돈 쉽게 벌어서 좋겠다 기렉아’, ‘진짜 한국 기레기들 노답’ 등의 댓글들이 병아리 인턴기자들에게 쏟아졌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계약직 6개월 동안 내가 써낸 기사들의 절대 다수는 내가 봐도 서글픈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시 언]딸들은 정확하게 울었다. 한달 전 외할머니의 3일장을 지낸 후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은 겨우 이런 것이었다. 스산하게 식은 할머니의 시신을 어루만질 때, 벽제 화장장에서 할머니의 관이 운구될 때, 단 10분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엄마와 이모들은 자명종 시계처럼 불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기진해도 빼놓을 수 없다는 듯이. 식장 복도를 가득 메운 오열들은 장례 의식의 각 단계가 시작될 때마다 정확히 시작됐고, 각 단계가 마무리 되면 1시간을 넘기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엄마와 할머니들의 눈치를 보던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첨예했던 대립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꼰대’와 ‘요즘것들’ 간의 신경전이었다. 오죽하면 3대 성현 중 하나로까지 통하는 테스형조차 젊은이들의 고발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았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시절보다 더 오랜 옛날 고대 벽화 한 구석에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푸념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두 세력간의 간의 대립이 주로 ‘조언(助言)’이라는 대화 형식에서 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어디 꼰대와 요즘것들 만의 문제인가. 친구, 연인, 가족 간에서도 ‘다 너
[청년칼럼=시언]벌써 5년전의 일입니다. 학계 석학이자 정부 요직까지 두루 거치신 원로 교수님 한분과 식사를 하게 됐죠. 당연히 어려웠을테고, 어쩌면 어려워했어야 옳았을 자리. 그러나 당시의 저는 꽤 신이 나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교수님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고, 그럼 당연히 책도 많이 보셨을테고, 내가 재밌게 읽은 책에 대해 말해도 흥미롭게 들으시겠구나! 책 얘기할 기회만 찾아다니는 인간만이 떠올릴법한, 기적의 삼단논법이었죠. 24살. 또래들 중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얘기 나누고 싶어하는 이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청년칼럼=시언]최근에 한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차피 떨어질텐데...” 청년들 취업의 꿈 접었다’(동아일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였다. 9번째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에 지원하고 잠시 짬이 났던 차여서 나는 무심코 기사를 클릭했다.기자는 구직 적령기에 든 청년층에서 구직을 포기한 이른바 ‘비구직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 자료를 들며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함을 강변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비구직 니트족 청년의 숫자는 2015년에 비해 10.4%
[청년칼럼=시언]‘뇌는 상상의 감정과 실제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다’주말 오후 3시 13분, 6km 지점을 통과할 즈음이었다. 러닝화 밑창이 화끈거리기 시작할 무렵, 엊그제 읽은 뇌과학 책 속 문장 하나가 헬륨 풍선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요컨대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특정 상상을 할 때 –이를테면 한강 다리가 무너져 내 위로 쏟아지는 상상 등 – 뇌는 찰나일지언정 실제로 그 사건이 눈앞에 들이닥친 것처럼 긴장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해당 감정은 무의식의 어딘
[청년칼럼=시언]나는 ‘그’ 학과 출신이다. 학과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가업 물려받기’가 유망 직종이라며 자학글을 써댄다는 바로 그 학과. ‘군자가 무엇인지 논하라’는 시험 문제에 “소인이 어찌 군자의 도를 논하리오” 한 문장 써갈겨 내면 교수님이 무릎을 치며 A+를 수여한다던 전설의 꿀(?)전공. 미국 유명 코미디언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라고 디스했다던 바로 그곳. 철.학.과. (방금의 ‘썰’들을 실제 철학과 출신들에게 실습하는 우를 범하진 않길 권장한다. 자학 개그는 본인이 할 때만 개
[청년칼럼=시언]모든 인간 관계는 나와 당신을 실망시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의 행위 뒤에는 이기심이라는 음험한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비관주의나 성악설을 펼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휴대폰 속 수많은 인맥들이 생각보다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다소 비관적으로 보이나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저의 믿음은 제가 ‘자발적 자가고립의 시대’에, 의외로 잘 지내는 비결이기도 합니다.먼저 제 얘기를 좀 해야겠군요. 자타가 공히
[청년칼럼=시언]“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92p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나요? 2020년 2월, 여기 대한민국은 여름이 한창입니다. 여름은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신영복 선생의 정의(定義)에 따르자면 말이죠.코로나19라는 이름의 전염병이
[청년칼럼=시언] “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왜 싫어해요?"“시끄럽다고. 나만 없으면 ‘에브리바디 해피’한데 자꾸 시끄럽게 한다고요.”2017년 9월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 中그는 스타였다. 그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러했다. 겨우 환자 하나 살리자고 ‘사망시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한 채 헬리콥터에 타는 ‘별종’ 의사였기 때문이고, 한쪽 눈이 실명해 갈때도 병상에 눕기보다 수술대에 섰기 때문이고, 중증환자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데 필요하다면
[청년칼럼=시언] 자체휴강시네마와의 처음을 기억한다. 2019년 3월, 시나리오 작가인 사촌형과 우리 동네에서 불콰하게 술을 마신 날이었다. 2차는 어디로 갈까 궁리하는데 형이 뜬금없이 영화관에 들르자고 했다. 오후 10시를 향해 치닫는 지금 예약도 안한 영화를 보자는 말이 황당했고, 영화관을 ‘들르자’는 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영화관이 어디인가. 일단 영화 한편 보려면 상영작과 상영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고, 적합한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멀기는 또 좀 먼가. 한 마디로 나에게 영화관은 상당한 귀찮음을 감수해야 갈 수 있는
“그럼, 대학 나와서는 쭉 논 거네?”모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매장 알바 면접이었다. 가자미 눈을 뜬 채 내 이력서를 노려보던 사장은 분명 그렇게 물었다. ‘놀다’라는 단어의 실질적 의미를 나는 잠시 숙고했다. 내가 아무리 뽀로로마냥 노는 게 제일 좋은 인간이긴 해도 만난지 30분 된 초면의 사장이 그걸 알리 만무했다. 여기다 ‘~거네?’라는 반말까지 조합하면 그가 사용한 ‘놀다’의 의미는 명확했다. 나는 쓰게 미소 지었다. 사장님은 면접에서 ‘탈락’이었다.돌이켜보면 그와의 첫 접촉은 쎄한 구석이 있었다. 밤 10시 30분, 그
[청년칼럼=시언] 고시촌은 외로운 도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로운 자들의 도시다. 고시생과 공시생, 지방 출신 사회 초년생, 외국인 유학생 등 홀로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공간이다. 그래서 고시촌 길거리에선 ‘말소리’가 귀하다. 입을 다문 채 학원으로, 직장으로, 그리고 본인도 모를 어딘가로 고단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침묵하는 유령들의 도시랄까.고시촌에 귀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웃음이다. 무리도 아니리라. 온통 ‘준비하는 자들’뿐인 이 도시에서 웃을 일이 빈번할 리 없다. 진정 활짝 웃게 된 사람들은 부
[청년칼럼=시언] 전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인구는 몇 퍼센트일까? 20%? 50%? 80%? 찰나의 순간이지만 대부분의 시선은 20%와 50%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80%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을 포함한 전 세계 인구의 80%가 -다소 불안정할 지언정-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생각보다’ 높은가? 그렇다.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는 당신이 세계를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을 사정없이 ‘팩트폭행’하는 책이다.그렇다고 책을 읽는 당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식한지 낱낱이 지적하는 꼰대류의 책일까 염려
[청년칼럼=시언]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다분히 철학스러운 질문에 빠져있던 내 머릿속에 뜬금없이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담당했던 교수의 한마디가 떠올랐다.“여러분이 글을 잘 쓰려면 줄거리를 요약할 줄 아는 게 핵심입니다”당시 스무살이던 나는 코웃음 쳤었더랬다. 줄거리야 책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발 큰 난쟁이들이 마법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는 이야기’ 따위를 쓰는 게 글쓰기의 핵심이라니. 중요한 건 작가가 숨겨놓은 지적 퍼즐을 찾아내고, 그를 맛깔나게 해설하는 지성과 필력이라고만 믿었다
“너 이거 기억나니?”장마 직전의 새벽은 스산했다. 불면으로 얼룩진 베갯머리가 짜증스러워질 무렵, 엄마는 뜬금없이 사진 한 장을 전송해왔다. 구겨진 지퍼백에 터지도록 담긴 50개 가량의 편지 뭉치 두개를 나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5년 전 군대 시절, 당신과 내가 주고받은 손편지들이었다.아들의 훈련소 입소를 앞둔 어느 엄마가 심난하지 않겠느냐마는 정작 당신의 좌절은 다른데서 왔다. 바로 입영 대상자는 훈련소에 종교 서적을 제외한 그 어떤 책도 반입할 수 없다는 규정이 그것이었다. “우리 애는 책을 읽어야 되는데...” 우리 아들
[청년칼럼=시언] 내가 사는 ‘관악구 고시촌’에는 토킹바(Talking Bar)가 많다. 다른 동네에선 동에 하나도 찾기 힘들지만, 이곳엔 한 블록당 몇 개씩 있기도 하다. 바들은 주로 오후 10시쯤 가게 문을 여는데, 새벽 4시 장사 종료 전까지 2~30대 남자들이 하나 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고객들은 젊은 바텐더들과 맥주나 양주를 사이에 둔 채 대화를 나눈다. 터치 등 퇴폐적인 요소는 없다. 물론 바텐더들은 대부분 가명을 사용하며 근속 기간도 짧다.하루는 예비 취재 차 바 2~3곳을 돌며 바텐더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