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잎싹이는 태어난 지 채 5개월이 되지 않으리라고 추정되는 어린 암탉이다. 암탉은 보통 생후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데 도계장에서 구조되어 한 활동가의 집에서 보호받은 지 4개월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초란을 낳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그녀의 월령 수를 가늠해 보았을 때 그렇다.지난 6월 23일, 나와 함께 동물권 활동을 하고 있던 서울애니멀세이브 내의 소모임 원들이 초복 대비 비질(Vigil : 동물이 고통받는 현장을 찾아 이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할 만한 장소를 찾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7월 7일 수요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첫 지하철을 탔다.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초복(初伏) 대비 비질(Vigil)을 할 장소로 정한 경기도 북부의 한 도계장 앞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거의 세 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그곳뿐만이 아니라 비질 소모임 원들과 매달 정기적으로 다니는 소, 돼지 도축장 역시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먼 거리인 경기 남부지역에 있다.나는 원래 나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먼 곳에 가는 것은 질색인 편이라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 개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다. 수십 년 전 농촌에서는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곤 했는데 자기 집 개를 먹지는 않고 대신 서로 키우던 개를 바꾸어서 잡아먹곤 했다. 그래서인지 복날이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개와 그런 개를 잡으려고 뒤쫓는 젊은 남자들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며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땅을 치고 기둥을 붙잡고 그렇게 울부짖어도 우리 백구는, 우리 누렁이는 소나무에 묶여 몽둥이에 맞아 죽은 뒤 한 그릇의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아버지를 여의고 고향 테바이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통치자 크레온의 법령을 어기고 죽은 오라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낸다. 크레온은 그녀의 오라비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전사한 그에게 어떠한 장례 절차나 애도 의식도 행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안티고네가 그 금령을 깨뜨린 것이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법적 규약에 대항하면서, 다른 근거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즉 크레온의 법령은 인간의 법일 뿐 그녀에게 더 의미 있는 것은 불변하는 ‘신의 법’이라는 것이다. 신의 법은 가족의 죽음에 애도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 까닭은 비행기가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할 때의 그 울렁증이 좋았다. 생활에 짓눌려 가라 앉아 있던 오감과 감수성이 깨어나는 그 기분을 누려보고 싶었다. 구름 위를 날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비행의 시간이 나를 젊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여행을 감행했다.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을 떠날 엄두를
[논객칼럼=박정애]태풍 속으로 달렸다. 취소 불가능한 예약이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도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해 단 시간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후 우린 콘도에 고립되었다. 모든 출입문이 폐쇄된 로비를 거닐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순간 출입문 한쪽이 퍽 소리를 내더니 유리 파편이 흘러내렸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유리들도 깨질까봐 겁이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방 안에 갇혀 거센 파도와 꺾일 듯이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들, 그리고 신들린 듯이 나풀거리고 있는 현수막, 살수차로 뿌린 것처럼 사
[논객칼럼=박정애]너도 말하라,가장 마지막 사람으로서 말하라,너의 말을 하라 말하라그러나 아니다를 그렇다와 가르지 마라.너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라그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라. 그림자를 충분히 드리우라,그것에 충분히......파울 첼란의 ‘너도 말하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한 그는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을 말하라고 절규한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그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하라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붙들어 세운다.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돌아서는 독자를 멈
[논객칼럼=박정애]‘인 더 더스트’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지진과 함께 파리에 원인 불명의 미세먼지가 차오르고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죽어간다. 이 영화는 미세먼지가 얼마나 무서운 살인자인지를 세상에 선포한 일명 ‘미세먼지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환경의 역습으로 인해 수많은 재앙이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미세먼지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고민해 보기로 하자.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먼지에는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논객칼럼=박정애]고향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 하나는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줄이 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야 하는 깊은 우물이었다. 그 우물은 각 가정에 수도 시설이 없던 그 시절, 동네 사람 모두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튼튼한 나무 기둥 네 개를 세우고 파란 기와지붕까지 얹어 우리의 샘물을 소중하게 보존하였다.또 하나의 우물은 동네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키 낮은 분화구처럼 생긴 그 우물을 가운데 두고 주변엔 온통 논밭이었다. 그 우물은 들일에 지친 어른들의 휴식처였다. 일하다 땀이 많이
[논객칼럼=박정애]코로나로 인해 2020년의 봄은 일그러져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고 고통받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라도 감염될까 싶은 두려움에 봄꽃들의 향연도 만끽하러 떠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개학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정지수 또한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매일 신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마스크 행렬이다.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고작 1500원 밖에 하지 않는 물품이지
[논객칼럼=박정애] 집안일 중 가장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분리배출이다. 캔, 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등 종류별로 모아둔 것을 카트에 싣다 보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플라스틱 제품들이다. 분리배출일마다 ‘사는 게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이구나’하는 것을 절감하고 지구에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하지만 꼼꼼하게 분류해서 내놓은 쓰레기들이 소중한 자원으로 재활용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귀찮음을 이겨내며 하나라도 잘못 들어갈세라 매의 눈으로 살피며 각각의 포대에 쓰레기를 나누어 담곤 했다.그런데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아
[논객칼럼=박정애] 1월 하순에 접어들도록 제대로 된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겨울. 기후 온난화를 실감하는 이 겨울에 어떤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레타 툰베리!그녀는 올해 17세가 되는 스웨덴 소녀이자 ‘기후정의운동’의 최전선에 선 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학교 파업을 선언하고 1인 시위를 통해 전 세계 시민들이 ‘기후위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이 드디어 2019년 9월 21일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 비상행동’을 이끌어 냈다.‘IPCC’라는 약자로 잘 알려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에서 다섯 차
[논객칼럼=박정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저자가 강연 중 ‘자신은 결정 장애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휠체어에 타신 어떤 분이 꼭 ‘장애’라는 표현을 써야 했느냐고 묻는다. 그제야 저자는 자신이 무심코 뱉은 표현에 혐오의 날이 서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 다 되었네요.’ 혹은 ‘똥남아, 똥꼬충, 급식충, 틀딱충, 맘충, 김 여사’와 같은 표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한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
[논객칼럼=박정애] 나는 지금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10년째 살고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한 동네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니 이제 이 동네 사람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10년 내내 공사가 멈춘 적이 없다. 이사 오기 전부터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수 천 세대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미분양도 꽤 된다고 하니 이제 더 이상 짓지 않겠지? 하고 내심 기대했건만.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지하철 공사와 더불어 초역세권을 내세우는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또 시작되었다. 교통 혼잡은
“나 이거 먹을란다.”슈퍼마켓 아이스크림 냉동고 속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하드 하나를 가리켰다. 비비빅이었다. 시골에 계실 때도 날마다 하나씩 드셨다고 한다. 나는 냉동고 문을 열고 비비빅 열 개를 집어 들었다. 그 중 한 개는 곧 바로 비닐 껍질을 벗겨내서 엄마 손에 들려 드렸다. 엄마가 활짝 웃으셨다. 유치원생처럼 느껴졌다. 나이를 불문하고 내숭 없는 순진함은 귀여움을 유발한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올해 여든 여섯이 된 엄마는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살러 오셨다. 뇌출혈, 뇌졸중을 차례대로 앓으시고도 냉동고 속 비비빅처럼
[논객칼럼=박정애]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세계 곳곳에서 신생 정당들의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2015년 스페인의 포데모스 정당이 국민당, 사회당의 양당 구도를 깨고 원내 3당으로 올라섰다. 당시 포데모스는 창당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완연한 새내기 정당인데도 눈부시게 빠른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지역 정당인 바르셀로나 엔 코무에서는 2015년에 바르셀로나 최초의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2016년에는 로마에서도 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 당선되었는데, 그녀 역시 신생 정당인 ‘오성 운동’의 당원이었다. 이러
[논객칼럼=박정애]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美)’라는 것이 있다. 얼핏 보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실용성, 효율성 등 현실적인 측면에서 ‘시(詩)’ 만큼 무용(無用)한 장르가 있을까. 하지만 이 쓸모없음이 어떤 고귀한 쓸모를 만들어내는지 한 시인의 삶을 통해 말해보고자 한다.그녀는 십여 년 전 혼자 마라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섬이 맺어준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장면 집을 운영한다. 이러한 사연을 나는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텔레비전 프
[논객칼럼=박정애] 초여름의 천변 산책로에는 우유 판촉전이 진행 중이었다. 다른 계절에는 뜸하다가 여름만 되면 여러 우유 회사의 판촉 사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판대를 설치하고 우유 홍보에 열을 올리곤 했다. 판촉 사원들마다 공짜 우유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번 기회에 아들한테 최고의 우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판촉 사원들에게 이것저것 깐깐하게 캐물었고 그 결과 몇 가지 전문적인 지식까지 알게 되었다. 고온 살균보다는 저온 살균 우유가 신선하다는 것, 맛이 고소하다는 것은 풀이 아닌 옥수수 사료를 더 많이 먹인 증거라는 것.나는
[논객칼럼=박정애] 인덕션 위에선 구수한 된장국이 끓고 있고 에어프라이어에선 기름진 고등어가 구워지고 있다. 씩씩거리던 전기밥솥은 힘차게 김을 쏘아 올린다. 그 사이 김치 냉장고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를 꺼내 썰고 어제 먹다 남은 계란말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주방을 가득 채운 열기에 목이 마르다. 정수기 버튼을 눌러 미온수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저녁 준비가 한창인 주방의 풍경은 가족을 향한 주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전기로 가득 차 있다.비단 주방뿐이랴. 이젠 세탁기를 넘어 건조기에 빨래를 말린다. 청정한 공기마
[논객칼럼=박정애] 자식을 낳고 고민의 결이 바뀌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세상에 이렇게나 혼을 쏙 빼놓는 존재가 있을까. 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 사랑스러운 아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전의 관념적이고 낭만적인 사고체계에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엄마가 된 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중에 제일 먼저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바로 푸드(food)였다.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 것인가? 음식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올바른 식재료에 대한 탐구와 추적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