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우디]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 전이었다. 다만 언제 말할지 망설여졌다. 적어도 1년은 참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해볼만큼 해봤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통근버스를 버티고 푹푹 꺾이는 무릎을 다시 세웠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 어쩌다가 거래처에서 하는 내 뒷담화를 실제로 듣게 됐고, 사수는 3개월 된 신입 부하직원을 두고 퇴사했다. 울고 싶었지만 선배들은 내게 약하다고 했다.회사가 있던 6층 비상구 계단 난간에 상반신을 걸치고 여기서 떨어질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했
[오피니언타임스=우디] ‘광화문 이그래’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백기로 바꿔주면 안 될까, 라고 친구에게 항의했지만 조용히 하라며 맥주잔만 입에 물려졌다. 친구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우리의 인생에 ‘백기’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3개월 차 미생을 찍고 있다. 원래 모두의 인생은 드라마의 한 장면 보다 더 다이나믹한 법이다.나는 최근 한 달 동안 회사 빌딩 비상구에 세금(?)을 내야 할 정도로 매일 도망가서 울었다. 화장실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업무를 봤다. 일은 마무리해야 하는데 메신저로 상사들의 연락은 계속 왔고
[오피니언타임스=우디] 당신은 악의를 갖고 글을 썼어요. 2일 전 어떤 남자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실제로 실수를 하긴 했다. 남자가 보낸 3줄짜리 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고, 글을 썼다. 마지막 메일이 오기 전, 나는 이미 그에게 2번의 메일을 보냈었고 그 때마다 남자는 입장을 전하지 않을 것이며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 때문에 불편을 겪은 사람들은 70명이 넘었다. 나는 마지막 3번째 메일을 보냈고 남자는 그제야 답을 했다.나는 글을 수정하고 남자에게 미숙해서 죄송하고,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지원동기에 쓸 말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다지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한 때는 프리터족(프리아르바이터)을 꿈꾸기도 했다. 여러 군데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출퇴근 하는 삶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오늘 한 일을 내일도 똑같이 하는 것이 너무나 무료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더군다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지금 같은 때에 살기 위해서 돈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꿈에 부풀어서 ‘영원히 일하지 않고 글만 쓸 거야’, ‘고흐 같은 예술가로 남을 거야’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4남매 중 막내인 작은외삼촌이 고등학생 때였다. 외삼촌은 담배를 피다가 몇 번 학생주임 선생님께 걸렸는데, 그 횟수가 꽤 늘어나자 어머니를 모셔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쩌지, 어떡하지, 어떻게 말을 하지. 그런 고민과 걱정 사이에서 선생님의 으름장은 자꾸만 커져갔고 외삼촌은 할 수 없이 외할머니에게 말을 꺼냈다.외삼촌은 외할머니에게 아주 크게 혼이 날거라고 최악의 수를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 교무실 밖에서 기다렸다. 몇 분 후에 선생님과 면담을 마친 외할머니가 조용히 삼촌 앞에 나타났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별로 없
[오피니언타임스=우디] 2018년을 꽤나 열심히 기다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유난스럽게도 올해가 너무 기대되고 좋아서 작년 12월을 즐겁게 보냈다. 연말에 술도 많이 마셨고, 20대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많이도 웃었다. 8이라는 숫자에는 동그라미가 두 개나 있어서 둥글둥글 귀여워,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정말 즐겁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막상 2018년 1월 1일이 되고나니 감당 못할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이유 모를 기대는 이유 모를 절망을 낳았다. 동글동글 귀여운 2018년이라고 뭐 별다른 건 없었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고, 나는 컴퓨터 학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요 근래 영화 『1987』이 엄청난 흥행이에요. 87학번들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해요. 영화를 볼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겠죠? 저는 엄마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엄마는 그때에 종로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대요. 매일 최루탄 냄새를 맡았고, 조금 일찍 퇴근한 날 동기들과 시청역 한복판으로 걸어갔는데 갑자기 데모가 시작되어서 영화 속 연희처럼 미친 듯이 뛰어 도망쳤대요.가끔씩 엄마가 일하는 건물로도 대학생들이 도망쳐 들어왔는데 경비원과 화장실 청소 아주머니가 화장실 칸 안으로 학생들을 밀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취준생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거운 백팩을 메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문득 ‘아, 그 때가 왔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 간질간질하고 귓가와 옆구리가 북적북적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세상에 없는 어떤 존재들까지 모여서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연락을 해야겠네’라고 생각했다.해가 바뀐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던 무렵은 초등학생 즈음이었다. 연말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해돋이를 몇 번 보러 갔고, 어떤 기억에는 해가 바뀔 때 잠을 자면 눈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종로3가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부터 12시 20분까지 하는 수업이고 읽기(Reading)와 문법(Grammar)으로 구성된 코스이다. 주5일, 매일 아침 파란버스에 몸을 싣고 취준생이 되어 종로로 향한지 보름이 조금 넘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어학원에 가본 나는 조금 늦은 출발이다. 학원에 가면 단어장을 쥐고, 추운 날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 예전에 재수종합반을 다녔던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업은 즐겁다. 4년 정도 암기나 시험형 공부와는
[오피니언타임스=우디] 밤 9시 30분이었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3통째 이어졌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긴 했지만, 늦은 밤의 전화는 너무하지 않은가. 통화가능 시각은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라고 명시해놓았는데! 3통까지는 그냥 무시 했는데 4통째가 되니 갑자기 화가 치솟아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굉장히 밝은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력서 보고 연락을 드렸어요’라고 시작되는 얘기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사진이 정말 밝고 예쁘셔서 전화 드렸는데, 어, 음, 목소리가 굉장히&he
[오피니언타임스=우디] 42일간 도쿄 여행을 왔다. 도쿄는 1월에 한 번 여행을 다녀갔기에,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도쿄에 취직한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며 도쿄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동생과 쉬는 날 만나고 있다. 한국에서 놀듯이 하라주쿠, 신주쿠, 이케부쿠로를 쏘다니다 보니 도쿄인지 미니 한국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이리저리 구경하고 여행을 다니는 게 현재의 일상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쉬는 시간이 정말 많아졌다. 친구가 출근하면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고, 같이 사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이불을 정리하고 빨
[오피니언타임스=우디]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는 치킨집이 하나 있다. 치킨 배달을 시키면 20분이 채 안 되서 배달되는 경이로운 즐거움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불편함이 더 크다. 동네 치킨 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곳에서는 매일 술판이 벌여진다. 만취한 사람들은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목소리가 커지고 화가 나면 화가 난 대로 소리를 지른다. 테이블을 두드리고,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던지기 일쑤이다. 새벽 2시정도가 되면 꼭 쩌렁쩌렁하게 자기 자랑을 하는 아저씨들이 나타난다.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켜고 방안에서 굴러다니던 나도 이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단기직으로 잠시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었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은 어느 날,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러 번화가로 나갔다. 버스에 내려서 약속장소로 걸어가는 순간이었다.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나를 툭 치고 갔고, 교복을 입은 몇몇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어떤 아저씨는 통화를 하며 걸었고, 운동복 입은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아주 살짝 스쳤다.일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스침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에 한쪽 손을 들어서 귀를 막고, 어깨에 멘 가방 줄을 부여잡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어디 사채라도 쓴 거야? 이쯤되면 야반도주 급인데?”6월 한 달에만 제주도를 2번 다녀오고, 후쿠오카 여행까지 마치고 온 나에게 친구가 장난스럽게 건넨 말이다. 30일 동안 서울에 머문 날이 19일 뿐이니 친구의 농담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4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다. 한 달에 20만원도 안 쓰고 모조리 통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돈이 조금씩 모일 때마다 제주도 항공권, 후쿠오카 항공권을 차곡차곡 결제했다. 최근에 내가 아등바등 돈을 번 이유는 단지 항공권을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행에 다녀와서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5월 어느 날, D구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4개월 계약직 알바 A씨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알바의 상사인 지도계(선거법 위반 사항을 감시·단속하는 부서)의 계장, 주임은 구내의 큰 행사를 감시하러 사무실을 비운 상태이다. 계약직 A에게 주어진 권한은 ‘전화받기, 메모하기’이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계장과 주임은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항상 일반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공무원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저 일반인들은 공무원법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즉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A는 까라면 까야하고 아무런 권한도
18살의 나는 주말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주 광화문으로 뛰어나갔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나가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말했다. ‘태어나서 한 건 공부밖에 없는데, 놀지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어요.’ 매주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대통령은 귀를 막고 자기 멋대로 정책을 진행시키는 2008년이었다. 후에 성인이 되어 광우병사태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긴 했지만, 당시 18살의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져나간 대한민국이 될까봐, 가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폈다. 4월 16일 일요일엔 봄날의 기운이 가득했다. 일요일마다 다니는 영어회화 모임에서 야외스터디 제안이 나왔다. 반팔 티에 셔츠 하나만 걸쳐 입은 팀원도, 오랜만에 꽃무늬 자켓을 입은 나도 좋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슬며시 봄이 왔다. 니트를 입고 시작했던 스터디였는데, 반팔티를 꺼내 입고 모여앉았다. 우리는 더듬더듬 영어 몇 문장 말할 수 있게 됐다.시간은, 흐르는 것 같지 않아도 어느새 그렇게 빨리 앞으로 달려가서 우리를 잡아당긴다. 카페테라스에 앉아있으니 인형을 든 가족이 지나갔다. 카페에선 얼마 전
니플러는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 나오는 신비한 동물이다. 주인공 뉴트와 함께 다니는 이 귀여운 골칫덩이는 뉴트가 뉴욕에 온 순간부터 사고를 쳐서 주인공을 곤란하게 만든다. 니플러는 반짝이는 것이 있으면 모두 챙기는 습성이 있다. 니플러에게는 캥거루처럼 주머니가 있는데 무한한 크기여서 은행 금고에 있는 금을 다 챙겨 넣고도 보석상에서 금은보화까지 모두 쓸어 담을 수 있다. 니플러는 귀엽기도 하고 주인공 뉴트를 놀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서 나오는 모든 장면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사는 집 자식’이던 육촌오빠는 17살에 벌써 오토바이를 몰았다. 부모님 돈으로 중국, 영국 유학을 다니더니 외국에서 만난 변호사집 딸과 28살에 장가를 갔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가 모두 변호사인 새언니는 중국인이었는데 뉴스에서나 접하는 소황제, 소공주였다. 육촌오빠 결혼식에 다녀온 부모님은 “돈이 최고긴 하더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큰아빠는 커피 잔을 달그락거리면서 “내가 그 자식 등교시키고, 오토바이 타고 도망간 거 잡아온 게 몇인데. 번듯하게 장가를 가네”라고 신기해했다.나는 오빠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때 자전거 타
졸업 작품 발표회를 치룬 오후였다. 졸업하는 선배 작품을 후배에게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고, 한 달여간 열심히 써내려간 나의 소설이 억지로 읽고 질문을 몇 개 만들어야 하는 일감으로 취급 받음에 대해 분노한 오후였다.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친구에게 화를 내었고, 학과 행사를 제대로 치러내지 못한 후배에게 화를 내었다. 인문학관을 나서는데 등 언저리가 각목으로 두드려 맞은 듯이 욱신거렸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한 달 후면 나는 이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제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왜 나는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