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청년칼럼니스트]이번 대선은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이전부터 찍을 사람이 없다는 말은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정말로’ 없다고 치자. 그러면 왜 찍을만한 사람이 없을까. 천 년 만에 나타난 인재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표를 줄 수 있겠다’ 싶은 후보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각 당의 대선 후보를 뽑고 나니 의외의 혹은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거대 양당의 두 후보가 각 당의 후보로 결정된 것이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결과다. 우리는 이 결과에 따라야 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거대
[청년칼럼=이광호]‘아무거나’ 나오는 자판기가 있었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은 뭐 마실래? 라는 물음에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목은 마른데 딱히 마시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을 때 자판기에게 선택을 맡기기도 했다. 무작위로 나오는 음료를 뽑아 먹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동전을 넣어보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더 비싼 음료수를 얻게 되어 기뻐하기도 했다. ‘아무거나'는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빠르게 매진되었다.그것도 잠시. 언제부턴가 '아무거나'가 팔리지 않았
[청년칼럼=이광호]노동자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다. 노동자가 일을 못하면 소비도 자연 줄어든다. 위축된 경제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성장을 어렴풋이나마 기대했다.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정규직에게는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혹은 지금의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사회는 유지되어 왔다.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체가 멈출지 모른다는 위협은 '성장'이라는 환상을 걷어냈다. 동시에 세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집단 감염이라는 위험은 분야를
[청년칼럼=이광호] 글을 쓰다보면 두려움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내 글이 어떤 가치나 신념을 위한다는 핑계로 누군가의 삶을 소재거리로 전락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다.그런 글은 누군가를 위해 쓰였다는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안전한 자리에서 문제적인 현상을 진단하고 조명한 채 수명을 다 할 뿐이다.박완서의 의 상훈도 부잣집 도련님인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자마자 가난을 잊는다. 가난을 ‘끔찍할뿐더러 부끄러운 생활’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박완서의 소설이 비참하게 느껴
[청년칼럼=이광호] 글을 쓰기 두려운 밤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깜빡이는 커서와 백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문득 떠오르는 글감들을 낚아채어 몇 자 적어본다. 꾸역꾸역 진도를 나가다 모두 지워버렸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글을 쓸 수 없었다. ‘O적O(OOO의 적은 OOO이다)’ ‘OO의 말은 OO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는 인터넷상의 글들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도 모른다. 그 글들의 주인공처럼 나 또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너무 쉽게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려 드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런 글들의 내용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세상의 속도에 맞춰야만 했다. 그 사실은 교복을 입기 전부터 너무나 자명하게 다가왔다.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매일 집을 나섰다 때가 되면 돌아왔는데, 그들은 하루 종일 세상에 맞춰 구르느라 온 세상에 널린 피곤과 우울과 좌절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세탁기에 넣어도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나에게도 얼룩을 남겼다. 미래에 존재할 나의 삶이 너무나 두려웠다. 아아. 어른은 죄인이구나. 나도 어른이 되면 같은 벌을 받겠지. 그런 생각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어른들
국민이 요구합니다.청년들이 분노합니다.여기서 말하는 국민과 청년은 누구일까. 사전적 정의를 따른다면 나는 두 집단 모두 포함된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국민인 동시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목에 뭐라도 걸린 듯 찜찜함이 남는다. 국민, 청년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호출하는 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예를 하나 들어보자. 조국 전 장관의 사퇴가 국민의 요구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동의해야 한다는, 혹은 국민의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다. 이 문
1.투쟁이었어요. 처절한 싸움이요. 의사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너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할 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어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 (『Bending the Arc』, 40:11~, 말키아데스)『밴딩 디 아크 : 세상을 바꾸는 힘』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가 시간이 흐른 뒤 인터뷰를 통해 밝힌 말이다. 그렇다. 완치될 거라는 확신 없이 치료를 지속하는 건 쉽지 않다. 다큐에 등장하는 의대생 폴 파머와 김용, 운동가 오필리아 등의 인물은 병원에 갈
[청년칼럼=이광호]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사회적 이슈를 이만큼이나 몰입감 있게 휘몰아쳐 내놓다니.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뭔가 알고 있겠지, 기다리고 있으면 결말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보여주겠지, 하는 기대감.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펼쳐진 손바닥에 해결책 따위는 없었다. 손톱자국과 얼마간의 땀이 배어있었을 뿐. 그 순간 영화에 던져두었던 ‘해답이 뭐죠?’ 라는 질문은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변형을 거쳐 돌아온 질문은 더욱 까다로워져 있다. ‘너는 왜 영화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니?’,
[청년칼럼=이광호]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갔기에, 내 자리를 유지하려면 나도 데굴데굴 함께 굴러야 했다.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떽데구루루.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굴러야 하는 삶이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구르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면 세상은 제자리. 그나마 그건 열심히 굴렀을 때 이야기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몸이 아파 쉬어버린 날엔 지구가 나보다 한 바퀴 더 굴러가 있는 것 같아 ‘내일은 더 열심히 해서 두 바퀴를 굴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떽데구루루루, 떽떼구루루루 두 바퀴를 구르고 오면 뿌듯함을 느끼기도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려 한다. 곡은 이미 나왔다. 그런데 멤버 하나가 부족하다. 원래 있던 기타리스트가 베이스를 치겠다고 하니 기타를 쳐 달라.’이런 부탁을 받았는데 거절했다. 오랫동안 기타를 안 치기도 했고, 주야장천 펑크만 해서 다른 장르는 쳐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난 매정하지 못했다. 곡을 쓴 친구에게 빚이 있었다. 몇 년 전 무대를 함께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얼마 앞두고 간 락페스티벌에서 뛰어놀다 다리가 부러져 펑크를 내버린 것. (▷관련기사: 오른발잡이의 왼발훈련기)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에 급히 입을 막았
[청년칼럼=이광호] 우연히 발견한 이름. 혹시나 싶어 클릭해봤더니 예상이 맞았다. 필자가 졸업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의 글이었다. 야자시간에 관한 내용이었다. 교사의 눈으로 본 야자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낙서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물론 있었다. 미술 교사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 글 사이에 넣었다. 두 교사의 공동 작업이었다. 그 글은 ‘노력’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아이들에게 강요한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가엾은 시간이라고 말하며 끝이 났다.
“서장 수준이 아니다. 더 위다. 몸통을 찾아야 한다.”여론은 승리와 정준영으로 시작된 수사의 칼날이 더 높은 곳을 겨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범죄의 핵심을 찾아 엄벌하고 재발을 막아야 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불법 촬영 범죄에 유착되어 있는 공권력의 고리를 찾아내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처벌한다 하더라도 성폭행 피해 영상을 공유하고 시청하는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일부 혹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뿌리내려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재발 방지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칼이 반짝인다. 피가 튄다. 쏟아지는 피를 몸으로 받아가며 사투를 벌인다. 에이즈나 간염 감염 위험성을 파악할 시간도 없다. 얇은 장갑과 마스크는 언제 뚫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 환자의 숨을 이승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두기 위해 의사는 위험을 무릅쓴다. 과로는 일상이다. 얼마 전에도 설 연휴에도 근무 중이던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순직하는 일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삶을 붙잡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만큼 의사들의 일상은 위태로워져 간다. 외상센터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습작생들에게 등단만큼 간절한 소망이 또 있을까. 내 이름과 작품이 신문에, 문예지에 실리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등단제도에 균열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등단을 거부하는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표절논란, 문단 권력 등 문단 내부의 문제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등단을 거치지 않고도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문학에 피로감을 느끼던 독자들의 호응 또한 그들의 존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등단제도의 균열독자들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결국 지름으로 끝을 맺기 마련이다. 고민은 배송만을 늦출 뿐이라는 신념 아래 살아왔지만 전자책 리더기 앞에서의 고민은 해를 두 번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지름신의 결단을 돕기 위해 후기를 참고했지만 혼란만 커졌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응이 안 돼서 중고로 처분하고 다시 종이책으로 넘어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극과 극의 평가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샀다. 전자책을 사지 않은 이유소장이긴 한데 말이야구글에 ‘리디북스’를 입력하면 ‘리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최근 제기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는 교육 현장 또한 완벽한 곳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유치원이나 학교는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견제와 합리적 의심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보자. 반장은 학급을 대표하는 직책이지만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의 심부름을 하거나, 수업시작과 끝에 차렷, 열중쉬어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아래에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대학 사이버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꿀강의와 그렇지 않은 것. 여기서 꿀강의란 출석, 과제, 시험이 쉽고 성적받기 좋은 과목을 뜻한다. 강의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 수강해야 출석이 인정되는 과목들도 있지만 일부 과목은 강의 수강 버튼만 눌러도 출석이 인정된다. 오랜 기간 강의 내용과 시험 문제가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년전 혹은 십여년 전의 내용이 그대로 반복된다. 이런 과목은 포털 사이트에 강의명을 검색하면 기출문제와 강의 내용을 정리한 ‘족보’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학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하굣길 학교 캠퍼스에선 조그만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개강 겸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었음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다른 학교들도 플래카드를 달거나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등 기쁜 소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개선대학에 들지 못해 정원 감축 및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에선 총장이나 보직 교수가 줄줄이 사퇴하고 있다. 승리한 자들은 축배를 들고, 패배한 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쟁이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에도 기꺼이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보이콧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중 하나이다. 보이콧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작품에 대한 성실한 이해와 비평이 필수적이다. 그 작품이 비윤리적이라 보이콧한다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창작자와 창작물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 어떤 이유에서 문제가 되는지 밝히는 것은 지루하고 고난한 작업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반론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물이 창작자를 떠나 세상에 던져진 순간 비판과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