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때아닌 웃음이 터졌다. 강남에 갔다가 어떤 매장에서 말 한 마리가 학대당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는 작은삼촌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그런 곳이 있냐며 다들 핸드폰을 검색했고, 알고 보니 탬버린즈 매장에 홍보용으로 전시된 말 모형을 보신 거였다.아내의 외할머니께서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돌아가셨다. 부랴부랴 밤 버스를 끊고 내려가 장례식장에서 명절을 보냈다. 명절이어서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가족끼리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됐다.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내의 친척들과 제대로 이야기
내겐 열등감이라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평소에는 뭘 하고 지내는지 잊고 살다가, 어쩌다 연락이 닿으면 지지고 볶고 싸우는 친구다. 그때마다 다신 보지 말자고 절교를 선언하지만, 어느새 다시 나타나 하이에나처럼 내 곁을 빙빙 돈다.솔직히 말하면 이 친구에겐 신세 진 게 많다. 날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건 그래서인지 모른다. 아쉬울 때 또 자길 찾으리라는 걸 알기에,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겠다며 기다리는 것 같다.고등학교 땐 나보다 성적이 좋은 짝꿍을 이기기 위해 놈을 이용했다. 짝꿍은 운동도 잘하고 잘생겼는데 공부까지 잘했다. 그
처음엔 그랬던 것도 같다. 멋있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주변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사람,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보푸라기도 군살도 없는 선배들을 닮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회사에서 잘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였을까. 주말엔 자기계발 책도 읽고 그랬다.그 멋있던 선배들이 제 이익을 위해 아랫사람의 공을 가로채고,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자 환상은 와장창 깨졌다. 다음으로 동경하게 된 사람은 주변을 잘 챙기는 따뜻한 선배들이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그들은 이해관계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움직였다.'고려거란전쟁'에서 강감찬
"지금도 과한데 여기서 뭘 더 해줘요?"저출산을 소재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이웃 회사에서 임금삭감 없이 2시간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부럽다고 하자 옆에 있던 선배직원이 저렇게 말했다. 공격적인 어투에 불쾌감을 느끼기 전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거지?저출산 극복이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지만, 조직 안에선 오히려 출산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비혼자의 목소리가 높아져서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을 보며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내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은밀한 취미가 있다.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녹음하고 반복해 듣는 일이다. 아내조차 내 핸드폰에 열 개가 넘는 파일이 저장돼 있다는 걸 모른다.퇴근길 편의점에서 500mm 생수 한 병을 산다. 그리고 집 근처 코인노래방에 들른다. 신해철과 김광석, 유재하의 노래를 부른다. 녹음 버튼을 누른 뒤 이어지는 4분간 죄 없는 핸드폰은 절제를 모르는 에코와 음이탈을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녹음한 노래는 주로 출퇴근길에 듣는다. 지하철 소음에 질세라 음량을 키우다 보면 갑자기 블루투스가 끊겨 지하철 가득한 사람들
솔리만은 TV를 보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파도가 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리만은 배를 타고 가자지구를 탈출했는데, 같이 출발한 다른 배가 항해 도중 침몰했다고 한다. 그 배에는 그의 아내가 타고 있었다.벨기에 리에주(Liege)에서 기차로 30분을 달려 Aywaille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로 20분을 가면 적십자센터가 보인다. 벨기에 정부는 망명 신청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센터운영을 적십자에 위탁했다. 적십자는 이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스포츠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요시모토 바나나 중에서어렸을 땐 명절이 너무 좋았다. 걱정이라곤 퐁퐁이를 먼저 탈까, 피씨방을 먼저 갈까 밖에 없었던 시절. 나이를 먹을수록 명절은 그 나잇대의
팀장님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아까 내가 하는 거 안 봤어?"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버벅대던 난 그 소리에 더 허둥댔다. 팀장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오늘도 어김없이 안보교육이 시작됐다. 국회 보좌관 80%가 빨갱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하라는 불호령을 들으며 김치찌개를 끓였다. 서이초 교사의 사망이 전교조의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길 들었을 땐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됐다. 입을 열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 조용히 숟가락만 뜨고 있는데 팀
아버지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기업에 입사해 임원이 됐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당신은 매일 건강을 팔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를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당뇨가 찾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성격이 날카로워져 신경질과 짜증으로 가득한 사람이 됐다. 문학과 스포츠 같은 취미는 즐길 시간이 없어 긴 겨울잠에 빠졌고, 정년퇴직 이후에야 깨어났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회사일과 공부에만 매달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누나와 난 그런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에게 항상 고마워해야 한
대학생 때 활동한 문학동아리에 사십 대 학부생이 있었다.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갑자기 문학이 하고 싶어져 수능을 다시 봤다고 한다. 국문과에서 문학강의만 골라 듣던 그는 매주 새로운 시와 소설을 써오곤 했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폭은 누구보다 넓었고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적절했다.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핍진성'이라는 단어였다. 어느 술자리에서 그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에 대해 핍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했다. 나를 비롯한 동아리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맥주잔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생전 처음 들어
나의 경우에는 한 번씩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초 단위 환산하여 타이머에 걸어둔다. 1년이 약 3153만 초이고,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15억 남짓한 시간이다. 물론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다 쓸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렇게 1초씩 줄어드는 타이머를 지켜보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든다. 15억은 꽤 큰 숫자라는 생각, 15억 원이라는 금액은 얼마나 큰 걸까라는 생각,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삶은 사실 유한한 것이었다는 생각 등.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
살다 보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다툰 것도 아닌데 괜히 밉다. 모두가 나와 맞을 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여전히 밉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밥 먹을 때 내는 소리까지 신경 쓰인다. TV를 보다가도 갑자기 떠올라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 사람 때문에 내 저녁시간을 망쳤다는 생각에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대민업무를 시작하고 나의 일상이 저랬다. 상대방이 쉽게 뱉은 말 한마디, 못마땅한 표정, 손가락 끝으로 민원대를 딱딱 치던 소리가 생각나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열이 오르곤 했다. 진상 민원인이 없는 날도 마찬가지
공공기관의 복지부동한 실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뜨면 예외 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어찌나 불친절한지 상전이 따로 없더라', '하는 일도 없으면서 국민 세금 갈취하는 공무원들은 다 잘라야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 밥줄 끊으라는 말을 쉽게도 한다며 혀를 찼겠지만, 요즘은 저런 댓글이 일부나마 공감되니 놀라운 일이다.예전엔 몰랐다. 부모님이 세금에 왜 그렇게 질색하는지. 국민이라면 당연히 내는 거고, 정부가 어련히 잘 사용할 거라 믿었다. 철없는 마음에 '그 돈 없다고 우리 가족이 굶는 것도 아닌데...
내 생에 유일한 해외출장은 6년 전 상하이였다. 그땐 석유화학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플라스틱을 만드는 회사답게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차이나플라스'라는 플라스틱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부스 제작과 운영을 담당했던 난 무사히 전시회를 마치고 뒤풀이에 참가했다. 이렇게 돈을 펑펑 써도 되는 건가 싶도록 처음 보는 중국요리들이 끝없이 나왔고, 메뉴판의 가장 아래에 있는 고량주 말고 중간 정도의 고량주를 원 없이 마셨다.산초가 잔뜩 들어간 무슨 볶음요리를 먹으며 '겁나 내 스타일이네' 쩝쩝대고 있는데, 중국 법인에서 일하던 과장님
보통 큰 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프고 나니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든가,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남한테 들을 땐 울림이 있었는데, 정작 내 일이 되자 잘 공감되지 않는다. 착하기로 유명한 갑상선암에 불과해서인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일상을 되찾은 난 수술 전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산다. 분주하고 전전긍긍한 삶을. 갑상선암은 아직 의학적으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레스나 음주, 흡연처럼 적이 명확하다면 치열하게 맞서 싸우겠는데 이건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
민원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사회적 약자와 만날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절박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과 대면하면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내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되진 않을지, 더 도움 될 만한 제도는 없는지 열심히 고민하게 된다.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약자 가운데에도 일정 확률로 무례한 사람이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성과 욕설로 대응하고,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창구 - 관리자 내선번호, 감사실, 국민신문고 등 - 를 통해 분풀이를 한다. 일이 복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칼럼니스트] 첫 팀장은 웃는 얼굴이 귀여운 아저씨였다.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대던 그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같았다. 마르고 작은 체형도 그런 이미지에 한몫했다. 제조회사의 군대문화를 걱정했던 난 팀장을 보며 안도했다.팀장은 출근인사를 드릴 때마다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들이 내 또래여서 요즘 20대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힘들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했다. 6시가 되면 눈치 보지 말고 퇴근하라는 말도 거듭했다. 우리 팀장님은 민주적이라며 동기들에게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환상이 깨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벌써 5년 전인가. 첫 소개팅 때 아내와 난 서로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자란 누구,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누구, 군시절과 직장 친구들을 알려줬다. 둘 다 발이 넓은 편은 아니어도 깊게 사귀는 편인 것 같다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그때만 해도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기쁜 일은 같이 기뻐하고, 힘든 일은 나눴다. 서로의 진로와 연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도 했다. 이들이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금은 기쁜 일은 감추고
[ 논댁닷컴=고라니]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오백 개가 넘는 업체를 만나게 된다. 웨딩홀부터 시작해 허니문여행사, 드레스샵, 혼수업체,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사이버머니처럼 쓰는 기분은 제법 짜릿하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결혼시장에 참여하는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린 곧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다.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결혼시장과 별개로또 다른 결혼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곳에서 우린 상품으로 가판대에 진열된다.사내 게시판에 결혼소식이 올라오면 당사자들은 꼭 이런 질문을 받는다
[청년칼럼=고라니]결혼 직후 우리 부부는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추진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정부는 수도권에 남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낼 거라 선언했고,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은 백지가 되었다.아내는 서울에, 나는 충북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에 다닌다. 서로 직장이 멀어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신혼집은 수도권에 구하기로 했다. 아내는 지옥철로 나는 통근버스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아내는 무더위에도 KF94 마스크를 꽁꽁 싸매고 지하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