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들어온 지 어엿 1년, 고작 23년의 끝무 렵에 있는 나에게 가장 잊지 못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코로나가 삶의 밥줄을 끊어버린 무기가 될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어버린 슬픔이 되기도 했겠지만, 나에게 있어 코로나는 ‘낭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낭만적’이었다.7살 많은 언니와 같은 방을 쓰는 관계로 내게 유일한 구역이었던 책상은 고3 이후로 철거되었다. 그 많던 8개의 책장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하나로 줄어들고, 이젠 2층 침대의 내 이부자리 말고는 아무
[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서은송]아무 날도 아닌, 그냥 햇살 밝은 날. 아무 곳도 응시하지 않은 눈동자에 언뜻 화려한 건물에 요양병원이 비친 날이었다. 새삼, 무슨 요양병원을 저리 화려하게도 지었나 생각해보니, 미아역 부근에 자리 잡은 결혼식장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자리, 같은 외형의 건물. 조금은 많이 다른 간판. 성처럼 생긴 건물의 화려한 금테를 두른 대리석 벽면에는 지나가는 차들이 비칠 정도로 눈이 부시다. 그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요양병원’이라 적혀있는 파란 간판.결혼식장이 어떻게 요양병원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청년칼럼=서은송]매미가 갓 울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편히 쉬고 있는데, 별안간 툭 하구 빗방울 하나가 이마에 내려앉았다. 비가 오나 싶어, 황급히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자, 이번에는 눈에 한 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은 몹시도 청량하고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위를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도대체 이 빗방울은 무엇이란 말인가!15층의 아파트,11층에 살고 있는 나에게 용의자는 4개의 세대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그런 소박한 재미의 화를 돋구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금세 나의 화는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오늘이 왔다.
[청년칼럼=서은송]“사과 맛은 사과 속이 아니라 사과와의 접촉에 있다. 시 또한 오브제와 시인의 접촉에 있다”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인 이경교 시인은 내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속에 이 주제에 대한 답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데 앞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대상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이는 곧 철학을 배제해서일 수도 있다.눈의 시력이 좋지 않아서 글자들이 잘 보이지가 않는데, 안경을 쓰지도 않고 책을 보는 행위는 ‘척’에만 불과한 것. 글을 잘 쓰는 행위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담론화를 잘
[청년칼럼=서은송]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사랑에 대하여 말하기에 앞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랑’의 대상에 있어 사물과 사람 간의 경계가 없다. 사람이 사물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이건 ‘아끼고 소중히 여기다’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사랑의 산물인 인간이 고유하게 가지는 욕망 또한 사랑이라는 위대한 굴레 속에 이루어져 있다. 설사 사
[청년칼럼=서은송] 욕 조는 비어 있음으로 유지된다 그건 나의 관점이지만 「을의 독백」 부분구현우의 시를 주체적으로 이끄는 화자는 삶의 주체에서 결여되어 있다. 정해져 있는 시간 속에서 조절할 수 없는 분리와 단절을 조절하고 그것을 슬픔으로 조율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며 누군가의 부재를 참으로도 녹녹하게 풀어쓰는 시가 시집의 주된 요소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형으로 이뤄져 있는 시들이 유독 넘치게 외롭다.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되짚어가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에 갔을 때 너는 색색의 물고기들이 무섭다고 말했지 불가사리
[청년칼럼=서은송]번역은 노후한다 - 왜 그런가? 번역한 텍스트가 노후하지 않는 곳에서,-왜 그런 가? 또한 우리는 텍스트를 다시 번역한다. -왜 그런가?앙리 메쇼닉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채식주의자’의 번역은 창작적 번역이자 의사번역이었지 않았을까.‘의사번역’이란 “타자가 연출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임의로 글의 주인을 바꾸어 한 번 더, 글쓰기의 주체를 역전하는 일종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이미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번역하는 행위’에도 해당된다.
[청년칼럼=서은송]문예창작학과에서 학부생이던 시절, 학과 모임에서 늘 빼먹지 않고 나오던 주제가 있었다.“하상욱은 시인인가, 아닌가.”소설과 동화, 비평과 희곡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작성하는 친구들 모임에서 시를 전공하는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치 ‘답을 내놓아라’ 이런 분위기였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시인(詩人)의 정의는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이며, 이에 하상욱의 글은 전문적인 시라고 해야 할지는 정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창조해내어 사람들에게 시와
[청년칼럼=서은송] 작년의 오늘을 지나, 조금 더 봄이 일찍 찾아오던 계절이었다. 대학생의 마지막 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숱한 고민과 함께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든 메워보려 애를 쓰던 그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나는 오늘과 다를 바 없이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때마침,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학과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이 눈에 띄었고 나는 서슴없이 지원서를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이름, 사는 곳, 학교, 학과…. 당연한 것들을 모두 작성하고 나니, ‘자기소개서’만이 하얗게 나를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라는 책을 읽으며 내게 딱 꽂혔던 문장이 있다. ‘인간이 단정하려면 아무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렵다’는 주인공의 발언이다. 가난한 사람이 맨몸으로 단정해지기란 어려우며, 옷을 살 여유와 씻을 수 있는 조건 등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단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원영 작가는 장애인과 같은 ‘실격당한 자’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지 나열했다. 예컨대 커피를 한 손으로 잡고 어깨를 펴고 걸어가거
“나는 장례식은 하지 않으려고.”얼마 전, 사랑하는 친구 할아버지의 부고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매캐한 초의 향이 묵직하게 식장 곳곳에 안개처럼 깔려있었다. 애써 웃어보려 노력하는 나의 친구에게 나는 그저 묵묵히 맥주 두어잔을 마시며 다독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나지막히 무거운 침묵을 깬 그의 첫마디는 “나는 장례식은 하지 않으려고…”였다. 잠시 멈칫하고는 그에게 재차 물어봤다. 그는 이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례식도 결국 다 돈이더라.”평생을 돈 벌기 위해 살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청년칼럼=서은송] 얼마 전 백화점 정기교육을 받으러 H사 직원 교육장에 방문했다. 여러 백화점에서 간단한 알바를 많이 해봤던 터라 직원 교육은 여러번 받아보았지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는 교육은 처음이었다.간단한 소방법과 인사법을 배우는 것임을 알기에 ‘도대체 9시간 동안 뭘 가르치는 거야’ 투덜거리며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교육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H사가 추구하는 목표와 이미지를 보여주며 여러 광고를 보았다. 속으로는 끊임없이 앞으로 벌어질 9시간에 대해 생각했다.‘아… 회사 공부시키는 건가 보다.’그렇
[청년칼럼=서은송] 20대가 이런 삶일 줄 알았더라면, 조금 늦게 맞이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스무살이 되면 완벽하게 행복할 거란 착각을 매일 하곤 했다. 물론 지금에서야 ‘착각’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당시 이십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스무살이 되고 괜찮은 추억들이 많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틈에 여러 연인도 만났었다. 흔히들 청춘이란 연애의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편견을 깨고 똥파리를 만났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청춘이 아팠던 것은 20대가 되면서 사람을 잃는 법을 터득했다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불과 스무 두어살을 먹은 내게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달라며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열에 아홉은 모두 소재만 다른 자신의 연애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있었을 어느 스무 두어살의 연애를 기억하는가.대부분 2년 정도 사귄 친구들은 모두들 ‘권태기’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권태기는 20여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 언제부터 어색해졌는지도 모른 채 점점 멀어져가는 무언의 감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저 성격이 조금 달랐을 뿐이고, 누군가는 말이 조금 많고 누군가는 말이 조금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얼마 전부터 사진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어른, 아이, 어르신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과 많은 세월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나만의 관상을 보기 시작했다.카메라 앞에 놓인 공허하고도 텅 빈 의자는 성별과 신분을 따지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기업 직원, 의사, 교수, 청소부... 다양한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나의 말을 듣곤 한다. 7530원의 최저시급을 받는 내가 가장 으쓱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고개 살짝 오른쪽으로 돌려주세요. 촬영하겠습니다. 하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혹은 이미 꿈을 이루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요새 멘토링 수업을 다니면서, 중학생 친구들을 만나 항상 내가 하는 질문이다. 그럼 대부분 답은 두 가지로 나뉜다. 꿈이 없다고 울적해하는 학생들과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답하는 친구들…….우리는 대부분 꿈과 장래희망을 연결시켜 말하고 있다. 나 또한 꿈은 당연히 미래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왔다. 꿈이라는 예쁜 단어가 언제부터 그런 의미로 한정지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난 나는 요새 하루하루 새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쓰다보면, 가끔 글태기라는 것이 온다. 글태기란 글쓰기+권태기를 합친 은어로 주로 글 쓰는 직업에 속한 이들이 많이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글이라는 것이 그저 끄적이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엄청난 고뇌와 스트레스를 바탕으로 쓰게 된다. 또한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짜장면 집 자식은 짜장면을 즐겨먹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가진 직업이나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던 중 있었던 일입니다. 3시간 넘게 연이어 강의가 이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들 졸고 있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 비파를 켜며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간 날이었다. 더군다나 독립영화관이라니, 이처럼 근사한 행보가 있을까 싶었다. 그날은 ‘그림자들의 섬’ 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던 것은, 아빠의 모습이 가시지를 않았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 언니와 함께 술을 먹고 있던 때였다. 때마침,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도 식탁에 앉으시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오늘 본 다큐와 관련하여 아빠 회사에도 노조가 있었냐고 물어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정영문의 장편소설 는 독특하다.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답게, 이야기는 하나의 의식으로 시작하여 여러 의식을 설명하지만 다시 이것들이 연결되는 특별한 구성으로 이뤄져있다.소설은 과거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의 기억과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작가 자신인 동시에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인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과거 여자 친구 그리고 그녀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