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다면 카카오페이를 쓰지 않는다. 10원도 안 되는 포인트를 주며 캐릭터가 호들갑 떨던 기만을 기억한다. 11번가는 탈퇴했다. 업체 측 표기 오류로 결제 금액 일부를 돌려 받을 때, 그들이 런칭한 페이로 돌려 줄테니 페이에 가입하라고 했다. 괘씸하고, 귀찮았다. 지마켓을 주로 이용했지만 결별 수순을 밟는 중이다. 스마일클럽에 가입되어 있는데도, 네이버로 지마켓에 접속했을 때 같은 상품이 더 저렴한 경우가 잦았다. 스타벅스 생태계 때문에 스마일클럽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신뢰가 깨진 지마켓은 더이상 내 마켓이 아니었다. 잡힌 물
대한민국 최고 프렌차이즈는 단연코, ‘임대’다. ‘공’이 건물의 주연이 되는 부조리극은 빈부 구분 없이 절찬 상영 중이다. ‘엑스트라 공’(空)이 고도를 기다리는 듯, 임대의 시간이 끝날 줄 모른다. 사는(live) 곳도, 사는(buy) 곳도 공공(空空)하다.빈 것들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빌 것들이 성실히 쌓이고 있었다. 시공사, 건설사들은 비지 않길 바라겠지만, 대구 반고개역 어느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0.07:1이었다. 높은 분양가 탓만은 아니었다. 대구는 미분양 무덤으로, 전국 미분양 물량 17%가 몰려 있었다. 그나마도
‘얼죽아’가 민족문화라면, 나는 이민족이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실내 노동자로서, 커피를 마실 때 날씨 영향을 받지 않았다. 추울 때 따뜻했고, 더울 때 시원했다. 실외에서는 커피 마실 일이 없었다. 여름에 실외에서 무언가를 마셔야 한다면, 시원한 탄산음료이지 커피는 아니었다. 물론, 탄산음료에도 얼음을 넣지 않았다. 얼음은 음료를 마실 때 걸리적거렸다.식수도 미지근하게 마셨다. 물을 끓이든, 생수를 사든, 냉장고에 물을 넣지 않았다. 물을 마시는 이유는 수분 보충이었고, 찬물을 마시면 수분을 충분히
인터넷 광고 배너가 옷으로 도배되었다. 옷을 사려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들락거린 탓이다. 무슨 옷을 사고 싶은 지는 몰랐다. 그냥 겨울옷을 사고 싶었다. 전시된 상품들을 보고 또 보니 사고 싶은 것의 범주가 좁혀졌다. 기모 들어간 통 넓은 바지와 그에 어울리는 오버핏의 상의가 목표가 되었다. 마음에 꼭 맞는 옷을 내 구매력과 타협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품은 내 욕망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넘쳐났고, 내 구매력 대비 내 눈높이는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사지 못했다. 원초적인 질문, 저 옷이 내게 필요한가?내게 필요한
“탕후루.”실패했다면,“마라탕.”둘 중 하나에 웃을 확률은 90%가 넘어간다, 여학생은. 아무 맥락 없이 저 단어만 말해도 표정이 밝아지며 자신의 식사(食史)를 공유한다. ‘여중생’에게서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대령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여학생들은 옛날 목욕탕 아줌마들처럼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나누는 것으로 친밀감을 증명했다.남학생에게 저 단어를 말했다면 ‘뭐 어쩌라고?’ 하며 한심한 듯 쳐다볼 확률이 높다. 음식을 소재로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남중생의 관심사는 19금이 절대적이고, 건전하면 게임
문득, 우리 엄마가 캣맘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나는 캣맘을 혐오할 수 없어졌다.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에 중립적이었다. 길고양이에 대한 측은지심도 이해되었고, 길고양이가 유해조수인 사실도 이해되었다. 당장 나와 관련 없었기에 가치 판단을 유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하철 역 앞에서의 그 장면 이후로는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행위를 측은지심으로 읽지 않았다.초겨울이었다. 바람이 강해 어딘가에서 날려 온 비닐봉지가 도로를 휘저어대던 날이었다. 지하철 역 입구에 노파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양말, 스타킹, 면봉, 때수건 등 가벼운 잡
“그냥, 즐겁잖아요.”왜 빼빼로데이를 챙기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대답이었다. 초등학생의 무지성으로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날은 마음에 걸렸다. 반문이 들었다. 지성은, 나를 즐겁게 만드는가?기본적으로 기념일들이 번거롭다. 그나마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 조금 양보해서 개천절까지는 내가 한국에 태어난 이상 국가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물려받는 특수 의무임에는 동의했다. 이날을 기념함으로써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타자와 연대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중요한 기념일들은 내가 번거로워질 것이 없어서 좋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초등학생이 이어폰 없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시끄러웠지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가르쳐 주었을 때, ‘왜요?’나 ‘아저씨가 뭔데요?’라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초등학생은 합법적으로 마음껏 무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괜찮았다. 그 무례는 언젠가 칼 맞을 수 있다는 기대로 참아졌다. 바야흐로 체념사회다.회광반조(回光返照)의 시간이다. 한국사 최초로 대한민국은 ‘k-’로 표상되는 문화제국주의 위상을 누리는 중이다. 가장 좁은 영토에서 가장 큰 힘을
인스타는 타인을 인내하는 수행이다. 내 계정에 들어찬 이물(異物)들을 참아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물일 것이므로 공정한 계약이긴 하다. ‘좋아요’ 아래 가려진 솔직함, 우리는 타인의 일상이 지긋지긋하다.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갔다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 했을 때, 타인의 피드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타인이 무단 침입한 듯 불쾌했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독립성을 무시한 체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나의 소통이란 서로 합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지 모든 수다를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20대 중반을 지나며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했다. 사람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였다. 서로 다른 것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논리로 도토리 키 재기 해봐야 우리는 사실을 마구잡이로 말아 놓은 개밥의 도토리였다. 앙앙, 내가 분노의 치와와 같아서 키보드 워리어를 은퇴했다.덕분에 건강한 시민이란 다른 것과의 거리를 너무 멀지 않게 유지하는 사람인 정도는 배웠다. 그러나 그에 이르진 못했다. 너무 멀어져 버렸다. 이 거리감만 지키면 세상은 이런들 어떠하지도 않았고,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았다
수능 이후 100여 일을 기억한다. 해도 되는 건 많아졌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우리는 그저 해야 하는 것에서 놓여났을 뿐이었다. 그것을 몰랐기에, 해도 되는 것 옆에 그득한 무력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도 PC방은 시간당 1,000원이었다. 야간 할인을 위해 밤낮을 바꿔야 하는 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혹은 청춘이라고도 했다. 자유와 청춘에서는 식은 라면 국물 냄새가 났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침이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도서관에 가는 새내기를 두고 ‘건방지다’며 술로 ‘돈쭐’내던 선배들의 낭만은 그럭저럭 타당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까무잡잡한 외국인이었다. 내 사전에 붕어빵과 외국인의 개념적 인접성이 없어서 잠깐 사이를 두고서야 국적을 물을 수 있었다. 그는 방글방글 웃으며 방글라데시아 사람이라고 했다. 대구는 3마리 2천원인데, 이 동네는 2마리 1천원에 팔아야 한다는 한국말 푸념이 능숙했다. 붕어빵 몇 마리를 팔아야 최저임금 9,620원이라도 남길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날 내 붕어빵에는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경제 하부 구조가 지탱되는 한국 사회가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다문화의 첨단, 국제도시에 사는 듯했다.그러나 그건 내 생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을 내 방에서 먹어야 하는 이기심을 모른다. 음식 배달은 인간과 지구를 향한 난폭한 습관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고, 집에서 먹어야 한다면 적당히 먹어도 괜찮은 무던함의 윤리는 무시받기 십상이다. 겨우 배달 음식이기에. 그러나 잦기에, 배달 음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화 된 탐욕의 집체다. 돈이면 다 정당화 된다. 그러나 돈이 세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2005년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 할 때, 짜장면은 3,000원이었다. 일당은 평일 30,000원, 주말 35,000원이었다. 최
[논객닷컴=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SKY 다음을 생각했어야 했어요.”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말이었다. 졸업해야 했지만, 졸업하게 되면 학생으로서 완전히 마침표를 찍는 것이어서 졸업을 유예했다. 학생에게는 다음 문장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은 아마존 한국 지사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았다. 합격 직후 충족된 자존감에 기뻤지만, 입사를 앞두며 커지는 감정은 공포라고 했다. 3학년 때 인턴 경험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음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살기 겁났다는 것이다.돌이켜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이날 현실 공간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수능 끝난 날을 기억하시는지? 해방감이 만끽되는 와중에도 구석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감정이 있었다. 내가 치열하게 매달렸던 그 공부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추진체에 지나지 않았다는 허탈함.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쓸모없는 것에 지나치게 최선을 다했다. 부모님 반대로 자퇴도 못한 나로서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삐딱해질 수밖에 없었다.공교육과 사교육은 다를까? 툭 까놓고, 두 교육 주체의 목적은 ‘좋은 대학 보내기’다. 공교육은 인성, 적성, 재능, 자아실현 같은 교과서적 명분이라도 세우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근미래의 민주주의가 두렵다. 더 이상 민주주의는 ‘오답은 아닌 정치 체제’가 아닐 것이다. ‘국평오(국민 평균 5등급)’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조선시대 학자들의 논리에 동의한다.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쓴 권력을 책임지지도 못한다. 선민의식 가득한 지방 사교육 강사 나부랭이가 더 무지해질 사람들에 의한 정치 체제, 민주의의의 수명을 진짜 지식인께 여쭙는다.이세돌이 알파고에 패배했을 때, 바둑 기사들의 감정도 이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마블을 손절한 이후 극장에 다시 갈 일이 까마득했다. 도, 도 귀찮았다. 어지간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극장은 아마 복귀 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라니. 26년 만에 생환한 친구를 맞으러 극장에 갔다. 그것도 두 번이나. - 보고 있나 재중 군, 자발적 N회차 관람은 처음이라네.에 ‘노 재팬’은 구질구질했다. 국교를 단절하는 것이 아닌 이상 문화 교류를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더군다나 는 대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나만의 불매 리스트가 있다. 혼자 하는 불매는 힘이 없지만, 꿈틀했다는 기분에 소소하게 실천 중이다. 내가 감상 중인 콘텐츠를 오염시킨 광고는 불매로 되돌려 준다. 콘텐츠 무료 시청 비용으로서의 광고는 수용 임계점을 넘었다. 거슬리고, 지긋지긋하다.광고는 ‘데이터 스모그(Data Smog)’의 주범이었다. 1997년, ‘데이터 스모그’라는 용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광고가 봄날의 황사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미세먼지 그 이상이다. 보다 촘촘해지고 치밀해졌기에 마스크를 쓰듯 불매로 대응한다. 불필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월드컵 16강 진출이 주는 감동은 2002년의 반의반도 안 된다. 추억 보정이 아니라 마음이 무뎌진 탓이다. 국제 경기로 자존감을 고양할 개도국의 시기는 지났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한 것이 큰 이유겠지만, ‘꺾여 버린 마음’의 보편화도 한몫한다. 16강 진출 확정 세레모니 중 활짝 편 태극기에 쓰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고서야 꺾여 있던 마음을 발견했다.절망하지 않기 위해 희망하지 않는 것이 실천 윤리가 된 시대다.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성장시대의 낭만이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 사라져야 한다. 왜냐면 가을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봄 방학과 가을 방학이다.한 없이 하늘색에 가까운 하늘을 보고 있으면 일 하느라 실내에 있기 죄스럽다. 집 밖을 나서면 체온에 꼭 맞는 하늘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마스크 없이 숨을 양껏 들이마셔도 되는 날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면 지나가는 가을이 더 아깝다.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이 청명한 날씨에 실내에 머물기를 호소하는 것은 부당한 선동 같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어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