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오늘은 여름휴가를 변산반도를 비롯한 전라북도 서해안으로 떠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더불어 찾아볼 만한 산중암자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변산반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쌍선봉 아래 자리잡은 월명암이다. 예부터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하나로 꼽힌 암자다. 글자 그대로 땅 기운과 주변 지세의 조화로 번뇌가 끊어질 정도의 길지(吉地)라는 것이다.변산반도는 전체가 관광자원이다. 해안을 둘러보면 북쪽으로는 변산해수욕장을 비롯해 격포항과 채석강, 남쪽으로는 곰소항과 모항갯벌해수욕장이 있다. 내륙으로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이 자리잡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 생활을 꽤 하면서 책이 많이 쌓였다. 출판 담당 기자를 맡을 때는 일주일만 정리하지 않아도 책은 산을 이루었다. 관심이 가는 분야거나 기사 쓰는데 필요한 책은 적지 않게 사들이기도 했다. 요즘은 이렇게 모은 책들을 하나 둘 내다버리고 있다.미세먼지 예보가 ‘좋음’을 가리키는 날에도 집안은 책 먼지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미 생명을 다한 시사물은 당연히 1순위다.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고전인 줄은 알겠는데, 죽기 전에 읽을 가망성은 없어보이는 책까지 과감하게 분리수거함에 넣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일주문 아래서부터 대웅전 마당까지 연등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것만으로도 절 주변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불교에 친근감을 갖고 있지만 불교 신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초파일이면 절을 찾아 산나물 비빔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연례행사다. 밥값으로 연등도 하나 달고….오늘은 인상 깊었던 부처님이 각각 계시는 절 세 곳을 소개한다. 우리 역사에서 불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불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교와 인연이 없어도 소풍삼아, 여행삼아 다녀오기에 좋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지난 2016년 가을, 서울지방경찰청은 도굴한 고려청자를 팔려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문화재청과 공조 수사에 들어간다. 청자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이라고 했다. 태안 안흥의 마도 해역은 2007년 이후 4척의 고려·조선시대 침몰선을 발굴 조사한 해양 문화재의 보고다.그런데 수사가 진척되고 청자 출토 지역을 확인한 문화재청 해양문화재연구소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도굴 장소가 침몰선이 많았던 안흥 앞바다나 안면도 서쪽 쌀썩은여가 아니라 안면도 동쪽의 최북단인 천수만 당암포 해역이었기 때문이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며칠 전 남한산성을 찾았다. 수서역 주변에 일이 있어 갔다가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멀지 않은 남한산성에 올라 순두부를 먹고 행궁(行宮) 산책이나 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7일동안 머물며 항전했던 곳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머물던 지역 궁궐을 말한다.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역대 왕은 패전의 교훈을 되새기고자 남한산성을 찾곤 했다. 숙종, 영조, 정조가 그런 왕들이었다. 임금이 마지막으로 남한산성을 찾은 것은 186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주 신문사 동료와 개최지 음식과 문화를 탐방하는 출장을 다녀왔다. 특집 기사를 위해 사흘 내내 하루 4~5끼의 폭식을 불사하며 정선·평창·강릉의 먹거리를 경험했다. 마지막 날, 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인 강릉솔향수목원의 미디어아트쇼 ‘청산별곡’을 돌아보고 나니 오후 8시가 넘었다.서울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가장 맛있게 먹은 게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들어보기로 했다. 동료와 나는 동시에 “대관령한우”라고 외쳤다. 관념적으로야 평창올림픽시장의 메밀부치기(메밀전을 이렇게 부른다)나 정선시장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지난 연말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 5건이 새롭게 보물로 지정됐다.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과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풍악내산총람도(楓嶽內山總覽圖), 청풍계도(淸風溪圖),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가 그것이다.‘5점’이 아니라 ‘5건’이라고 한 것은 해악전신첩과 경교명승첩 때문이다. 해악전신첩은 1747년 겸재가 금강산의 경치를 21폭 그림으로 묶은 것이다. 경교명승첩은 양천현령 시절인 1740~1941년 이름처럼 도성 밖 한강 주변의 경치를 역시 33폭에 담은 화첩이다. 겸재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울 이태원의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보물 제1394호로 지정된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가 있다. 인왕산 봉우리 남쪽으로 펼쳐진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풍경을 12폭 그림에 담아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문화유산정보가 서비스하는 이 그림에 대한 묘사가 매우 훌륭하니 옮겨본다.‘병풍은 오른쪽부터 제1폭에 서대문이라고도 부르는 돈의문(敦義門)과 수문장청(守門將廳)이, 제4째 폭에는 솟을대문에 기영(圻營)이라 쓰여진 것이 보인다. 제6폭의 가운데 큰 건물은 관찰사가 집무하는 선화당(宣化堂)이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우리 사회 각 분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발전 속도가 크게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언론 분야도 일정 부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문화 분야의 언론만큼은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물리적으로 문화 분야를 다룬 신문이나 방송의 지면이나 시간이 늘어났다고 발전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지금은 신문이나 방송같은 전통적 매체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인터넷과 SNS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하지만 전통 매체나 새로운 매체를 막론하고 문화 분야 만큼은 양(量)만큼 질(質)이 높아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며칠 전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 다녀왔다. 이 유서깊은 절을 찾은 것은 그동안에도 여러차례였지만, 이번에는 취재가 주목적이었으므로 조금 더 꼼꼼하게 둘러봤다. 특히 과거에는 스쳐지나갔을 산신각 앞에서 머문 시간이 길었다.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이 작은 전각 내부에는 선운사의 창건 설화에 보이는 두 고승(高僧)이 산신이 되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백제 스님 검단선사(黔丹禪師)와 신라 스님 의운화상(義雲和尙)이다. 그런데 창건 설화를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 검단선사가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사업이 끊어진 물길을 잇는 사업이었다면 지지했을 것 같다. 물론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한다는 당초의 엄청난 계획은 생각해 볼 문제였지만…. 결과적으로 팔당댐과 충주댐에 이어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를 잇따라 건설하면서 물길은 더욱 더 완고하게 단절되고 말았다.효율적인 물 관리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4대강처럼 지도를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유구한 수운(水運)의 역사는 누구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삼국시대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가야사 복원 사업을 정책 과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당부한 것을 두고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특정 역사에 개입한다면 국정교과서를 만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서는 가야사가 그동안 지나치게 소외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대통령의 관심을 가야사 규명의 기회로 활용하되 정치적 의도가 스며들 여지는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다.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가야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체 왕국’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남 일부
지난주 경북 경주에서는 흥미로운 세미나가 열렸다. ‘역사도시 유적 주변의 공공건축, 도전과 과제’가 주제였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서는 요즘 황룡사역사문화관이 논란을 빚고 있다. 황룡사가 자리잡은 곳은 신라시대에는 경주 왕경의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지금 황룡사 터를 비롯한 일대는 거대한 폐허나 다름없다. 절집 주춧돌과 불상 대좌만이 쓸쓸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농촌마을의 논 한복판에 세워진 나홀로 아파트같은 인상을 주는 전시시설이 이런 옛 절터의 분위기와 어울리느냐 하는 것이다. 시인 장석남은
고려시대 창건된 여수 흥국사는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할 것”이라는 국가 안녕의 염원을 담은 호국사찰이다. 창건 직후 젊은 학승이 백일기도의 회향축원문에 흥국기원(興國祈願)은 빠뜨리고 성불축원(成佛祝願)만 넣어 쫓겨났다는 일화도 전한다. 불교국가 고려가 왜구가 들끓던 남해안 지역에 지은 절이 꼭 종교적 목적만 가진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이런 절이 조선시대에 오히려 호국사찰로 진가를 발휘한 것은 아이러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조선은 불교를 버리고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왕조 초기의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에 얽힌 재판의 항소심이 지난주 시작됐다. 1심에서는 “왜구가 약탈해 간 것이 분명하니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부석사가 승소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불상은 한국인 절도단이 지난 2012년 10월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온 것이다.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학계의 판단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비(非)전문가 그룹인 법원에 판단을 떠넘긴 것 자체가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가 불상을 일본에 보낼 움직임을 보이자 부석사는 어
책을 싸게 파는 행사장에 우연히 갔다가 옛사람의 문집 몇 권을 사들고 왔다. ‘농암집’도 그중의 하나였는데, 눈길 가는 글이 적지 않았다. 농암 김창협(1651~1708)은 조선 성리학을 심화·발전시킨 당대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문학에서도 창작과 비평 양면으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농암은 형인 몽와 김창집(1648~1722), 아우 삼연 김창흡(1653~1722)과 삼형제 문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미술에 겸재 정선이 있다면 문학에 안동 김씨 삼형제가 있다고 할만큼 이른바 진경문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들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밝힌 글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성서연구가가 계시다. 필자가 불교 문화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써서 그런지 불교 친화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마도 기독교 친화적인 인간으로 ‘개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은가 보다. 어쨌든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나름대로 해석한 장문의 글을 보내오는데 가끔 읽을만한 것이 있다.최근에 보내온 글은 ‘지옥은 정말 뜨거운 곳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종교적 확신과 열의에 가득찬 글은 “종교마다 약간 다른 묘사를 하지만 지옥불에 대한 교리가 없는 종교는 거의
양식(樣式)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겉모습을 말한다. 미술사학에서는 그렇게 형성된 해당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양상을 일컫는다. 불교미술이라면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양식이 각각 존재했고,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양식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 더 시대를 잘게 쪼갠 양식도 다양하게 존재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불교미술’의 양식은 과연 존재하고 있을까. 대답은 불행하게도 ‘아니다’다. 전라북도 남원의 실상사로 가보자. 9세기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중에서
경북 안동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반가(班家)의 하나인 풍산 류(柳)씨 집성촌이다. 북촌의 양진당과 남촌의 충효당은 그 역사와 집 됨됨이에서 쌍벽을 이루는 양반 가옥이다. 큼지막한 대청을 가진 본채에 사랑방·서실·별당 같은 문화적 공간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서민 가옥과는 확연히 다르다. 두 집을 비롯해 마을 중심부 류씨들이 사는 기와집 주변에는 각성(各姓)바지의 초가가 원형을 이루어 자리하고 있다.이렇듯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양반 마을에 별신굿 탈놀이라는 일종의 서민 축제가 이어져 내려오고, 마을 입구에는
엊그제 찾은 경주는 한적하기만 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난 뒤 줄곧 이랬다고 한다. 언제나 자동차로 붐비던 불국사 주차장이나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에도 버스 한 두 대와 승용차 몇대가 고작이었다. 식당 주차장들은 더욱 썰렁했다. 그래도 지진 직후 관광객이 전혀 없다시피했던 때와 비교하면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경주 시민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지진에 이력 난 일본 관광객들, 여행의 계절 맞아 경주에서 환대받아반면 계획을 바꾸지 않고 경주를 찾는 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