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이대현]‘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사람들끼리 적당한 거리를 두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현재로는 이보다 더 나은 방책은 없다. 마스크를 하고, 틈만 나면 손을 씻기 전에 바이러스가 건너오지 못하게 서로 멀찍이 떨어지는 것이 최상이다. 꺼림칙한 것은 그 말이다.말이란 게 참 묘하다. 권위가 있거나 유명한 누군가 먼저 꺼내면 따라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국에서 급증하던 2월말, 한 감염병 전문가(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환갑이다. 누구는 ‘벌써’라고 하고, 누구는 ‘이제’라고 한다. 여느 해나 다를 바 없으면서도 공연한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으려 걸핏하면 붙이는 수사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붙었다. 누렇다고 ‘황금 개띠’란다. 개에게 무슨 황금을. 누렁이가 더 어울리고 친숙하고 자연스럽다.참 많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중심인 58년 개띠들은 ‘똥개’ 같았다. 동네 어디를 가도 득실거렸고, 우리가 갈 때면 학교와 군대와 직장도 미어터졌다. 그 세월을 지나 이제 누렁인 58년 개띠들도 세상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정년 60세 연장
‘문화는 정치다’프랑스 학자인 장 미셀 지앙이 쓴 책이다.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프랑스 문화정치와 정책 전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앙은 미테랑 대통령 시절 갖가지 문화실험들을 소개하면서, 문화정치의 힘을 역설한다.굳이 지앙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문화가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 된지 오래다. 문화강국을 자처하는 프랑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서의 문화는 그 역사가 길다. 문화는 언제나 이데올로기 전파, 권력자의 지배를 위한 ‘정치’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요즘은 모든 것이 인터넷이다. 지식도, 정보도, 음악도, 영화도, 심지어 여론까지. ‘여론’을 강의하면서 매주 학생들에게 간단한 발표를 맡겼다. 그 주의 중요한 우리 사회 이슈에 대한 여론동향과 분석이다. 이슈에 대한 의제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여론의 추이와 방향은 어떠하며, 그것이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혹은 미칠 것인가 등이다.그런데 분석 데이터가 하나 같이 ‘인터넷’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 댓글의 분석과 통계이다. 선거철도 아니니 하루가 멀다고 내놓던 언론사들이 정당이나 후보 지지도에 대한 여론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참 이상하기는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비리가 마치 독버섯처럼 정권 곳곳에 펴져 연일 썩은 내가 진동하듯 하는데, 유독 그들에게서는 흔적이 없는 걸까. 문고리 3인방, 그 중에도 안봉근과 이재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개 꼬리 감추듯’ 숨어버렸다. 그리고는 국회청문회와 헌법재판소가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3인방의 하나인 정호성만이 문건유출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 모든 정부가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군사독재 정권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한 번도 간섭 없는 지원이란 없었다. 자신을 욕하고, 화살을 쏘아대는 문화예술은 아예 싸늘하게 외면하거나 억눌렀다.아무런 간섭도 안 받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란 흔치 않다. 어쩌면 세상에 그런 돈은 없을지도 모른다. 부모자식 간에도 경제적 지원에는 간섭이 따른다. 그래서 어느 스님은 부모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려면 성인이 되자마자 경제적으로 독립부터 하라고 말한다. 정부의 지원금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1958년 비가 내리는 어느 가을 저녁, 독고준의 하숙집으로 친구인 김학이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두 마리를 들고 찾아온다. 둘은 소주를 마시며 학술동인지 ‘갇힌 세대’에 실린 독고준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이 땅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회의를 품고 있는 독고준은 집단과 혁명을 앞세우며 동인회(同人會)인 ‘갇힌 세대’에 들어오라는 친구의 제의를 시니컬하게 거절한다. “혁명은 언제나 최대의 예술이지만 그 예술이 불모의 예술인 것은 이미 실험이 끝난 것”이라는 말과 함께.그는 한국전쟁의 포로로 남도 북도, 타락한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탁현민’과는 일면식도 없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시절 취재원으로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솔직히 그의 존재도 잘 몰랐다. 그러니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다.원래 기자(출신)란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은 당연한 권리인양 여기는 직업이니 그런 방식으로 말하자면 탁현민이 과거에 쓴 책은 이류다. 인간 본능이나 심리를 날카롭게 갈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를 앞서가거나 도발적인 인식과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그의 책은 개인적 매명욕(賣名慾)에 남성들의 마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출판사의 지극히 상업적 계산이 깔린 상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기시감(旣視感)이다. 이를 무의식적 착각이나 기억의 오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진짜인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도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장면이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이를 알아채는 순간 그 영화는 뻔한 작품으로 추락하고 만다. 역사를 왜곡하고, 어설프게 정리하면서 활극을 펼친 가 그렇다.어디 영화에서만 그런가.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의 기시감 역시 오류나 착각이 아닌 분명 이미(기), 본(시) 것들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멀리까지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법이 가능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무참히 살해당한 인천 초등학생, 충주 인터넷 수리기사, 창원 골프연습장 주부의 유족들 모두.초등학생 엄마는 긴 호소문을 인터넷 다음에 올렸다. “가해자들에게 보다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탄원에 동참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인터넷기사 유족도 범인을 엄중히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시민 1500명의 서명을 받아 검찰에 제출했다. 인터넷에서도 3만명 가까이가 서명에 동참했다. 창원 골프연습장에서 납치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한 달 전쯤, 진돗개 한 마리를 입양(마음에 들지 않지만, 모두 이렇게 말하니 할 수 없이 쓴다)했다. 태어난 지 한 달 보름 밖에 안 된 강아지다. 어릴 때, 시골에서 부모님이 키운 누렁이는 있었지만, 스스로는 난생 처음이다.그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수없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자고 애원해도 완강히 거부했다. “개나 고양이를 집에 들이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동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유난히 동물을 싫어하거나, 알레르기가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 이유에서다. 핑계 같지만 한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의 영화 의 주 무대는 빈민가에 있는 작은 클리닉이다. 병원이라고 해야 서너 평짜리 환자 대기실과 계단을 내려가야 있는 진료실이 전부다. 간호사도 없이 젊은 여의사 제니(아델 하에넬)는 하루 종일 환자들을 돌본다. 그들 대부분은 노인들이거나,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이혼녀, 아니면 노동자들이다. 불법체류자도 있다.제니는 클리닉에서만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다. 병원이 바로 코앞이지만, 그나마 걸어서 올수 없는 노인들이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오면 달려간다. 그렇다고 진료비가 비싼 것도 아니다. 물론
어느 후보도 ‘문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4년 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TV토론에서조차 단 한 번도 문화에 대해 듣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다. 취임사에서도, 불과 열흘 만에 파격의 민생현장행보와 신선한 충격의 인사로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지만, 아직 ‘문화’는 없다.그렇다고 새 정부의 문화 목표와 정책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있다. 대선공약집에. 10여 쪽으로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것도 압축적이면서도 명료하게.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이다.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숨이 멈추거나, 숨을 막은 문화는 문화가
여섯 차례의 대선후보 TV토론이 끝났다. 토론이 끝날 때마다, 각 후보캠프는 물론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에서 득과 실을 따졌다. 실제로 TV토론으로 지지율이 놀라간 후보도 있고, 반대로 떨어진 후보도 있다. 그것이 투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지만, TV토론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갈수록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에서 TV토론은 그나마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선거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TV토론은 어떤 편집도 없이 여러 방송이 생중계하기 때문이다. 신
궁금하다. 문화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홍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데 아직 문화에 대한 얘기는 없다. 하긴 문화야 당장 생명을 위협받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데 직접 필요한 밥도 아니니. 뒷전인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지난 대선 때는 아예 TV 토론 주제로 다뤄지지도 않았고, 단 한 번의 질문과 답변조차 없었다.다른 한편으로는 내남없이 ‘문화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설까봐 은근히 겁난다.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보고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과 어설픈 대화 한마디 나누고 기념사진이나 찍고는 마치 문화에 관심과 사랑이
세상은 영웅을 기다린다. 난세(亂世)일수록, 막막한 세상일수록, 정의가 점점 힘을 잃을수록 더욱 간절하다. 보통사람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세상을 영웅이 바꾸어주길 바란다.인류역사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했고 인류를 구원했다. 그들의 존재야말로 인류에게는 큰 위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할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따금 그리울 때, 필요할 때, 역사 속의 잠든 그들이라도 다시 불러내는 것이다. 이미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왔는데,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물음이 있다. 우리시대에도 우리시대의 물음이 있다. 이 사회와 나라와 겨레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이 사회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이 겨레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가 … 과거장(科擧場)에 나아간 선비가 비장한 포부를 펼치던 심정으로, 지금 우리는 이 시대의 물음에 나름대로의 책문(策問)을 진술해 보아야 한다.’동양철학자인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이 번역·출간한 의 초판에 쓴 후기이다. 10여년 만인 2015년 6월, 그는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로 역사발전을 퇴행시키
는 묻는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흙먼지 휘날리는 어지러운 세상, 티끌처럼 허망한 인생.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구나.’우리나라 첫 대중가요는 이렇게 일장춘몽인 인생과 혼탁한 세상에 대한 자조적이고 애잔한 타령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인 1923년쯤부터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고, 가수이자 배우인 전영록의 고모부로 국내 최초 음반취입 가수인 채규엽이 불러 크게 유행시킨 노래 .
‘골든 에이지’라고 했다. 16세기 말 영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구교의 대립을 명분으로 자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벌인 종교전쟁에서 절대 약세였던 영국이 최강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침몰시키고 유럽의 패권을 차지했으니 그럴 만하다. 그 황금시대(Golden Age)를 연 주인공이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이다. 스물다섯에 왕위에 올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그녀는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심심하면 등장했다. 영광의 역사를 통해 지혜를 얻자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자부심과 향수가 배어있음을 숨길 수 없다. 10년 전에 나
권한대행. 말 그대로 권한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분명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시쳇말로 가만히 앉아서 잠시이지만 상전 역할을 해볼 수 있으니 기분 좋은 일이다.그러나 대행은 원래 내 자리가 아니다. 마치 자신이 진짜 그 자리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허수아비 노릇만을 하면 대행이 아니다. 앞에 권한이 붙었으니 분명 대통령의 역할을 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의 딜레마이다.더구나 지금은 그에게 권한대행 역할을 준‘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 황 총리 역시 갈수록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