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이호준]봄에는 꽃바람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가을엔 단풍소식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아무리 코로나 감염병이 극성을 부려도 일은 해야 합니다. 다시 길 위에 선 이유입니다. 남도로 가던 길에 고향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가 누워 계신 곳입니다. 한때 집성촌이었던 그곳은, 구십 넘도록 고향을 지키던 재종형님이 돌아가신 뒤 일가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산소에 들러 인사를 마치고 제가 태어난 동네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한 바퀴 돌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마을은 연극이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이호준]2년 가까이 지내온 사찰을 떠났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때‘가 된 것이지요. 제가 절에서 나온다니까 걱정들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시국에 밥이라도 먹여주는 곳에 그냥 머물지 왜 내려오느냐는 걱정부터,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데 그나마 청정지대에 있는 게 낫지 않느냐는 고언까지 많은 말들이 교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SNS에 “생을 유목하는 자의 숙명”이라고 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역마살을 타고난 사람은 곧잘 안정을 내려놓고 유랑을 택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웅변하니까요
[논객칼럼=이호준]온천으로 유명한 P까지 간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인근의 사찰에 취재하러 갔다가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숙소를 구하려고 들른 차였습니다. P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온천 덕에 한 때 불야성을 이뤘던 곳입니다.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낯설었습니다. 한 번 갔기 때문에 더 낯설었습니다. 옛날 그 이름이되 옛날의 그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썰렁했습니다.다른 계절만큼은 아니어도, 온천은 여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입니
[논객칼럼=이호준]사실, 그리 달가운 외출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때 서울행이라니. 더구나 산 속에서 2년 넘게 살다보니 대도시에 간다는 게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한 요즘입니다. 하지만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석 달에 한 번씩은 현장에 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녁에는 옛 직장 선후배들과 약속도 있었습니다. 매달 열리는 모임인데, 두 번은 코로나19 때문에 모임 자체를 취소했고, 또 두 번은 제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멤버에서 쫓겨나기 전에
[논객칼럼=이호준] #1 공양간에서제가 머물고 있는 사찰 밥상 앞 대화의 주 메뉴 역시 ‘코로나19’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 없으니까요.“우리 딸은 어제 월미도로 옮겼다네요.”“영종도에 격리돼 있다고 안 했어요?”“그랬는데 무슨 이유인지 옮기라고 해서….”맞은 편에 앉은 공양주 보살의 사연입니다. 그녀의 딸은 국제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남미 볼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도 코로나 발병이 급증하면서 귀국했다고 합니다. 워낙 먼 곳이라 3일이나 걸려 고국으
[논객칼럼=이호준]1,가까운 후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50대이니, 100세 시대를 부르짖는 요즘으로 보면 ‘요절(夭折)’이라고 할 만 합니다. 여러 죽음을 지켜보며 살아왔지만, 유난히 가슴 저미는 이별이 있습니다. 이번에 떠난 후배의 죽음도 그랬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했습니다. 그렇게 일해서도 학비를 충분히 보내줄 수 없으니까 낮에는 신용카드 배달을 했습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몸은 피곤에 절어있었습니다.그 와중에
[논객칼럼]지난 연말, 모처럼의 가족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장(家長)이 여기저기 떠돌며 살다보니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큰아이가 결혼해서 분가한 뒤로는 일정을 맞추다가 지치기 일쑤입니다. 이번엔 큰아이가 앞장섰습니다. 연말인데 그냥 지나갈 수 없다며 집에서 포트럭 디너(Potluck Dinner)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사정 때문에 간단하게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가벼운 표정이었지만 가족 중 단 하나는 가벼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대학 졸업을 앞둔 작은 아이었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처음에 강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좀 난감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제게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음악을 연주해달라는 것만큼이나 난제로 다가왔습니다. 제 무지와 편견 때문이었다는 건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여행 관련 강연은 대개 사진 중심으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볼 수 없는 분들에게 사진 속 풍경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점자도서관에서 온 강연 요청이었습니다.일단 수락을 해놓고도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반인들
[논객칼럼=이호준] 강연 차 춘천에 다녀오는 길, 가평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른 뒤 차를 후진하는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시쳇말로 ‘쎄하다’고 하지요. 이런! 제 차 앞범퍼가 옆 차의 뒷범퍼를 슬쩍 비비고 있었습니다. 운전을 시작한 뒤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처음입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극도로 지쳐 있는 심신 때문이었습니다.제가 일하는 사찰에서 최근 큰 행사를 치렀는데 온갖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육체가 힘든 건 그럭저럭 견디겠는데, 사람과의 갈등은 인내의 임계점을 넘나들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녹초가 돼 있는 상태에서 오래 전
[논객칼럼=이호준] 추석이 지난 지 한참인데 차례 이야기를 꺼내려니 좀 생뚱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을 전해드리는데 시간은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저는 지난 추석 때 집에 못 갔습니다. 노모를 모시고 있는 형편이라 명절 때는 어지간하면 귀가하는데 이번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에 밝혔듯이 절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절도 분주해집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백중만큼 떠들썩한 건 아니어도 합동차례라는 특별한 행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합동차례를 전체적으로
[논객칼럼=이호준] 불면이 깊어지고 새벽마다 잠에서 깬다 했더니, 이별이 눈앞에 있었구나. 하지만 이런 이별을 어찌 이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행복한 이별’ 정도가 되겠구나. 지난 번 집에 간 날은 너와 술 한잔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젊은 시절 삶을 지혜롭게 경영하지 못하다보니, 아비는 여전히 유목지를 떠도느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그 또한 너희들에게 미안한 일이다.그날 새벽에는 엷은 잠에서 깨어, 네가 자고 있을 방문 앞에서 한참 서성거렸다. 머지않아 너를 떠나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논객칼럼=이호준] 흔치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머무는 절 주지스님이 아침 일찍 대웅전 뒤 산자락을 열심히 파고 있었습니다. 대체 거기 뭘 묻어 놓았길래 아침부터 삽질이실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사연은 그랬습니다. 절에서는 얼마 전 나무를 몇 그루 베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참나무 서너 그루가 갑자기 시들더니 죽어버린 탓입니다. ‘참나무 마름병’이라는 돌림병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죽은 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게 보기 좋지 않아서 지자체에 문의했더니 무상으로 베어준다는 답변이었습니다.나무를 베던 중 일이
[논객칼럼=이호준] 산사에 오는 비는 땅이 아니라 가슴으로 떨어집니다. 특히 새벽에 내리는 비는 가슴을 흥건하게 적십니다. 도량석(道場釋 :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의식) 목탁소리가 아니더라도 잠은 저절로 저만치 물러납니다. 투두둑~ 투두둑~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타악기의 리듬을 닮은 낙숫물 소리…. 빗소리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수식어가 아닙니다.더 이상 누워있기가 민망해지는 순간입니다. 주섬주섬 우의를 입고 장화를 신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논객칼럼=이호준] 산중의 절에 들어와 ‘불목하니’라는 직업으로 산지도 두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고 걷기 좋은 둘레길을 끼고 있어서 내방객이 꽤 많은 곳입니다. 특히 주말이면 절집 안팎이 사람몸살을 앓습니다. 내세울 만한 문화재나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게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고즈넉한 곳을 원했던 저로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사람살이가 바람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지요. 대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면 말 그대로 ‘절간처럼’ 고요해서 제 자신 속으로 한없이 침잠할 수 있습니다. 오롯이 책을 읽고 글을
[논객칼럼=이호준] “주지스님, 안녕하세요? 직접 찾아뵙고 정중히 말씀드리는 것이 지당하나 용기가 나지 않고 두려워 이런 비겁한 방법을 택하게 됐습니다.”한밤중에 도착한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편지지나 백지가 아닌 포장지 같은 거친 종이를 찢어서 쓴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글씨 하나하나에는 진정성이 지문처럼 배어 있었습니다.느닷없이 등장한 ‘주지스님’이라는 단어가 낯설 것 같아서 배경설명부터 해야겠군요. 떠돌며 사는 것을 업으로 지고 나온 저는 강원도 인제의 예술인촌을 떠나 경기도의 한 사찰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
[논객칼럼=이호준] 이젠 친구들 모임에 가면 집 늘린 이야기나 골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에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그런 화제가 늘 불편했습니다.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도 의도적으로 삼갑니다. 관심이 없어진 게 아니라 저처럼 ‘정치 편향적’으로 살아온 친구에 대한 배려인 셈입니다. 전엔 곧잘 다투고는 했거든요.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 퇴직을 하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고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원숙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요.엊그제 모임에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꿈을 꾸고 파종하고 열매를 기다리는 미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설 때 제 장형(長兄)집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3형제의 식솔들이 모여든 건 다른 명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작지만 특별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 큰조카가 낳은 아이가 하나 더해진 것입니다. 고작 옹알이나 하는 생명체 하나가 집안을 통째로 바꿔놓았습니다.제 아우가 늦둥이로 딸을 낳은 뒤 20년 동안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집안이었습니다. 큰조카는 결혼을 늦게 한데다,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아서 어른들의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다가 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제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보다 눈이 흔했습니다. 기억이 흔히 저지르는 과장 탓인지는 몰라도, 겨우내 눈이 내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 살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강원도에는 눈이 지붕까지 덮었다더라”, “산골에서는 집집마다 동아줄을 연결해 놓았다가 눈이 많이 내리면 굴을 뚫어 왕래한다더라”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전부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눈이 많았던 건 분명합니다.강원도하고도 깊은 골짜기라고 할 수 있는 인제의 산골에 들어와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거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로터리를 도는 순간 쿵하는 소리가 났고, 저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상대방 역시 바로 차를 세웠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꽤 오래 운전을 했지만 사고는 처음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잘못인지 상대방의 운전미숙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웠습니다.정작 ‘사건’은 상대방 운전자를 만나는 순간에 시작됐습니다. 저보다 30년 이상 젊어 보이는 그녀는 일단 목소리부터 높였습니다.“아저씨! 운전을 그렇게 하면 어
“오빠,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참 양호한 편 아냐?”저절로 귀가 기울여지는 대화였습니다. 어머니가 양호하다니요? 일상적으로 쓰기에 적절한 낱말은 아니지요.“왜? 다른 치매도 있나?”“그럼! 치매 증상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나봐. 어떤 노인은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패악을 떨고, 누구는 끊임없이 가출해서 길을 잃고, 불을 내는 노인도 있고, 심지어 어떤 노인은 물건을 마구 사들인다잖아. 그에 비하면 우리 어머니는 엄청 얌전하시잖아.”“치매 노인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물건을 사?”남자는 치매 노인들의 여러 증상 중 물건을 산다는 말에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