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김부복]돌이켜보면,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요란했다.대한민국 정부는 ‘한국판 경제개발 비법 교과서’를 만든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우리 경제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게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한 ‘교과서’라고 했다.6·25전쟁 참전국에게 경제 발전 경험을 전수하고, 공적개발원조 확대 계획도 내놓고 있었다.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국제사회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그해 연말 무렵에는 경제 분야의 ‘바이블’이라는 ‘한국 경제 60년사’를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강만수 ‘대통령 경제 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
[논객칼럼=김부복]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교외에서 말을 타고 눈길을 달리다가 생각을 떠올렸다. 고기를 눈 속에 묻어두면 얼마나 상하지 않게 보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베이컨은 생각난 김에 실험해보기로 작정하고 근처 농가에서 닭 한 마리를 샀다. 그 닭의 배를 가르고 눈 속에 묻었다.그러는 사이에 베이컨은 몸이 으스스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감기였다. 그 감기가 심했던지 몹시 아팠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가까운 집으로 옮겼다. 베이컨은 그 집에 누워서 “실험이 훌륭하게 성공된 것 같다”고 썼
[논객칼럼=김부복]한겨울에는 유도복을 입을 때마다 많이 껄끄러웠다. 웃통을 홀랑 벗은 채 ‘맨몸’에 도복을 걸쳐야 했기 때문이다.넓은 도장에는 ‘난방시설’이라는 게 없었다. 웃통을 벗으면 소름이 돋고 살이 오그라들었다. 덜덜 떨면서 도복을 입어야 했다. 그 도복이 가끔 속을 썩이기도 했다. 전날 흘린 땀이 밤새 얼어붙어서 도복에 살얼음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조금 더 끔찍했다.유일한 해결책은 ‘마찰’이었다. 도복을 입으면서 양쪽 끝을 왼쪽, 오른쪽으로 여러 차례 잡아당기며 ‘맨살’과 마찰시킨 것이다. 그 마찰로 ‘열’을
[논객칼럼=김부복]매천 황현(黃玹∙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오는 얘기다.“남인 최우형(崔遇亨)은 잇달아 청직(淸職)에 발탁되어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봉군 등의 요직을 거쳐 충훈부까지 관장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 수레를 타고 북촌(北村)에 도착하여 코를 가리며, ‘노론의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하였다.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노론이 살았다. 그 남쪽은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당(三色黨)이 살고 있었다.”황현은 나라가 기울던 조선 말 사람이었다. 당시
[논객칼럼=김부복]1993년 7월, 일본 요미우리신문 오사카 판에 기사 하나가 크게 보도되었다. ‘머리기사’였다. “만요(万葉) 사람들은 무궁화를 좋아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나라 시대 일본의 수도인 헤이죠오코에서 귀족들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피는 꽃인 무궁화를 관상용으로 재배했었다는 사실이 텐리 대학 학예원의 카네하라 마사아키 씨의 화분 분석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당시 무궁화는 일본에서는 자생하지 않았고 도래시기도 확실하지 않았으나 나라 시대에 이미 대륙으로부터 묘목을 수입해서 귀족들이 정원에 재배하고 이국의 정서를 즐긴 듯
[논객칼럼=김부복]백인들은 매독의 ‘기원’을 서인도제도라고 주장했다. 서인도제도의 원주민과 성 접촉을 하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우겼다.매독의 ‘원조’가 서인도제도였다면, 그 지역의 주민들은 상당수가 매독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서인도제도에서 북미 대륙으로 병균을 옮겨온 백인들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매독에 감염되고 있었다.그런데도 매독은 ‘야만인 병’이었다. ‘못된 병’은 모두 유색인종이 옮기는 것이었다. 백인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런 발상이 머리 꼭대기부터
[논객칼럼=김부복] “이번에 조선 독립운동이라 칭하여 경성 기타에서 행한 운동이라는 것은 사리(事理)를 불변(不辨)하고 국정(國情)을 알지 못하는 자의 경거망동으로 '내선동화'의 실(實)을 상해하는 것이라….”매국노 이완용(李完用) ‘후작’은 ‘3·1 독립운동’을 이렇게 깎아 내리는 글을 썼다. 1919년 3월 8일자 ‘매일신보’에 “황당한 유언(流言)에 미혹치 말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이다.이완용은 3·1 운동을 “해외에 있으면서 조선의 현재 상태를 알지 못하는 무리가 조선의 독립을 기도, 민심을 선
[논객칼럼] 우리는 5만 원짜리 돈을 지갑에서 꺼낼 때마다 ‘신사임당’을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신사임당의 ‘이름’을 모른다.‘사임당’은 당호(堂號)일 뿐이다. 당호는 성명 대신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가 신사임당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여성에게는 대체로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이름은 주로 ‘서울댁’이나 ‘김서방네’ 등으로 통했다. 100년도 더 전인 1911년, ‘매일신보’는 여성에게도 이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여자(女子) 명명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산속에 외딴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요제프 모어라는 신부가 외롭게 살고 있었다. 1818년 어느 겨울날,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모어는 창문 밖으로 탐스럽게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설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외진 마을인 데다, 눈까지 내리고 있어서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난데없는 ‘노크’였다. 아마도 눈을 피하려는 산짐승일 것이라고 생각,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랫마을 처녀였다. 처녀는 다급해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1864∼1944)라는 자가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육군 대장 출신으로 조선 총독까지 지낸 자다. 그는 1927년 12월 10일 조선 총독으로 부임했다가 1929년 8월 17일 ‘신병치료’를 핑계로 사임했다. 짧게 ‘군림’하다가 물러난 것이다. 야마나시는 임기 동안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다. '독직사건‘이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사의 수치’라며 부끄러워서 쉬쉬할 정도로 챙기는 데에만 혈안이었다. ▲부사에 양곡 취인소 설치 허가를 내준다며 7만 원 ▲동래철도 용지
[논객칼럼=김부복] 가위는 날카롭다. 바위는 묵직하다. 보는 부드럽다.날카로운 가위는 보를 자른다. 보는 가위에게 당할 수 없다.그렇지만 부드러운 보는 바위를 둘둘 말아서 굴려버릴 수 있다. 바위는 보를 당할 재간이 없다.그러면서도 묵직한 바위는 가위를 이긴다. 바위가 두들겨 패면 가위는 다리를 잃고 만다.따라서 가위와 바위와 보는 나머지 상대를 모두 제압할 능력이 없다. 이기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지는 상대도 반드시 있다.그래서 가위바위보는 ‘견제와 균형’이다. 가위바위보는 견제와 균형의 논리가 담겨있는 게임이다. 철학이 담겨 있
[논객칼럼=김부복] 어린 시절, ‘그 애’를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그 애’는 약속장소에 10분쯤 늦게 나타나자마자 “빨리 가야한다”며 서두르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데 이렇게 바쁘냐고 물었더니, ‘이화여대’라고 했다.그제야 알 수 있었다. 영국의 ‘세계적인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내한 공연’을 하던 날이었다. 김모는 그 사실에 무관심하고 있었다.‘그 애’는 얌전하고 내성적인 소녀였다. 김모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 애’가 친구들과 이화여대 근처에서 모이기로 했다며 시계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붙잡을
[논객칼럼=김부복] 단백질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우리는 ‘볶은 메뚜기’를 먹었다. 지금은 농약 때문에 귀해졌지만, 바삭바삭하면서 고소했다.우리는 ‘번데기 통조림’도 어쩌다가 먹고 있다. 역시 고소한 맛이다.언젠가, ‘번데기 통조림’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가 강아지에게 ‘한 마리’를 던져줬다. 녀석은 킁킁거리며 그 냄새를 잠깐 맡는 듯하더니, 발랑 누워서 등으로 비비고 있었다. 애완견에게 누에 번데기는 ‘먹이’가 아니라 건드리기 껄끄러운 ‘벌레’인 듯싶었다.우리가 맛을 아는 ‘곤충요리’는 대충 이런 수준이다. 다른 곤충의 맛은 먹
[논객칼럼=김부복] 앞니 하나가 설쳐댔다. 천방지축이었다. 전후좌우로 마구 흔들거렸다.녀석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깝죽거렸다. 잇몸을 자기 멋대로 치받았다. 주인을 짜증나고 신경질 나게 만들었다.녀석은 주인이 싫어하는 것도 아랑곳없었다. 주인의 마음과는 따로 놀았다. ‘이질감’이 대단한 녀석이었다. 마치 주인을 무시하는 듯했다.주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녀석을 혀로 밀쳐댔다. 하찮은 녀석과 ‘설전(舌戰)’이었다. 손가락으로 꾹꾹 쥐어박기도 했다. 치열한 싸움이었다.녀석은 끈질겼다. 그렇게 압박을 해도 잇몸에서 떨어지지 않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요즘 마약 얘기가 매스컴을 자주 타고 있다.‘물뽕’이라는 것을 몰래 먹인 뒤 성폭행을 하고, 찻집 종업원에게 필로폰 탄 음료수를 먹인 음흉한 손님도 있었다. 내기 도박을 하다가 커피에 필로폰을 타서 슬그머니 먹이고 판돈을 휩쓸었다는 못된 범죄에 관한 소식도 있었다. 서울 강남이나 이태원의 클럽은 ‘마약 오염’이라고 했다.그 마약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경험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최서해(崔曙海·1901∼1932)라는 작가가 있었다.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쓴 것으로 유명했던 작가였다. 불과 32세의 안타까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일선 기자 시절, 강원도의 어떤 탄광을 ‘현장 체험’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초였다.대한민국에서 환경이 가장 좋은 축에 든다는 탄광이었다. ‘고위공무원’과 함께 한 ‘현장체험’이었으니, 시설이 나쁠 수 없었다. 정부가 고위공무원과 언론을 위해서 고르고 또 골라서 선택한 탄광이었다.기자는 탄광 사무실에서 안전교육부터 받아야 했다.탄광 관계자는 모형으로 만든 갱도에 불을 점화시키면서 가스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불은 점화시키자마자 갱도 속을 달려가면서 ‘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무척 살벌했다.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고교시절이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때였다.나는 모처럼 책가방을 꾸려서 아침에 집을 나섰다. 학교 도서관에서 밀린 공부 좀 할 참이었다.그러나 공부는 제쳐둬야 했다. 도서관에서 같은 반 친구와 마주쳤기 때문이다.그 친구가 제안했다.“우리 반 아무개 있잖아. 그 자식 집이 시골이잖아. 근데 방학 때 집에 갔다가 그저께 올라왔대. 그 친구 하숙집이 학교 뒷문 근처에 있거든. 만나자고 연락 왔는데 같이 가서 볼래?”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책이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도서관이 갑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는 자연보다 더 잘 만든 인간의 발명품을 ‘바퀴와 축’이라고 정의했다. ‘살아 있는 생물’ 가운데 바퀴로 움직이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자동차의 경우, 축의 회전에 따라 바퀴가 돌아가면서 빠른 속도를 내지만 생물에게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아시모프는 인간은 자동차와 달리 한 발을 올렸다가 다시 반대쪽 발을 올려가며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신세라고 했다. ‘무계획적으로 진화해온 결과’라고 지적했다.그런데, 아시모프는 조금 틀린 듯 싶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김모는 이른바 ‘지공거사’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늙은이다.김모의 지하철과의 인연은 ‘약관’의 나이였던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다.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기공식은 화려하고 거창했다."대통령 내외와 서울시장이 단상의 버튼을 누르자 대한문 앞에 세워져 있던 5개의 파일이 굉음을 울리며 땅에 박히기 시작했다.… 3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이 일제히 환호했고, 풍선 5000개와 비둘기 1000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고생 합창단이 부르는 ‘지하철의 노래’가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머리카락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 있었다. 청나라 때였다.청나라는 명나라를 정복하면서 주민들에게 자기들의 ‘헤어스타일’인 ‘변발(辮髮)’을 강요했다. 자진해서 변발을 하는 명나라 병사들을 군에 편입시켜 앞장세우기도 했다.중국 사람을 시켜서 중국 사람을 제압하는 ‘이화제화(以華制華)’ 작전이었다. 우리가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빠져 오그라들었던 과거사와는 대조적이었다.많은 중국 사람이 청나라에 굴복, 변발을 받아들였다. 소주(蘇州)지방의 경우 불과 하루 사이에 주민들 모두가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