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최하늘] 어느 날 단체카톡방에 내 흥미를 끄는 것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이 ‘내 묘비에 적힐 문구는?’이다. 생을 마감하는 날 내 묘비에 적힐 글을 알려주겠단다. 재미로 하는 놀이인 줄 알면서도, 슬그머니 호기심이 발동한다.내 이름을 써넣으니 비석 사진 한 장이 뜬다. 비석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최회봉 이곳에 잠들다. 최상의 것은 앞으로 올 것이다.’ 그것이 나를 조용히 미소 짓게 한다. 표현이 다소 거친 것 빼놓고는 더 바랄 게 없는 묘비명이다. 문득 오래된 일이 떠오른다. 정확히 45년 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논객칼럼=최하늘]The best is yet to come!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꽤 오래전부터 내 카톡 계정에 띄워놓은 상태 메시지다. 이것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걷는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다.세월의 흐름 따라 내가 고대하던 ‘가장 좋은 것’도 변해왔다. 지나고 보니 그들 중에는 헛된 것들도 없지 않았다. 소망이 아닌 욕망인 것들이 그랬다.이제 내가 기다리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로 고착됐다. 나에게 절대 진리가 된 셈이다. “만일 내가 1년 후에 죽어도 이것을 간절히 바랄까?” 이 질문이 나를 더욱 확
[논객칼럼=최하늘]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 얘기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속 상관인 과장이 나를 불러 세우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당신은 직장생활 하기 힘들 것 같아”그때는 그 말이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군을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후배가 “형은 나중에 직장생활 1주일도 못할 거야”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속으로 피식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40년 전 일이다.그들 보기에 내 자아가 너무 강해서 그랬을 것이다. 자존심, 고집, 자기애, 자기의
[논객칼럼=최하늘]대학 1학년 시절. 교양과목으로 ‘철학 개론’을 듣게 됐다. 너무 오래돼 교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수업시간 중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교수는 ‘행복공식’이라며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행복=성취/욕망대학 때 배운 것 중 여태 기억되는 내용은 거의 없다. 공부를 소홀히 했던데다, 학부 전공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며 살아와서 그럴 것이다. 그 와중에 이 공식에 대한 기억 하나는 유독 선명하다. 그것이 지금 와서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의 변화로 이끈다. 내 안에 날아든 지 45년 만의 일이다
[논객칼럼=최하늘] 나이 듦의 특권은 자유로움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에 매임이 없으면 자유롭다 할 것이다. 나 역시 은퇴 후 그런 삶을 기대했다. 내 안의 욕망을 줄여가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우리 나이 예순셋에 은퇴를 선언하고, 3년이 흘렀다. 은퇴는 일반적으로 ‘주된 일을 떠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강도높은 충격이다. 미리 준비한 것은 없었지만, 은퇴 후의 삶에 그런대로 잘 적응해 왔다.그런데 요즘 평화롭고 고요하던 마음에 잡음이 인다. 무기력감이 몰려온다. 모든 게 시들하다. 삶의 무게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흔히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20대에는 시속 20㎞였던 세월의 속도가 60대에는 시속 60㎞로 빨라진다고 했다. 해를 더할수록 발자취로 남길만한 일들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겅중겅중 걷다 보니 금세 한 해의 끝자락이다.그런데도 아직은 이를 인정하려 않는 자신을 본다. 기억될 만한 일들이 특별히 많아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 마음이 바뀌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삶에서 만나는 작은 것들조차 의미를 안고 다가온다. 이것이 쏜살같은 세월의 걸음을 조금이나마 늦추지 않나 싶다.한 해를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한 아이가 세 살 때 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12년을 휠체어에 앉아 살았다. 뇌성마비는 뇌 손상으로 운동기능이 마비되는 질환이다. 어느 날 물리치료사가 그의 증세를 보고 뇌성마비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검사해보니 소량의 도파민 약물로도 치료 가능한 세가와병이었다. 약을 먹은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이는 제 방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아빠, 나 이제 걷는다!”사람들은 이 상황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와 부모는 먼저 감사해한다. 고생하며 지난날들에 대해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으리라. 남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경영사상가로 90세 나이에도 왕성하게 저술과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던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 교수에게 누가 물었다.“거야 물론 이혼 안 당하는 거지….”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GE의 잭 웰치나 Microsoft 빌 게이츠 같은 기업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최고의 경영학자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은 피터 드러커. 그가 평생의 나침반으로 삼은 말이 있다. “너는 죽은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지?”드러커가 13살
[논객칼럼=최하늘] “뭘 해야 하지?”지난날을 돌아보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을 보내며 가장 많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내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인생에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잔잔히 미소지을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다.머릿속에 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동년배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이 시즌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 삶에 힌트가 필요해서다. 어쩌면 어설프게 나의 답안지를 써 놓고 오답을 적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해
[논객칼럼=최하늘] 실제로 내게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왔다. 보이지 않은 유령과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 때문에 제법 시달렸다.원인을 찾아야 했다. 내 마음과 생각이 문제였다. 내 마음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현재로 가져와 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을 여러 걱정거리가 나를 파고들었다. 그건 실제가 아닌 허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시간을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시간’이라 불렀다.내 삶의 질을 좀 먹는 심리적 시간에서 빨리 도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얼마 전 아내가 내게 한 말이다. 중대한 도전 앞에서 행여 실수하거나 실패할까 봐 긴장하는 젊은이에게 해 줄 법한 조언이다. 이 말을 예순다섯 나이에 듣는다면 조금 문제가 있다.“응 알았어. 잘할 능력도 안 되고…”“당신 성격도 그렇고, 다시 옛날처럼 그럴까 봐 그래…”누구보다도 나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이기에 노파심에서 한 소리일 것이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는데, 오늘 아침 그렇게 혼잣말하는 나를 본다.“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그런데 지금 내가 무얼 그리 잘하려고 하는 거지? 곰
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동물원의 벽을.하나님 맙소사,벽이 어찌나 높던지요.하나님 맙소사,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43살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지만 몸 전체가 마비된 채 살아야 했던 프랑스 언론인 장 도미니크 보비(1952-1997)가 읊은 ‘캥거루의 노래’다. 그는 이후 남은 인생 15개월 동안 자신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이상 움직여 책 ‘잠수복과 나비’를 냈다. 그리고 8일 뒤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그 높은 벽을 뛰어넘는 용기와 치열함이 있었기에 그는 누구도 만나지 못
[논객칼럼=최하늘]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내가 숨 쉬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그 중 하나다. 세월이 안겨준 선물이다. 이순(耳順)이 되면서부터 그랬다. 날이 갈수록 그 마음이 더해 간다.이것은 요즘 말하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또 다르다. 세월이 낳은 여유가 보태졌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4월 19~20일, 용산고등학교 26회 동기생들과 함께 한 ‘46년 만의 수학여행’은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알람 소리에
[논객칼럼=최하늘] “은퇴하고 실컷 놀아봐라.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걸….”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나에게 고교동창이 해 준 말이었다. 그는 평생 다니던 연구소를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그것은 한가로운 삶의 함정에 대한 경고였다. 한가로운 세계가 애초에 기대했던 것처럼 그렇게 평안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던 나의 공언은 번복될 수밖에 없었다. 은퇴 1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일이 없이 삶의 질을 논한다는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이삿짐과 씨름하기를 벌써 몇 주째다. 전문 업체에서 다 옮겨주고 정리해 준다고는 하지만 준비과정이 녹록치 않다. 가져가야할 짐을 챙기고, 버릴 물건들을 골라내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살면서 몇 차례 집을 옮겨봤지만 이번 같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사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이번 이사가 나에게 유별나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에 이사할 때는 아내 혼자서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사가 처음인 것처럼 서툴다.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도 나를 힘들게 한다. 지난 20년 동안 버리지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오랜만에 하늘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대모산길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공터에 마련해 놓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열심히 종이 박스들을 정리하고 있는 경비아저씨를 본 아내가 혼잣말을 한다. “저분 정말 성실해 보인다…” 70대 초반은 돼 보이는 연세임에도 더 없이 밝은 표정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좋아 보였나보다.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데 이 어르신이 우리 하늘이를 보고 귀엽다며 반색을 하더니 걸음을 멈춘다. 자기네 집에도 말티즈 치와와 비숑 같은 아이들이 여럿 있단다. 화제가
“응, 그래~.”“당신이 이제 ‘그래’라는 말도 하는구나. 남의 말 죽어도 안 듣던 사람이….”거실에서 내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고 있던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있었던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이 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응, 그래~”라고 대답하는 자신에게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또렷하다.피식 웃음이 난다. 그 순간 이순(耳順)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자는 나이 육십을 이순이라고 했다. 사람이 예순 살이 되면 귀가 순해져 모든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요즘 들어 젊어 보인다든가, 젊게 사는 것 같다는 말을 간간히 듣는다.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소리인줄 뻔히 알면서도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 인사치레라 하더라도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닐 터이니, 어딘가에 조그만 근거는 있을 것이다.젊어 보인다는 것은 제 나이보다 덜 들어 보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흔히 나이가 한창 때인 것처럼 살거나 혈기 왕성하게 사는 사람을 보고 젊다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 눈에 내가 잠시라도 그렇게 비쳐졌다면 감사한 일이다. 가만히 그 이유를 가늠해본다. 이제 나는 가히 전투적이라 할 만했던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아이가 이상했다. 식구들 중 나의 큰 아들을 대하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 뜻밖이고 생소했다. 그만 보면 애끓는 목소리로 울며 따라 다닌다. 녀석을 안아 올려 눈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잠도 큰 아들 방에서 자겠다고 떼를 쓴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큰 아들은 “꼭 이별을 앞둔 아이 같다”며 안쓰러워한다. 굳이 따진다면 녀석은 우리 가족 중에서 큰 아들과 제일 덜 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녀석의 이런 행동 변화가 더욱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녀석은 며칠째 먹을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나의 올해 추석 명절은 유독 여유롭다. 평안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가 영화보기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아들은 하루에 한편씩 영화표를 예매해 카톡에 올려준다. 매일 저녁때면 아내와 함께 코엑스영화관을 찾아 요새 잘 나가고 있는 안시성, 협상, 명당 등을 감상했다. 낮에는 한 시간 반쯤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맞닿아 있는 대모산 둘레길을 반려견 하늘이와 함께 느긋하게 걷는다.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대모산 산책로에는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밤톨을 하나 집어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