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국적선사의 쾌속선 오션플라워호(號)를 타고 두시간 남짓이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의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에 닿는다. 간논지(觀音寺)는 이곳에서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시간 반쯤 달려야 나타난다. 2012년 10월 한국 절도단이 훔쳐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있던 절이다. 오래된 사찰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 간논지는 일반 주택과 다름없어 보인다. 절도단이 훔쳐온 일본 간논지 관음보살좌상··· 외교 문제로 떠올라마당에 관음보살좌상을 일본말, 한글, 영어로 각각 소개한 안내판
I.1990년 7월 26일, 부시(George H.W. Bush)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광장에서 열린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미국장애인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약칭 ADA)’ 서명식장에서 인권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3주일 전 우리들은 독립기념일을 경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또 하나의 독립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너무나 늦은 독립일입니다. 이 역사적인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의 서명으로, 모든 장애가 있는 남성, 여성, 아동은 이제까지 닫혀 있던 평등, 독립, 자유의
지금부터 꼭 2년 전인 2014년 4월14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나이지리아 동북부 보르노주의 치복에서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의해 276명의 여학생들이 납치된 것이다. 57명은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219명은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사건 직후 전 세계에서 납치된 여학생들을 구해야 한다는 ‘우리의 소녀들을 되찾아오자’(Bring Back Our Girls)는 운동이 크게 일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또다른 큰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서 납치된 치복의 여학생들은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3월16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마치고 나서는 모습에선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날 토론회는 여느 토론회보다 많은 관훈클럽 회원과 기자들이 지켜봤다. 대표 자리를 넘겨받은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분당과 탈당으로 쓰러지다시피한 더민주당을 일으켜 세운 그의 ‘대장 체질’ 리더십과 더민주당의 진로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토론회 화법은 거침이 없었다. 편치 않은 질문을 에두르지 않고 대부분 솔직하게 응답했다. 그것은 대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더민주당뿐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3세 조태오는 안하무인의 갑질로 관객의 분노를 사더니, 급기야는 임금을 받지 못해 1인 시위를 벌이던 화물차 기사를 직접 폭행하고 돈 몇 푼으로 때우려 한다. 화물노동자를 구타한 뒤 소위 맷값이라는 것을 준 최철원 전 M&M 대표가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되었음직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왠지 맥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감독이 고정관념에 기대어 너무 편하게 가려는 듯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벌은 악, 서민은 선이라는 도식은 ‘어떤 경
지난해 늦가을 마당에 파묻었던 튤립 구근들이 언 땅에서 겨울을 나고 이제 막 붉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동네 골목의 담벼락 너머 벚꽃, 목련, 진달래, 개나리는 어느새 절반이상 꽃을 떨궜다. 생태학자가 아니라도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이른 봄부터 시간 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던 봄나무들이 요즘은 거의 동시에 화르륵 꽃을 피우곤 확 져버려 봄꽃 즐기는 시기가 너무 짧아 아쉽다고.이즈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제는 봄꽃 이야기다. 유독 한순간 피었다 지는 찰라적인 봄꽃을 좀 더 진하게 즐기기 위해 꽃구경에 나
아직 구성도 안 됐는데 이렇게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다.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국회에 실망해 투표율이 낮아도 이미 ‘없는 것’은 결정됐다.혹시 유권자들이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뜬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모두 백지투표를 해 선거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면 모를까. 그러나 이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소설에나 나오는 상상일 뿐. 그러니 20대 국회에 ‘문화’는 없다. 비례대표를 보면 결코 억지가 아니다.애초 20대 국회 비례대표는 그 모양새부터 찌그러졌다. 19대 국회 임기 말에 여야가 지루한 싸
“이런 걸 보도하지 않으면 그게 언론입니까.”(마이크, 마크 러팔로)“저희가 이 사건을 정확하게 알릴게요.”(샤샤, 레이첼 맥아담스)“돈과 양심 어느 쪽이 옳은지 신중히 선택해야 할 거야.”(월터, 마이클 키튼)‘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의 대사는 언론의 본질과 보도의 원칙, 진실 보도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스포트라이트’는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미국 보스턴 가톨릭 대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 보도’(2002)를 다룬 영화다. 외국 영화 속 언론, 성역 없는 진실 추구종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서울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프랑스인임을 알게 된 기사 아저씨는 구수한 사투리로 내게 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바캉스도 많고 일도 많이 안 한다카던데 뭐 묵고 삽니꺼?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프랑스에는 석유가 안 나니까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아이디어 덕분에 먹고 살지요. 한국 아주머니들이 저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 루이비통, 샤넬… 이런 거 다 프랑스 거잖아요.”물론 외국인들이 프랑스에 대해 갖는 ‘예술의 나라’ 또는 ‘명품의
4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정당들은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분주하게 진행했고, 그 과정에 터져 나온 파열음이 귀를 따갑게 했다. 언론은 그 파열음을 시시콜콜하게,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프레임으로 확성시켰다. 모두 국민의 부와 행복을 내세웠지만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고자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친박과 비박의 권력투쟁, 야당의 분열과 분열된 야당 상호간의 이전투구, 대선을 염두에 둔 투박한 정치공세, 그런 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난무했다. 정치의 속내를 남김없이 보여준 과정이었다.
투표가 코앞이다. 사분오열된 정치인들과 득표를 위한 잔머리들, 용서해달라며 무릎 꿇는 대구 진박들…. 이게 과연 정치를 맡길 후보들인가 회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선도 아니고 차선도 아니고, 차차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들러리 선거가 지속되는데, ‘지역을 위해 힘 있는 당 사람을 뽑아야 한다’, ‘불의한 그들을 견제하게 해 달라’, ‘유권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이 아니다’라는 협박적 설득에 번번이 당해 온 것이 한국 선거의 실상이다.정책을 보면 여당과 야당 구분도 없어진 지 꽤 된 터에다 원숭이가
‘이쪽도 틀렸고 저쪽도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은 기자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논설위원을 오래 지낸 필자도 사설이나 칼럼을 쓰며 양비론의 유혹을 느낀 적이 많았다. 가령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 누가 옳은지 판단이 쉽지 않을 때, 제일 편한 논리가 양비론이다. 양쪽을 준엄하게 꾸짖는 거다. 그래놓고는 양쪽에게 ‘시급하게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식으로 끝낸다. 그러면 객관적 입장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비론만 펴면 만사가 다 오케이인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어떤 주의·주장의 시비를 집요하게 따지고 고민해야 할 때도 있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왔습니다. 생강나무, 산수유 꽃이 노랗게 만발하더니 그 뒤를 이어서 개나리, 벚꽃이 피어납니다. 그와 동시에 도시 근교의 과수원에는 복사꽃, 배꽃, 자두꽃이 벙글기 시작합니다. 산에는 진달래, 노루귀, 양지꽃이 어여쁜 자태를 뽐냅니다. 가히 꽃들의 릴레이 경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 나라 삼천리강토는 온통 봄꽃들의 화려한 잔치입니다. 경남 진해에서는 벌써 군항제(軍港祭) 소식도 들려오네요. 군항제는 반드시 벚꽃이 가장 만발한 시기에 열립니다. 오늘은 벚꽃과 관련된 노래 하나를 골라서 그 이야기를
사람이 철이 들면 어른 앞에서는 다투지 않는다. 군인도 상관 앞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싸움을 하다가는 양쪽 다 야단을 맞거나 얼차려를 받기 일쑤다. 무례한 짓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하더라도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해야 한다. 패거리 공천은 지역감정에 편승하려는 것··· 유권자들에게도 큰 책임철들 나이가 지났는데도 어른 앞에서 심한 패싸움을 한 곳이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다. '배신'을 응징하는 복수의 칼날이 번득였고 ‘옥새 쿠데타’도 있었다. 4년에 한 번씩 어른으로 모실 뿐이긴 하지만
4·13 총선 공천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 말은 정체성(Identity)이다.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의 모습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러한 성질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이다. 사전적 정의부터 철학적이어서 어렵고 모호하다. ‘동일성, 일치성’이라는 영어의 뜻풀이가 좀 더 쉬울 듯하다. 유승민·이재오는 원내대표 출신… 정체성에 안 맞는 것은 자가당착정체성은 기본적으로 남이 나에게 묻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나에게 묻는 것이다. 어느 후보가 어느 정당의 정체성에 맞는지 안 맞는
캠핑카를 타고 북유럽으로 오로라를 찾아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날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묵을 계획이었는데, 조금 무리해서 ‘스웨덴의 관문’ 말뫼까지 달렸습니다. 느닷없는 일정 변경은 제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을 돌본다는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하루쯤 머물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일러 복지, 복지 하는지 잠시라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 머문다고 복지의 실체가 와 닿을 리는 없겠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뭔가 느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스웨덴 지인에게 들은 ‘부러
‘맹자(孟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선한 일을 위해 힘쓰는 사람은 순 임금의 제자들이고, 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힘쓰는 사람은 도척의 제자들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이익을 생각하는가 선을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된다.” 순(舜) 임금은 요(堯) 임금과 함께 중국 최대의 성왕이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순 임금의 신하’가 되고 싶어 할 정도로 위대한 분이시다. 도척(盜跖)은 물론 중국 고대의 유명한 도둑이었다.
며칠 전 서울 석호정 회원들과 동해안에 봄맞이 여행을 다녀왔다. 수도권의 따뜻한 날씨와 달리 동해안은 바람이 쌀쌀해 때 이른 봄맞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비수기인 데다 평일이어서인지 생선회가 푸짐하게 나와 추위를 잊을 만 했다. 요즘에는 홍게와 청어가 많이 잡힌다고 했다.처음에는 대형 버스를 빌렸다가 몇 분이 여행을 포기하는 바람에 중형으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카운티라는 이름의 25인승 미니버스였다. 지방에 있는 조그만 관광버스회사 소속이다. 여간해서는 미니버스를 타는 적이 없었는데 인원이
박찬욱 감독의 2002년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제목처럼 복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것’이다. 누가 대신 해도 안 되며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복수가 서로 얽히고, 그것이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고, 결국에는 모두가 연쇄사슬처럼 끔찍한 종말로 치닫는다.여느 복수극과 달리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복수의 폭력성과 자기 파괴성을 격렬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정반대 정서인 건조한 시선과 침묵을 이어감으로써 인간 본성을 오히려 집요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모두에게 복수의 동기와 행위를 부여했고, 그것을 선악의 이
요즘 언론에 비치는 여의도 정가는 어지럽다. 몇 년마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현상에 기시감을 느끼면서 새삼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하이부즈따오’라는 말이 생각난다.2003년 초,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도, 본사의 분식회계로 야기된 ‘SK 글로벌 사태’의 파장은 예외 없이 몰아쳐 왔다. 검찰의 발표와 이후의 진전 상황에 따라 회사와 직원들의 명운이 걸려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매 시간마다 피 말리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현장에만 있었던 우리로서는, 언론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