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시언]‘뇌는 상상의 감정과 실제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다’주말 오후 3시 13분, 6km 지점을 통과할 즈음이었다. 러닝화 밑창이 화끈거리기 시작할 무렵, 엊그제 읽은 뇌과학 책 속 문장 하나가 헬륨 풍선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요컨대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특정 상상을 할 때 –이를테면 한강 다리가 무너져 내 위로 쏟아지는 상상 등 – 뇌는 찰나일지언정 실제로 그 사건이 눈앞에 들이닥친 것처럼 긴장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해당 감정은 무의식의 어딘
[청년칼럼=고라니]여자친구가 물었다. "오빠도 결혼하면 남의편 될 거야?"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었다. 서로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주자며 결혼을 약속했는데 남의 편이라니. 있어선 안 될 일 아닌가. 문제는 있어선 안 될, 그 일이 자연스레 내 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남의편'은 험난한 시월드 안에서 아내를 보호하지 못하고 시부모에게 휘둘리는 줏대 없는 남편을 뜻한다. 시월드는 옛말이라지만 형태를 달리해 여전히 번영하고 있는 현실 속 세계다. 20년 전 며느리가
[청년칼럼=박시형]누구나 생존을 위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일상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밥을 먹고, 밥을 벌고, 다음 밥벌이를 위해 잠시 쉬는 일. 심히 간추린 것 같지만 실상이다. 꿈 없인 생존할 수 있지만 밥 없인 살아갈 수 없다. 생명체로서 별 수 없는 숙명이다. ‘인간과 짐승이 다를 게 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두 손과 두 발은 나란히 땅을 짚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별 탈 없이,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이 단순한 일상으
[청년칼럼=한성규]공포가 다시 몰아쳤다. 다수의 SNS채널에서 이태원 클럽 확진자 뉴스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더니 매일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이태원 클럽 확진자 소식이 속보로 떴다. 신규 확진자 수가 4월 12일 32명 이후 28일 만에 다시 30명대로 치솟았다. 일주일 넘게 10명 이하로 확진자가 발생해 겨우 안심을 하려던 참이었다.초기 발병자로 추정되는 용인 66번 확진자가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하면서 벌어진 집단감염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첫 주에만 서울 12명, 대구 2명, 인천 4명 경기 6명, 충북 2
[청년칼럼=방제일]한때 인터넷 댓글을 수놓았던 말과 같이 이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일지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노무현 때문'이고, 이렇게 삐뚤어진 어른이 된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 내가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는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나는 이 소식을 경상북도 이름도 모를 산 아래 지휘 통제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들었다. 거짓말이길 바랐다.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앵커의 음울한 음성과 나와 교대
[청년칼럼=서은송]번역은 노후한다 - 왜 그런가? 번역한 텍스트가 노후하지 않는 곳에서,-왜 그런 가? 또한 우리는 텍스트를 다시 번역한다. -왜 그런가?앙리 메쇼닉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채식주의자’의 번역은 창작적 번역이자 의사번역이었지 않았을까.‘의사번역’이란 “타자가 연출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임의로 글의 주인을 바꾸어 한 번 더, 글쓰기의 주체를 역전하는 일종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이미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번역하는 행위’에도 해당된다.
[청년칼럼=앤디]이십 대 후반,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청년실업은 항상 문제였고, 졸업만 하고 붕 떠버린 나 역시 마냥 놀 수만은 없어 청년인턴이라는 이름의 임시직으로 6개월 정도 그 기관에 출퇴근했다.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매년 하는 행사로 추정되는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한 나절 동안 배를 재배하는 과수원에 가서 일손을 돕는 것이었는데 그때 내게 주어진 일은 배를 솎아내는 작업이었다. '솎아내기'란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밀
[청년칼럼=곽예지]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글들을 여러 편 쓰게 된다. 내 또래의 대학생들 중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마음 가는대로 적는 일기 몇 편과 더 가끔 쓰게 되는 편지 몇 통을 빼고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쥐게 하는 글은 대부분 ‘써야 해서’ 쓰는 것들로 구겨지듯 남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의 모습이라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내향적으로 파고드는 일기나 때때로 자폐적인 글들을 남들에게 안보이게 블로그에 끄적이는 게 전부
[청년칼럼=하정훈]나는 '고자'다. 운전 못하는 '고자'다.'운전 못하는 남자면 남자지 고자일께 뭐냐'고 한다면 왠지 운전이라는 영역은 남성성을 대표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다. 어떤 남자가 매력적인 남자인가에 대해 TV프로그램에서 여자 패널들이 언급하는 걸 보면 운전 잘하는 남자, 후진 잘하는 남자, 주차 잘하는 남자, 자동차 뚜껑 여는 남자 등을 이야기한다.나는 사실 운전면허증이 있다. 그러나 장롱면
[청년칼럼=석혜탁] 연휴를 맞아 김소영, 오상진 커플이 운영한다고 하는 서점에 가봤다. ‘책발전소’라는 이채로운 이름을 가진 곳이다. 워낙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최근 김소영의 책을 읽었던 탓도 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그가 돌연 책방 주인이 된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나는 남편이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사람인 것이 그가 책을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소영, 中누군가의 남편이 된 지
[청년칼럼=심규진]오랜만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의 회사를 너무 탈출하고 싶어서 이직을 결심했다고. 그래서 벌써 몇 군데 회사에 입사원서를 제출했다며 면접 합격 전략을 알려달라고 했다. 과거 대기업, 중견기업, 공공기관 정규직에 모두 합격하고 원하는 곳에 철새처럼 떠돌았던 나의 이력을 알고 있던 지인은 간절함으로 호소했다. 평소 SNS를 통해 무료취업상담을 하고 있던 나는, 이참에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공개적인 조언을 해보기로 했다. 하나. 조급하면 모든 것을 망친다.이직을 결심한 사람들의
[청년칼럼=김연수]삶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분명 겨울일 것이다.해가 바뀌고 꽃이 피며 햇살이 가득한 시기가 왔다. 창밖처럼 몸과 마음도 그런 시기라면 좋으련만 놀랍게도 난 기나긴 겨울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게 내리는 비를 가려준다고 믿었던 사람이 결국 나를 젖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 이번에도 아니구나’ 싶었다. 이제는 조금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하며 새롭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가족, 연인, 친구라는 존재는 가까운데 왜 계속 서로를 잘 모르고 하지
[청년칼럼=김봉성]어린 왕자를 만났다. 녀석은 내 최근 10년 사(史)를 듣더니 ‘아저씨는 바보구나’라며 비웃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보아뱀이 삼킨 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아뱀은 나다. 내 속에 있는 건 뭔가? 이것은 연애 없는 연애 이야기다.연애를 안/못 하는 사람은 바보 정도가 아니라 찌질하다. 감정싸움 없는 혼자가 편하다는 방어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는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것이다. 연애 상대가 차은우나 수지라면 연애를 안/못 한 이유를 철회할 테니까. 그러므로 ‘혼자의 자유로움’은 차은우나 수
[청년칼럼=이광호]노동자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다. 노동자가 일을 못하면 소비도 자연 줄어든다. 위축된 경제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성장을 어렴풋이나마 기대했다.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정규직에게는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혹은 지금의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사회는 유지되어 왔다.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체가 멈출지 모른다는 위협은 '성장'이라는 환상을 걷어냈다. 동시에 세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집단 감염이라는 위험은 분야를
[청년칼럼=한성규]코로나 19사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들과 개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조심한다. 길거리에서 담배연기 뿌리고, 담배꽁초 무단 발사하는 아저씨들은 포기하자. 바이러스가 아니라 온 나라에 뱀을 풀어놓는다고 해도 자기마음대로 할 테니까.나는 외국에 갔다 와서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무사히 끝내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친구들은 물론 친척들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보자고 했다. 오해하지 말라고 하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청년칼럼=서은송]문예창작학과에서 학부생이던 시절, 학과 모임에서 늘 빼먹지 않고 나오던 주제가 있었다.“하상욱은 시인인가, 아닌가.”소설과 동화, 비평과 희곡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작성하는 친구들 모임에서 시를 전공하는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치 ‘답을 내놓아라’ 이런 분위기였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시인(詩人)의 정의는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이며, 이에 하상욱의 글은 전문적인 시라고 해야 할지는 정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창조해내어 사람들에게 시와
[청년칼럼=시언]나는 ‘그’ 학과 출신이다. 학과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가업 물려받기’가 유망 직종이라며 자학글을 써댄다는 바로 그 학과. ‘군자가 무엇인지 논하라’는 시험 문제에 “소인이 어찌 군자의 도를 논하리오” 한 문장 써갈겨 내면 교수님이 무릎을 치며 A+를 수여한다던 전설의 꿀(?)전공. 미국 유명 코미디언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라고 디스했다던 바로 그곳. 철.학.과. (방금의 ‘썰’들을 실제 철학과 출신들에게 실습하는 우를 범하진 않길 권장한다. 자학 개그는 본인이 할 때만 개
[청년칼럼=하정훈]전례 없는 세상이 됐다. 진짜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 됐다. 그렇다. 우린 후대에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수록될 만한 상황 속에 놓인 것이다. 의도치 않게 주인공이 될법한 상황. 근데 이건 바라지 않았다. 정말.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시대,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내 일도 정통으로 날아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진로강의를 하는 나는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특수근로계층, 즉 취약 계층이 되었다. 실업급여도 없다. 국가에서 프리랜서 재난지원금이라고 준다고 하는데, 쥐꼬리
[청년칼럼=신영준]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잘 발달된 문화를 꼽자면 언제 어디서나 자장면을 비비고 치킨을 뜯을 수 있는 민족, 바로 배달문화라고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해도 전화주문이 당연했고 현장에서 현금결제가 당연한 일이었다. 듣기로는 15년도쯤 어머니는 떡볶이 집을 하셨는데 배민은 수수료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냥 리스트에 올려주겠다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플 내 바로결제의 편리함은 손님은 물론 배달업계의 패러다임을 아예 바꿔놓았다. 그렇게 착한기업이라는 칭호를 받고 거대하
[청년칼럼=이루나]봄이다. 집 앞 중랑천 뚝방길에 벚꽃이 흐드러졌다. 하늘거리는 벚꽃 잎들의 자태가 아찔하고, 벚꽃 내음도 바람을 타고 너풀너풀 넘어온다. 23층 베란다에서도 단내가 나는 듯하다. 하지만 벚꽃 구경 가는 것이 주저된다. 아버지를 차마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서러움처럼, 봄을 오롯이 봄이라고 느낄 수가 없다. 코로나가 앗아간 우리네 봄의 모습이다.6살 딸은 2개월 넘게 집에 갇혀 있다. 한두 개씩 사 모은 보드게임도 질려서 책장 구석에 쌓여 있다. 밖에 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대지만 먼저 나가자고 조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