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애잔한 모든 것들이 떠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봄은 왔다. 세 개의 계절을 거치고서 어김없이 나는 재채기를 했다.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섞이기 시작하면 알레르기는 유난스러워졌다.지난 3월 학생으로 다녔던 학교에서 조교를 시작했다. 사무실엔 먼지가 많았고, 일은 쉽지 않았다. 일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무언가 쌓여있었던 것들을 덜어내느라 걸리는 시간들이 길어서였다. 개강을 하자마자 꼬인 시간표를 푸느라 애를 먹었다. 학생 몇 명이 수업시간 변경 동의서에 서명하기 싫다는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오후 세 시 즈음에 가상화폐 거래소를 들어가봤다. 한순간 2800만원까지 호가하던 비트코인은 680만원이 되어있었다. 며칠 전에는 비트코인에 자신의 전 재산을 집어넣었다가 자살한 사람의 뉴스가 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 혀를 차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가상화폐에 돈을 넣던 동창 하나는 두 달 동안 딱 본전만 지킨 채 손을 뗐다. 블록체인에 대해 모르고 가상화폐의 종류에 따른 목적성이 어떻게 나눠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일단 집어넣었다가 더 데이기 전에 그만둔 모양이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작년 9월, 마지막 학기를 시작할 때 유종의 미를 걷겠다고 전공만 여섯 개를 신청했다. 원래는 세 개 수업만 들으면 되는 일이었고, 이미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에 열공을 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반응을 즐기며 공부한 것 같다. 최종 성적은 4.33이 나왔다. 8학기 중 최고성적이었다.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에서 성적을 확인할 때 드는 느낌은 두 가지였다. 최선을 다한 게 어느 정도 결과로 나온 것 같아서 드는 만족스러움과, 스스로에게 겸연쩍은 공허함이었다. 이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엄마와 아빠는 공인중개사를 했다. 엄마는 중랑구에서 원룸이나 신혼집 같은 방들을, 아빠는 율성리에서 토지나 창고 같은 대형 매물을 매매했다. 둘 모두 찬란한 황금빛 인생은 아니었다. 학원을 운영할 때 만나서, 과일 장사를 하고, 슈퍼를 하고, 다시 학원을 하다가, 다시 슈퍼, 그리고 공인중개사로 이어졌다.차라리 파란만장에 가깝다. 사람 인생 책으로 쓴다면 조정래 대하소설을 씹어먹는다더니, 어째 그들이 한 일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납득할 때가 있다.성격도 안맞고 입맛도 안맞고 취향도 안맞는데 어떻게 눈이 맞아서 결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밤새 끙끙 앓고 여섯 번이나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욕심을 부리면서 짜놓은 마지막 학기 시간표 덕분에 마감에 보기 좋게 시달리고 있는데, 컨디션까지 안좋으니 문득 서러움이 찾아왔다.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공모전은 제출하지 못할 느낌이다. 쌍화탕을 네 병째 비워낸 뒤에 내 앞날을 생각해봤다. ‘밝을 전망입니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미래에 등장할 수 있냐 묻는다면, 멋쩍게 뒷덜미를 긁으면서 ‘글쎄요’라고 대답해야 할 느낌이 들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우리는 흔히 인사치레로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한다. SNS에 새로 올라온 사진을 보고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예뻐졌다, 멋있어졌다”며 조만간 만나자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말들을 모두 조롱하는 듯 누군가가 트위터에다 이런 말을 올렸다. ‘그렇게 (언니/오빠)는 (예뻤/멋졌)고 그 둘은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얼마 전 추석에 나는 아는 선배에게 안부인사를 보냈고, ‘건강하고 잘 살고 있다가 한 번 볼 수 있기를!’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답장을 받고 나서 든 생각은 ‘담백하다’였다. 삼사년 전부터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가끔씩 나 자신이 지독히도 마음에 안들 때가 있다. 그건 내가 가진 신체적 약점에서 비롯되기도, 내 성격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인기남이 되었습니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특수성에 대해서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려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몰려올 수 있는 지독한 고독감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는 한창 축제가 진행 중인 학교 운동장을 뒤로 하고 기숙사 계단에 쭈그려 앉아 울어봤다. 언젠간 사람을 잃어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억지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나는 당신과 대화한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누군가 좋아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너무나도 많은 마음의 불안을 낳기 때문이다.내가 말하는 단어가 적절한 단어일까.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단어 선택이나, 뉘앙스가 당신에게 괜찮게 들렸을까. 당신이 기분나빠하면 어쩌지. 당신이 기뻐한다면 어느 부분에서 그랬을까.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을 일일이 알아보려는 나는 나쁜 걸까? 나의 메시지가 담긴 수많은 종이비행기를 당신에게 날려보내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웹툰 작가 광진의 작품 ‘이태원 클라스’에서 주인공 박새로이는 말한다.“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얼마 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숲)’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조국에서 매국노가 되었단 소리를 들었다. 난징대학살을 자행한 일본군의 실태를 일본 작가가 써놓았기 때문이었다.하루키는 논란에 대해서 긴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일축했다.“내가 대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나의 소신뿐이다.”우리나라에는 꽤나 많은 문학상들이 존재한다. 작은 월간지에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시 창작 동아리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1년만의 방문이었다. 두 편의 자작시를 들고 찾아갔고,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대차게 까였다. '시라기 보다는 다른 장르의 글을 보는 느낌이다', '서로의 연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제목이 이해되지 않는다’, ‘호흡이 너무 길다’, ‘랩 가사같다’는 지적들이 연달아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쉬었고, 두 편의 시는 모두 내가 평소에 쓰던 작법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지적을 다 듣고 나서 내 합평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것은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3~4년 전 알바를 하던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뷔페에서 생일파티를 가졌다. 친구들과 신나게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셀프바 가장 뒤쪽에 있던 냉동고로 가 딸기맛을 푸고 있는데, 능숙한 동작에 나를 직원으로 알았는지 한 아저씨가 자기 것도 퍼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네 알겠습니다~’라는 서비스 마인드로 대답한 뒤 아저씨의 손에 아이스크림 그릇을 쥐어주었다. 그것도 퍼달라는 초코맛으로.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을 지었었다.나중에 친구들에게 얘기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희곡 창작 시간이었다. 전임 교수가 사정이 생겨 1년간 쉬는 덕분에 다른 강사가 대체 강의를 들어왔다. 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유난히 성량이 컸다. 학생들은 그에게서 희곡 대신 뮤지컬을 배웠다.뮤지컬은 생소한 작업이었다. 극본을 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우린 곡에 맞춰서 작사를 하고 앞에서 노래까지 불렀다. 동기들과 한 팀이 된 나는 꽤나 재미있게 한 학기를 마쳤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내게 한 질문을 기억하고 있다. 칠판에다가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다른 것과
나는 신명관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굳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냈다.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정의하기가 뭐하니, 어떤 인식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이름을 기억하고 날 떠올리던지, 날 기억한 뒤에 이름을 끄집어내던지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소하게 느낄 정도로 무궁무진했다.나는 90년도 초에 태어났다. 다른 애들보다 조금 늦게 유치원에 들어갔고 그 외에는 남들과 비슷했다. 친구들을 사귀고 정규 교육을 받고 학원을 다녔다. 남고에 진학해 수능을 봤고 비교적 여자
구리역 앞 빕스가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들락거렸으니 적어도 십 년은 더 된 매장이었다. 어느 날 거대한 천막이 철근과 더불어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공사장 인부는 흙먼지 날리지 않게 계속해서 물을 뿌려댔다. 포크레인은 부서진 콘크리트들을 부지런히 쓸어담았다. 그게 4월과 5월 사이였다. 지금은 빨강색과 하얀색이 섞인 테이프가 건물 영역을 빙 둘러 표시하고 사람들이 오가던 매장은 그저 평평한 흙으로 변했다.솔직히 말해서 매장 음식은 형편없었다. 만원만 받는다고 해도 별로
페이스북에서 유행한 콘텐츠가 있다. ‘내가 과제를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원형 그래프다. 실제로 리포트 쓰는 시간은 5% 정도고, 나머지는 ‘내일까지 패닉상태 빠지기’, ‘조사하기’, ‘주제 정하기’, ‘레포트에 대해 친구랑 떠들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표의 반 정도는 ‘질질끌기’가 차지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할 일을 미뤄두고 질질 끈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밥 먹고 해야지, 이것만 보고 나서 해야지, 조금만 쉬고 해야지, 청소하고 해야지, 잠깐만 자고 해야지…. 깜빡 졸다 눈을 뜨니 과제는 그대로이고 시계
대학교 초반, 남부터미널 근처 뷔페에서 주방보조 단기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누구건지 모르는 구두를 신고 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여덟 개의 거대한 바켓에 얼음을 가득 담았었다. 네 개는 큰 얼음을, 나머지 네 개는 작은 얼음을 담고 나면 손끝에 감각이 없어진다. 60kg쯤 나갈 법한 얼음들은 음식을 올려놓는 진열대 아래에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깔렸다. 그렇게 손에 동상이 걸릴 듯싶다가 오픈 준비가 끝나면 불판 앞으로 갔다. 수백 점의 채끝 등심을 구워서 내는 일. 열이 많은 체질이어서 12시간 알바를 끝낼 때쯤엔 몸이 불판 기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렸다던 마포대교를 간 적이 있다. 소설쓰기 전 소재를 찾기 위한 사전 작업에서였다. 날은 생각보다 추웠다. 주변 건물이 사라지고 다리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굉장히 차가워 보이는 한강이 아래에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붉은색 보트를 타고 다니는 소방관도 간간히 보였다. 간헐적으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돌아다녔다. 누군가 난간을 붙잡으면 확성기로 물러나라고 경고했다.나는 짭조름한 삼각김밥 하나를 먹고 난 뒤 세 시간여를 다리 위에서 서성였다. 비욘세의 ‘I was here’를 내내 들
우리는 이따금 어떤 각오를 하게 된다. 연말연초엔 더 그렇다. 연말에는 지난 1년을 반성하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다. 신년이 되자마자 헬스장과 스포츠센터, 어학원이나 수험 대비 인터넷강의 매출이 뛰어오른다. 금연부터 시작해서 식스팩, 프리토킹, HSK나 JPT 등등. 펼쳐지는 신규 사업들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년회들. 그래서 1월 1일은 사람들의 의지가 가장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다만 그 기운이 오래가지를 못한다. 귀찮음 따위 날려버리고 우주 정복이라도 할 정도로 의욕 충만하던 사람들은 일주일만에 방전된다. 어
‘힐링’은 여기저기서 과포화되어 이제는 너무나 흔하고 대중적인 단어가 됐다.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직장인에게 힐링이나 격려의 말들은 잠시 의지를 북돋을 뿐이다. 변화를 모색하고 싶지만 쳇바퀴 같은 일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밤은 그런 당신을 서럽게 만든다.한밤 중 SNS는 그래서 위험하다. 잠들기 전까지 밤과 새벽은 우울한 것만 모아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야근은 계속되지, 주위도 시커멓지,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나 싶다. 문득 바라본 밤하늘은 별조차 흐릿하다. 귀농하고 싶을 정도로 뿌연 매연이 낭만마저 가렸다. 새벽을 포함
작년이었다. 영화 ‘인턴’을 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아빠의 생일이었고, 그 다음날이 학과에서 주최하는 3박 4일의 학술 답사였으니, 10월 4일일 것이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간 우리는 가족 세트메뉴를 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살 스테이크와 같이 필라프가 나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가족 식사였기에 대화 주제는 모두 공통의 관심사 위주로 돌아갔다. 몇 개의 화두 끝에 영화 인턴 이야기가 나왔다. 인턴은 경험 많은 70세 인턴이 열정 넘치는 30세 CEO를 만나 겪는 회사 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