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실연이 씁니다. 마음의 쓴 맛을 참기 힘들어 입 안으로 가져 오려고 술을 마시나 봅니다. 저는 술을 못 마셔서 실연을 씁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뱉어냅니다.실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해운대발 대구행 열차 안에서 그녀에게 고백하고 그녀가 수락한 다음, 겨우 한 시간 반 남짓을 연인으로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그 후에 더 많은 시간을 통화하고 우리는 다음 휴일의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그녀 때문에 시간이 더디게 흘렀는데 그녀는 4일 만에 우리 관계를 물렸습니다. 전날 밤 한 시간 반의
종종 장례식에 가는 나이서른이 되는 동안, 몇 번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다녀왔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계산해보니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다녀온 횟수가 더 많았다. 결혼식의 기억보다, 장례식의 기억이 더 선명했다. 문득, 쓸쓸한 길을 걸어온 기분이 들었다.장례식은 결혼식보다 훨씬 번거롭고 조심스럽고 마음의 피로도가 높은 곳이었다. 성인이 된 후, 처음 혼자 장례식장에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땐 급하게 장례식 예절을 찾아봤다. 결혼식 예절 정도야 뭐 실수 좀 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장례식은 실수가 곧 무례함이 되는 곳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우리 나라는 고립불안(다른 이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불안의 형태) 지수가 높다. 남들 다 하면 해야 한다. 유행이 잘 돌고 잘 사라진다. 몰개성과 무신념이야 말로 현대 한국의 종교다. 때와 장소와 주변 사람들에 맞춰 유연하게 스스로를 잘 바꾸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SNS 친구가 몇 명인지, 얼마나 발이 넓은지는 한 개인에 대한 큰 칭찬거리다. 대상에 따라 보호색을 바꿀 줄 아는 현대적 인간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이다.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때에 따라 자기 몸 색깔을 바꾸려면 개인은 우선 개성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김춘수는 시 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의 첫 만남에선 늘 서로의 이름을 물어본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된다 해서 모든 이름이 불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름은 그저 하나의 몸짓으로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름은 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몸짓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 이름 또한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부르는 이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이제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난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처음 분홍이라는 말을 꺼낼 때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난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란색을 좋아해야만 했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지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해 보이고 싶었지 연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전히 나의 파란가면을 위해 분홍마음을 숨겼던 것이다. 그 결과 내 방과 몸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파란 침대와 커튼 그리고 파란 모자와 바지를 매일 볼 수 있는.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니던 중,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빠져 민박 스테프로 몇 달을 머물렀다. 민박 일에 익숙해지던 중 젊은 부부가 체크인 했다. 여권을 확인하니 삼십 대 중반이다. 2인실을 드렸다. 아직 신혼인 것 같다. 다음 날 조식에서 만난 둘은 아침부터 알콩달콩 했다.싱거운 하루를 보내고 혼자 저녁을 먹을 때쯤, 부부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때마침 부부도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 왔다. 우리 민박에 식탁은 한 개뿐이다. 나는 내 저녁거리를 차리고 부부는 장 봐온 물건들을 꺼내어 저녁을 함께했다. 나는 내가
[오피니언타임스=신영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 불과 5년 전 결혼한 누나만 해도 학군을 고려해 아파트를 얻었다. 하지만 최근 여태까지와는 다른 흐름이 포착된다. 자의든 타의든 1인가구가 증가하고 특히 젊은 층에서 집을 구하는 트렌드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편세권(편의점이 가까운 곳)’, ‘스세권(스타벅스가 가까운 곳)’, ‘맥세권(맥도날드가 배달 가능한 곳)’을 칭한다. 이런 신조어들은 갑자기 튀어 나왔을까? 현재에서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며 이러한 흐름을 이해해보자.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내가 살던 동네에는 떠돌이 개 무리가 있었다. 아직 도로 정비가 되기 전이라 집들은 삐뚤빼뚤했고 골목 모퉁이마다 음식 쓰레기가 나뒹굴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전봇대에 색색의 현수막이 붙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합장을 뽑는 선거를 떠들썩 하게 치르더니 집들이 하나 둘 비어갔다. 사람은 떠났지만 집과 짐과 개는 남았다. 그 개들이 모여 무리가 되었고 어느새 스무 마리쯤 되는 큰 집단이 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개들의 무리가 궁금했다. 하얀 털복숭이도 있고, 집안에서 곱게 키우던 푸들도 있고, 꼬리만 분홍색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남자는 여자와 여자 사이에 선을 긋는다. 데리고 살 여자와 데리고 놀 여자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살 여자는 정숙하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 살만 맞댈 여자는 섹시하고 천박해도 좋다. 그럴수록 더 좋다. 어차피 일회용이니까.이런 식으로 새끼 낳고 살 여자와 새끼를 낳아선 안 될 성애의 대상으로서의 여자를 구분한다. 물리적 힘이 중요한 원시 시대 때부터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였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며 쉼 없이 새끼를 낳고 길러주는 것으로 가부장제 사회의 갈비
“우리가 취업을 했으면 안 이랬겠지?”“... 그랬겠지?”이 말을 끝으로 동생과 나 사이엔 침묵이 감돌았다. 봉천역 3번 출구를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방은 없다는 말을 들은 게 오늘만 5번째인지 6번째인지 헷갈렸다. 정말 취업에만 성공했으면 달랐을까. 그동안 난 뭘 한걸까.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듯 현기증이 일었다. 신림역과 낙성대역에서 돌아야 할 공인중개 사무소가 총 7곳이었고,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밭에 나가계실 시간이었다. 우리는 힘을 내야 했다.봉천, 신촌, 이대, 상도.. 한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축구선수가 꿈인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매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운동장에 남아 공을 찼다. 소년이 뛰어다니면서 일으키던 흙먼지는 해가 저물 때까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TV 속 국가대표 선수들을 동경했다. 훗날 월드컵에 출전하여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활약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소년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연습을 반복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성장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한 소년은 키가 자랐고, 축구 실
‘귀하는 2차 필기 전형에서 안타깝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문구. 뭐가 안타까운 걸까. 괜히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났다.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보던 시사상식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3번 째 탈락.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 놈이다. 얘는 왠지 붙었을 거 같은데, 별로 받고 싶지 않다. 둘도 없는 친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미운지. 그냥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렸다.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지만 3분전에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느그 아빠가 독사(毒蛇)한테 물리가꼬 얼마나 고생핸는 줄 아나? 술 묵고 계곡에서 그 뱀을 겁도 없이 맥주병에 넣을 끼라고. 팔딱팔딱 뛰면서 느그 아비 살릴라꼬 병원에 안 갔나. 가서 주사를 맞아도 피만 나오고.”“그라다가 밀양에 독만 뽑다 돌아간 사람 집이 있다대.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아들한테 다시는 누구 독 뽑는 거는 하지마라, 아버지로 끝이다. 했다카더라. 아버지 유언이라 못 뽑아준다고 준다고, 거절을 하는데... 우야겐노? 내가 이 사람 없으면 장애인 자슥 데리고 우째 사냐고 하루, 이틀 사정사정 하니
[오피니언타임스=박세욱] 사시 눈을 가진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나와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를 간절히 얘기하는 듯하기도 했다.시계는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5시가 조금 넘어 직원들과 사장에게 수고하셨다는 영혼 없는 인사를 하고 작업장을 나왔다. 작업 확인서에 확인서명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12만 원. 오늘 7시부터 지금까지의 내 노동의 대가가 까만 글과 숫자 몇 개로 표시되어있었다. 숫자에는 우리 인력 사무실 소장의 노동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10%.“아이. 저 새끼들 개념 없네. 아니. 4시 반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 어
[오피니언타임스=김현경] 삐삐가 있던 시절,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크리스마스 이브. 실컷 놀다 밤이 되어서야 군대 간 동기가 남긴 음성메세지를 확인했다.“여기에도 눈이 내려. 아…참 눈물이 난다.”군바리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펑펑 내리는 눈이 주는 설레임, 썸남과 별 일없이 보낸 아쉬움 그리고 기대감! 왠지 없는 사랑도 일어날 것 같은 오늘, 강원도 어느 군에 있는 너나 서울에 있는 나나 비슷하구나. 우리를 같은 감성으로 묶어주는 함박눈에 왈칵 눈물이 나오는 찰나, 친구의 한 마디,“저 눈, 언제 다 치우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팀점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팀원들은 팀장님이 좋아하는 갈비탕 집에 앉아 있었다. 당시는 대통령직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과잉의전 보도가 연일 이어지던 시기였다. 평소 정치 현안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팀장님은 황 직무대행의 의전을 맹렬히 비판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이며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맹자님 말씀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팀장님의 목소리가 끊겼다. 가위로 고기를 발라내던 난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고 곧장 내 자리로 깍두기 그릇이 날아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취향은 특가에 비례했다. 라면의 구매 기준은 행사 유무다. 대형 마트에는 항상 ‘+1’ 상품이 있었다. 우유도 할인을 하거나 요구르트 하나라도 더 주는 것을 택했다. 김, 휴지, 치약, 세탁 세재도 다르지 않았다. 좋은 품질과 예쁜 광고는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빵도 깜짝 반값이 되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내 주머니에 자유민주주의는 없었다.민주 시민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기껏해야 투표권 정도인데 수 년 마다 한 번씩 행사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매년 연말이면 각종 시상식 릴레이가 시작된다. 제38회 청룡영화상도 그런 시상식 중 하나였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나문희보다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에게 더욱 많은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미 주연만큼이나 강력한 흥행보증수표가 된 명품 조연들도 있지만, 유독 최근 1, 2년 사이 눈에 띄는 조연에 대한 관심과 언급이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허성태라든가, 최귀화, 엄태구, 그리고 이번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의 주인공 진선규까지 꽤 많은 ‘연기파 조연’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