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0년대생 남자60년 넘게 죽자 살자 일만 했다. 6·25전쟁 중에 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침에도 물을, 점심도 물을 먹었다. 마을을 가끔 지나가던 미군 트럭에서 튀어나오는 '쪼꼴렛'도 하나 못 먹어 보았다. 하루 종일 소 풀을 먹이고 저녁은 희멀건 풀죽을 먹고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힘이 좀 생기자 인근 지역에 고속도로 공사장으로 찾아갔다.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자기 몸무게만 한 짐을 날랐다. 나이도 속이고 부탁하고 부탁해서 들어간 일자리 덕분에 그제서야
[청년칼럼=한성규] 7월 16일부터 일명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한민국 직장에 만연한 막말과 따돌림 등 괴롭힘이 드디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다시 말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하기 위해서는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을
[청년칼럼=한성규] 일본이 하는 짓이 심상치 않다. 이제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 경제전쟁을 뒤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다. SNS에서는 일본이 파견한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현 총리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성으로 쓰는 한자도 틀리다. 아베 노부유키는 1944년 10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했다. 한일 관계를 영원히 꼬이게 만든 을 공포해 조선의 미혼여성들을 군수공장으로, 종군 위안부로 끌고 갔던 인물이
[청년칼럼=한성규] 일요일 아침 완행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고 있었다. 1시간이 넘는 여정이기에 목 베개, 읽을 책 한 권까지 준비해서 느긋하게 자리에 몸을 뉘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단단한 체격에 검정색 옷을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거칠어 보였다.할머니 두 분이 앞자리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운전 중에도 신경질적으로 뒤를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는 불안해졌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시골길에서 휙 하고 코너를 도는 등 거칠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청년칼럼=한성규] 대한민국 대기업 10곳 중 7곳이 이제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워라벨 제도를 확대했단다. 이와 함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근무시간 관리제도까지 도입했단다.내가 근무하던 뉴질랜드 정부는 워라벨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고, 근무시간 관리 제도나 유연근무제도도 내가 입부하기 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퇴직이 얼마 안남은 60, 70대 선배들에 따르면 자기들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걸러 하루 일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단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워라벨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었다.
청년대표 울고 4월 1일 전국청년네트워크 대표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청년의 삶 전반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 정책은 행정실무에 빠져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쏟았단다.오늘은 정말 우울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고 한다.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들으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요즘 뜨거운 이슈인 청년구직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다. 청년구직지원금을 집행할 때 중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행정실무나 규정이 아니라 구직자 개개인의 사정이 되
[청년칼럼=한성규] 참 이상했다. 똑같은 일인데도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나는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을 찰 때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같이하면 날카로운 패스와 정교한 슛이 나오는 반면에,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있는 날은 여지없이 똥볼이 나왔다.직장에서는 꼭 한 명씩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꼴 보기 싫은 인간이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공부를 하느라, 돈을 버느라 참았다. 내가
[청년칼럼=한성규] 내가 한국에서 택시를 안 타는 건 세 가지 사건을 겪고 나서 부터다. 시간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미국에서 온 친구 두 명과 같이 택시를 탔다. 우리가 택시를 탄 곳은 역삼동이었고, 최종 목적지는 종로였다.“종로 가주세요” 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영어로 대화를 했다. 친구들이 한국어를 못하니까. 택시 아저씨께서 한 번 더 목적지를 확인했다.“어디?” 반말이어서 나도,“종로”라고 대답해주었다.아마 종로라는 내 발음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미국 친구들도 알아듣기 쉽게 발음을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내가 돈맛을 알기 시작한 것은 5~6세 때로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항상 설날은 추석보다 수입이 짭짤했다. 그런 내가 올해로 38세가 되었다. 항상 외국 나이로 생각해서 30대 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40에 가까워지다니.2019년도 어김없이 설날은 찾아왔다. 이번 설날에는 누가 뜬금없이 나에게 세뱃돈을 내밀었다. 40줄에 든 나에게. 나도 한동안은 어리둥절했다. 이거 뭐지? 옆에 있는 조카한테 대신 전해주라는 건가? 우리 둘은 한동안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말이 없었다. 나에게 주는 돈이 확실했다. 이거야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작년 추석에 하버드 나오신 S대 교수님의 라는 칼럼이 유행했다. 이 분의 글쓰기 강의에는 몇 백 명이나 몰려오고 무려 이 칼럼을 필사까지 하는 분까지 있다고 한다. 주류와는 전혀 동떨어진 삼류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솔직히 0.0001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무려 세 명의 한국인 친구로부터 읽어보라고 카톡이 오는 바람에 읽어야 했다.첫 번째 추천에는 “고마워”로 대충 대답했지만 두 번째 추천에는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도 “그래.”로, 밥 먹는데 도착한 세 번째 추천에는 정말 제대로 욱해서,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작년에 퇴직을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하고 장기휴가를 받았다. 크게 불만이 없는 직장이었다. 나는 한국인이 이민가고 싶어 하는 나라 5위권 안에 드는 뉴질랜드 주민이었고, 웬만해선 잘리지 않는 뉴질랜드 정부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갑 중의 갑인 국세청 소속이었다. 일도 나쁘지 않았다. 어카운트메니저라고 회계법인 대표들 찾아가서 차나 마시며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거나 회사 대표들 앉혀놓고 세금교육 시키는 일이었다.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처음에는 어, 얘는 왜 이렇게 생겼지? 중국인 아냐? 하는 반응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807번 버스라고 있다. 울산의 한쪽 끝 석남사 산자락을 내려와 외국인들로 가득 찬 산업단지를 지나간다. 다시 전통 5일장이 펼쳐지는 언양을 지나 울산 태화강 기차역까지 대략 2시간여 걸리는 완행버스이다. 장날이라도 될라치면 이 버스는 언제나 만석이 되고 자리자리, 사이사이마다 온갖 짐들이 쌓인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다양해서 어린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출퇴근하는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 있다. 인종도 다양해서 한국 사람, 중국사람, 백인, 인도인, 동남아시아 사람들까지 온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국가 부도가 날 것 같단다. 그때처럼, 심상치 않다고? 대기자 논설위원 등등 글 좀 쓰신다는 분들이 줄줄이 영화 을 보고 글을 쓰기에 나도 보고 왔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는 나는 주중에 조조로 봤다. 히익? 언제 이렇게 올랐나? 내가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4000원이었는데, 이제 7000원이라니.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다. 매출을 극대화하려면 매년 의례적으로 가격을 올릴 게 아니라 자리를 채울 가격으로 현실화해야 않나? 이제 8000원하는 된장찌개도 그렇고, 최저임금과 오르는 월세만 탓할게 아니라
소득주도 성장을 한국 혼자 실험한다는 주장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두 사람이 경질됐다. 소득주도 성장이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난리다. 사실 소득주도성장은 나쁜 것이 아니고 언론에서 말하듯이 우리나라 혼자 소득주도 성장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려왔고, 지금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시도하는 중이다. 최저임금을 안 올리고 버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무턱대고 따라 하는 나라,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이나 교수님들이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미국이라는 나라뿐이다.미국은 주마다 최저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21살, 아직 활짝 피어나기도 전에 한 생명이 사라졌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누군가의 아들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관계 맺은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최근 PC방 살인사건으로 모델이라는 밝은 꿈을 꾸며 어려운 가정형편을 헤쳐나가던 한 청년이 숨을 거두었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손, 머리 등을 30차례나 칼로 찔렀다고 한다. 아무리 심신이 미약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과연 정상인가? 타인으로서 한국 사람외국에서 오랫동안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던 아이나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었다. 생각난다. 유치원 때였을 것이다. 운동회가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였는데, 당시 2년이나 빨리 유치원에 들어갔던 내가 다른 애들과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출발 후 3초도 지나지 않아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4명중에 4등이었다. 나는 부정출발을 문제 삼아 경기를 취소시켰다. 그렇게 출발만 세 번, 나는 내가 맨 뒤로 처질 때마다 바닥에 주저앉아 경기를 끊어버렸다. 나도 지치고 나머지 3명의 형아, 누나들도 지치고, 심판을 보던 선생님도 지치고 결국 내가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9월26일까지 5일이나 쉰단다. 뭐라고? 원래 추석이 이렇게 길었나? 대체휴일이라고?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생겨났지? 내가 일할 땐 없었는데.어차피 토토토토토토일인 백수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명절이다. 본격적인 친척들 개소리의 시즌이 돌아왔다. 개소리라는 것은 할 말이 없을 때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말이라고 정의한단다.백수에게 휴일이라는 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지만 명절은 아주 특별하다. 바로 친척들의 참견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던지는 소리가 백수들에게는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어제였다. 백수가 되기 전까지는 은행 통장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사실 은행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경비복을 입고 곤봉까지 찬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더니 '띠껍다'는 듯이 물었다.“뭐 하러 왔슈?”뭐 하러 오긴 뭐 하러 와, 은행업무 보러 왔지, 라고 생각하며 “통장 하나 만들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그 경비 아주머니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슬리퍼까지 장착한 나는 누가 봐도 할 일없이 돌아다니는 백수였다.“요새 통장 만들기 까다로운데.”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2019년 시급이 8350원으로 확정됐단다. 최저임금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죽겠다, 죽겠다 난리고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느니, 그 잘산다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저임금이 4위로 높다느니 생난리다. 2019년이 되면 GNI대비 최저임금이 호주를 당당히 제치고 3위가 된단다. 마침 호주는 내가 살던 뉴질랜드 옆 나라라 뻔질나게 간 곳이었다. 우리나라가 호주보다 최저임금이 높아진다고? 믿을 수 없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공적인 글이라 참는다.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GNI대비라고? 이건희 같은 부자들과 한 달에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헬조선 교도들에게 나는 이단이다. 100군데 넘게 원서를 넣어도 취직이 안 되서 짜증나 죽겠는데, 시비 거냐고? 도발적인 제목이라는 걸 알고 있다. 헬조선 교도분들께는 어떤 말을 해도 안 먹힐 것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당신과 비슷하게 나도 30대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년, 그것도 백수다. 친척들은 나만 보면 언제 안정된 직장을 잡을래 쯧쯧쯧, 하고 혀를 차서 명절엔 전화 끄고 도망 다닌다. 부모님은? 이제 말도 안 꺼낸다. 이글을 읽는 당신보다 못하면 못했지 잘난 것 하나도 없는 내가 하는 조선찬양론이니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