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영웅’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렸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쓰러져가고 있었다. ‘구국의 영웅’이 절실했다. 신채호는 ‘영웅과 세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른바 ‘한일합방’을 앞둔 1908년에 쓴 글이다. “영웅은 세계를 창조한 신성(神聖)이다. 세계는 영웅이 활동하는 무대다. 만일 상제(上帝)가 세계를 창조한 이래 영웅이 하나도 없었다면, 망망한 산과 들은 새와 짐승이 울부짖는 폐허가 되었을 따름이다. 창창한 바다는 고기들이 출몰하는 장야굴(長夜窟
[논객칼럼=김부복] 맥도널드 햄버거는 ‘미국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사람 가운데 96%가 ‘맥도널드’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햄버거 소비량이 단 ‘1초’에 200개나 된다는 얘기도 있다. 맥도널드 매장에서 몇 시간 알바를 하면, ‘권총 한 자루’ 값을 쉽게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가 걸핏하면 일어나고 있다.그렇지만, 햄버거의 ‘원조’는 미국이 아니다. 몽골이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던 당시 몽골 사람들은 날고기를 소화가 잘 되도록 잘게 다져서 먹었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를 ‘타르타르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북한 지도자 김일성(金日成)이 1950년대 중반 중국의 모택동(毛澤東)과 만나 회담할 때였다. 회담 장소는 중국 요녕성(遼寧省)의 개현(開縣)이라는 곳이었다.김일성은 모택동에게 회담을 하고 있는 개현이 우리의 옛 고구려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지역 연고성을 은근하게 내비쳤다.그러자 모택동이 껄껄대며 말했다.“땅을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개현의 ‘개(開)’를 고구려 연개소문의 ‘개(蓋)’로 고쳐주면 어떻겠나.”이후부터 ‘개현(開縣)’은 ‘개현(蓋縣)’이 되었다고 했다. 김일성은 사망하기 전에 몇몇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용과 호랑이가 ‘용호상박(龍虎相搏)’을 한다고 하자.호랑이는 날랜 앞발질로 용의 머리를 공격할 것이다. 정공법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용이 꼬리를 올려서 역공하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그 꼬리를 피하려고 하면, 용은 머리를 돌려서 호랑이를 노린다. 그런 동작이 한 순간이다.호랑이가 용의 몸통을 덮치는 것도 간단치 않다. 용의 머리와 꼬리가 호랑이를 앞뒤에서 협공하는 것이다.용은 타고난 싸움꾼이다. 몸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용은 무섭다. ‘용린(龍鱗)’ 하나도 물어뜯기 어렵다.이 무서운 ‘용 용(龍)’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1617년,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의 남도(藍島)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떤 여자가 종이쪽지를 일행에게 던졌다. ‘언문’으로 쓴 편지였다.편지를 던진 여자는 전라도 순창에 있는 남산 뒤에 살던 권 목사(牧使)의 손녀였다. 왜란 때 15살에 끌려와서 비(婢) 노릇을 하고 있었다.이곳에서는 ‘호피(虎皮)’를 귀하게 여기니, 호피 한 장만 ‘몸값’으로 내면 풀려날 수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 여자의 몸값은 ‘호피 한 장’이었다.왜병들은 조선 사람을 짐승처럼 새끼로 목을 옭아매서 ‘몰고’ 갔다. 잘 걷지 못하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이라는 홍콩 항공회사가 있다.이 회사의 ‘캐세이’라는 이름은 ‘키타이(Kitai)’에서 나온 것이다. ‘키타이’란 ‘거란(契丹)’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란’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라는 거란족 영웅이 세운 나라다. 오늘날의 만주와 중국의 하북 지방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요(遼)나라다.거란이 세력을 떨치면서 ‘키타이’는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터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등에서 중국을 ‘키타이’라고 하더니, 영어로도 ‘캐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금나라 군사 17명이 달려가고 있었다. 이들을 송나라 군사들이 노렸다. 송나라 군사의 숫자는 자그마치 2000명이었다. 그 많은 군사가 고작 17명을 덮쳤으니 결과는 뻔했을 것 같은 싸움이었다.하지만 금나라 군사는 모두 말을 탄 기마병이었다. 그들은 즉시 전투대형으로 바꿨다.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가운데 7기, 왼쪽과 오른쪽에 5기씩 배치해서 송나라 군사와 당당하게 맞섰다.이 17명의 ‘미니부대’를 보병뿐인 송나라 군사들은 당할 수 없었다. 금나라의 기마병이 ‘활을 쏘며 적진을 교란하고, 종횡으로 말을 달렸기
[논객칼럼=김부복] “적(敵)은 키가 10자나 되었다. 눈은 길고 깊었다. 털은 붉고 수염이 헝클어져 마치 해초가 어깨에 늘어진 것 같았다. 아마도 거란이 정벌했던 황두실위(黃頭實韋)인 듯하다.…”조선 병사들과 마주친 러시아 병사의 생김새는 이랬다. 조선 정부는 청나라의 ‘요청’으로 이른바 ‘나선(羅禪) 정벌군’을 파병해야 했다. 나선은 러시아의 한자 표기다.신류(申瀏) 장군은 조총 사격수 265명을 이끌고 1658년 5월 2일 두만강을 건넜다. 그리고 6월 10일 러시아 군사와 마주쳤다. 그런데 청나라 장군 사이호달(
[논객칼럼=김부복] 만리장성을 만든 사람은 진나라 장군 몽염(蒙恬)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몽염을 ‘공사 책임자’로 임명했다.몽염은 나라의 북쪽 변방에서 10여 년 동안 장성을 건설했다. 기존 성벽을 연결하고 덧붙여서 잇는 공사였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사막과 산악지대에서 하는 공사였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식량과 자재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처음에는 군사 30만 명을 동원해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모자라는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죄수들을 투입했다. 그래도 역시 모자랐다.결국 ‘이민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착각했다. 그들은 주변의 종족을 ‘바르바로이(Barbaroi)’라며 우습게 여겼다.‘바르바로이’는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 사람에게 주변 종족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강아지처럼 ‘바르바르’ 중얼거리는 하찮은 종족이었다.이 ‘바르바로이’는 로마시대로 이어졌다.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게는 주변 종족이 ‘바르바로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 말은 ‘야만인, 미개인’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비유럽’은 야만종족이고, 미개종족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요동은 본래 우리 영토였는데, 수나라가 4번이나 군사를 출동하고도 점령하지 못했다. 내가 이제 동쪽으로 출정함은 우리를 위해서 수나라 자제들의 원수를 갚아주고, 고구려를 위해서 연개소문에게 시해된 임금의 수치를 씻어주고자 해서일 뿐이다.…”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고구려를 침략하면서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륜’을 배반한 것은 이세민 자신이었다.이세민은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둘째아들이라 왕위가 자신의 형인 이건성(李建成)에게 넘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세민은 이게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길에 떨어져 있는 두툼한 지갑이나 손가방을 슬그머니 챙긴다면? 당연히 처벌받을 수 있다. ‘점유이탈물횡령’이다.그렇더라도 굴러 들어온 떡을 놓치기 아까운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인지, 남들이 길에 흘린 손가방이나 신용카드를 슬쩍했다가 망신당하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고 있다.그래서 ‘도불습유(道不拾遺)’라고 했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좋은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이다.나라가 ‘도불습유’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이 경제적으로 넉넉할 필요가 있다. 쪼들린다면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그대로 둘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고려 문종 임금의 넷째 아들이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 송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니까 ‘귀족유학’이 아닌 ‘왕족유학’이었다.‘왕족유학’이었으니, 접시(?)를 닦는 ‘알바’ 따위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의천은 50여 명의 스승 밑에서 공부하며 책을 3000권이나 사서 모았다. 느긋한 유학이었다.의천은 귀국한 후 셋째형인 숙종 임금에게 송나라에서 사용하는 화폐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를테면 ‘돈 필요론’이었다.① 쌀이나 면포는 길이 멀 경우, 운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겨울이나 여름에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주요 인사에게 연하장을 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새해 대한민국의 꿈은 평화로운 에서 함께 잘사는 것으로….”문 대통령은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밝혔다.“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길,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여정에….”문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에서도 말했다.“…프랑스의 성원과 지지가 함께 한다면 는 평화를 이루고 동북아시아의 통합과 번영에….”이렇게 외국과 세계를 향해서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만주 벌판에 엄청나게 넓은 숲이 있었다. 그곳에는 온통 나무뿐이었다. 며칠 동안을 걸어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도끼 자국조차 없는 ‘처녀림’이었다.중국 사람들은 이 삼림을 ‘수해(樹海)’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 ‘나무바다’라는 뜻이다. 삼림이 너무 넓고 깊어서 마치 바다처럼 푸르기 때문에 ‘수해’였다.수해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우거진 숲이 햇빛마저 차단했기 때문이다. 수해 속을 걸으면 마치 바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나무바다’였다.중국 사람들은 수해라고 불렀지만, 원래는 다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조선시대 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그야말로 ‘칙사 대접’을 했다. 황제를 대신해서 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후국으로서 황제 모시듯 한 것이다.우선 중국사신이 국경지역인 의주에 도착하면 조선정부는 원접사(遠接使)를 보내서 맞았다. 곧바로 잔치까지 열었다. 잔치는 의주에서 뿐 아니라 안주, 평양, 황주, 개성 등 모두 5 군데에서 열어주었다. 이때마다 2품 이상의 선위사(宣慰使)를 보내 대접했다.사신이 한양 부근에 도착하면 임금이 직접 교외까지 마중 나가서 영접했다. 한양에 입경하면 이를 환영하는 하마연(下馬宴)을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우리나라에도 원숭이가 있었을까. ‘과거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우선, 중국의 옛 기록이다.“부여 사람들은 의복을 입을 때 흰색을 숭상한다.… 대인(大人)은 여우·살쾡이·원숭이·희거나 검은색의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으며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 그 나라 사람들은 가축을 잘 기른다. 이름난 말과 붉은 구슬, 담비와 원숭이 가죽 및 아름다운 구슬이 나는데 구슬의 크기는 대추만 하다.”알다시피, 부여는 고구려에 ‘흡수합병’된 나라다. 고구려와 합쳐졌다고 해서 부여의 원숭이가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조선 때 선비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조수의 왕래에도 법칙이 있어 아침에는 밀물이라고 하고, 저녁에는 썰물이라고 하니, 조수를 신(信)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기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월민, 제동, 요심의 경계로부터 우리 서남해에 이르기까지 조수가 모두 한가지요, 오직 동해만이 조수가 없는데 중국에서 이것을 알지 못하므로 아직까지 논의한 사람이 없었다.… 조수의 근원이 중국으로부터 나오니 우리 서해는 가까운 고로 조수가 미치고, 동해는 먼 고로 조수가 미치지 않는다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중국 사람들은 물건(thing)을 ‘뚱시’라고 부른다. 한자로 ‘동서(東西)’다. 글자 그대로 ‘물건’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의미다.세계의 중심이라며 이른바 중화사상을 자부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 왜 물건만큼은 ‘뚱시’라고 부르고 있을까.‘뚱시’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옛날 장안성에는 성 동쪽과 서쪽에 시장이 있었다. 주민들이 물건을 사려면 동쪽이나 서쪽 시장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뚱시’다.② 옛날 큰 상점은 동경인 낙양성과 서경인 장안성에 몰려 있었다. 물건을
[오피니언타임스=김부복] 고국천왕은 키가 9자나 되는 ‘구척장신’이었다. 큰솥을 거뜬히 들어올리는 ‘천하장사’이기도 했다. 생김새도 영웅 그대로였다. 생각은 깊고 날카로웠다. 힘과 지혜를 모두 갖춘 임금이었다.고국천왕이 나라 살림을 맡길 인재를 찾고 있었다. 신하들은 너도나도 안류(晏留)를 꼽았다. 안류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데다 백성의 신임까지 받고 있는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고 입을 모았다.그러나 안류는 사양했다. 스스로 적임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안류는 그러면서 을파소(乙巴素)를 추천했다.“나는 막중한 국정을 맡을 사람이 못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