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하늘은] 한 아이가 마스크를 건넨다. “아저씨, 요즘에는 공기가 매우 나쁘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렸고 나는 마스크를 부여잡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내 몸을 생각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밥이나 제때 챙겨먹으면 다행이다.마스크를 쓰고 다음 배달 장소로 이동한다. 강남의 한 아파트인데 가는 길이 막힌다. 어제는 길을 잘못 들어 2시간이나 허비했다. 초보 택배기사들이 종종 하는 실수라고 하는데 나는 앞으로도 방향을 자주 잃을 것 같다. 내
#장면1: 저는 왜 서류에서 계속 탈락할까요요즘 주1회 취업준비생들을 만나고 있다. 때로는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고 때로는 면접 코칭을 한다. 그러다보면 한 두 사람씩 자기 속내 얘기를 한다. “저는 왜 계속 서류에서 탈락할까요. 정말 열심히 써서 첨삭도 여러 번 받고 제출했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민간 기업들은 그들만의 기준으로 서류를 평가하니까. 과거 내가 일했던 회사의 인사팀 중에는 출신학교만 보고 면접대상자를 걸러내는 곳도 있었고(일명 필터링filtering), 어떤 곳은 외모로 평가하기도 했다(예: 얘 얼굴 보면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실업률이 몇 년 만에 최고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쓴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질겅 깨물고 마지막을 합의하는 종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벽을 보고 한참동안이나 앉아있었다. 아니,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100일간 일을 하지 않는 자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을 조목조목 정리해보았다. 조우울증의 신이 임하다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기대된다. 이곳에서 저 일을 하고 저곳에서 이 일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때가 생각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대한민국은 전체 고용 중 정부와 공공이 차지하는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을 내걸었고 이를 통해 행정서비스를 개선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려는 생각이다. 이를 두고 여야가 바라보는 시선은 팽팽하게 대립한다. 지금 이 글은 대립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한 쪽을 열렬히 응원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서 공무원의 존재의미 즉, ‘공직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남다른 카리스마. 장엄한 기운. 몽둥이를 들지 않아도 일동 정숙하게 만드는 영향력. 과거로부터 구전되는 전설의 별명. 학창시절 한 번쯤 만나게 되는 호랑이 선생님의 조건이다. 나 또한 호랑이 선생님을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고 호랑이 선생님은 나에게 골리앗 보다 높고 높은 산이었다. 별명은 ‘맘보’였는데 맘보의 사전적 정의인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과 선생님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람보’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므로. 람보보다 더 거대하다는 의미에서 4m길이의 어금니를 가진 ‘맘모스
마른 체형에 안경 낀 강재용씨(가명)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해보였다. 책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뜻 보면 고시생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앞뒤 설명 없이 공사 현장에서의 삶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흔쾌히 승낙하여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Question)에 답(Answer)을 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Q) 보통 몇 시에 어디로 출근하시나요.A) 일반적으로는 인부가 새벽 5시경 인력사무소에 대기하고 있으면 일을 배정받아 현장으로 가는 구조입니다. 상황에 따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제주도를 모르고 제주에 왔습니다.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집 주변 카페를 서성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유명 카페를 가게 되었고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브랜드 카페도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제주시에 있는 카페를 20여곳 방문해보니 머릿속에 카페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제주시에 있는 카페를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나는 브랜드 카페, 다른 하나는 비(非)브랜드 카페입니다. 제주까지 와서 서울에서도 갈 수 있는 스타벅0, 투0플레이스 등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제주 애월읍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엄마는 바다가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바다가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이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이리가든 저리가든 도착지는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바다로 직행할 수 있는 다리가 보였고 검은 색 바위들이 즐비했습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바다와 마주하기 위해 다시 걸었습니다. 파도가 보였습니다. 세차게 치지만 부드러운 손길. 넉넉하지만 애틋한 순간. 파도에 그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요즘 눈만 뜨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읽는다. 26세에 세상에 발을 디딘 후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최근 1년간 여느 때보다 많이 읽고 있다. 이것을 독서량으로 환산한다면 어마어마한 권수의 책을 읽은 셈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묻어난 인생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입력한 문장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현재 한 회사의 인사담당자로서 취준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한 팁(Tip)을 주고 싶어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지원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노동자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근로’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리하자면 노동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하며 근로시간 52시간제 시행을 공포했다. 300이상 사업장에는 당장 7월부터 적용됐으며 6개월간 유예기간을 허락한 상황이다. 사실상 이제는 주 40시간 기본 노동에 초과근로는 최대 12시간까지만 가능하다. 정부가 내놓은 근로의 미래와 결단에는 공감하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소재발굴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어 가며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때로는 관찰자로 때로는 참여자로 현상을 바라본다. 모 공공기관에서는 분야별 전문가를 초빙하여 소재발굴 워크숍을 개최하는데 강사들이 ‘공개 가능한 수준까지 모두 말씀드리겠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한다. 작가들의 눈에서는 빛이 나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청문회장을 방불케 한다. 피 튀기는 소재 쟁탈전이 끝나면 나 또한 곧장 집으로 가서 무언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하지만 이것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일회용 밥그릇에 소복이 담긴 쌀밥. 빼놓을 수 없는 편육 한 접시와 인절미. 그리고 지역과 장소에 따라 육개장이나 쇠고기뭇국이 등장한다. 장례식장 밥상은 단조롭지만 풍성하다. 배고프지 않아도 손이 가며 고인(故人)을 기리며 술도 한 잔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곳에는 고인의 손님도 있지만 유가족의 지인도 있다.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기에 평소 왕래가 있던 지인들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얼굴을 내민다. 정성이 담긴 봉투는 유가족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빈소는 24시간 운영되고 상주들은 번갈아가며 눈을 부친다. 애잔하지만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27년간 라면만 먹었다는 김기수라는 사람이 있다. 『라면의 황제』(김희선, 2014)에 등장한 소설 속 인물인데 그는 나에게 ‘라면을 먹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었고, 괜스레 마음이 뜨거워져 그만 책장을 덮었다. 1960년대 꿀꿀이죽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에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라면은, 이제 내 삶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우리들 삶의 정서에 파스텔처럼 스며든 힘찬 기운이다.어린 시절 아버지 사업 부도로 도망치듯 내려간 양산(梁山)에서 처음으로 라면과의 짜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 현대문학하루키의 직업은 소설가였고 매일 새벽에 행복함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며 즐겁지 않다면 왜 글을 쓰겠냐고 반문한다. 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인가. ‘직업’의 사전적 정의를 뒤적거려보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하여 하는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월급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서른 전에 깨달았다. 여기서 ‘생계’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포함한 개념이다. 누구에게 얼마, 어디에 얼마, 그래서 얼마, 저래서 얼마. 그 수많은 얼마들이 모이면 월급은 가상화폐보다도 더 가짜 같은 무엇이 되어버린다. 이는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이번 생에 내가 감당해야할 ‘게임 미션’이라고 생각했다.게임 속 나는 계속해서 레벌 업 하고 있었다. 내가 장착한 아이템은 물론 살고 있는 세계도 점점 밝아지는 듯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러다 어는 날, 내 삶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회사는 도박을 한다. 사업아이템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자기소개서와 몇 번의 면접을 통해 마치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채용한다. 반평생을 함께 산 부부도 서로를 잘 모른다고 하는데 어찌 몇 번의 만남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일단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수밖에.회사는 초기에 직원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조엘 피터슨(Joel Peterson)은 신뢰라는 개념 자체가 어차피 낙관주의에 뿌리를 둔 전폭적인 믿음이라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아빠는 요리를 곧잘 했다. 국물의 간을 맞추는 솜씨가 일품이었고, 간단한 밑반찬도 뚝딱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요리솜씨는 가세가 기울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면 먹는 시간이 늘어났던 우리집 밥상은 아빠표 라면이 자주 등장했다. 국물 간을 맞추는 솜씨로 라면의 물을 맞췄고 밑반찬을 만드는 장기로 라면의 맛에 특유의 깊이가 더해졌다. 나는 눈치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라면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떠들어댔고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하루는 아빠가 비빔면이라며 끓여준 라면이 꿈에 나올 정도로 맛있었고 그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아내는 오늘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집에 도착할 때를 맞추어 따뜻한 밥상을 준비하느라 아내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 맺혀있다. 그런 아내를 뒤로 한 채 소파에 퍼질러 앉아 긴 한숨을 내쉰다.- 오늘 반찬은 뭐야?- 된장찌개, 호박전, 소시지구이...- 맛있겠다. 얼른 같이 밥 먹자.- 응, 조금만 기다려요. 다 되어갑니다.응당 누리는 보상처럼 밥을 기다린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듯 10-20분이 지나도 준비되지 않으면 조금 다그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준비된 반찬으로 먼저 한 술 뜨라고 배려해준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33살, 나는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철새라고 놀리는 친구가 있는 반면 부럽다며 비법을 전수해달라는 녀석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난 평범하지 않았고, 세상은 날 사회부적응자라며 손가락질 할 것이었다. 그래도 즐겁다. 직장 따위야 언제든지 갈아치울 단단한 내공이 생겼으니 말이다. 한 번 그만두기가 어렵지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첫 번째는 웬 사이코 같은 직장 상사 때문에 사직서를 쓰기로 결심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버스가 끊기는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는 그 놈의 과장 때문에 내 생활이 피폐해져갔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어느 순간부터 물건의 값어치를 매기듯 사람을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저 사람은 월급 대비 어떤 성과를 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머릿속에서 VR(Virtual Reality) 시뮬레이션이 구현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직원을 바라볼 때면 괜스레 불만도 쌓인다. 그러다 급기야 미워하게 되고, 어느덧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린다. 교육공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HR(Human Resource)의 정의는 더 이상 인적자원이 아닌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라고 부르짖었지만,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