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덩이... 불길... 하늘과 땅이 들러붙고, 숨소리조차 녹아내려 내가 있는 건지 없어진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시간.거기... 여기... 분별은 이미 소용없고, 남은 자와 간 자의 거리 또한 헛웃음만큼도 인정되지 않던 시간.오현 스님의 다비식 사진은 그렇게 나를 진정한 몰아(沒我) 상태로 데려갔다. 沒我...자기를 없애버리거나 무시해버린 상태.마음도 생물이라 늘 살아 뒤척이며 피로를 주는 버거움이 컸었다. 그래서 뜨겁진 않아도 속정 깊은 이들 몇을 남기곤 떠나왔고 떠나보낸 긴 시간, 나를 느껴도 되지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후회’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머문다. 두 음절로 이루어진 이 단어엔 자음 ㅎ이 한 음절에 하나씩 두 개 들어있다. ㅎ은 한글 자음 열네 개 중 가장 마지막에 온다. 시작하고 겪고 지나가고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게 ㅎ이다.후회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괴롭다. 그래서 무섭다. 비슷한 류의 소식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 어떤 시기가 있다. 시차를 두고 띄엄띄엄 뜸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모았다가 동시에 전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듣게 되는 어떤 시기가 있다. 소식을 전하는 이들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오늘, 오래된 질문이 발사된 총알처럼 생생하게 뜨거운 울림으로 가슴에 물음표를 꽂는다. 이미 수천 번 꽂혔고 그러다가 제풀에 삭아 넘어지기도 저절로 빠지기도 했던 마음의 소리다.시인으로 등단 후 장르를 넘나들며 이십 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내가 얻은 것과 내게 남은 것, 그리고 나는 왜 글을 쓸까!꽃샘추위에 어깨와 등, 사이사이 시린 늑골을 두 팔로 감싸고 거실 창 앞에 쪼그려 앉아 거대한 레고 같은 앞 동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중이었다. 연 이틀 거대하게 불어대던 바람은 잦아든 듯했지만, 세상의 먼지와 소음이 다
내 살을 깎아 어둠을 넓힌다환한 낯빛 아니면 어떠랴숨은 마음 이리도 터질 듯 환한데별들이 제자리에서제 몸만 한 빛으로 어둠을 걷을 때나는 어째서 살을 깎아야하늘은 내 자리를 허락하는가버리는 연습으로 한 달을 산다살 내리는 소리가 밤을 키운다보이지 않는 꿈이 부푼다부푼 꿈속으로만월의 내가 떠오른다-서석화 詩 며칠 전 아는 시인으로부터 카톡 한 통을 받았다.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짧은 멘트.“2호선 시청역에서 환승하다 아는 사람 시 같아서...”서너 군데 지하철역에 이 시
돌아오는 길은 적막했다. 추웠다. 자꾸 사방이 돌아봐졌다.떠난 사람의 사진과 해후하고 돌아오는 길, 사진... 이라는 단어 앞에서 눈보다 먼저 입안에 눈물이 고였다. 사진 속의 사람은 웃고 있었다. 보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앉아 있는 늙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얼굴은 분명 ‘산 사람’의 얼굴이었다. 핏기 없이 굳어 오히려 ‘죽은 사람’ 같은 건 그 앞에 서 있는 살아 있는 우리들이었다.그는 사진으로 우리들을 맞았다. 그의 마중은 조용했다. 당신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제자들이
일 년 열두 달 중 두 달은 어떤 말이 자욱한 시간을 산다. 끝과 시작이 함께 있는 말, 아쉬움과 기대가 동시에 찾아오는 말, 후회와 다짐으로 하루를 한 시간쯤 더 살게 하는 말. 바로 ‘연말연시’다. 시간이 주제요 소재이며 행간의 의미까지도 포획하는 말, 그래서 달력과 시계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보게 하는 말, 나이 불문, 국적 불문, 성별 불문으로 자기를 자기답게 바라보게 하는 말, 일 년 치의 온정과 일 년 치의 희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선하디 선한 말. 시간은 나이에 비례해 그 속도를 달리해서
가을이 갔다.그리고 정말 문득, 봤다.세상을 껴안듯이 하얗게 덮여 있던 눈, 겨울이 와 있었다.큰맘 먹고 당일치기로 감행했던 먼 남쪽 지방으로의 여행이 끝난 시간이었다. 자정이 지나지 않았으니 분명 아직은 오늘인데, 가을로 시작했던 하루는 흰옷을 입은 겨울이 되어 귀가하는 나를 맞았다.‘가을에 떠났는데 겨울에 돌아왔네...’ 집 앞 전철역에 내려 호젓한 골목을 지나 내 집 현관 번호 키를 누를 때까지 나는 중얼거렸다.‘하루에 두 계절을 사는구나...’발목까지 묻어온 눈을 보는데 엘리베이터의 백
누가 내 몸 안에 헛간을 들이는가가슴에 망치질 소리온 밤이 들끓더니휑한 헛간 한 채 등불도 없이 서 있다윤기 잃은 하늘 주저앉은 그 안엔하루 종일 별들 죽어가는 소리벽을 흔들고가문 땅바닥엔 손금처럼 희미한길을 덮은 바람빛 잃은 약속을 매어놓고 간다자고나면 또 그만큼 넓어진 그 안엔밤새 꾹꾹 짜서 널어놓은가파른 목마름못 이룰 꿈으로 펄럭이지만사랑이란크고 어두운 헛간 한 채 지어가다결국은 그 안에 내가 갇히는 것그림자도 내버린 캄캄한 헛간이이제 나를 삼킨다사라지는 시간이빗장 걸리는 소리에 놀라한바탕 울고 있다-서석화 詩
“굴속이야. 들어갈수록 깜깜해. 나가는 문도 없어.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아. 머리와 발바닥이 붙어버린 것 같아.” 여고 동창 J의 SOS.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혼잣말 같은 웅얼거림만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터널이야. 굴이 아니야. 터널이 긴 것뿐이라고.”어머니 돌아가신지 일 년,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그것도 그냥 무심히 보는 게 아니라, 샅샅이 훑는다. 길을 가다가도 조금만 구름 모양이 특별하다 싶으면 저절로 멈춰지는 발걸음, 혹시나 내가 못 보고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일상을 꾸려가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 우주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 자신의 속마음,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따라서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과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입안에서만 맴돌다 삼켜지는 말들이 결국은 그 발원지를 찾아 깊고 내밀하게 스며든다. 그렇게 내 안의 세상이 조금 더 안전해진다. 조금 더 깊어진다. 조금 더 편안해진다.대신 두 배로 듣는다. 들으면서 상대의 주위에 자욱이 깔리고 있는 그의 느낌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만약에 지금 그대에게 맥락도 기승전결도 맞지 않아도 좋으니 단 하나만 말해 보라고 한다면, 살아오는 동안 가장 절실했고 그런 만큼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했던 단 하나의 그 무엇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과 현재의 나는 어떤 관계가 되어 있는지를 가슴의 지시에 따라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그대의 머리와 심장은 어디로 달려가는가.무엇과 어떤 시간을 소환하는가.거기에 저 멀리서도 보이는 어떤 사람이 내 답안지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그리고 나는 왜 지금 이 순간 이 말을
숫자 1!가장 적은 수이면서 가장 큰 기대를 하게 하는 수.가장 외로운 수이면서 가장 확장성이 강한 수.가장 단순한 수이면서 가장 오지의 미로 같은 수.그 숫자 1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자신의 심장처럼 살아 있음의 증표가 되고 존재의 확신이 된 세상이다.이미 오래 전 ‘손전화’라는 신기한 물건이 주어지면서 처음엔 사람들의 목소리로 거리는 붕붕 날아올랐다. 어느 거리 어느 장소에서도 발신과 수신이 가능하며 더구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이 기계를 사람들은 혹 잃어버릴세라 색색의
오늘은 잘 있었냐고?그동안 별일 없었냐고?안부가 그리워다가가 묻고 싶은 단 한 사람내가 궁금하지 않냐고보고 싶지 않냐고그동안 가슴에 심겨진그리움 한 조각 잘 크고 있냐고묻고 싶은 한 사람그 사람이 오늘은 참 보고 싶습니다며칠 전 오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누군가의 글이다. 지극히 평이한 문장에 통제되지 않은 직설적 감정의 나열, 감상도 감동도 없이 건성으로 훑어 내렸던 이 글에 나는 지금 몇 날 며칠 붙들려 있다.살면서 익혔던 거의 모든 사람을 세월이란 두터운 창고에 밀어 넣어 놓고, 열쇠도 자물쇠도 어디에 둔 지 잊은 채 식물처
문득, 보았다.목련, 개나리, 아카시아, 탱탱하게 부푼 나뭇잎들...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날이었고 그래서 대낮인데도 하늘은 눅눅한 이불보다도 더 무겁게 내려 앉아 있던 날이었다.세상은 돌아선 연인들의 등처럼 캄캄했고 적요했고 텅 빈 듯했다.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날이었다. 가고 있는 시간도 오고 있는 시간도 느껴지지 않는 홀로 서 있는 십 차선 횡단보도 앞처럼 그냥 어딘가에 붙박인 것 같던 날이었다.그때 보았다. 이미 만개한 세상! 30촉짜리 백열등 수만 개가 한꺼번에 점화되듯 꽃들이 피어
들끓는다! 온 나라. 온 시간, 온 풍경이.짧은 네 글자 “포토라인”이라는 단어 하나에 집중한다.사진을 찍고. 찍히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는 선, 포토라인!누군가는 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념하고 축하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비참과 치욕과 굴욕을 증명하기 위해 서는 곳, 세워지는 곳. 한 걸음 앞, 칭송과 덕담으로 한꺼번에 만개한 사계절 꽃향기 그득한 꽃길이 있는가하면, 비난과 원망과 분노의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져 온몸이 빠지는 진창길도 준비되어 있는 매표소 같은 곳.대신 서 줄 수도 없고 함께 서 줄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이별은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서움. 그것도 늘 곁에 있는 무서움. 그 엄청난 정의를 나는 이별 앞에 붙였다.이별!서로 갈리어 떨어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해석 앞 괄호 속엔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일로 해서’ 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전제는 당위성이다. 그렇다면 이별은 자의든 타의든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일’이 당연하게 벌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이별이 왜 내겐 늘 곁에 있는 것 같았을까. 형제 없는 무남독녀로 태어나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