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우리 엄마가 캣맘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나는 캣맘을 혐오할 수 없어졌다.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에 중립적이었다. 길고양이에 대한 측은지심도 이해되었고, 길고양이가 유해조수인 사실도 이해되었다. 당장 나와 관련 없었기에 가치 판단을 유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하철 역 앞에서의 그 장면 이후로는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행위를 측은지심으로 읽지 않았다.초겨울이었다. 바람이 강해 어딘가에서 날려 온 비닐봉지가 도로를 휘저어대던 날이었다. 지하철 역 입구에 노파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양말, 스타킹, 면봉, 때수건 등 가벼운 잡
아들이 낮잠을 잔다. 실컷 뛰어놀고 간식도 잘 먹고,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청한다. 천사가 따로 없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24일이다. 아빠인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나는 산타 할아버지다. 발신인은 아빠가 아닌, 산타 할아버지다.아직 글을 읽기엔 너무 어린 아기지만, 산타 할아버지의 입으로 편지를 들려주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내일의 대독(代讀)이 기대된다. “우리 왕자님! 오늘 말 잘 들으면, 코~하고 있을 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이랑 편지를 갖고 오실 거야”라고 말할 생각에 벌써 신이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사력을 다해 달리는 한 축구선수. 그는 결국 상대편 골망을 흔든다. 그러고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눈물을 흘리는 것. 그토록 간절했던 골일까. ‘슈틸리케의 황태자’라 불리던 그의 눈물이 유달리 애처로워 보인다. 경기 종료. 그 선수는 인터뷰를 한다. “정말 제가 많이 존경했거든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도 꼭 장인어른의 사위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장인어른이 경기 당일 새벽에 영면한 것. 빈소를 지키는 것보다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바라셨을 장인어른을 위해 그는 서글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애장품을 하나씩 가져와 주세요”한 연말 모임 주최자의 요구였다. 뭐든 고르면 되리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방안을 살폈다. 키보드와 책 몇권, 각종 영양제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매일 먹고 사용하는 물건들이긴 하지만, 내겐 애장품보단 호미나 몽키스패너 같은 공구에 더 가까운 물건들이다. 밥벌이와, 밥벌이를 감당할 몸을 유지하기 위한 공구들을 애장품이랍시고 가져가고 싶진 않았다.이번엔 침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실내 자전거와 아령, 책들 따위의 공구들이 있었다. 이쯤되니 막막함보단
최근에 의료비로만 100만 원 넘는 지출을 했다. 몇 개월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치료가 필요한 몇가지 질환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원인 모를 복통과 잔병치레 말고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나는 건강을 과신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타고난 건강은 관리 없이도 쭉 유지될 줄 알았고, 건강한 상태는 언제나 디폴트로 깔고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신청하라는 회사 공지가 날아올 때면 아 벌써 돌아왔네 하며 (그 중요한 일을) 귀찮아하곤 했다.그러다 3년 전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던 종양을 1년간 방
"지금도 과한데 여기서 뭘 더 해줘요?"저출산을 소재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이웃 회사에서 임금삭감 없이 2시간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부럽다고 하자 옆에 있던 선배직원이 저렇게 말했다. 공격적인 어투에 불쾌감을 느끼기 전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거지?저출산 극복이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지만, 조직 안에선 오히려 출산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비혼자의 목소리가 높아져서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을 보며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곧 사회생활을 시작할 학생 여러분들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쉽게 사과하지 말라는 것을 당부합니다”10년쯤 전 철학과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이게 나올 말이 아닌데?’ 싶은 한 마디에 졸음이 달아났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 강사가 펼친 대강의 논리는 이러했다. 먼저 사과한 당신은 아마 선한 사람일 것이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객관적으로 잘못한 바가 없어도 마음의 상처를 호소하는 누군가에게 선의를 담아 먼저 사과를 건넸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 객관적으로 그릇된 언행을 한 상황에서의 사
마흔의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주저 없이 마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굳이 타인의 마음까지 운운할 필요가 없는 것이 누가 뭐래도 내 것임이 확실한 나의 마음일 때조차 마음이라는 것은 늘 어렵고 또 어려웠다.'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라는 이 모순적이고 무책임한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건 나이가 들고나서부터였다. 마음이 관장하기로 작정한 영역에서 나란 존재는 매번 무능했고, 항상 패배했다. 상황과 국면이 변한 마당에도 움직이지 않겠다 고집부리는 마음을 기다리는 건 일
“그냥, 즐겁잖아요.”왜 빼빼로데이를 챙기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대답이었다. 초등학생의 무지성으로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날은 마음에 걸렸다. 반문이 들었다. 지성은, 나를 즐겁게 만드는가?기본적으로 기념일들이 번거롭다. 그나마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 조금 양보해서 개천절까지는 내가 한국에 태어난 이상 국가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물려받는 특수 의무임에는 동의했다. 이날을 기념함으로써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타자와 연대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중요한 기념일들은 내가 번거로워질 것이 없어서 좋았다
내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은밀한 취미가 있다.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녹음하고 반복해 듣는 일이다. 아내조차 내 핸드폰에 열 개가 넘는 파일이 저장돼 있다는 걸 모른다.퇴근길 편의점에서 500mm 생수 한 병을 산다. 그리고 집 근처 코인노래방에 들른다. 신해철과 김광석, 유재하의 노래를 부른다. 녹음 버튼을 누른 뒤 이어지는 4분간 죄 없는 핸드폰은 절제를 모르는 에코와 음이탈을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녹음한 노래는 주로 출퇴근길에 듣는다. 지하철 소음에 질세라 음량을 키우다 보면 갑자기 블루투스가 끊겨 지하철 가득한 사람들
우리는 그곳을 생활관이라 불렀다. 실제로 그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1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생활했으니, 어쩌면 가장 적절한 단어였는지 모른다. 나는 이 글에서 생활관이라는 말 대신 그곳을 ‘방’이라고 부르려 한다.그 방에는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1년 365일 라디오는 꺼진 적이 없었다. 누가 언제부터 틀어 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이미 그 방에 처음 간 날부터 나오는 날까지 라디오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매일 그 빨간색 라디오에선 음악과 말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 방에 누가 있든, 없든 말이다. 그 방에서
최근에 한 소설가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 작가의 소설 제목은 하나만 알고 있었고, 그마저도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단 신청을 하고 강연장소인 도서관으로 향했다. 강연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책들을 검색했고, 단편소설 한 편을 벼락치기하듯 읽어 내려갔다. 사랑에 빠진 이의 감정이 잘 묘사된 사랑 이야기였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헤어짐 이후 헤매는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이 나와 닮아 강연을 빨리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된 리액션을 가진 방청객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거려 가며 작가의 말을 경청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초등학생이 이어폰 없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시끄러웠지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가르쳐 주었을 때, ‘왜요?’나 ‘아저씨가 뭔데요?’라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초등학생은 합법적으로 마음껏 무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괜찮았다. 그 무례는 언젠가 칼 맞을 수 있다는 기대로 참아졌다. 바야흐로 체념사회다.회광반조(回光返照)의 시간이다. 한국사 최초로 대한민국은 ‘k-’로 표상되는 문화제국주의 위상을 누리는 중이다. 가장 좁은 영토에서 가장 큰 힘을
솔리만은 TV를 보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파도가 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리만은 배를 타고 가자지구를 탈출했는데, 같이 출발한 다른 배가 항해 도중 침몰했다고 한다. 그 배에는 그의 아내가 타고 있었다.벨기에 리에주(Liege)에서 기차로 30분을 달려 Aywaille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로 20분을 가면 적십자센터가 보인다. 벨기에 정부는 망명 신청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센터운영을 적십자에 위탁했다. 적십자는 이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스포츠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4번의 아홉수가 지나갔다. 아홉 살에는 그저 무럭무럭 자란다는 기쁨만 있었던 건지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한국나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 서른아홉 살에는 시절마다 인생의 변곡점이 있었다. 정작 그 한가운데에 있었을 때는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돌아보니 그 굴곡의 전환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 변곡점은 유서 깊은 내 방황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빠른 83년생인 나는 열아홉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어쩌면 진짜 공부가 시작되어야 할 그때 책 한자를 읽지 않고 거의 매
[논객닷컴=우달 칼럼니스트] 온 세상이 '강자' 투성이다. 각종 정치 사안이나 사회 문제, 경제 정책 전반에 걸쳐 ‘강경책’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오래된 통치법을 부르짖는 이들이 전에 없이 크게 늘었다. 드러난 현상에만 초점을 맞춰 날붙이를 휘두르고 나면 일단은 속이 시원하기 때문일까.난데없이 치명상을 받은 상대는 더 이상 찍 소리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날붙이를 든 손을 움직이는 게, 보기 싫은 상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요시모토 바나나 중에서어렸을 땐 명절이 너무 좋았다. 걱정이라곤 퐁퐁이를 먼저 탈까, 피씨방을 먼저 갈까 밖에 없었던 시절. 나이를 먹을수록 명절은 그 나잇대의
2021년 12월 중순, 신문을 읽다가 "내년 마흔인데 10명 중 7명은 집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맞닥뜨렸다. 사십 대를 앞둔 질풍노도의 시기에 조바심 들게 하는 이 기사는 뭐람 하며 첫 문장을 확인했더니 '내년이면 40세가 되는 1983년생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10명 중 3명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단 내 상황이 10명 중 7명에 속한다니 다행인 건가 하면서도, 수많은 과업들에 이젠 주택 소유주마저 추가해야 하는구나 싶어 숨이 턱 막히었다.그 뒤로 이어지는 통계청 분석은 확실히 내 목을
【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북극성은 보통 길잡이 별로 통한다. 대항해 시대 때 뱃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한 데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성이 어떤 별인지 찾아보니 그것은 사실 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순위였다. 자전축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1순위 별. 그래서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면서 바뀐다는 것이다.돌아보니 내 인생 항해에도 나의 자전축을 밝혀주는 서로 다른 이름의 북극성들이 있었다. 엄마, 절친, 애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 쉼 없
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고 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일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솟구쳐 오른 애사심 때문이라고 하면 좋으련만...여름에는 사무실만큼 시원하고 쾌적한 곳이 없기에 원래 여름휴가를 잘 안 가는 편이다. 그러다 9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나다니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나에게 쉼을 주기로 한 첫날, 나는 미술로 하루를 시작해 음악으로 하루를 맺었다.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으로 마음이 꽉 차 올랐다. 나름대로 국어와 사회와 과학을 좋아했던 범생이었지만, 살아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유효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