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라 부르며 멸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비하하는, 심한 욕인 화냥년이라는 말의 어원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근거는 없다. 병자호란 당시에 환향녀라는 말이 쓰였다는 역사적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다. 환향녀라는 말이 실제로 당시에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성들을 조선 사회가 반갑게 맞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당시 사대부가에서는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자들을 쫓아내거나, 아녀자들이 친정으로 되돌아갔다가 친정에서도 쫓겨
[청년칼럼=시언] 고시촌은 외로운 도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로운 자들의 도시다. 고시생과 공시생, 지방 출신 사회 초년생, 외국인 유학생 등 홀로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공간이다. 그래서 고시촌 길거리에선 ‘말소리’가 귀하다. 입을 다문 채 학원으로, 직장으로, 그리고 본인도 모를 어딘가로 고단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침묵하는 유령들의 도시랄까.고시촌에 귀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웃음이다. 무리도 아니리라. 온통 ‘준비하는 자들’뿐인 이 도시에서 웃을 일이 빈번할 리 없다. 진정 활짝 웃게 된 사람들은 부
[청년칼럼=고라니] 버스를 놓친 경험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장이란 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주했다. 불길한 감각이 배를 스치고 지나가면 머리는 빠르게 굴러간다. 약속시간 전까지 공용 화장실에 들를 수 있는 최적의 경로와 여유시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작은 징후는 순식간에 속을 쥐어짜는 고통으로 자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까운 화장실로 한 발 한 발 위대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해 화장실을 또 가게 되면 버스는 이미 떠나 있기 일쑤다.과민성대장증후군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붙어 다닌 병명이다. 처음에는 단
[청년칼럼=이하연]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눈길이 가는 게 생겼다. 다름 아닌 내 방 책장에 꽂힌 책들. 장르별로 분류해 놓지도 않았을뿐더러 꽂을 자리가 부족해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나의 소중한 책들. 정리된 꼬락서니를 보면 결코 믿기지 않겠지만 난 책장에 남아있는 책들을 아주 아낀다. 간직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여러 번 정독하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한 권 정도만 겨우 두 번 읽었을 뿐이다. 여태껏 나의 독서 습관은 그랬다. 한 번 읽으면 그게 끝이었다.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대한민국 50년대생 남자60년 넘게 죽자 살자 일만 했다. 6·25전쟁 중에 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침에도 물을, 점심도 물을 먹었다. 마을을 가끔 지나가던 미군 트럭에서 튀어나오는 '쪼꼴렛'도 하나 못 먹어 보았다. 하루 종일 소 풀을 먹이고 저녁은 희멀건 풀죽을 먹고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힘이 좀 생기자 인근 지역에 고속도로 공사장으로 찾아갔다.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자기 몸무게만 한 짐을 날랐다. 나이도 속이고 부탁하고 부탁해서 들어간 일자리 덕분에 그제서야
[청년칼럼=신명관] 필자가 일했던 파스타집은 2층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술을 같이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던 편이었다. 맨 왼쪽은 호프집 프랜차이즈가 치킨을 팔았고, 중간에는 간단한 안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맥주집 프랜차이즈로 메뉴에 치킨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20초를 걸어가면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문을 닫기는 했지만 개인 치킨집이 하나 더 있었다. 세 개 매장의 메뉴 중에 치즈와 감자튀김 등등도 겹친다는 사실이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왜냐면 건물의 뒤편으로 가면 음식점이 또 있었으니까. 치킨
1.투쟁이었어요. 처절한 싸움이요. 의사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너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할 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어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 (『Bending the Arc』, 40:11~, 말키아데스)『밴딩 디 아크 : 세상을 바꾸는 힘』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가 시간이 흐른 뒤 인터뷰를 통해 밝힌 말이다. 그렇다. 완치될 거라는 확신 없이 치료를 지속하는 건 쉽지 않다. 다큐에 등장하는 의대생 폴 파머와 김용, 운동가 오필리아 등의 인물은 병원에 갈
[청년칼럼=이루나] 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바뀐다.내가 학교에 다닐 때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신문이었다.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통한 교육이란 용어가 흥할 정도로, 강력한 권위를 가진 매체였다. 지역 신문에 이름이 한번 실리면 가문의 영광이었고, 고이 잘라 스크랩하여 보관하곤 했다. 신문에서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이었고, 귀담아들을 내용이라 생각했다. 매체로서도 중요했지만, 신문 종이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였다. 운동회에서는 돗자리 대용으로 쓰이고, 주방에서는 기름 튀는 걸
“각하의 용안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장혁수 役 손병호)“각하, 면도를 하겠습니다” (성한모 役 송강호)영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2014)』에서 배우 송강호는 얼떨결에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 청와대 이발사가 되었고 그의 눈으로 4.19 혁명, 제5공화국에 이르는 격동의 현대사를 볼 수 있다.나 또한 군대에서 얼떨결에 ‘깍새’가 되었는데, 소질이 없는데도 후임부터 고참까지 많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야 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떤 날은 곧 전역을 앞둔 병장의 머리를 정리하다가 ‘오발탄(이범선 作)의
[청년칼럼=김봉성]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팬티를 벗겨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간절함을 생각해 봐야 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낡은 사각 팬티를 벗기며 그의 수치심을 생각했다. 그가 부끄럽지 않은 척하는 것도 안타까웠고, 이런 일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일상이 되어버린 것도 안타까웠다. 나는 나의 면구스러움을 티내지 않는 것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그저 오줌을 누고 싶었을 뿐이었다.“저, 선생님! 음료수라도 사 드릴테니까 저 좀 도와주시겠습까?”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휠체어를 탄 중년 사내가
[청년칼럼=신명관] 배우 곽도원이 있다. 연극배우로만 14년을 활동하고, 말 그대로 배고픈 삶을 살다가 10년 전 즈음에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가수 현철이 있다. 내 세대가 아니라, 내 어머니 세대의 가수다. 1969년에 가요계를 데뷔했는데 83년에 트로트로 성향을 바꾸기 전까지 무명이자, 굶어야 했던 가수였다.코미디언 박나래가 있다. 12년정도의 무명이었다. 비호감 소리도 많이 듣고, ‘그렇게 하면 방송 못할 거’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트와이스의 멤버 지효는 연습생으로만 10년을 지냈다. 10살 남짓한 나이부터 학창시절보다는
[청년칼럼=허승화] 나는 1994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해라는 것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일깨운 계기가 된 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는 그런 시절을 증언하는 영화다. 보고 나니 그 시절을 견딘 사람의 생생한 보고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 시절 대치동에 사는 소녀 은희와 만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일상화된 폭력영화 는 1994년 대치동에 살았던 15살 소녀 은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
[청년칼럼=이주호] 같은 말이라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린다. 나에겐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그렇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보거나, 답답한 사람들을 겪을 때 쓰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니, 뭐 얼추 맞을 수는 있는 말이다.“감기 걸릴 것 같다”라는 느낌은 잘 안다. 비가 내리는 데 우산이 없어 몸이 홀딱 비에 젖을 때면 으스스 한 느낌이 꼭 감기에 걸릴 것만 같다. 침을 삼킬 때도 편도가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목감기에 걸릴 것 같은 징조다.
‘아 그 얘기는 하지 말걸.’ 약속이 지나치게 많을 때 종종 드는 생각이다. 많은 말을 하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경우, 말이 많으면 실수도 덩달아 늘어나는데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숙하기 때문이다. 말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해 위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행동을 조절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만의 방법이다.먼저, 전반적으로 삶에 여유를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일과 돈과 술이 대표적인 세 가지다. 일을 줄여야 시간적 여유가 생긴
[청년칼럼=김연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그 시점과 대상에 따라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는 시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내심이 유한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의 후반부 기택(송강호)이 박 사장(이선균)에게 하는 행동에서 관객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기택이 꼭 그래야만 했냐며 그를 비난하는 입장과 기택에게는 모욕감이 계속해서 축적되었으므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 대립한다.개인적으로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기택의 행동은 옳지 않지만 그런 우발적인 행동을 벌
[청년칼럼=시언] 전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인구는 몇 퍼센트일까? 20%? 50%? 80%? 찰나의 순간이지만 대부분의 시선은 20%와 50%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80%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을 포함한 전 세계 인구의 80%가 -다소 불안정할 지언정-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생각보다’ 높은가? 그렇다.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는 당신이 세계를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을 사정없이 ‘팩트폭행’하는 책이다.그렇다고 책을 읽는 당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식한지 낱낱이 지적하는 꼰대류의 책일까 염려
[청년칼럼=김우성] 요즘 바둑 두는 재미에 빠져있다. 한 판 두고 나면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을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늘 바둑을 둘까 말까를 고민한다. 무료함을 달래는 데 바둑만한 게 없다.한창 상대방과 지략 대결을 펼치는 중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상대방이 제발 저기만큼은 두지 말았으면...’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나의 바람을 외면한다. 나와 겨루는 상대들은 모두 독심술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 그들은 내가 생각한 지점에 정확히 돌을 놓는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똑같다는 걸 느낀다.
[청년칼럼=고라니] 첫 만남은 언제나 뻘쭘하다. 새 학년, 새 동아리, 새 학교 첫 날마다 난 쥐구멍을 찾기 바빴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극도의 어색함을 견디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유난히 한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 덩치가 큰 그 선배는 걸음이 느리고 행동이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우린 어쩌다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 그는 “아까 나 보고 놀랐지?”라며 자신이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말이 느려도 이해해 달라며. 1년 늦게 입학한 나와 한 학번 위인 그
[청년칼럼=신명관] “나도 OO나 해볼까”라는 소리는 자신의 현 상황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대기업을 다니지만 미래가 불명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공사판에서 노동직을 담당하고 있어 힘에 부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는 소리다. 그리고 ‘OO’은 주식이 되거나, 장사가 되거나, 사업이 되거나, 부동산, 혹여는 유튜브가 되기도 한다.다시 말해 그들은 직종 내지 환경의 전향을 희망하고, 자신의 현 상황에 불만족스러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쪽이다. 음식점 하나 잘 해서 연 매출 10억원이 되었다는 사람, 주식투자 하
“일본은 거듭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다... 전쟁과 상관없는 다음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아베)“나치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에 한도를 정할 수 없다... 역사를 학교나 사회에서 전파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역사적 책임이 있다.” (메르켈)201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70년을 맞이한 아베와 메르켈의 연설을 들여다보면, 두 전범국의 서로 다른 역사관이 뚜렷이 대비된다.아베에게 역사란 ‘작은 점’ 같은 것이다. 물건을 사고팔 듯, 계약서 몇 장으로 깔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