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새벽 두시 즈음인가. 친구의 사진을 보았다. 널따란 포도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유럽 가정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말했다. “나도 가고 싶다!” 친구는 금방 내 메시지를 읽고서는 답했다. “놀러오면 되지!” “그래!!”본래 여행을 싫어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여행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편이었다. 굳이? 내가? 거길? 왜? 힐링이라는 목적과 자기고민, 계발, 더 넓은 세상과 글로벌의……. 막 뭐라고 하는데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운동도 안하면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친구 녀석 역기를 들고 집에 찾아왔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비실거릴 거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더군요. 서서 일하는 사람은 허리가 곧아야 한다며 데드리프트란 운동을 강제로 시킵니다. 어쩌겠습니까. 퇴근 후 한 시간 반을 차타고 온 성의를 생각해 낑낑거리며 몇 개 따라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녀석은 자세를 몇 번 잡아주더니 시골에 김장하러 간다고 쏜살같이 사라집니다.그러고 보니 김장철이 다가왔습니다. 이맘때면 엄마는 혼자 바빴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들락거리며 배추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차마 합격을 기원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내가 너의 합격을 기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기원은 부담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부담도 무거운 너에게 또 다른 부담을 얹어주고 싶지 않다. 나는 너의 주저앉음이 가엽다.부담에 짓눌린 네 모습을 나는 1년 내내 봐왔다.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는 막막함과 3월, 6월, 9월 평가원 모의고사마다의 비명 같은 심란함을 나는 바로 옆에서 들었다. 너의 비명은 소리가 나지 않아 자조에 가까웠지만, 나도 그 시절 질러보고 싶었던 것이어서 그것이 비명임을 나는 몸으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회사에 친한 후배 녀석이 한 명 있다. 회사 밖에서도 자주 만나며 서로 흉금을 터놓다 보니, 그는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뒤에 회사에서 부여한 직급을 붙이지 않고 형님의 사투리인 ‘햄’을 붙이고 있다. 퍽 정겨운 호칭이다.나보다 고작 몇 살 어린 그를 나는 이따금씩 한참 어린 동생 취급을 하곤 한다. 까불까불한 모습과 장난스러운 말투도 나름 귀엽게 봐줄 만하다. 그가 아무리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육군장교로 복무했고 누구보다 신실하게 학창생활을 보냈다고 하지만, 내 눈엔 그저 어딘가 좀 어설퍼 보이고 약간은 풋내가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아이가 아파서 차를 몰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오르막길에서 갑자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전에도 한 번씩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정비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도 부웅~ 하는 소리만 날 뿐 속도가 붙지 않는 차를 끌고 겨우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를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말에 수속을 밟고...병실 침대에 누운 아이는 링거를 맞고 이내 잠들었다.아내가 아이를 보는 동안 나는 차를 맡기러 나왔다. 평소 가는 정비소가 있었지만 거리가 조금 있어서 혹시라도 차가 멈추는 불상사가 생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내가 느끼기에 11월은 ‘연락의 계절’이다. 사람은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1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려 든다. 11월의 갑작스레 차가워진 공기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스스로가 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고 후회되거나 매듭 짓지 못한 인연에게 연락을 하고, 11월 말에서 12월 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만남을 가지려 한다. 그러려면 11월초부터 중순까지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을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11월에는 의외의 연락이 나를 찾기도 한다.그런 연락들을 피해서, 어쩌면 스스로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사실은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정상이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라 정의된다. ‘제대로인 상태’는 어떤 걸까. 그 기준이 워낙에 애매모호해서 무엇이 정말 ‘정상’상태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궁금증을 품을 사람이 비단 나뿐만 일까. 사전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본래 정상(正常)이란 단어 자체가 추상적인 뜻으로만 구성되었으니.손쉽게 한자풀이를 하자면, 항상 바른 혹은 바로 잡힌 상태란 의미가 된다. 이제는 ‘뭐가 바른 상태인 건데?’하는 생각이 든다. ‘바르다’는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을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중간고사 잘 보는 팁’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밤을 새는 건 지양하라고 한다.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건 더 피하라고 한다. 강제적인 각성 상태에서 흡수하게 되는 카페인은 사람의 판단력을 더 흐트러지게 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충분한 숙면을 추천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후배들은 열심히 박카스를 마시고 밤을 샌 뒤 시험을 치르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때부터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 “OO야, 괜찮아?” “에? 에에.” “밥이라도 먹을래?” “(고개를 저으며) 에에에
어느 동네에나 맛집은부산 광안리 인근 주민이 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차다. 부산하면 아무래도 바다 아닌가. 과장 조금 보태면, 집 앞에 유명 관광지를 두고 살아온 셈이다. 익숙하면 소중한 걸 잊는다고 했던가. 매년 여름마다 그야말로 파도처럼 물밀 듯 관광객들이 흘러들면, 그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래, 여기가 광안리였지.그러다 보니 밥집이며 술집이며 음식점들이 참 많다. SNS에서 화제가 된 수십, 수백의 핫플레이스부터 현지 주민들에게 평이 좋은 숨은 맛집까지. 나는 입이 짧은 탓에 다양한 맛집을 섭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매주 수요일 18시 30분이면 독서클럽에 간다. 미리 정한 책을 읽어온 10명의 학생이 모여 함께 토론한다. 사회적 문제와 자신의 견해에 대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학금에 눈이 멀어 시작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재밌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소설 ‘편의점 인간’은 사회 규격에 맞춰지기 위한 두 사람의 기묘한 선택을 담은 이야기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
[오피니언타임스=신영준] 1990년대 미국. 정보화 사회가 급물살을 타면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 현상을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고 칭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정보화의 흐름을 타며 국가 간의 격차도 심화됨으로써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회문제로 인식되었다.2018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메카로 불리는 곳에서 이상한 학교가 나타났다. 분필가루가 날리고 컴퓨터를 포함한 디지털기기는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는 곳. 이
소득주도 성장을 한국 혼자 실험한다는 주장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두 사람이 경질됐다. 소득주도 성장이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난리다. 사실 소득주도성장은 나쁜 것이 아니고 언론에서 말하듯이 우리나라 혼자 소득주도 성장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려왔고, 지금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시도하는 중이다. 최저임금을 안 올리고 버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무턱대고 따라 하는 나라,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이나 교수님들이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미국이라는 나라뿐이다.미국은 주마다 최저
#1교회에서 예배 후 청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단풍 구경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울긋불긋 단풍잎을 감상하면서 가을 분위기를 즐기자는 주장에 모두가 동의했다. 언제가 좋을지 달력을 보면서 다같이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쉽게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 다음 주는 누가 못 오고, 그 다음 주는 누가 빠진다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타협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말했다.“단풍잎이 다 지기 전에는 가야지.”단풍잎이 남아있을 때 가야한다는 사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게 가장 걱정스러웠다. 다음 주, 다다음 주에도 가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고도의 친환경의식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고 멋들어지게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환경에 대해 고민을 깊이 있게 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반성을 해본다. 어찌 됐건 무거운 텀블러를 늘 가방에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찬물, 따뜻한 물 가리지 않고 물을 참 좋아한다. 매번 물을 사서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작은 종이컵에 담긴 양의 물을 홀짝홀짝 마시는 건 어딘가 좀 부족하다. ‘인간 하마’인 내게 종이컵은 그리 달가운 도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친구가 있다. 동시에 같은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우리는 학교에서 놀다가, 밖에서 놀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각자의 집에서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하곤 했다. 약도 없다는 중2병에 걸렸을 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민망한 글들을 경쟁적으로 싸이월드에 올렸다. 공부가 급해진 뒤에는 집 앞 독서실에서 새벽에 함께 돌아왔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수험생)에 가까웠던 우린 「개념원리」 책의 예제, 연습문제, 심화문제를 풀며 쌓인 스트레스로 인해 괴성을 지르곤 했다. 곤히 주무시다 난데없이 들려온 소음에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난 걱정이 많다. 사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한데도, 그 너머의 일을 고민하곤 한다. 걱정들의 다수는 실현되지 않는다.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변가의 파도가 그치지 않는 것처럼 내면의 걱정도 끊임없이 밀려든다. 차곡차곡 모래가 쌓이는 것처럼 걱정도 쌓인다. 지독한 악순환이다. 최근 이직을 하게 되면서 걱정이 더욱 늘었다. 낯빛이 어두워지고 쉽사리 움츠러든다. 바둑을 둘 때 프로는 100수 앞을 내다 본다고 한다. 난 다음 수는커녕 자충수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최근 제기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는 교육 현장 또한 완벽한 곳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유치원이나 학교는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견제와 합리적 의심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보자. 반장은 학급을 대표하는 직책이지만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의 심부름을 하거나, 수업시작과 끝에 차렷, 열중쉬어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아래에
내가 아직도 DVD를 만들지 못한 이유영화는 개봉을 통해 스스로의 완성을 만인에게 알린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 상업 영화에 국한된 것이다. 흔히 독립 영화라고 부르는, 남의 자본을 사용하지 않은 영화가 완성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징표가 있어야 할까? 독립영화들은 대개 공공적 성격의 자본이나 본인의 사재를 털어 만들어진다. 따라서 개봉을 하고 IPTV로 넘어가는 일반 상업영화처럼 개봉을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단편 영화라면?사실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감독 본인 외에는 누구도 완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쨌든 그러한 영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대한민국은 전체 고용 중 정부와 공공이 차지하는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을 내걸었고 이를 통해 행정서비스를 개선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려는 생각이다. 이를 두고 여야가 바라보는 시선은 팽팽하게 대립한다. 지금 이 글은 대립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한 쪽을 열렬히 응원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서 공무원의 존재의미 즉, ‘공직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했다. 우승자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좀 더 비싼 내가 되어야 하는 ‘교실 이데아’를 살아온 우리에게 승자 독식은 익숙한 논리였다. 익숙함과 고통은 별개였다. 고통은 만성이 된 월요일 아침처럼 참을 만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시대는 백종원을 호명했다.그를 향한 러브콜의 이유는 수많은 자취생들이 요리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도 아니고, 자신의 음식과 장사 노하우를 공개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신뢰할 만한 어른’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