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만은 TV를 보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파도가 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리만은 배를 타고 가자지구를 탈출했는데, 같이 출발한 다른 배가 항해 도중 침몰했다고 한다. 그 배에는 그의 아내가 타고 있었다.벨기에 리에주(Liege)에서 기차로 30분을 달려 Aywaille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로 20분을 가면 적십자센터가 보인다. 벨기에 정부는 망명 신청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센터운영을 적십자에 위탁했다. 적십자는 이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스포츠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4번의 아홉수가 지나갔다. 아홉 살에는 그저 무럭무럭 자란다는 기쁨만 있었던 건지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한국나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 서른아홉 살에는 시절마다 인생의 변곡점이 있었다. 정작 그 한가운데에 있었을 때는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돌아보니 그 굴곡의 전환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 변곡점은 유서 깊은 내 방황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빠른 83년생인 나는 열아홉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어쩌면 진짜 공부가 시작되어야 할 그때 책 한자를 읽지 않고 거의 매
[논객닷컴=우달 칼럼니스트] 온 세상이 '강자' 투성이다. 각종 정치 사안이나 사회 문제, 경제 정책 전반에 걸쳐 ‘강경책’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오래된 통치법을 부르짖는 이들이 전에 없이 크게 늘었다. 드러난 현상에만 초점을 맞춰 날붙이를 휘두르고 나면 일단은 속이 시원하기 때문일까.난데없이 치명상을 받은 상대는 더 이상 찍 소리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날붙이를 든 손을 움직이는 게, 보기 싫은 상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요시모토 바나나 중에서어렸을 땐 명절이 너무 좋았다. 걱정이라곤 퐁퐁이를 먼저 탈까, 피씨방을 먼저 갈까 밖에 없었던 시절. 나이를 먹을수록 명절은 그 나잇대의
2021년 12월 중순, 신문을 읽다가 "내년 마흔인데 10명 중 7명은 집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맞닥뜨렸다. 사십 대를 앞둔 질풍노도의 시기에 조바심 들게 하는 이 기사는 뭐람 하며 첫 문장을 확인했더니 '내년이면 40세가 되는 1983년생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10명 중 3명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단 내 상황이 10명 중 7명에 속한다니 다행인 건가 하면서도, 수많은 과업들에 이젠 주택 소유주마저 추가해야 하는구나 싶어 숨이 턱 막히었다.그 뒤로 이어지는 통계청 분석은 확실히 내 목을
【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북극성은 보통 길잡이 별로 통한다. 대항해 시대 때 뱃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한 데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성이 어떤 별인지 찾아보니 그것은 사실 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순위였다. 자전축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1순위 별. 그래서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면서 바뀐다는 것이다.돌아보니 내 인생 항해에도 나의 자전축을 밝혀주는 서로 다른 이름의 북극성들이 있었다. 엄마, 절친, 애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 쉼 없
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고 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일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솟구쳐 오른 애사심 때문이라고 하면 좋으련만...여름에는 사무실만큼 시원하고 쾌적한 곳이 없기에 원래 여름휴가를 잘 안 가는 편이다. 그러다 9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나다니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나에게 쉼을 주기로 한 첫날, 나는 미술로 하루를 시작해 음악으로 하루를 맺었다.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으로 마음이 꽉 차 올랐다. 나름대로 국어와 사회와 과학을 좋아했던 범생이었지만, 살아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유효했던
인스타는 타인을 인내하는 수행이다. 내 계정에 들어찬 이물(異物)들을 참아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물일 것이므로 공정한 계약이긴 하다. ‘좋아요’ 아래 가려진 솔직함, 우리는 타인의 일상이 지긋지긋하다.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갔다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 했을 때, 타인의 피드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타인이 무단 침입한 듯 불쾌했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독립성을 무시한 체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나의 소통이란 서로 합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지 모든 수다를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아까 내가 하는 거 안 봤어?"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버벅대던 난 그 소리에 더 허둥댔다. 팀장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오늘도 어김없이 안보교육이 시작됐다. 국회 보좌관 80%가 빨갱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하라는 불호령을 들으며 김치찌개를 끓였다. 서이초 교사의 사망이 전교조의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길 들었을 땐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됐다. 입을 열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 조용히 숟가락만 뜨고 있는데 팀
나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내 생각과 지식은 정답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에도 맹점이 있다. 양자역학도 진리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언제나, 누구나, 틀릴 수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늘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오류가능성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바로 오류가능성일 것이다.요즘들어 오류가능성을 더 많이 생각하는 이유는 당대가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습관처럼 한다. 노키즈존으로 대표되는
모두가 유튜브를 보고, 유튜버를 꿈꾼다. 하나둘 티브이에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알고 보니 유튜브 스타다. 이제는 지식도 도서관이나 포털 사이트가 아닌 유튜브에서 찾는 시대다.유튜브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그 끝을 모르고 팽창하고 있다. 유튜브의 성공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다. 뉴웨이브 그룹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는 MTV가 개국할 때 나온 곡이다. 정확히는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이 곡은 MTV의 상징이자, 새
MZ: Millenial + Z세대를 합쳐 일컫는 용어로, 1980 ~ 2000년대 출생자까지의 세대를 아우르는 용어이다.문득 MZ 세대에 대해 사람들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대충 어떤 이미지인지는 알겠는데, 글로 표현하기에는 모호하여 가장 가까운 기성세대에게 묻기로 했다. MZ세대는 어떤 애들인 것 같냐는 필자의 다소 선문답같은 물음에 필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굉장히 스마트하고, 글로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 일 시키는 거 힘들고.... 딱 너같아.”스마트, 글로벌, 자기중심적, 일 시키
아버지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기업에 입사해 임원이 됐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당신은 매일 건강을 팔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를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당뇨가 찾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성격이 날카로워져 신경질과 짜증으로 가득한 사람이 됐다. 문학과 스포츠 같은 취미는 즐길 시간이 없어 긴 겨울잠에 빠졌고, 정년퇴직 이후에야 깨어났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회사일과 공부에만 매달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누나와 난 그런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에게 항상 고마워해야 한
얼마 전 친한 동생과 카톡으로 MBTI 얘기를 하며 서로의 유형을 추측하다가 "누나는 S(현실, 실용) 일 거고..."라는 말을 들었다.- 어? 나 비현실의 끝판왕인데 나 현실적으로 보이는구나? 어찌 보면 성공인 건가?- 근데 진짜 비현실적인 사람은 공공기관 10년 넘게 못 다녀. 그렇게 끝판왕인 사람은 ㅋㅋ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 그가 툭툭 던지는 말 마디마디 다 뼈를 때려서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 맞지. 누가 봐도 나의 궤적은 현실에 발을 찰싹 붙이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온 삶이었지.이십 대 후반의 나는 세상의 잣대에서
퇴근 후 다소 늦은 저녁 시간, 아이를 데리러 처가댁에 차를 타고 부랴부랴 갔다. 장모님께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계셨고, 나와 아내는 아이의 옷과 장난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린 이 장난꾸러기의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바쁘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고, 천사 같은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애교 섞인 미소를 날린다. 진짜 심장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럽다. 이제 아이를 빨리 재우면, 우리 부부는 넷플릭스를 틀고 맥주 한 캔과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조직의 목표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이지 사람이 아니다.' - 세스고딘, 린치핀10년 넘게 조직에 몸을 담고 나서 곱씹어 보니 조사 하나까지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이 조직의 시스템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회사에 다니면서 정확한 정의조차 모르는 것 같아 몇 년 전 공공기관의 의미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법이 정한 의미의 공공기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상 공공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에, 누가 어느 회사 다니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
대학생 때 활동한 문학동아리에 사십 대 학부생이 있었다.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갑자기 문학이 하고 싶어져 수능을 다시 봤다고 한다. 국문과에서 문학강의만 골라 듣던 그는 매주 새로운 시와 소설을 써오곤 했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폭은 누구보다 넓었고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적절했다.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핍진성'이라는 단어였다. 어느 술자리에서 그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에 대해 핍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했다. 나를 비롯한 동아리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맥주잔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생전 처음 들어
나의 경우에는 한 번씩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초 단위 환산하여 타이머에 걸어둔다. 1년이 약 3153만 초이고,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15억 남짓한 시간이다. 물론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다 쓸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렇게 1초씩 줄어드는 타이머를 지켜보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든다. 15억은 꽤 큰 숫자라는 생각, 15억 원이라는 금액은 얼마나 큰 걸까라는 생각,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삶은 사실 유한한 것이었다는 생각 등.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
인간은 일반화를 좋아한다. 일반화의 효용은 쉽고 편하다는데 있다. 일반화에 싸잡힌 집단 개개인의 사정과 맥락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고려하지 않으니 혐오하긴 더 쉽다. 딸배는 딸배고, 기레기는 기레기이며, 맘충은 맘충이다. 저쪽을 향해 준엄한 윤리적 비판을 가하는 이쪽의 도덕성은 절로 드높아진다는 추가 효용까지 갖췄으니 이정도면 ‘가성비 甲’의 칭호가 타당하다 하겠다.위에 언급한 혐오 표현들을 직접 사용한 적은 없다. 그러나 특히 배달원들을 향한 내 시선이 과히 곱지 못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내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지 맘 둘 곳 없는 척박한 회사에도 내가 좋아하는 동료 직원들이 몇 명 있다. 나보다 1년 입사 선배이자, 학번은 같은 L차장도 그중 한 명이다. 회사에서 선후배로 만난 관계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 처음부터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나와 달리 회사에 애정이 많고, 업무 능력이 뛰어남에도 뒤늦게 승진을 했다. 내가 상사라면 똑똑한 그부터 데려다 쓸 거 같은데, 회사는 늘 정반대로 그를 대접했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이런 사람도 필요하고 저런 사람도 필요한 것쯤은 이제 나도 안다. 다 L차장 같을 수없고, 다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