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꽤 됐다. 15년 전쯤 신문 사회면 한구석에 작은 상자 기사가 하나 실렸다. 남편이 낸 산불 피해 벌금 130만원을 무려 20년에 걸쳐 갚아낸 강원도 홍천에 사는 ‘용간난’ 할머니 이야기였다.1979년 9월 할머니의 남편은 약초를 캐러 갔다가 담뱃불을 잘못 버려 국유림 일부를 태웠다. 홍천 국유림 관리소는 그에게 산불 피해 벌금 130만원을 부과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해 분할상환하도록 허락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중풍을 앓다 숨진 남편은 “내 대신 벌금을 꼭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홀로 된 할머니는 넷이나 되는 자녀
딸 아이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혀 손목잡고 나들이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감개무량함을 넘어 기가 막힐 정도다. 딸은 어릴 때부터 비교적 옷도 잘 맞춰 입었고, 나름대로 패션 감각도 있었던 데다가 이제는 패션 회사까지 다니니 그런대로 감각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개는 드레시하거나 패셔너블한 옷을 입는 편이지만, 가끔가다 오버사이즈(oversize)의 ‘아버지 패션’도 즐기는데, 오래 전 중학생 때 하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집안
몇 년 전 지방 모신문에 1년간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칼럼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우연찮게 노인에 대한 것이 많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지난 19대 국회 노인복지대책특위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노인과 장애인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종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정책이 수립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며 보편적인 현상이다.때문에 사회정책을 전공한 나의 특위 참여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장애인특위에 관여하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어쩐지 잘못된 인선인 것 같아 국회측에 몇 번이고 사양했다. 게
나이들면서 잃어버리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입맛이 아닌가 싶다. 식사 때가 되어 뭐든 먹긴 먹어야 할 텐데 정작 먹고 싶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가 많다. 모처럼 외식을 나가려 해도 꼭 찾아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서 궁리만 하다가 “그냥 찬밥에 물이나 말아 먹지”하고 눌러 앉은 적도 여러 번 있다.어렸을 때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뿐만 아니라 짬뽕이나 군만두까지도 먹고 싶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때나 닥치는 대로 먹었던 대학시절과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이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캐나다 위
구한말(舊韓末)에 어떤 몰락한 양반이 있었다. 당장 입에 풀칠조차도 어려울 정도로 곤궁했고, 소일거리라는 것도 고작 ‘어떻게 하면 한몫을 잡아 난국을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공상과 상민 앞에서 돼먹지 않은 거드름이나 피우며 공술 얻어먹을 궁리를 하는 정도였다. 이미 나이가 들어 벼슬길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했던 그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자식이 과거에 급제하여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해진 이 시험제도를 통해 출세하기엔 뇌물을 쓸 돈이 집안에 있었을 리 없
인생은 60부터라는 구호는 물론, 인생 70이면 고래희(古來稀)라는 말조차도 민망해진 시대이긴 하지만, 무한경쟁의 지식정보산업사회에 돌입하면서 세대교체와 구조조정으로 60은커녕 50도 되기 전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판이니, 씩씩하고 건강해진 말년을 무엇으로 보내란 얘긴지, 요즘 세태가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진다.부강하거나 복지제도가 제대로 정착된 나라에서는 정년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은퇴가 경사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 아직도 국민경제가 취약하고 미약한 나라에서의 정년퇴직은 개인이든 가정이든 조사(弔事)가 될 것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우리 엄마 나이는 51세로 당시 친구들 엄마에 비하면 이미 할머니였다. 지금까지 가까운 친구 정(鄭)모군의 엄마가 당시 36세였는데 우리 엄마는 이미 그 3년 전에 손녀를 본 진짜 할머니였으니 아예 비교도 되질 않았다.나는 친구들에 비해 나이 많은 엄마를 너무나 부끄러워 했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엄마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이 문제를 창피해하며 싫어하는 것은 마치 엄마에게 ‘왜 날 낳았느냐?’고 대드는 것처럼 후레자식 같은 망발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로서는 매우 심각한 ‘고뇌
I.1990년 7월 26일, 부시(George H.W. Bush)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광장에서 열린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미국장애인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약칭 ADA)’ 서명식장에서 인권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3주일 전 우리들은 독립기념일을 경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또 하나의 독립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너무나 늦은 독립일입니다. 이 역사적인 ‘장애가 있는 미국인법’의 서명으로, 모든 장애가 있는 남성, 여성, 아동은 이제까지 닫혀 있던 평등, 독립, 자유의
과거 미국 여군은 펜타곤(국방부) 규정에 따라 최전선 지상전투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 여군은 수송, 헌병, 정보, 통신, 행정 등 병과에만 보직을 받을 뿐, 보병, 기갑, 포병 등 전투병과에는 배속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납득하기 어려운 애매한 규정으로 인해 진급에 영향이 있다면, ‘명백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펜타곤은 2013년 1월 24일, 사상 처음으로 여군에 대한 전투병과 배치 금지규정을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조치로 육군과 해병대의 보병
미국 사람들은 걸핏하면 고소하고 재판정으로 간다. 몇 년전 통계에 따르면 주정부 법원에 나온 민사, 형사사건 수가 무려 1억 건이 넘는다. 평균 성인 두명 중에 한 명이 재판을 했거나 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석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이성적인 태도일지는 모르나 이렇게 너무 많으면 사회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가히 변호사들의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일로 먹고 사는 변호사가 100만명이나 된다. 미국에는 변호사를 놀려대는 각종 조크가 많아 이를 따로 ‘로이어스 조크(Lawyers
지방자치제가 완전히 정착된 어느 날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제주도 의회가 독립적인 군사정책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전라북도청은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선언하며, 울산시장은 대통령 방문을 거부하며 홍콩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는 한낱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흔히 일어나는 것이 미국식 지방자치제이며 미국이 지닌 다양성의 독특한 양식이다. 자치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미국의 지방자치제어떤 집단이 자기들의 생활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다스리는 것이 문자 그대로 자치(自治)이다.
안동김씨가 조선 왕조를 농단했던 양과 질로 본다면 철종 재위 14년동안의 장난질은 새발의 피였을지 모른다. 자신이 정조대왕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인지, 왕족인지도 모르고 강화도에서 똥지게 지고 농사짓던 전계군의 셋째 아들 이원범을 데려다 왕좌에 앉히고 안동김문의 수장(首長)인 김문근의 사위로 삼아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온 나라를 당파싸움과 매관매직과 부정부패의 삼천리로 만든 안동김씨가 못할 일은 없었다. 물론 안동김씨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철종 재위 14년간 한성판윤만 110명··· 하루 만에 바뀌기도즉위 3년만에 친정(親
지난 겨울, 어느 토요일 아침. 경기도 모 신도시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에 새로 입주한 동창생을 찾았다. 오후엔 중요한 스케줄이 4개나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아침에 갈 수밖에 없었다. 대지가 200여평씩은 됨직한, 고급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부자동네. 마을 초입에 있는 24시간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난데없는 개짖는 소리와 함께 24시간 편의점에서 나오던 어떤 아가씨가 비명을 질렀다. 20여m 떨어진, 대문이 빼꼼 열린 어떤 집에서 뛰쳐나온 커다란 개가 밤새 알바 일을 마치고 문을 나서던 여학생을 문 것이다. 뛰어가 보니 넓적다리
[오피니언타임스] 많은 사람들은 좋은 나라, 나쁜 나라의 기준을 국민소득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기준을 달리하면 그 답은 간단치가 않다. 가령 서울은 누군가에겐 살기 좋은 도시일지 모르나 공기오염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쁜 도시로 구분된다. 총기 단속을 기준으로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비문명적이고 야만적인 나라는 전쟁이나 테러가 늘상 있는 중동이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미국이다. 총을 애용하는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끔찍한 총격전이 벌어져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총을 만들어 사고 판다. 미국
[오피니언타임스]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뉘른베르크 국제전범 재판에 한 목사가 기소되었다. 나치전범을 재판하기 위한 법정에 선 목사의 혐의 내용은 ‘자신이 맡고 있던 고아원에 수용된 유태인 아동 3명을 나치에게 넘겨 가스실에서 죽게 했다는 것’이었다.목사의 변호인은, “목사는 기독교적 사랑을 바탕으로 평소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이웃에 사랑을 베푸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고아원에 수용되어 있던 유태인 아동은 총 83명이었는데, 3명만 나치에게 넘기고 80명을 살린 것이다. 이 목사의 기지와 결단이 없었더라면 83명 모두가 죽을 뻔했다
[오피니언타임스] 과거 매관매직이나 계파정치, 정치적 논공행상의 흥정물에 다름없었던 ‘전국구’와는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행 비례대표제 역시 아직 그 비리의 뿌리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는 정당 공천으로 선출된 직능 대표들이 현장과 직능을 대변하고 그것을 사회에 확산시키며 제도 확립과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치제도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정당이 과연 그럴 만한 사람을 잘 골라냈는지와 뽑힌 후에 과연 그들의 행보가 그러한가 하는 점이다.나같은 소시민으로선 국회의원처럼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