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현대인들이 “욜로”(YOLO,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를 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걸음마를 떼고 책가방을 등에 진 이후부터 쉴 틈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이 등 떠밀려서 혹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살아왔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이 말이다. 교육열이 대단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정확한 목표를 정해두고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성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작은 엄마네는 아들만 셋이다. 모두 나보다 어린 남동생들인데 첫째가 고등학교 3학년, 둘째가 고1, 그리고 막내가 13살로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왜 13살인데 초등학교 5학년이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우리 현수가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현수는 자폐와 발달장애의 경계에 있다. 그래서 말이 조금 느리고 발음도 아주 명확한 편이 아니다. 나를 ‘연수누나’라고 부르지만 ‘연두누나’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수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현수만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연두누나’가 너무나 값지다
나이가 들어 잠이 든 채로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한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장례식장 구석자리에서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고 떠들어댔다. 호상의 사전적 의미는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이다. 그러나 장례식장내 사람들이 말한 호상의 의미는 일종의 좋은 죽음이었다. 좋은 죽음이라니, 너무나 이질적인 말이었다. 세상에 잊혀져도 좋은 죽음은 없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 일이고, 그러한 사람이 떠나는 것 또한 뜻깊어야 한다. 함께 한 기억과 추억들은 결코 무게를 잴 수 없으니 말이다.지난 몇 년간을 통틀어
만일 곰과 참새 중 하나로 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곰을 택할 것이다. 곰과 참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 속 곰은 마냥 게을러 보인다. 반복되는 생활에 안주한 모습은 소크라테스의 “배부른 돼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곰의 말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집도, 먹이도 있는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게 과연 나쁠까.현대인들도 보장된 삶 속 안전함, 안정감을 사랑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가서 취업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함이다. 집을 마련하
영화 ‘문라이트’를 봤다. ‘제28회 GLAAD 미디어 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이 영화는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불안정한 성장기를 담담히 그려낸다. 감독은 소외된 흑인 계층, 동성애, 마약과 폭력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영화 흐름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영화는 흑인과 동성애라는 미국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약쟁이 엄마와 함께 사는 샤이론이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과정,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친구와 만나기 위해 두꺼운 코트를 꺼내 입었다. 입김을 길게 내쉬며 무심히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툭하고 무언가 손가락 끝에 걸렸다. 손때 묻은 작은 사진첩이었다. 사진첩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크기였다. 손바닥을 겨우 채우는 그것은 펼치면 8~9장 정도의 사진이 길게 늘어졌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거기 있었다.지난 설날 할아버지가 준 물건이었다. 괜찮다는 말에도 할아버지는 끝까지 코트 주머니에 사진첩을 넣어줬다. 어떤 의미로 주신 걸까.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사진 속 어린 나
사과에도 법칙이 있다. 올바른 사과의 방법은 CAT만 기억하면 된다. Content(내용), Attitude(태도), Timing(시기)이 그것이다. 물론 사과의 법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잘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태도가 필요하다.사과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말들이 있다. 첫번째로 나는 누구이며 언제 어디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명확히 밝혀야한다. 둘째, 누구에게 피해를 끼쳤는지와 실제 상황과 다르게 알려진 사실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앞으로
고등학교 친구 A를 오랜만에 만났다. 얼굴보자는 말은 자주 했지만 막상 시간이 안 맞는다는 핑계로 미루고 늦춰졌던 약속이었다. 서로의 SNS를 통해서 소식을 접하다 졸업 후 1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정말 기뻤다. 우리는 한적한 골목 끝 조용한 카페에서 몇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다. 8할이 시답잖은 농담과 지난 시간에 대한 안부였지만 충분히 즐거웠다.이야기 도중 그는 컵홀더를 만지작거리며 내게 작은 고백을 했다. 오늘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나 사실 자퇴했어.” 예상 못한 단어에
어린 시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으며 이것저것 재지 않는, 꿈 많은 어른이 되고자 했다. 2016년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는 서류상의 어른이 됐다.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되고 나니 두려운 일들이 많아졌다. 보다 자유롭지만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 속 깊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겉치레에 신경 쓰고 철없는 어른들이 참 많은데 나는 왜 기를 쓰고 멋진 어른이 되려 했을까. 대학 생활과 대외활동으로 바쁘던 스무 살의 어느날, 가족 저녁식사 자리에서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온 수많은 청년들은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스펙쌓기에 열중한다. 대학생들은 2개월여의 방학 기간 동안 각종 자격증 및 어학 공부, 봉사활동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또한 학년이 높아져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은 조급한 마음에 새로운 도전이나 낯선 타지로 떠나는 여행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스펙(Specification)을 쌓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학교 공부와 직결되는 학력과 학점은 기본이고 토익, 토스, 토플, 오픽과 같은 어학 점수도 중요한 요
대학 졸업은 20대의 첫 끝맺음이다. 험난한 사회로 나아가기에 앞서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간 보고 배운 것들을 평가받는 졸업 작품이 그것이다. 인문계는 논문이나 시험을 통해, 예체능·이공계 전공자들은 작품을 통해 그간의 배움을 최종 점검한다.11월은 대학교 시험기간도 아니고 각 기업의 공채도 얼추 마무리되는 시기다. 하지만 캠퍼스 한편은 여전히 마지막 과제인 졸업 작품 만들기로 분주하다.대학생들은 미술, 의상 디자인, 컴퓨터 공학 등 전공에 따라 새로운 앱을 개발하거나 3D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4년간의 노력을 쏟아내 세
스무 살이 되고 좋은 것은 딱 하나였다. 몰래 피우던 담배를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피울 수 있게 된 것. 스무 살의 봄이 나에게 왔을 때 엄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학교 사물함에 담배를 넣어 두던 나날은 멀어진 지 오래였다. 지나가는 담배 냄새에도 눈을 찌푸리던 나였지만 입시의 압박은 그 무엇보다도 무거웠다. 때문에 지난 일 년은 니코틴 냄새로 잔뜩 질척거렸다. 아버지는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존경받는 교수님이셨기에 나의 열아홉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음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전공을 따라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