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지갑을 펼치면 오랫동안 묵혀둔 만원권이 찬란하게 빛나고, 반짝이는 신용카드로는 어머니의 선물을 망설임 없이 사고 싶었다. 그저 그 뿐이었다. 살육경쟁(殺戮競爭)의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가가 되어 자기소개서를 썼고, 배우가 되어 면접에 임했다. 최종 합격통지를 받고는 부리나케 상경하여 지하 단칸방에서 삶을 꾸려갔다. 그렇게 6년이 지나버렸다.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논리에도 기계적으로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으로 맥주잔을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거세다. 거의 모든 학술대회에서 약속이나 한 듯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내세웠다. 조만간 큰 변화가 휘몰아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교육공학 박사 과정 중인 필자 또한 지난달 한 학회에서 등 뒤에 4차 산업혁명 현수막을 배경으로 전문가인양 주제 발표를 했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초연결성이며 핵심 기술은 AI(Artificial Intelligence)와 IoT(Internet
2009년도에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를 잠시 멈추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외면당한 학생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눈앞의 생존경쟁만 준비하다가 사회로 나가버리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다. 선거 캠프명은 ‘총학의 정석’으로 정했고, 학생사회에서 총학생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을 스스로 실천해보고자 했다.그리고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했고, 다음날 부리나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사실이었다.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행렬했고,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국화
외제차 바퀴의 기름 때를 벗겨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타이어가 이빨이라면 휠(wheel)은 잇몸인데 이 녀석은 태생적으로 흰색인지 회색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잇몸이 어찌나 튼튼한지 내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문질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무작정 거품이 일어나기만 빌며 스펀지로 좌우를 닦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스펀지에 구정물이 차오르면 내 왼발 곁에 둔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담가 스펀지를 목욕시켰다. 몸 구석구석에 기생하던 건더기를 끄집어냈고, 최대한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부드럽게 문질러주었다. 새벽시간이라 아무도 보
“규진, 이제 그만 말하고 글을 좀 써봐” (조직학습과 지식생태학 수업 中)박사과정에 입문한 후 지도교수가 강의시간에 한 말이다. 글보다 말이 앞섰던 나는 과제마저도 ‘글’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말’함으로써 순간을 모면하려고 했다. 이러한 ‘말하기’는 석사과정과 직장생활 중 유독 빛났다. 알고 있는 사실보다 부풀릴 수 있는 능력에 멋들어진 프리젠테이션을 가미하면 현장에서 바로 약을 팔 수 있는 수준이었다.하지만 교수님께 뼈아픈 지적을 받고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평소 SNS를 일절하지 않았던 나는 블로그를 열어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
똑똑한 양(Excellent Sheep)이 넘쳐나는 시대‘공부의 배신’ 저자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명문대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순종적인 양이 되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청년들 또한 학창시절부터 주변의 수많은 양치기에 의해 길들여진 나약한 양이 되어버렸다. 청년들은 왜 양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단 몇 초만 고민하면 쉽게 답을 얻어낼 수 있다. 바로 ‘동기(motivation)’의 문제이다. 왜 학습하는지에 대한 큰 동기 없이 타성에 젖어 교육과정을 밟아나가니 제대로 배울 수도 없고, 그랬기에 배운 것을
“사람들은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심각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집과 목초지와 곡창지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150쪽인류는 어느 날 수렵채집을 하는 방랑의 낭만을 중단하고, 땅에 선을 긋고 작물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여유 있는 삶을 누리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사람이 식물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식물에게 사람이 길들
밤 11시가 넘어가면 배고파지는 것이 원래 인간인가. 이때부터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재빨리 치킨 집에 전화해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풍족한 육질을 즐길 것인가.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납치하여 숨죽이고 흡입할 것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냉동실에 얼어버린 채 숨 쉬고 있는 만두를 끄집어 내, 그들의 온 몸에 약간의 물기만 칠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뜨거운 속을 탐(貪)할 것인가. 나는 더 이상의 상상을 멈추고, 비빔면 두 개를 먹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본연의 ‘찰랑거림’으로 나를 만족시키기 때문이
#1 생각하기: 오직 ‘너’만 생각해하버드의 생각수업(후쿠하라 마사히로, 2014)은 세계 수준의 명석함을 만드는 25가지 질문을 정리한 책인데, 그 첫 번째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연암 박지원의 생각수업(강욱, 2007)은 옛 선현들의 지혜와 뜻을 살펴 볼 수 있는 책인데, 첫 번째 주제가 ‘까마귀야, 너는 정말로 검은색이니?’ 라는 ‘본연의 나’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제임스 앨런의 생각수업 시리즈(제임스 앨런, 2015)에서도 ‘생각과 성품’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성품은 무엇인
2016년 11월 20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인 최순실 등의 범죄에 공모한 것으로 중간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범죄 사실이 의심되므로 대통령이 ‘피의자(被疑者)’ 신분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사실 국민 대다수는 심증적으로 박근혜의 헌법 유린 사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현직 대통령의 피의자 입건 사태를 접한 국민들은 분노와 수치심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래서 주권자 국민은 각 처소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프레임으로 해석
“다음 강의시간은 자연과 교감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강의실은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용히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것은 분명 또 다른 종류의 엄청난 과제일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칠판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혹자는 그저 농담일 거라는 추측으로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교수님의 다음 말씀을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창백한 교실을 벗어나 자연으로 가보세요. 나무와 대화도 하고, 이름 모를 꽃의 옆자리에 앉아 하루의 삶도 돌아보세요. 그래도 혹시 시
“원장님 말씀대로 이 섬 안에서는 모든 일이 입으로 말해지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에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오히려 상식이 되고 있는 편이구요.”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51쪽4·19세대 작가 이청준은 소설을 통해 ‘신뢰’의 문제에 대해서 논(論)하고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은 소설을 읽는 내내 침을 삼키게 만든다. 본 소설은 주인공인 조백헌 대령이 지배 계층이 아닌 평범한 주민이 되어 섬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고요한 여운이 남는 해피엔딩
안부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의 첫 마디는 ‘밥’에 관한 것이었다. 서른 살 넘은 아들의 밥걱정에 때로는 하실 말씀을 잊곤 한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하는 날이면 반드시 ‘무엇이 먹고 싶은지’ 확인하신다. 그리고 나의 일정을 체크하면서 집에서 몇 끼를 먹을 수 있는지 계산하고,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을 끼니마다 만들어주신다.서울에서의 삶이 고달픈 상황에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말해버리는 불효를 범한다. 돼지고기 두루치기, 김치찌개, 유부초밥, 미역국, 김치전, 쇠고기전골, 갈치찌개&hell
영화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밀정,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기대작들이 추가로 개봉하면서 볼만한 국산 영화가 풍성해졌다고들 한다. 평소 영화를 즐기는 나로서는 모든 영화를 섭렵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 감상후기나 평론가 해설을 꼼꼼히 읽어보며 흥행작들의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배우의 연기력, 둘째는 신선한 소재, 셋째는 사회적 메시지가 그것이다. 나는 요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화 한 편을 유심히 관조(觀照)하고 있다. 단 시간에 대한민국 정계와 언론계가 앞다투어 이슈화에 앞장서고 있기에 올해 최고의 블
“김현은 라면을 먹으면서, 상실된 삶의 두께를 괴로워했다”김훈, 『라면을 끓이며』, 문학 동네, 19쪽지금은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 김훈이 표현한 것이다. 이 한줄을 읽으면서 라면은 굉장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면발과 국물이 전부인 흔해빠진 음식이지만 한 사람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상실된 삶. 그리고 두께를 들여다 봄. 마지막으로 가슴 치는 한탄. 라면은 인스턴트식품이라 재빨리 먹어치움을 당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깊은 사유의 장(場)을 열어준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