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는 타인을 인내하는 수행이다. 내 계정에 들어찬 이물(異物)들을 참아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물일 것이므로 공정한 계약이긴 하다. ‘좋아요’ 아래 가려진 솔직함, 우리는 타인의 일상이 지긋지긋하다.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갔다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 했을 때, 타인의 피드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 타인이 무단 침입한 듯 불쾌했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독립성을 무시한 체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나의 소통이란 서로 합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지 모든 수다를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아까 내가 하는 거 안 봤어?"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버벅대던 난 그 소리에 더 허둥댔다. 팀장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오늘도 어김없이 안보교육이 시작됐다. 국회 보좌관 80%가 빨갱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하라는 불호령을 들으며 김치찌개를 끓였다. 서이초 교사의 사망이 전교조의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길 들었을 땐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 됐다. 입을 열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 조용히 숟가락만 뜨고 있는데 팀
나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내 생각과 지식은 정답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에도 맹점이 있다. 양자역학도 진리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언제나, 누구나, 틀릴 수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늘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오류가능성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바로 오류가능성일 것이다.요즘들어 오류가능성을 더 많이 생각하는 이유는 당대가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습관처럼 한다. 노키즈존으로 대표되는
모두가 유튜브를 보고, 유튜버를 꿈꾼다. 하나둘 티브이에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알고 보니 유튜브 스타다. 이제는 지식도 도서관이나 포털 사이트가 아닌 유튜브에서 찾는 시대다.유튜브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그 끝을 모르고 팽창하고 있다. 유튜브의 성공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다. 뉴웨이브 그룹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는 MTV가 개국할 때 나온 곡이다. 정확히는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이 곡은 MTV의 상징이자, 새
MZ: Millenial + Z세대를 합쳐 일컫는 용어로, 1980 ~ 2000년대 출생자까지의 세대를 아우르는 용어이다.문득 MZ 세대에 대해 사람들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대충 어떤 이미지인지는 알겠는데, 글로 표현하기에는 모호하여 가장 가까운 기성세대에게 묻기로 했다. MZ세대는 어떤 애들인 것 같냐는 필자의 다소 선문답같은 물음에 필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굉장히 스마트하고, 글로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 일 시키는 거 힘들고.... 딱 너같아.”스마트, 글로벌, 자기중심적, 일 시키
아버지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기업에 입사해 임원이 됐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당신은 매일 건강을 팔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를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당뇨가 찾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성격이 날카로워져 신경질과 짜증으로 가득한 사람이 됐다. 문학과 스포츠 같은 취미는 즐길 시간이 없어 긴 겨울잠에 빠졌고, 정년퇴직 이후에야 깨어났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회사일과 공부에만 매달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누나와 난 그런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에게 항상 고마워해야 한
얼마 전 친한 동생과 카톡으로 MBTI 얘기를 하며 서로의 유형을 추측하다가 "누나는 S(현실, 실용) 일 거고..."라는 말을 들었다.- 어? 나 비현실의 끝판왕인데 나 현실적으로 보이는구나? 어찌 보면 성공인 건가?- 근데 진짜 비현실적인 사람은 공공기관 10년 넘게 못 다녀. 그렇게 끝판왕인 사람은 ㅋㅋ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 그가 툭툭 던지는 말 마디마디 다 뼈를 때려서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 맞지. 누가 봐도 나의 궤적은 현실에 발을 찰싹 붙이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온 삶이었지.이십 대 후반의 나는 세상의 잣대에서
퇴근 후 다소 늦은 저녁 시간, 아이를 데리러 처가댁에 차를 타고 부랴부랴 갔다. 장모님께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계셨고, 나와 아내는 아이의 옷과 장난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린 이 장난꾸러기의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바쁘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고, 천사 같은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애교 섞인 미소를 날린다. 진짜 심장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럽다. 이제 아이를 빨리 재우면, 우리 부부는 넷플릭스를 틀고 맥주 한 캔과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조직의 목표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이지 사람이 아니다.' - 세스고딘, 린치핀10년 넘게 조직에 몸을 담고 나서 곱씹어 보니 조사 하나까지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이 조직의 시스템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회사에 다니면서 정확한 정의조차 모르는 것 같아 몇 년 전 공공기관의 의미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법이 정한 의미의 공공기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상 공공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에, 누가 어느 회사 다니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
대학생 때 활동한 문학동아리에 사십 대 학부생이 있었다.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갑자기 문학이 하고 싶어져 수능을 다시 봤다고 한다. 국문과에서 문학강의만 골라 듣던 그는 매주 새로운 시와 소설을 써오곤 했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폭은 누구보다 넓었고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적절했다.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핍진성'이라는 단어였다. 어느 술자리에서 그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에 대해 핍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했다. 나를 비롯한 동아리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맥주잔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생전 처음 들어
나의 경우에는 한 번씩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초 단위 환산하여 타이머에 걸어둔다. 1년이 약 3153만 초이고,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15억 남짓한 시간이다. 물론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다 쓸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렇게 1초씩 줄어드는 타이머를 지켜보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든다. 15억은 꽤 큰 숫자라는 생각, 15억 원이라는 금액은 얼마나 큰 걸까라는 생각,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삶은 사실 유한한 것이었다는 생각 등.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
인간은 일반화를 좋아한다. 일반화의 효용은 쉽고 편하다는데 있다. 일반화에 싸잡힌 집단 개개인의 사정과 맥락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고려하지 않으니 혐오하긴 더 쉽다. 딸배는 딸배고, 기레기는 기레기이며, 맘충은 맘충이다. 저쪽을 향해 준엄한 윤리적 비판을 가하는 이쪽의 도덕성은 절로 드높아진다는 추가 효용까지 갖췄으니 이정도면 ‘가성비 甲’의 칭호가 타당하다 하겠다.위에 언급한 혐오 표현들을 직접 사용한 적은 없다. 그러나 특히 배달원들을 향한 내 시선이 과히 곱지 못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내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지 맘 둘 곳 없는 척박한 회사에도 내가 좋아하는 동료 직원들이 몇 명 있다. 나보다 1년 입사 선배이자, 학번은 같은 L차장도 그중 한 명이다. 회사에서 선후배로 만난 관계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 처음부터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나와 달리 회사에 애정이 많고, 업무 능력이 뛰어남에도 뒤늦게 승진을 했다. 내가 상사라면 똑똑한 그부터 데려다 쓸 거 같은데, 회사는 늘 정반대로 그를 대접했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이런 사람도 필요하고 저런 사람도 필요한 것쯤은 이제 나도 안다. 다 L차장 같을 수없고, 다 내
20대 중반을 지나며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했다. 사람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였다. 서로 다른 것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논리로 도토리 키 재기 해봐야 우리는 사실을 마구잡이로 말아 놓은 개밥의 도토리였다. 앙앙, 내가 분노의 치와와 같아서 키보드 워리어를 은퇴했다.덕분에 건강한 시민이란 다른 것과의 거리를 너무 멀지 않게 유지하는 사람인 정도는 배웠다. 그러나 그에 이르진 못했다. 너무 멀어져 버렸다. 이 거리감만 지키면 세상은 이런들 어떠하지도 않았고,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았다
“아참, 댓글창에 기레기네 뭐네 하는 말들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모 언론사 인턴기자로 입사했을 때 교육을 맡았던 한 선배의 당부였다. 선배의 당부가 단순한 노파심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우리 새파란 인턴 기자들이 ‘기레기’란 단어에 익숙해 지는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걸 기사라고 썼냐 기렉아’, ‘넌 돈 쉽게 벌어서 좋겠다 기렉아’, ‘진짜 한국 기레기들 노답’ 등의 댓글들이 병아리 인턴기자들에게 쏟아졌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계약직 6개월 동안 내가 써낸 기사들의 절대 다수는 내가 봐도 서글픈
오후 6시 땡,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셔츠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소재가 리넨 이어도 그렇지, 분명 아침에 곱게 다려 입고 나온 옷이었다. 여기저기 가늘고 굵은 주름이 패턴처럼 가득 차 있고 볼품없게 꼬깃해진 셔츠는 아침과는 전혀 다른 옷... 아니 그냥 천 쪼가리였다.먹고 살겠다고 옷이 이렇게 구겨지는지도 모르고 일했구나... 실로 오랜만에 나 자신이 대견하고 밉지 않은 순간이었다.사무실에서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일의 의미를
살다 보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다툰 것도 아닌데 괜히 밉다. 모두가 나와 맞을 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여전히 밉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밥 먹을 때 내는 소리까지 신경 쓰인다. TV를 보다가도 갑자기 떠올라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 사람 때문에 내 저녁시간을 망쳤다는 생각에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대민업무를 시작하고 나의 일상이 저랬다. 상대방이 쉽게 뱉은 말 한마디, 못마땅한 표정, 손가락 끝으로 민원대를 딱딱 치던 소리가 생각나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열이 오르곤 했다. 진상 민원인이 없는 날도 마찬가지
6월 첫 주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가 집에 도착했다. 내 몸 여기저기 나도 좀 신경 써달라는 듯 조금씩 문제가 있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단 관리 없이 이 정도면 선방했네 하면서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내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건강검진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작년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사소한 문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 건강검진 선택 항목에서는 그동안 안 해봤던 스트레스검사를 해봤는데 특히 그 결과가 몹시 처참했다. 스트레스 저항도,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모두 "매우 나
공공기관의 복지부동한 실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뜨면 예외 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어찌나 불친절한지 상전이 따로 없더라', '하는 일도 없으면서 국민 세금 갈취하는 공무원들은 다 잘라야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 밥줄 끊으라는 말을 쉽게도 한다며 혀를 찼겠지만, 요즘은 저런 댓글이 일부나마 공감되니 놀라운 일이다.예전엔 몰랐다. 부모님이 세금에 왜 그렇게 질색하는지. 국민이라면 당연히 내는 거고, 정부가 어련히 잘 사용할 거라 믿었다. 철없는 마음에 '그 돈 없다고 우리 가족이 굶는 것도 아닌데...
직장생활을 나름 누구보다 재미있고 힘차게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몸과 마음은 마냥 가볍지는 않다. 주말 아이를 데리고 메트로폴리스를 횡단하느라 피로가 가중되었고, 이번 주 해야 할 일(미팅, 보고, 결재 등)들이 머리에 스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비슷하지 않을까. 의 저자 김민영 작가는 출근길을 “적당한 피로와 절반 정도의 무기력과 나머지 절반 정도의 활기”로 표현한 바 있다. 피로, 무기력, 활기의 비중을 잘 조절하는 것이 긴요할 터이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