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던 아이나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었다. 생각난다. 유치원 때였을 것이다. 운동회가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였는데, 당시 2년이나 빨리 유치원에 들어갔던 내가 다른 애들과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출발 후 3초도 지나지 않아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4명중에 4등이었다. 나는 부정출발을 문제 삼아 경기를 취소시켰다. 그렇게 출발만 세 번, 나는 내가 맨 뒤로 처질 때마다 바닥에 주저앉아 경기를 끊어버렸다. 나도 지치고 나머지 3명의 형아, 누나들도 지치고, 심판을 보던 선생님도 지치고 결국 내가
[오피니언타임스=정수연] 여행은 약 한 달치의 기억이지만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무리 지으려 한다. 약 한 달, 유럽에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시간에 쫓기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도망치고 싶어 무작정 떠났다. 그 어느 날엔 온종일 걸어 아픈 다리를 이끌고 트램 정류장에 앉았다. 눈앞에 보이는 길가의 나무와 중세 유럽풍의 건물들, 그 위로 어슴푸레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 이국적인 풍경에 멍하니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트램을 몇 번 보내고 나서야 숙소에 갈 마음이 들었는지 가방을 뒤적거리며 지갑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예전에 내가 사는 동네에 해상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찾아갔다. 그동안 국립공원이나 다른 관광지를 갈 때마다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주어지는 가격 할인 혜택을 은근히 부러워했던 나와 아내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며 기뻐했다. 막상 가보니 지역주민에게는 1000원이 할인되었다. (얼마 후 2000원 할인으로 변경되었고 지금은 조조, 심야 시간대에 한해 더 많은 금액이 할인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는 더 많이 할인되는 곳도 있던데 할인율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지만, 줄을 서서 탑승권을
[오피니언타임스=신영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 ‘뷰티풀 데이즈’가 선정됐다. 이나영 주연의 이 영화는 탈북여성이 조선족 남성과 매매혼을 하여 낳은 아이가 14년 만에 한국으로 찾아오면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원시사회에서 여성은 가족 구성원의 주요한 노동력으로 간주되고 여성이 출가한다는 것은 노동력의 손실로 보았다. 그래서 신랑 측에서 신부나 신부의 집안에다가 그 손실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매매혼이라 함은 탈북여성들은 중국에 장기 체류하기 위해서 중국 남자와 혼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몹시 추웠던 올해 초, 대한민국을 한동안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 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테니스 선수 정현.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정현은 파죽지세의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인 최초로 4강에 올랐다. 강자들을 차례로 꺾는 그의 행보에 국민의 관심이 커져갔는데, 그 중 하이라이트는 노박 조코비치와의 경기였다.조코비치는 매 대회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선수다. 탑랭커 조코비치를 상대로 비교적 약체인 정현이 완승을 거두자 세계가 놀랐다. 물론, 당시 조코비치 몸 상태가 100% 정상은 아니었다. 그는 작년에 팔꿈치 부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이말 삼초라는 말이 있다. ‘2학년 말, 3학년 초’의 줄임말로, 그 사이에 애인이 없으면 졸업 때까지도 이성 교제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뜻이 바뀌어 2학년 말, 3학년 초에 정확한 꿈, 구체적인 진로와 목표가 없으면 앞으로의 미래가 어렵다는 말로도 쓰이곤 한다. 그런데 나는 현재 2학년 말도, 3학년 초도 아닌 3학년 말에 있다. 마냥 영원할 것 같았던 20대는 어느새 중반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아마 해가 바뀌면 고인물(학번이 높은 사람을 오래 고여 있는 물에 비유해서 부르는 말), 화석
마른 체형에 안경 낀 강재용씨(가명)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해보였다. 책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뜻 보면 고시생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앞뒤 설명 없이 공사 현장에서의 삶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흔쾌히 승낙하여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Question)에 답(Answer)을 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Q) 보통 몇 시에 어디로 출근하시나요.A) 일반적으로는 인부가 새벽 5시경 인력사무소에 대기하고 있으면 일을 배정받아 현장으로 가는 구조입니다. 상황에 따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스물 두 살의 봄날, 횟집에서 고등학교 선배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해 대학생이 네 명에 은행, 자동차회사, 공공기관 등 다양한 직종에 몸담은 이들이 열댓 명이었다. 눈치 보지 말고 시키라는 선배들의 호령에 광어 대신 참돔을 주문했다. 소맥에 이어 팔자에도 없는 위스키로 2차를 달리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을 무렵, 갑자기 누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재촉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신을 차려보니 선배 몇 명이 가운을 입고 웬 방에 앉아 있고, 벽에는 처음 보는 여자들이 서 있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나는 서둘러 그
겨우 이런 미래형 식사애니메이션 ‘드래곤볼’에는 선두(仙豆)라는 것이 등장한다. 아직 손오공이 원숭이 꼬리를 단 꼬마였을 때, 높은 탑에 사는 고양이 신선 카린에게서 처음 받아먹은 콩이다. 이 선두는 한 알만 먹어도 기력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 아무리 심각한 상처라도 순식간에 낫게 만드는, 그야말로 신선의 콩이자 묘약이다. 전투가 잦은 애니메이션에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드래곤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법하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정말로 저런 선두가 개발되겠지? 한 알만으로 식사도 되고 치료도 되는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동물구호단체에서 일하는 탓일까.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오며 유독 시골 개들이 눈에 밟혔다. 개들은 태생적으로 주인과 강한 애착을 형성하며 자유롭게 산책하길 즐긴다. 그런데 짧은 목줄에 묶여 추우나 더우나 밥그릇만 끌어안고 사는 시골 개들의 모습은 참 딱해보였다. 흔한 시골 풍경이라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그중 8kg 남짓한 아기 리트리버가 기억난다. 유독 어리고 꼬질꼬질한 개라서 그랬나보다. 녀석은 택배트럭 하치장에 홀로 묶여 있었다. 생후 4~5개월 남짓한 수컷인데, 아직 젖니도 채 자라지 않았다. 녀석은 초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지난 8월 31일, 오마이뉴스에서 원룸촌 쓰레기 불법투기 문제를 다뤘다. 그 기사는 문제의 주범을 외국인으로 단정했다. 원룸촌이 밀집된 충남 태안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일자리 때문에 1-2개월 머물다 갈 뿐인 외국인에게 질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가 원룸촌의 쓰레기 사정도 다르지 않다. 포털에서 ‘원룸촌 쓰레기’를 검색하면 전국의 문제들이 검색된다. 지자체는 자포자기한 채 양심에 호소했다. 이곳의 문제 원인도 '외국인' 때문이다. 대학가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서로 '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대학 사이버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꿀강의와 그렇지 않은 것. 여기서 꿀강의란 출석, 과제, 시험이 쉽고 성적받기 좋은 과목을 뜻한다. 강의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 수강해야 출석이 인정되는 과목들도 있지만 일부 과목은 강의 수강 버튼만 눌러도 출석이 인정된다. 오랜 기간 강의 내용과 시험 문제가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년전 혹은 십여년 전의 내용이 그대로 반복된다. 이런 과목은 포털 사이트에 강의명을 검색하면 기출문제와 강의 내용을 정리한 ‘족보’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학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전통시장에 왕왕 들르곤 한다. 아직도 전통시장 특유의 매력, 맛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적잖은 어르신들은 아직도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더 익숙하게 생각한다. 필자는 깔끔한 대형마트, 복합쇼핑몰에 가는 것을 즐기는 동시에 전통시장에 대한 애착 역시 갖고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인 걸 알지만, 전통시장이 발전을 이어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부족한 의견을 보태고자 한다.먼저 이 둘을 꼭 대립적인 개념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주변 어른들은 한창 예민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청년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이 내 앞길을 막는단 생각과 나보다 잘난 친구를 향한 시기·질투가 그 나이쯤에 한꺼번에 찾아오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랬다. 그 나이쯤이면 응당 겪는 고뿔에 걸려 2018년 상반기를 매일 눈물로 보냈다. 친구를 만나 위로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올 때마다 일기를 썼다.‘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성장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다지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성장통을 겪는 것일까. 그래
[오피니언타임스=시언] 고등학생 땐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 행복에의 집착은 명백한 불행을 반증한다. 집이 망한 것도, 성적주의 사회에서 전교 꼴등을 도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행복이 그토록 간절했던 걸 보면 고등학생 때의 나는 명백히 불행했던 모양이다. 책 속엔 답이 있겠거니 해서 남들 공부하는 야자 시간에 철학과 문학을 읽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그리스인 조르바』(카잔차키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황지우) 등이었다. 책 속엔 행복 대신 행복으로 가는 이정표만 난무했다. 신을 죽이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쓰다보면, 가끔 글태기라는 것이 온다. 글태기란 글쓰기+권태기를 합친 은어로 주로 글 쓰는 직업에 속한 이들이 많이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글이라는 것이 그저 끄적이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엄청난 고뇌와 스트레스를 바탕으로 쓰게 된다. 또한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짜장면 집 자식은 짜장면을 즐겨먹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가진 직업이나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혼자서 발악을 하더라도 만들어지지 않는 게 인연이다.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참여해야 형성된다. 여기에 일종의 우연적 요소와 정성, 노력, 그리고 시간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인연이 될 대상의 주변을 뱅뱅 돌지 않아도 ‘관계’라는 틀 안에 안전하게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에 이러한 조건들이 다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인연의 필요조건으로는 단연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겠다. 인연(因緣)이란 어떤 사람 혹은 대상과 맺어지는 ‘관계’로 정의된다. 혼자서만 대상을 그리워하고 사
[오피니언타임스=정수연] 독일의 뉘른베르크 역에서 열차를 타고 안스바흐(Ansbach)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를 타고 로맨틱 가도를 타고 달리다보면 딩켈스뷜(Dinkelsb?hl)을 만날 수 있다. 딩켈스뷜은 로맨틱 가도에 위치한 독일의 소도시로 중세 성벽 속에서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도시이다. 딩켈스뷜은 매년 7월에 약 2주간 열리는 킨더체흐(Kinderzeche)라는 어린이 축제로 유명하다. 마침 축제 기간이기에 딩켈스뷜로 떠났다. 딩켈스뷜의 어린이 축제는 이름에서 보여주듯 ‘어린이’가 주체가
일반화와 혐오[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무지의 무서움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작정 어떤 대상을 미워할 때 나타난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무서운 건 그들이 누군가를 위협할 힘을 가져서라기 보다는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에 대해서 한국 영화가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인종차별적이다. 주기적으로 고개를 드는 반공 프레임만큼이나 문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지난해 흥행했던 두 영화 , 는 각 영화가 그린 국내 중국동포 사회의 모습으로 인해 재한조선족 단체로부터 항의와 성명을 받았다. 사실 이 사안은 비단 두 영화만의 문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9월26일까지 5일이나 쉰단다. 뭐라고? 원래 추석이 이렇게 길었나? 대체휴일이라고?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생겨났지? 내가 일할 땐 없었는데.어차피 토토토토토토일인 백수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명절이다. 본격적인 친척들 개소리의 시즌이 돌아왔다. 개소리라는 것은 할 말이 없을 때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말이라고 정의한단다.백수에게 휴일이라는 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지만 명절은 아주 특별하다. 바로 친척들의 참견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던지는 소리가 백수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