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우디] 지원동기에 쓸 말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다지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한 때는 프리터족(프리아르바이터)을 꿈꾸기도 했다. 여러 군데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출퇴근 하는 삶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오늘 한 일을 내일도 똑같이 하는 것이 너무나 무료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더군다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지금 같은 때에 살기 위해서 돈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꿈에 부풀어서 ‘영원히 일하지 않고 글만 쓸 거야’, ‘고흐 같은 예술가로 남을 거야’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내가 살던 동네에는 떠돌이 개 무리가 있었다. 아직 도로 정비가 되기 전이라 집들은 삐뚤빼뚤했고 골목 모퉁이마다 음식 쓰레기가 나뒹굴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전봇대에 색색의 현수막이 붙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합장을 뽑는 선거를 떠들썩 하게 치르더니 집들이 하나 둘 비어갔다. 사람은 떠났지만 집과 짐과 개는 남았다. 그 개들이 모여 무리가 되었고 어느새 스무 마리쯤 되는 큰 집단이 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개들의 무리가 궁금했다. 하얀 털복숭이도 있고, 집안에서 곱게 키우던 푸들도 있고, 꼬리만 분홍색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어느 순간 삶은 ‘살아간다’보다 ‘버틴다’는 표현에 가까워졌다. 딱히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할머니가 늘상 말씀하시던 ‘죽지못해 산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곤 했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의 이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건조하게 하루를 버티고 있다. # 대학입시와 취업몇년동안 바라본 대학입시에, 그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시험에 지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이상은 현실의 파도에 휩쓸려 더 이상 그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남자는 여자와 여자 사이에 선을 긋는다. 데리고 살 여자와 데리고 놀 여자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살 여자는 정숙하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 살만 맞댈 여자는 섹시하고 천박해도 좋다. 그럴수록 더 좋다. 어차피 일회용이니까.이런 식으로 새끼 낳고 살 여자와 새끼를 낳아선 안 될 성애의 대상으로서의 여자를 구분한다. 물리적 힘이 중요한 원시 시대 때부터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였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며 쉼 없이 새끼를 낳고 길러주는 것으로 가부장제 사회의 갈비
“우리가 취업을 했으면 안 이랬겠지?”“... 그랬겠지?”이 말을 끝으로 동생과 나 사이엔 침묵이 감돌았다. 봉천역 3번 출구를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방은 없다는 말을 들은 게 오늘만 5번째인지 6번째인지 헷갈렸다. 정말 취업에만 성공했으면 달랐을까. 그동안 난 뭘 한걸까.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듯 현기증이 일었다. 신림역과 낙성대역에서 돌아야 할 공인중개 사무소가 총 7곳이었고,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밭에 나가계실 시간이었다. 우리는 힘을 내야 했다.봉천, 신촌, 이대, 상도.. 한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축구선수가 꿈인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매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운동장에 남아 공을 찼다. 소년이 뛰어다니면서 일으키던 흙먼지는 해가 저물 때까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TV 속 국가대표 선수들을 동경했다. 훗날 월드컵에 출전하여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활약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소년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연습을 반복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성장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한 소년은 키가 자랐고, 축구 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이번 4월 16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비의 부재는 어쩌면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는 대답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니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벌써 4년’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은 나이였는데 나는 어느새 그들보다 한 뼘은 더 자라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렇듯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힐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울음으로 가득했던 날이 지나고 이듬해 봄 전국 대학교들에서 열리는 수많은 백일장에 참가했다. 이름 모를 대학교
‘귀하는 2차 필기 전형에서 안타깝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문구. 뭐가 안타까운 걸까. 괜히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났다.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보던 시사상식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3번 째 탈락.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 놈이다. 얘는 왠지 붙었을 거 같은데, 별로 받고 싶지 않다. 둘도 없는 친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미운지. 그냥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렸다.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지만 3분전에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느그 아빠가 독사(毒蛇)한테 물리가꼬 얼마나 고생핸는 줄 아나? 술 묵고 계곡에서 그 뱀을 겁도 없이 맥주병에 넣을 끼라고. 팔딱팔딱 뛰면서 느그 아비 살릴라꼬 병원에 안 갔나. 가서 주사를 맞아도 피만 나오고.”“그라다가 밀양에 독만 뽑다 돌아간 사람 집이 있다대.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아들한테 다시는 누구 독 뽑는 거는 하지마라, 아버지로 끝이다. 했다카더라. 아버지 유언이라 못 뽑아준다고 준다고, 거절을 하는데... 우야겐노? 내가 이 사람 없으면 장애인 자슥 데리고 우째 사냐고 하루, 이틀 사정사정 하니
[오피니언타임스=박세욱] 사시 눈을 가진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나와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를 간절히 얘기하는 듯하기도 했다.시계는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5시가 조금 넘어 직원들과 사장에게 수고하셨다는 영혼 없는 인사를 하고 작업장을 나왔다. 작업 확인서에 확인서명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12만 원. 오늘 7시부터 지금까지의 내 노동의 대가가 까만 글과 숫자 몇 개로 표시되어있었다. 숫자에는 우리 인력 사무실 소장의 노동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10%.“아이. 저 새끼들 개념 없네. 아니. 4시 반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 어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어렸을 때 나에게 ‘한오백년’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한오백년은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를 보고 가족들이 놀리듯 붙여준 이름이다. 그때 나의 좌우명은 ‘반짇고리처럼 살자’였는데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오는 색색들이 실처럼 가늘게 아주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어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보다는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죽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오피니언타임스=김현경] 삐삐가 있던 시절,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크리스마스 이브. 실컷 놀다 밤이 되어서야 군대 간 동기가 남긴 음성메세지를 확인했다.“여기에도 눈이 내려. 아…참 눈물이 난다.”군바리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펑펑 내리는 눈이 주는 설레임, 썸남과 별 일없이 보낸 아쉬움 그리고 기대감! 왠지 없는 사랑도 일어날 것 같은 오늘, 강원도 어느 군에 있는 너나 서울에 있는 나나 비슷하구나. 우리를 같은 감성으로 묶어주는 함박눈에 왈칵 눈물이 나오는 찰나, 친구의 한 마디,“저 눈, 언제 다 치우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작년까지 초등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전반기에는 장애학생 활동 보조 업무를 했고 후반기에는 행정실에서 근무했다. 하루는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의 사정으로 인해 업무를 대신 한 적이 있다. 지킴이 선생님은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 생활지도를 위해 출입을 관리하고 학생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교육이나 경험도 없는 내가 그런 막대한 임무를 맡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다행히 방학기간이라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배움터 지킴이 제도와 학교 방문을 위한 신분증 제출에는 허점이 있었다. 문제점을 짚어보자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팀점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팀원들은 팀장님이 좋아하는 갈비탕 집에 앉아 있었다. 당시는 대통령직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과잉의전 보도가 연일 이어지던 시기였다. 평소 정치 현안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팀장님은 황 직무대행의 의전을 맹렬히 비판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이며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맹자님 말씀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팀장님의 목소리가 끊겼다. 가위로 고기를 발라내던 난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고 곧장 내 자리로 깍두기 그릇이 날아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취향은 특가에 비례했다. 라면의 구매 기준은 행사 유무다. 대형 마트에는 항상 ‘+1’ 상품이 있었다. 우유도 할인을 하거나 요구르트 하나라도 더 주는 것을 택했다. 김, 휴지, 치약, 세탁 세재도 다르지 않았다. 좋은 품질과 예쁜 광고는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빵도 깜짝 반값이 되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내 주머니에 자유민주주의는 없었다.민주 시민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기껏해야 투표권 정도인데 수 년 마다 한 번씩 행사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매년 연말이면 각종 시상식 릴레이가 시작된다. 제38회 청룡영화상도 그런 시상식 중 하나였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나문희보다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에게 더욱 많은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미 주연만큼이나 강력한 흥행보증수표가 된 명품 조연들도 있지만, 유독 최근 1, 2년 사이 눈에 띄는 조연에 대한 관심과 언급이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허성태라든가, 최귀화, 엄태구, 그리고 이번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의 주인공 진선규까지 꽤 많은 ‘연기파 조연’들의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애잔한 모든 것들이 떠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봄은 왔다. 세 개의 계절을 거치고서 어김없이 나는 재채기를 했다.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섞이기 시작하면 알레르기는 유난스러워졌다.지난 3월 학생으로 다녔던 학교에서 조교를 시작했다. 사무실엔 먼지가 많았고, 일은 쉽지 않았다. 일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무언가 쌓여있었던 것들을 덜어내느라 걸리는 시간들이 길어서였다. 개강을 하자마자 꼬인 시간표를 푸느라 애를 먹었다. 학생 몇 명이 수업시간 변경 동의서에 서명하기 싫다는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27년간 라면만 먹었다는 김기수라는 사람이 있다. 『라면의 황제』(김희선, 2014)에 등장한 소설 속 인물인데 그는 나에게 ‘라면을 먹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었고, 괜스레 마음이 뜨거워져 그만 책장을 덮었다. 1960년대 꿀꿀이죽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에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라면은, 이제 내 삶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우리들 삶의 정서에 파스텔처럼 스며든 힘찬 기운이다.어린 시절 아버지 사업 부도로 도망치듯 내려간 양산(梁山)에서 처음으로 라면과의 짜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새롭게 방영중인 드라마 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소재와 이야기, 주인공들의 나이 차가 자주 거론된다. 한창 미투 운동이 들끓다보니 시청자들은 나이 차이가 많은 남녀주인공을 좀처럼 곱지 않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점은 다른 데 있다.우선 둘의 러브라인이 없을뿐더러 오가는 대화에도 냉기가 흐른다. 무당벌레를 감정 없이 죽이는 모습을 보고 남자는 여자에게 대체 어디까지 죽여 봤느냐고 묻는다. 잔정이 많은 남자에 비해 여자는 무미건조하다. 여자가 높낮이 없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학교나 가정에서는 내게 결과가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럼에도 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고, 그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의지하고 존경하던 고등학교 선생님께 “결과도 중요하지만 정당하게 이뤄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과정도 중요하고 가치있는 행위도 의미있지만 결국은 그 끝이 어떠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것이다. 너무 옳은 과정만 쫓지 말고 때론 요리조리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방법을 찾아라” 한마디로 정당한 과정이 옳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