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40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불과 최근까지 나의 상태는 '아포리아', (막다른 곳에 다다른) 그야말로 길이 없는 상태였다. 가왕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부를 때 유독 절규하는 대목 "누가 사아랑을 아~르음 답따 했는가"라는 가사처럼 나도 워딩 그대로 절규하고 싶었고, (공자님의 귀에다 대고)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라고 징징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혹맞이 생일빵 덕에 나는 완벽히 미혹됐었고 제대로 판단력이 흐려졌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냈던 휴가에 (나는 살아야 했으므로) 내가
내게는 늘 ‘식사 시간이 3시간쯤 돼야 한다’고 말하며, 프랑스인의 삶을 동경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프랑스인들도 요즘은 바쁘다며 우리와 다를 게 없다고 답하지만, 그 친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꽤나 강력한 것이어서 매 끼니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한적한 평일 오전, 나와 앞으로도 수많은 끼니를 때워야 할 친구를 위해 이제 막 문을 연 브런치 가게를 방문했다. 정말 점심식사를 3시간 동안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오븐에 구운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 버터 바른 빵, 한 무더기의 샐러드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오는 플래터는
수능 이후 100여 일을 기억한다. 해도 되는 건 많아졌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우리는 그저 해야 하는 것에서 놓여났을 뿐이었다. 그것을 몰랐기에, 해도 되는 것 옆에 그득한 무력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도 PC방은 시간당 1,000원이었다. 야간 할인을 위해 밤낮을 바꿔야 하는 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혹은 청춘이라고도 했다. 자유와 청춘에서는 식은 라면 국물 냄새가 났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침이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도서관에 가는 새내기를 두고 ‘건방지다’며 술로 ‘돈쭐’내던 선배들의 낭만은 그럭저럭 타당했다.
최근에 듣기 시작한 수업의 강사님이 (수업시간에 많이 언급할 예정이라며) 보길 권한 영화가 있다. 정기구독하는 OTT에서는 제공하질 않아 어쩌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화 TV채널에서 방영을 해주었다. 그 영화 제목은 폴:600m다. 선생님이 '죽은 남편의 유골을 뿌리러 600m 타워에 올라가는 한 여자의 얘기'라고 했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 세상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를 죽음으로 상실했을 때의 경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류의 고통
내 생에 유일한 해외출장은 6년 전 상하이였다. 그땐 석유화학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플라스틱을 만드는 회사답게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차이나플라스'라는 플라스틱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부스 제작과 운영을 담당했던 난 무사히 전시회를 마치고 뒤풀이에 참가했다. 이렇게 돈을 펑펑 써도 되는 건가 싶도록 처음 보는 중국요리들이 끝없이 나왔고, 메뉴판의 가장 아래에 있는 고량주 말고 중간 정도의 고량주를 원 없이 마셨다.산초가 잔뜩 들어간 무슨 볶음요리를 먹으며 '겁나 내 스타일이네' 쩝쩝대고 있는데, 중국 법인에서 일하던 과장님
목숨을 위협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음에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거리에서 사람들을 볼 때 불행한 표정이 아닌 것만으로도 부럽단 생각을 한다. 웃고 있지 않아도, 그저 표정이 편안한 것만으로 저 사람들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며칠 전 친한 동생과 술을 먹다가 울고 말았다. 실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지금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게 싫은데, 특히 매일 가야 하는 회사가 너무 싫어 (학교 가기 싫은)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언니가 지금
보통 큰 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프고 나니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든가,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남한테 들을 땐 울림이 있었는데, 정작 내 일이 되자 잘 공감되지 않는다. 착하기로 유명한 갑상선암에 불과해서인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일상을 되찾은 난 수술 전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산다. 분주하고 전전긍긍한 삶을. 갑상선암은 아직 의학적으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레스나 음주, 흡연처럼 적이 명확하다면 치열하게 맞서 싸우겠는데 이건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까무잡잡한 외국인이었다. 내 사전에 붕어빵과 외국인의 개념적 인접성이 없어서 잠깐 사이를 두고서야 국적을 물을 수 있었다. 그는 방글방글 웃으며 방글라데시아 사람이라고 했다. 대구는 3마리 2천원인데, 이 동네는 2마리 1천원에 팔아야 한다는 한국말 푸념이 능숙했다. 붕어빵 몇 마리를 팔아야 최저임금 9,620원이라도 남길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날 내 붕어빵에는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경제 하부 구조가 지탱되는 한국 사회가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다문화의 첨단, 국제도시에 사는 듯했다.그러나 그건 내 생
최근 시도적인 전시회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해외 작가를 들여와 전시하는 경우 색감이나 특유의 분위기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Anonymous Project’ 사진전과 물속 혹은 자연을 다뤄 친환경적인 활동에 관심을 생기게 만든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등이 있다.전시를 관람했을 때 시선을 빼앗는 작품도 분명 있었지만 SNS 업로드용 사진을 건지기 위해 온 방문객이 많은 느낌이 들고 다소 소란스러워서 아쉬움이 남았다.그래서 조금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전
유럽, 그것도 명품과 패션의 성지라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확실히 명품 가시성이 높음을 느낀다. 요즘에야 한국에도 명품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국민 전체의 명품 소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니 명품이 생소한 존재는 아니지만, 확실히 본고장이 가지는 접근성과 가시성은 따라잡을 수 없는 듯하다.패션위크 시즌에는 온 유럽이 들썩이는데, 그중 단연 핫한 곳은 파리, 밀라노 등 명품이 탄생하고 그 역사를 이어온 도시들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패션위크에 화려한 착장으로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도 보고 명품
만약 누군가 내 뇌를 전부 백업해서 다른 사람 육체에 넣으면 그건 나일까, 아닐까.오전까지 멀쩡하던 컴퓨터가 점심 먹고 돌아오자 먹통이 됐다. 창 닫기를 여러 번 눌러도 엑셀과 파워포인트가 그대로다. 노트북은 큰 소리를 내면서 팬이 돈다. 전원 버튼을 꾹 눌러 노트북을 강제로 종료한다. 다시 전원버튼을 눌러봤지만 깜깜무소식이다. 운명을 다 했다. 고작 이년 사용한 컴퓨터다.삶은 참 아이러니하지. 진료를 앞두면 진통이 멀끔해지고, 지저분했던 머리는 미용실 거울에선 알맞은 것처럼, IT담당자가 살포시 전원을 누르자 금방 켜졌다. 얄궂다
오랜만에 결혼식 참석을 위한 외출을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답게 날씨가 찬란하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평소 잘 안 입는 치마까지 꺼내 입었는데, 적당한 온도와 세기를 가진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흔들고 내 마음도 같이 흔든다. 측근들은 사실상 거의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 결혼식 참석 이벤트는 이제 내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은 한 학번 위인 선배 오빠의 결혼식이다. 엄청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선배다. 사실 나는 이 오빠하고는 대화를 길게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항상 오빠에 대해 좋은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을 내 방에서 먹어야 하는 이기심을 모른다. 음식 배달은 인간과 지구를 향한 난폭한 습관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고, 집에서 먹어야 한다면 적당히 먹어도 괜찮은 무던함의 윤리는 무시받기 십상이다. 겨우 배달 음식이기에. 그러나 잦기에, 배달 음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화 된 탐욕의 집체다. 돈이면 다 정당화 된다. 그러나 돈이 세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2005년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 할 때, 짜장면은 3,000원이었다. 일당은 평일 30,000원, 주말 35,000원이었다. 최
매일매일 발생하는 사회 이슈에 관해 쓰는 것이 최근 나의 생계다. 생업이 그렇다 보니 글을 최대한 빨리, 쉽게 써야 했다. 사실 내가 직접 쓴다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이미 쓴 기사를 독자들이 보다 읽기 편하게 편집하는 것이다. 이런 나를 지칭해 사람들은 우습게도 ‘기자’라 부른다.내가 쓴 ‘글’에는 수많은 이들이 댓글을 단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댓글을 꼼꼼히 읽기도 했지만, 이제는 잘 보지 않는다. 보나 마나 수많은 욕이나 비방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기사를 쓴 나에 대한 비방뿐 아니다.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원색적 비
민원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사회적 약자와 만날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절박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과 대면하면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내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되진 않을지, 더 도움 될 만한 제도는 없는지 열심히 고민하게 된다.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약자 가운데에도 일정 확률로 무례한 사람이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성과 욕설로 대응하고,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창구 - 관리자 내선번호, 감사실, 국민신문고 등 - 를 통해 분풀이를 한다. 일이 복
집 앞 대형마트가 리모델링을 한다고 잠시 문을 닫았다. 줄어든 쇼핑객만큼 한산한 집 앞 거리에는 플래카드들이 내걸렸다. 절규하듯 외치는 플래카드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마트 직원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리모델링 목적이 인원감축? 일방적인 강제 타점 발령 중단하라!’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을 연 마트 안에는 리모델링 전보다 훨씬 더 줄어든 적은 수의 직원들만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고, 캐셔가 있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체하고 있었다. 키오스크 주변에는 ‘계산은 키오스크가 아닌 점원에게 와서 해달라’는 쇼핑객들을 향한 간곡
회사 직원 중 하나가 포르쉐를 샀다. (정확한 가격은 당연히 모르고) 포르쉐가 비싼 차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래?라는 반응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워낙 차에 관심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업무 퍼포먼스 최악에 인성까지 터무니없는 그 직원의 소식 따위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직원이 포르쉐 중에서도 카이엔을 샀다는데 그 이름도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포르쉐 타이칸은 동생 친구가 타고 다녀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포르쉐 구입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충
침대에 누워서도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시간과 날씨를 알려주는 애플의 '시리'나 우리의 취향을 늘 앞서 제안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해졌다고 한들 이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의를 봐주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올초에 등장한, 1조 개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최첨단 AI로 무장한 '챗GPT'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가치판단' 행위를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우리 기계보다 너희 인간이 나은 게 대체 뭔데?'라고 따져
#장면1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었다. 두 분의 연사가 회사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중 한 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유창하게 강의를 전개하기에 전혀 알지 못했는데, 중간에 퀴즈를 내겠다고 말한 후 음성이 아닌 손짓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답을 알 것 같은 문제에 손가락으로 3번을 표시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는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강연을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사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고, 한때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의 롤
[논객닷컴=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필명인 청년실격이 탄생하게 된 비화는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신문 기사를 읽던 중이었다. 거기엔 매 끼니 라면을 먹는 공무원 수험생 하루를 타임라인으로 그렸다. 그리고 '오늘날의 청년'이란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신문에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를 그렸다. 시위 현장이었다. 옛날과 달리 정치에 적극적인 '오늘날의 청년들'과 비슷한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강연에선 스타트업, 새로운 기술에 적극적인 청년을 그렸다. 이제는 취업보단 창업에 힘쓰는 '청년'에 대한 풍경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