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을 지나며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했다. 사람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였다. 서로 다른 것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논리로 도토리 키 재기 해봐야 우리는 사실을 마구잡이로 말아 놓은 개밥의 도토리였다. 앙앙, 내가 분노의 치와와 같아서 키보드 워리어를 은퇴했다.덕분에 건강한 시민이란 다른 것과의 거리를 너무 멀지 않게 유지하는 사람인 정도는 배웠다. 그러나 그에 이르진 못했다. 너무 멀어져 버렸다. 이 거리감만 지키면 세상은 이런들 어떠하지도 않았고,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았다
“아참, 댓글창에 기레기네 뭐네 하는 말들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모 언론사 인턴기자로 입사했을 때 교육을 맡았던 한 선배의 당부였다. 선배의 당부가 단순한 노파심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우리 새파란 인턴 기자들이 ‘기레기’란 단어에 익숙해 지는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걸 기사라고 썼냐 기렉아’, ‘넌 돈 쉽게 벌어서 좋겠다 기렉아’, ‘진짜 한국 기레기들 노답’ 등의 댓글들이 병아리 인턴기자들에게 쏟아졌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계약직 6개월 동안 내가 써낸 기사들의 절대 다수는 내가 봐도 서글픈
오후 6시 땡,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셔츠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소재가 리넨 이어도 그렇지, 분명 아침에 곱게 다려 입고 나온 옷이었다. 여기저기 가늘고 굵은 주름이 패턴처럼 가득 차 있고 볼품없게 꼬깃해진 셔츠는 아침과는 전혀 다른 옷... 아니 그냥 천 쪼가리였다.먹고 살겠다고 옷이 이렇게 구겨지는지도 모르고 일했구나... 실로 오랜만에 나 자신이 대견하고 밉지 않은 순간이었다.사무실에서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일의 의미를
살다 보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다툰 것도 아닌데 괜히 밉다. 모두가 나와 맞을 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여전히 밉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밥 먹을 때 내는 소리까지 신경 쓰인다. TV를 보다가도 갑자기 떠올라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 사람 때문에 내 저녁시간을 망쳤다는 생각에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대민업무를 시작하고 나의 일상이 저랬다. 상대방이 쉽게 뱉은 말 한마디, 못마땅한 표정, 손가락 끝으로 민원대를 딱딱 치던 소리가 생각나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열이 오르곤 했다. 진상 민원인이 없는 날도 마찬가지
6월 첫 주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가 집에 도착했다. 내 몸 여기저기 나도 좀 신경 써달라는 듯 조금씩 문제가 있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단 관리 없이 이 정도면 선방했네 하면서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내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건강검진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작년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사소한 문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번 건강검진 선택 항목에서는 그동안 안 해봤던 스트레스검사를 해봤는데 특히 그 결과가 몹시 처참했다. 스트레스 저항도,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모두 "매우 나
공공기관의 복지부동한 실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뜨면 예외 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어찌나 불친절한지 상전이 따로 없더라', '하는 일도 없으면서 국민 세금 갈취하는 공무원들은 다 잘라야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 밥줄 끊으라는 말을 쉽게도 한다며 혀를 찼겠지만, 요즘은 저런 댓글이 일부나마 공감되니 놀라운 일이다.예전엔 몰랐다. 부모님이 세금에 왜 그렇게 질색하는지. 국민이라면 당연히 내는 거고, 정부가 어련히 잘 사용할 거라 믿었다. 철없는 마음에 '그 돈 없다고 우리 가족이 굶는 것도 아닌데...
직장생활을 나름 누구보다 재미있고 힘차게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몸과 마음은 마냥 가볍지는 않다. 주말 아이를 데리고 메트로폴리스를 횡단하느라 피로가 가중되었고, 이번 주 해야 할 일(미팅, 보고, 결재 등)들이 머리에 스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비슷하지 않을까. 의 저자 김민영 작가는 출근길을 “적당한 피로와 절반 정도의 무기력과 나머지 절반 정도의 활기”로 표현한 바 있다. 피로, 무기력, 활기의 비중을 잘 조절하는 것이 긴요할 터이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앞에
2023년 1월, 40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불과 최근까지 나의 상태는 '아포리아', (막다른 곳에 다다른) 그야말로 길이 없는 상태였다. 가왕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부를 때 유독 절규하는 대목 "누가 사아랑을 아~르음 답따 했는가"라는 가사처럼 나도 워딩 그대로 절규하고 싶었고, (공자님의 귀에다 대고)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라고 징징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혹맞이 생일빵 덕에 나는 완벽히 미혹됐었고 제대로 판단력이 흐려졌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냈던 휴가에 (나는 살아야 했으므로) 내가
내게는 늘 ‘식사 시간이 3시간쯤 돼야 한다’고 말하며, 프랑스인의 삶을 동경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프랑스인들도 요즘은 바쁘다며 우리와 다를 게 없다고 답하지만, 그 친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꽤나 강력한 것이어서 매 끼니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한적한 평일 오전, 나와 앞으로도 수많은 끼니를 때워야 할 친구를 위해 이제 막 문을 연 브런치 가게를 방문했다. 정말 점심식사를 3시간 동안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오븐에 구운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 버터 바른 빵, 한 무더기의 샐러드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오는 플래터는
수능 이후 100여 일을 기억한다. 해도 되는 건 많아졌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우리는 그저 해야 하는 것에서 놓여났을 뿐이었다. 그것을 몰랐기에, 해도 되는 것 옆에 그득한 무력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도 PC방은 시간당 1,000원이었다. 야간 할인을 위해 밤낮을 바꿔야 하는 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혹은 청춘이라고도 했다. 자유와 청춘에서는 식은 라면 국물 냄새가 났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침이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도서관에 가는 새내기를 두고 ‘건방지다’며 술로 ‘돈쭐’내던 선배들의 낭만은 그럭저럭 타당했다.
최근에 듣기 시작한 수업의 강사님이 (수업시간에 많이 언급할 예정이라며) 보길 권한 영화가 있다. 정기구독하는 OTT에서는 제공하질 않아 어쩌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화 TV채널에서 방영을 해주었다. 그 영화 제목은 폴:600m다. 선생님이 '죽은 남편의 유골을 뿌리러 600m 타워에 올라가는 한 여자의 얘기'라고 했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 세상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를 죽음으로 상실했을 때의 경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류의 고통
내 생에 유일한 해외출장은 6년 전 상하이였다. 그땐 석유화학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플라스틱을 만드는 회사답게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차이나플라스'라는 플라스틱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부스 제작과 운영을 담당했던 난 무사히 전시회를 마치고 뒤풀이에 참가했다. 이렇게 돈을 펑펑 써도 되는 건가 싶도록 처음 보는 중국요리들이 끝없이 나왔고, 메뉴판의 가장 아래에 있는 고량주 말고 중간 정도의 고량주를 원 없이 마셨다.산초가 잔뜩 들어간 무슨 볶음요리를 먹으며 '겁나 내 스타일이네' 쩝쩝대고 있는데, 중국 법인에서 일하던 과장님
목숨을 위협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음에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거리에서 사람들을 볼 때 불행한 표정이 아닌 것만으로도 부럽단 생각을 한다. 웃고 있지 않아도, 그저 표정이 편안한 것만으로 저 사람들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며칠 전 친한 동생과 술을 먹다가 울고 말았다. 실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지금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게 싫은데, 특히 매일 가야 하는 회사가 너무 싫어 (학교 가기 싫은)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언니가 지금
보통 큰 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프고 나니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든가,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남한테 들을 땐 울림이 있었는데, 정작 내 일이 되자 잘 공감되지 않는다. 착하기로 유명한 갑상선암에 불과해서인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일상을 되찾은 난 수술 전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산다. 분주하고 전전긍긍한 삶을. 갑상선암은 아직 의학적으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레스나 음주, 흡연처럼 적이 명확하다면 치열하게 맞서 싸우겠는데 이건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까무잡잡한 외국인이었다. 내 사전에 붕어빵과 외국인의 개념적 인접성이 없어서 잠깐 사이를 두고서야 국적을 물을 수 있었다. 그는 방글방글 웃으며 방글라데시아 사람이라고 했다. 대구는 3마리 2천원인데, 이 동네는 2마리 1천원에 팔아야 한다는 한국말 푸념이 능숙했다. 붕어빵 몇 마리를 팔아야 최저임금 9,620원이라도 남길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날 내 붕어빵에는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경제 하부 구조가 지탱되는 한국 사회가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다문화의 첨단, 국제도시에 사는 듯했다.그러나 그건 내 생
최근 시도적인 전시회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해외 작가를 들여와 전시하는 경우 색감이나 특유의 분위기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Anonymous Project’ 사진전과 물속 혹은 자연을 다뤄 친환경적인 활동에 관심을 생기게 만든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등이 있다.전시를 관람했을 때 시선을 빼앗는 작품도 분명 있었지만 SNS 업로드용 사진을 건지기 위해 온 방문객이 많은 느낌이 들고 다소 소란스러워서 아쉬움이 남았다.그래서 조금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전
유럽, 그것도 명품과 패션의 성지라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확실히 명품 가시성이 높음을 느낀다. 요즘에야 한국에도 명품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국민 전체의 명품 소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니 명품이 생소한 존재는 아니지만, 확실히 본고장이 가지는 접근성과 가시성은 따라잡을 수 없는 듯하다.패션위크 시즌에는 온 유럽이 들썩이는데, 그중 단연 핫한 곳은 파리, 밀라노 등 명품이 탄생하고 그 역사를 이어온 도시들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패션위크에 화려한 착장으로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도 보고 명품
만약 누군가 내 뇌를 전부 백업해서 다른 사람 육체에 넣으면 그건 나일까, 아닐까.오전까지 멀쩡하던 컴퓨터가 점심 먹고 돌아오자 먹통이 됐다. 창 닫기를 여러 번 눌러도 엑셀과 파워포인트가 그대로다. 노트북은 큰 소리를 내면서 팬이 돈다. 전원 버튼을 꾹 눌러 노트북을 강제로 종료한다. 다시 전원버튼을 눌러봤지만 깜깜무소식이다. 운명을 다 했다. 고작 이년 사용한 컴퓨터다.삶은 참 아이러니하지. 진료를 앞두면 진통이 멀끔해지고, 지저분했던 머리는 미용실 거울에선 알맞은 것처럼, IT담당자가 살포시 전원을 누르자 금방 켜졌다. 얄궂다
오랜만에 결혼식 참석을 위한 외출을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답게 날씨가 찬란하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평소 잘 안 입는 치마까지 꺼내 입었는데, 적당한 온도와 세기를 가진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흔들고 내 마음도 같이 흔든다. 측근들은 사실상 거의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 결혼식 참석 이벤트는 이제 내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은 한 학번 위인 선배 오빠의 결혼식이다. 엄청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선배다. 사실 나는 이 오빠하고는 대화를 길게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항상 오빠에 대해 좋은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을 내 방에서 먹어야 하는 이기심을 모른다. 음식 배달은 인간과 지구를 향한 난폭한 습관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고, 집에서 먹어야 한다면 적당히 먹어도 괜찮은 무던함의 윤리는 무시받기 십상이다. 겨우 배달 음식이기에. 그러나 잦기에, 배달 음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화 된 탐욕의 집체다. 돈이면 다 정당화 된다. 그러나 돈이 세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2005년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 할 때, 짜장면은 3,000원이었다. 일당은 평일 30,000원, 주말 35,000원이었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