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19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도네시아 군부정부는 동남아시아 공산화를 두려워한 서구국가들의 묵인 하에 100만명이 넘는 정적들을 학살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소작농, 화교, 지식인, 반정부인사들이었다. 당시 학살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끔찍했냐면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강과 하수도가 막힐 지경이었다고 한다.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당연히 피해자 진술을 들을 생각이었지만,
다이허우잉의 는 망각된 휴머니즘의 가치를 재조명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주장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으나, 소설의 의미를 ‘휴머니즘’이란 단어 안에 묶어두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아울러 작품에 대한 기존의 감상이 주로 쑨위에와 허징후 사이의 사랑에 치우쳐 있는 감도 없지 않다.에서 자오젼후안은 소문난 미인이자 상냥하며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아내인 펑란씨앙에게 무정하기만 하다. 펑란씨앙만 없었다면 쑨위에를 잃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그는 차가운 태도와 날이 바짝 선 언어로 아내에게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취준생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거운 백팩을 메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문득 ‘아, 그 때가 왔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 간질간질하고 귓가와 옆구리가 북적북적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세상에 없는 어떤 존재들까지 모여서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연락을 해야겠네’라고 생각했다.해가 바뀐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던 무렵은 초등학생 즈음이었다. 연말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해돋이를 몇 번 보러 갔고, 어떤 기억에는 해가 바뀔 때 잠을 자면 눈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2015년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그 전에는 신종플루도 있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스도 있었다. 셋의 공통점은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전염병 환자는 완치될 때까지 격리된 채 치료를 받게 된다.그런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메르스 감염 환자가 완치 후에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메르스를 앓았던 사람들만 따로 격리해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르스에 걸린 것은 하늘의 벌을 받은 것이라며 감염자를 죄인 취급하고, 심지어는 유전의 가능성이 있다며 강제로 불임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청와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원을 계기로 다시 낙태죄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예전부터 이전부터 이어진 이 논쟁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란 두 개의 가치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대한민국에서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범죄를 통한 임신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하는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낙태를 시술한 의료진도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하지만 매년 17만명이 낙태를 하는
“아야! 이리와. 이리오라고! 그 뭐한다고 처 쌓인데로만 올라가니?”“넘어지지말고 찬찬~히 올라가라고!!”“찬~찬~히. 찬~찬히, 그래도 조심해라!”“야 임마야 뛰지 마! 뛰어오지 마라. 오늘 지각 안 잡는다!”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손에 쥔 커다란 빗자루를 장군님의 칼자루마냥 휘두르면서. 안타깝게도 장군님 휘하에는 여고 1,2,3학년 철부지 부하들뿐이었지만.부하들은 선생님의 독특한 억양을 흉내 내면서 히히 웃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은 사투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생한 그 목소리를 떠올려보니 사투리와 표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우리는 때때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나치게 가슴이 떨리고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 겁이 나고 두렵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선택의 책임은 내게 있기 때문이다.몇 해 전 방영했던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도 이런 사례가 등장했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빙판길 사고사건 취재를 나서게 된다. 그녀는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들이 넘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볼 수 만은 없었고 빙판 위 연탄을 깨서 길을 미끄럽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빙판 사고를
0. 지극히 개인적인 통계올해 6월, 상반기가 끝날 무렵에 퇴사를 했다. 휴식기를 가지게 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책 없이 논 것은 사실 일주일 정도였다. 무더운 7월이 되어서는 땀 차는 엉덩이로 자리를 지키며 글 쓰는 일에 집중했다. 각종 문학상과 공모전에 출품할 생각이었다. 재밌었다.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여름에 내가 정했던 출품 원칙은 아래와 같다.1. 전국 규모의 문학상, 공모전에 출품한다.2.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낼 수 있는 곳은 다 낸다.3. (당선 가능
약자임을 증명하라그 누구도 약자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노약자석이다. 나이가 더 많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더 불편하다는 걸 증명해야 노약자석에 편히 앉을 수 있다. 반면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으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리를 삐었거나 전날 마신 술이 덜 깨 숙취로 고통 받고 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론 교통약자라는 사실을 증명받기 어렵기 때문이다.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초기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아빠는 요리를 곧잘 했다. 국물의 간을 맞추는 솜씨가 일품이었고, 간단한 밑반찬도 뚝딱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요리솜씨는 가세가 기울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면 먹는 시간이 늘어났던 우리집 밥상은 아빠표 라면이 자주 등장했다. 국물 간을 맞추는 솜씨로 라면의 물을 맞췄고 밑반찬을 만드는 장기로 라면의 맛에 특유의 깊이가 더해졌다. 나는 눈치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라면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떠들어댔고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하루는 아빠가 비빔면이라며 끓여준 라면이 꿈에 나올 정도로 맛있었고 그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엄마와 아빠는 공인중개사를 했다. 엄마는 중랑구에서 원룸이나 신혼집 같은 방들을, 아빠는 율성리에서 토지나 창고 같은 대형 매물을 매매했다. 둘 모두 찬란한 황금빛 인생은 아니었다. 학원을 운영할 때 만나서, 과일 장사를 하고, 슈퍼를 하고, 다시 학원을 하다가, 다시 슈퍼, 그리고 공인중개사로 이어졌다.차라리 파란만장에 가깝다. 사람 인생 책으로 쓴다면 조정래 대하소설을 씹어먹는다더니, 어째 그들이 한 일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납득할 때가 있다.성격도 안맞고 입맛도 안맞고 취향도 안맞는데 어떻게 눈이 맞아서 결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소설 ‘태백산맥(조정래)’을 읽었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중학생이 뭘 알고 읽었겠는가?‘아, 불쌍해. 소년의 아빠가 돌아가셨어...’‘아, 왜 괴롭히나요, 당신은 나쁜 사람’‘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사람이었군. 아니 그런데 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이 사람도 불쌍해, 저 사람도 불쌍하고, 아, 뭐야 다 불쌍하잖아..’그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무슨 명칭이나 지명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그냥 ‘으흥~’하고 건너뛰었다. 그러다가 도통 이해가 안가 진척이 없는 부분에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비전향 장기수는 국가보안법·반공법·사회안전법으로 인해 7년 이상의 형을 복역하면서도 사상을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는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의 일상을 12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한다.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영화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서대문 구치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전향 공작을 당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한 언론은 간첩을 촬영할 때 특수조명까지 활용해 이들을 험상궂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오피니언타임스=최수안]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은 이에게는 감정도 사치인걸까. 편리함을 찾는 요즘, 오히려 편안함을 잃는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위태로운 것을 향하는 게 순리인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정규직처럼 불확실성이 넘친다. 성장통일지도 모르는, 상처받고 아파하는 일도 감정 소모일 뿐이고 바쁘고 벅찬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낯설음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다.'잘 해줘봤자 아무 소용없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 중에 순수한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순수한 진심이라면 그런 말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10살 때 쯤, 우연히 TV에서 일본 다큐를 봤다. 그 다큐는 일본 초등학생들을 위한 체험농장 이야기였다.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처럼, 소들은 넓은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뛰놀았고, 돼지들은 진흙에서 뒹굴고, 닭들은 마음껏 모래를 쪼았다. 아이들은 그런 동물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했다. 슬픈 장면도 있었다. 동물들이 도축되었고, 아이들은 농부와 함께 그 모습을 바라봤다. 동물들은 마취된 상태에서 단숨에 목숨을 잃었고,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도 울었다. 지금도 그때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였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종로3가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부터 12시 20분까지 하는 수업이고 읽기(Reading)와 문법(Grammar)으로 구성된 코스이다. 주5일, 매일 아침 파란버스에 몸을 싣고 취준생이 되어 종로로 향한지 보름이 조금 넘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어학원에 가본 나는 조금 늦은 출발이다. 학원에 가면 단어장을 쥐고, 추운 날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 예전에 재수종합반을 다녔던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업은 즐겁다. 4년 정도 암기나 시험형 공부와는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중편 소설 은 중국의 대문호 선충원(沈從文)의 대표작이다. 중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재서 교수는 을 읽지 않는다면 중국 현대문학의 아주 중요한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역자 서문에서 단언한다. 정 교수는 이어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해 하기를 기원한다. 역자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필자는 역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좋았다. 글을 읽어가면서 절로 다동(茶峒)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작품의 ‘우미한 분위기’에 유유히 젖어 들게 하는 선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온지 4개월이 넘었다. 입시 대학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싫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게 벌써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겨울이 다가왔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많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워킹’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이제까지 한 아르바이트일본에 온지 3주 후에 라멘집 알바를 시작했다. 운좋게도 첫 면접에 합격해서 이틀 뒤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 사원 한명이 계속해서 조롱하기 시작했다. 일이 중학생수준인데 쟤는 왜 못하냐, 대놓고 내 얼굴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예능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예전에는 남을 속이고 서로 구박하며 억지웃음을 짜내는 코너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문화체험과 경험 및 추억 쌓기를 통한 힐링 예능이 대세가 됐다. 어느새 우리 삶으로 들어온 예능의 변화를 되짚어봤다.드라마는 박수를 받으면서 아름답게 종영되지만 예능은 그렇지 않다. 높은 시청률로 황금기를 누리지만 그 시기는 영원하지 않은 법이다. 아무리 인기있는 예능이라도 비슷한 포맷이 반복되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적절한 작별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최근 가구업체 한샘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남성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작은 흔히 ‘몰카’라고 부르는 불법 촬영이었다. 신입사원이던 피해자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다 간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휴대폰으로 촬영한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밖으로 나와 동료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남자 동기 하나가 과장되게 소리지르며 범인을 잡으려는 시늉을 했는데 알고보니 범인이었다. 그는 피해자와 동료들이 CCTV를 확인하려 하자, 자신이 남자동기가 안에 있는 줄 알고 장난으로 한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