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뉴욕 여행 중 찾았던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하이라인파크에는 봄맞이가 한창이었다. 지난 4월 말, ‘2018 봄’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남단 입구 쪽으로 새 모종을 심고 다듬는 관리인의 손길이 분주했다. 행인 중 몇은 쪼그리고 앉아 신록의 정원에서 노랑, 흰 꽃망울을 터트리는 키 작은 봄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간 별로 관목, 다년생 식물이며 각양각색 계절 꽃들을 만나는 원예 체험, 생태 탐험이야말로 사계절 하이라인파크 나들이가 흥미로운 이유이리라.하이라인파크는 용도 폐기된 고가 철로를 도심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출근길 지하철.에스컬레이터를 막 타려는 순간, 한 청년과 어깨를 부딪쳤습니다.주춤하고 비켜서는데 청년이 ‘죄송합니다~’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또렷한 말씨에 예의바름까지 묻어나고...‘붐비는 곳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나저나 요새도 저렇게 깍듯한 청년이 있네~’하며 지나치려다 그 청년을 봤습니다.그의 손엔 나의 예상(스마트폰)과 달리 작은 수첩이 하나 들려 있습니다. 조금 전 부딪쳤을 때도 청년은 손수첩을 들고 있던 게 분명했습니다.그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도 손수첩을 봐가며 손가락으로 수첩 위에 무언가 열심히 써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주말 텃밭에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모종내기를 앞두고 밭을 만들어 놔야 하는데 빗줄기가 잠잠해질 기미를 안보입니다.지인부부가 “이번 주말엔 꼭 나머지 밭도 만져놔야 한다”며 텃밭행차를 예고한 터라 비가 그치기만 기다려봅니다. 일전에 심은 감자씨 싹이 제대로 올라오질 않아 비가 꼭 와야 하지만, 우선은 고구마 밭부터 만들어놔야 해 “비가 오더라도 오늘 오지 말고 내일부터 와라!” 간사한 마음(?)으로 빌기까지 했습니다.그러나 비가 텃밭농군의 사정을 생각해줄 리 없죠. 볕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했지만, 비는 그칠 조짐
표지에 거대한 나무가 뿌리에 별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노트는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성식이 보낸 것이다. 문지는 한참동안 노트를 매만지다가 말없이 우디에게 건넸다. 우디는 흐린 눈을 비비더니 노트를 받아 표지를 넘겼다. 한 장, 두 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늦어졌다. 눈을 또 비볐다. 노타모레가 노트에 페르푸메를 짙게 뿌렸던 것일까. 우디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우디는 문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엄마, 이상해. 내가 어젯밤 꾼 꿈에 나온 나무가 바로 이 나무 같아. 근데 여기 내 이야기가 있어.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후배 Y군은 나를 무척 따랐다. 나도 그 후배를 무척 좋아했다. 남자답고 서글서글한 성품에 항상 웃는 인상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던 사람이라서도 그랬겠지만 어쨌거나 나를 좋아해주니 나도 그를 좋아하는 것이 ‘의리’가 아니겠는가.내 꼴도 심상찮게 생긴 처지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여간 찜찜하지 않으나, 그 후배의 용모는 특이한 생김새로 조합과 배열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 178cm로 큰 키에 속했던 그는 일본의 프로레슬러 출신의 중의원이었던 안토니오 이노끼를 닮았다. 이마는 세금폭탄 김모 교수를 닮아 뒤통
[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 1950년대 대구에는 제법 이름 있는 극장들이 있었습니다. 1903년 일본인이 세운 금좌(錦座)를 필두로 해서 유일하게 민족자본으로 건립되었다는 만경관(萬頃館, 1921), 나중에 대구극장이 되었던 조선관(朝鮮館, 1922), 향촌동의 대경관(大慶館), 송죽극장이 된 신흥관(新興館), 자유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영락관(領樂館), 한일극장으로 바뀐 키네마(1938) 등 유명한 극장들이 많았습니다.1950년대 휴전 직후 10세 미만의 소년이었던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극장 구경을 더러 다녔습니다. 이재필이라는 한국인에
그리고 세상은 5년 간 더 지움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역사는 그 시기를 ‘악몽의 델레테 5년’이라고 불렀다. 노타모레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그래도 가끔 밝은 표정을 지었고 핀란드 자작나무 숲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대부분의 요정들은 공포에 떨었다. 문지는 우디를 바라보면서 아들의 기억을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이 아름다운 건 깊은 어딘가에 샘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신성한 힘을 가진 샘물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었다. 노트의 요정에게서 위대한 기억의 나무 이야기도 들었다. 그 분은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공중파 TV 뉴스에서 남북 정상이 은밀하게 나눈 도보다리 대화를 입술 움직임만 보고 추론한 내용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그 재현기술도 신기하고 과거 같으면 일급보안 대상이었을 텐데 그것이 공중파에 그대로 방송되는 것도 신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주로 미국, 트럼프, 비핵화 등으로 재현되어 나왔는데 그것이 모두가 듣고 싶은 제일현안인 것은 당연하더라도 그 내용 중에 ‘딱 하나’가 대화 첫 부분에 나왔으면 금상첨화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홍익인간의 기원그 딱 하나는 민족이 공
유모리몬이 극성을 떨수록 새하얀 도화지처럼 진실만 남고 모든 게 평등해질 줄 알았던 세상은 반대로 오만해지고 편협해졌다. 사람들은 이젠 판단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신기술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그것은 노타모레와 부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페르푸메의 에너지도 최고로 약해졌던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그 무렵부터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자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나무들이 고사했다. 노타모레와 부키가 애타게 기다리는 신목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7백년이 된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경기도 일산에 사는지라 한강변과 임진강변 자유로를 따라 종종 드라이브를 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어머니를 모시고 자유로에 들어서니 승용차가 평소의 두세배나 많았다. 해방 직전 임진강 건너 경기도 장단으로 시집가셨던 올해 91세 어머니는 민간인 통제 구역인 옛 집터와 농토, 조상들의 산소를 곧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 거라며 흥분하셨다.남북 교류와 평화 기대 부풀어남북한이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는 TV 보도를 보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후회’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머문다. 두 음절로 이루어진 이 단어엔 자음 ㅎ이 한 음절에 하나씩 두 개 들어있다. ㅎ은 한글 자음 열네 개 중 가장 마지막에 온다. 시작하고 겪고 지나가고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게 ㅎ이다.후회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괴롭다. 그래서 무섭다. 비슷한 류의 소식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 어떤 시기가 있다. 시차를 두고 띄엄띄엄 뜸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모았다가 동시에 전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듣게 되는 어떤 시기가 있다. 소식을 전하는 이들
이제 부키와 노타모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 속도와 기운이라면 곧 책과 노트 아날로그의 세상에도 침투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아날로그와 사이베르는 쉽게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만일 유모리몬이 인간 세계로 온다면 그들의 침투대상은 책과 노트가 체계적으로 분류된 세계 최대 대도서관의 아카이브 망일 것이다. 아카이브를 움직이는 설계도가 알고리즘이었다.‘아카이브 망의 설계도인 알고리즘이 교란된다면? 오 그럼, 우리의 기억과 기록은?’문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우디의 이야기는 다소 황당했지만 그럼에도 문지의 가슴 깊숙이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사실상의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등이 명시된 ‘판문점 선언’이 지난 27일 발표되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이를 하나같이 찬성, 환영하고 나섰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이 나온 뒤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제 한국에서 전쟁은 끝날 것이다. 미국과 위대한 모든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매우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의 진행상황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 1년 동안 북한의 김정은과 거의 막말에 가까운 말 폭탄을 주고받았던 사실에 비춰볼 때 사상 유례없는 급반전(急反轉)이 아닐 수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사람을 밀치고 종이뭉치를 집어던지고 물을 뿌린다. 거기에 욕도 한바가지. 노동자인 을을 향해 퍼붓는 갑질이 이정도 수준이다. 을의 생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함으로써 을의 인생까지 소유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최근 갑질로 일약 스타가 된 사용자 가족집단의 면면을 훑어보기 위해서 해당기업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창업주 스토리가 있길래 읽어보니 내가 부끄러워서 땅으로 추락할 지경이었다. 사람 우선, 국익 우선이라는데 정확히 정반대로 행하고 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언제까지 일을 해야하지? 왜 일을 하지? 무슨 일이 좋을까?’ 인생의 하프타임에 내가 풀어내야할 명제다.이른바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은퇴이후의 삶을 대변하는 키워드도 변했다. 쉼(Relax, Rest)이 자리하던 곳에 일(Walk, Work)이 들어섰다. 그래서 이젠 나이든 이를 지칭하는 노인을 한자로 쓸 때 老人이 아닌 勞人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며칠전 우연히 한 케이블TV에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강의를 접했다. 99세의 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건강과 열정이 놀라웠다. 곧바로 그의 저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빵지순례(빵+성지순례 합성어)’가 새로운 식도락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빵지순례’로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무려 3만 2000건이 넘는다.원래 ‘빵지순례’라고 하면, 기차 타고 지방의 유명 빵집을 찾아가는 여행의 의미가 컸다. 한데 최근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명 빵집들이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쇼핑몰, 백화점 등에 자리 잡음에 따라, 멀리 떠나지 않고도 빵집 탐방이 가능해졌다. 선결제 예약을 통해서만 구매 가능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인 L업체의 통밤식빵, 국산 팥만
남해와 서울을 잇는 두 사람의 이 비밀스런 통신이 일어난 이후, 세상에는 신비하고도 괴이한 변종 요정이 생겨났다. 네마조네스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그 변종 요정의 탄생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불안하게 보고 있었다. 네마조네스가 예전에 문지의 가방으로 부키와 노타모레를 찾아간 바로 전부터 네마조네스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정이 인간세계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었다.‘ 이들도 요정일까?’원래 요정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것, 태고의 신들이 작아진 것, 멸망한 옛날 종족의 기억과 죽은 자의 영혼, 타락한 천사 등에서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언뜻 봐도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오랫동안 볕을 못 본 것처럼 창백한 얼굴, 굽은 등과 어깨… 세상 구경 처음 나온 아이처럼 자꾸 두리번거렸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디쯤 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는 제 자리인데요?” 이 말을 입안에 몇 번 굴리다 옆자리에 그냥 앉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타는 무궁화호 열차였습니다.일부러 창가로 예매한 내 자리에 그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왜 남의 자리에 앉는 걸 예사로 안담? 창가자리에 앉고 싶으면 표를 끊을 때 그렇게 달라고 하든지….’ 혼자 속으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칼럼 제목은 015B가 부른 ‘아주 오래된 연인들(1992)’의 패러디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로 시작하는 노래는 연애 기간이 길어져 서로 심드렁해진 연인들의 심리를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게 쇄신할 생각은 없이 흘러간 레퍼토리만 반복해 틀어대는 우리 보수우파랑 꽤 닮았다. 무엇이 어떻게 닮았나.지난 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한민국 수호 비상국민회의’ 창립대회가 열렸다.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는데, 이 모임의 성격은 참석자들 면면을 봐도
10. 기록을 지우는 괴물“ 박사님, 큰일 났습니다.”새벽 2시. 김 박사는 전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해 연구소에 있는 D-U 프로젝트 책임 연구원 K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새벽에 이런 전화는 불길하다. 연구원 영상이 나왔다.“ 무슨 일인가?”“ 박사님, 저로서도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 할지... D-U 프로그램이 오늘 오후 4시부터 작 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갑자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백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백업 파일은?”김 박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엇보다 최신의 고성능 슈퍼컴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