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BS)가 되면 출판사 사장들과 편집자들 역시 충실한 독자층이 된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를 좋건 싫건 분석해서 “우리도 그런 책을 만들어보자”는 욕구를 갖거나 혹은 목표를 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를 순회하면 편집자 책상에 반드시 BS가 놓여 있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책의 평가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먼저 칭찬이다.“시대의 흐름에 맞게 독자의 마음을 꿰뚫은 책입니다. 충분히 BS가 될 가치가 있어요.”하지만 똑같은 책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아파트 생활이 장독을 밀어낸 지 오래됐습니다. 대신 가공장류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죠. 물론 사먹는 장류가 미덥지 않다며 직접 담가먹는 이들도 제법 있습니다.60~70년대까지만해도 장 담그기는 한해 농사였습니다. 장맛이 제대로 들어야 걱정없이 한해를 날 수 있었으니까요. 된장 간장 고추장...장의 시작은 콩으로 메주를 쑤는 일이죠. 지난해 텃밭농사로 지은 콩을 메주로 만들어놓은 지 석달째 어름. 단양 죽령산골에 두고 온 메주덩어리들이 ‘장담글 때가 됐다’며 ‘빨리 오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렇지
[오피니언타임스=이지완] 당신들이 떠나고 두 번째 봄이 왔던 때에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다. 그날 나는 독일 돼지고기 요리 학센을 먹었고 과일향이 나는 맥주를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으로 향했다. 30일간의 여행이 모두 끝나가는 때였다. 종교는 없었지만 이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는 하고 싶었다.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의 날짜가 4월 16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초를 하나 사서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으로 갔다. 불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는데
9. 문지의 사랑[오피니언타임스=써니] 문지는 너무 바빠 요정을 본 것을 잊었다. 기말고사 때문에 학교 도서관 열람실로 갔다가, 우연히 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필이 일단 근사했다. 남학생 책상 위에 책 몇 권이 눈에 띄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학생들은 전공서적에만 빠져 있는데 그 자리에는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의 '나무 회상록'과 르 클레지오의 '사막'이 펼쳐져 있다. 문지가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얘, 괜찮은데. 4차원에 현실 초월? 후후.’문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든 남학생이 웃는 눈으로 인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류시화 시인의 시 『목련』 중에서[오피니언타임스=표재분] 이른 봄이면 집 근처 언덕배기 목련나무는 어김없이 꽃 봉우리를 먼저 터뜨렸다.어스름 밤 목련 꽃이 핀 나뭇가지 위에 처연하게 걸린 초승달을 볼 때면 어린 마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렸다.“내 인생은 외로운 달밤이야.”생전에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시면 독백처럼 내뱉으셨다. 저녁 무렵 마을 끝자락 구멍가게 탁자에 앉아 소주 한잔 하시던 아버지는 목련나무에 걸린 초승달만큼이나 외로워보였
8. 네마조네스의 불안시간이 조금 더 흘러 문지는 대학생이 되었다.하교 길, 문지의 가방 안에서 요정들이 만났다. 네마조네스가 요정들을 호출한 것이다. 부키가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책에서 쓰윽 나왔다. 노타모레는 녹색의 전공 노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부키였다. 퉁명스럽게 네마조네스에게 물었다.“ 왜 불렀어? 사이베르 생활은 어때?”“ 뭐, 제 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ㅋ.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부키가 잽싸게 말을 끊었다.“ 그럼 뭐해? 요정인데 날개가 없으니 벌거숭이 같은 걸. 게다가
7. 사막의 샘을 꿈꾸는 문지 시대마다 기록과 기억을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하여 기억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네마조네스 이전 과거 시대에는 주로 일기라는 방식으로 남겼다. 그런 일기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소녀, 안네가 있었다. 유대인이었다. 게르마니가 국가적으로 아주 야만적인 학살 행위를 할 무렵,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피신한 소녀는 다락방에 숨어서 2년간 일기를 썼다. 13살에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서 종이의 강인함을 발견했다고 쓸 정도로 일기를 사랑했다. 답답하고 외로운 다락방, 그 폐쇄된 삶
1넓은 단독주택에 사는 미국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경우 단독주택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도구와 장비를 갖추고 웬만한 수리는 자신들이 한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 사는 동생네 집을 방문해서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인데 이웃집에 삼대가 모여 분주하게 톱질을 하는 등 공사가 벌어져 의아한 생각에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뒷베란다를 만든다고 다른 곳에 사는 할아버지까지 모여 품앗이 작업을 하는 광경이었다.인테리어 비용이 비싸 자기들이 웬만한 집수리는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지난 2016년 가을, 서울지방경찰청은 도굴한 고려청자를 팔려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문화재청과 공조 수사에 들어간다. 청자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이라고 했다. 태안 안흥의 마도 해역은 2007년 이후 4척의 고려·조선시대 침몰선을 발굴 조사한 해양 문화재의 보고다.그런데 수사가 진척되고 청자 출토 지역을 확인한 문화재청 해양문화재연구소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도굴 장소가 침몰선이 많았던 안흥 앞바다나 안면도 서쪽 쌀썩은여가 아니라 안면도 동쪽의 최북단인 천수만 당암포 해역이었기 때문이다
6. 네마조네스의 출현기술은 훨씬 빠르게 사람의 생각을 앞질러갔다. 이제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사이베르 안에서 찾아 읽고 사이베르가 대신 판단해주었다. 페르푸메의 향을 그리워하는 것조차 어떤 이들은 고리타분하다며 비웃었다.요정의 세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신성한 나무를 기억하는 노타모레와 부키는 사이베르가 보여주는 가공된 세상을, 생각할 시간이 없이 너무 빠르게 변하여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연륜이 있는 요정들은 위대한 기억 나무의 말을 되뇌었다. “세상은 늘 균형이 중요하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은 건전한 곳도 있지만 허위와 과장, 조작과 사기, 선정과 음란 등 온갖 사회적 질병들이 만연돼 있다. 이념과 지역, 정당 등 대립구조와 관련된 공간이 특히 그렇다. 인터넷이 건전한 담론의 장이 되어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라는 말은 오래 전에 역설(逆說)이 되었다.국민적 의혹사건으로 비화한 ‘드루킹’ 댓글 공감 수 조작 사건은 이런 병적 현상의 최신 버전이다. 이 사건은 종전의 진영 대결 패턴이 아니라 같은 진영 내부에서 발생한 자해 조작이라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김모 씨(48)’로만 알려진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주말을 맞아 강원도 오지 산골의 흙집엘 다녀왔습니다. 경관이 뛰어나 황토방 마니아들 사이에선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곳이죠.“언제 한번 같이 가보자~”는 지인들과 의기투합했습니다.간만에 찾은 흙집, '산천은 의구했으나 인걸(흙집 주인장)은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곳은 본래 화전민이 일구었던 밭이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던 시절 이런 산비탈에도 밭을 만들어 곡식을 거뒀으니 그 시절 일상의 곤궁함이 어림되고도 남습니다. 물론 그 덕에 지금은 고즈넉한 흙집들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5. 사이베르한 손에는 시집을, 다른 한 손에는 습작노트를 든 거리의 장발청년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떨어진 낙엽과 꽃잎을 책 속에 끼워 말렸던 소녀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통학버스에서 손수 적은 단어장을 외우던 고등학생의 모습은 지난날의 풍경이 되었다. 주부들의 가계부와 육아일기도 엄지손가락 몇 번이면 끝났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다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손 안의 화면만 쳐다본다. 옆 사람한테는 관심도 없었다. 이제 세상은 사이베르(Cyber) 세상이 되었고 도시는 페르푸메의 향이 매우 옅
4. 페르푸메가 옅어지고 있다.부키와 노타모레가 좋아라 수다를 떨었던 후로 세월이 더 흘렀다. 장난감 같았던 사진기가 더 발전했고 놀랍게도 텔레비라는 것이 나왔다. 인간의 기계 능력은 끝이 없었다. 모든 것이 작은 사각 상자 안에 담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떠들었다. 인간들은 이제 기계의 힘으로 거칠 것 없는 축소 능력을 구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노트를 하는 숫자가 분명히 줄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염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텔레비가 바보상자이니 보지 말라고 했고 지식인들은 새 기계를 경멸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 하나의 문장 안에 그 사람의 세계관이 펼쳐지고 현상에 대한 감정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래서 글은 지울 수 없는 내면의 기록이며 항상 숨 쉬고 있는 일상의 발로(發露)다. 최근 한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출간 전에는 분명 기대로 가득 찼었는데 이제는 두려움 반, 부끄러움이 반이다. 솔직하게 써내려간 문장 중에 오류는 없는지, 내가 휘갈긴 문장으로 인해 혹 상처받을 사람들은 없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보통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
[오피니언타임스=김희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한 동구릉은 말 그대로 아홉 개의 능역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동구릉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능이라면 ‘건원릉(健元陵)’을 꼽을 수 있다. 건원릉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능역으로 이후 조선왕릉의 표준이 되었다. 특히 건원릉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신도비란 해당 인물의 생애와 공적 등을 새긴 비석으로, 보통 종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이들만이 세울 수 있었다. 현재까
3. 페르푸메노타모레와 부키는 위대한 기억의 신목이 마지막에 흘렸던 신비한 향을 떠올리면서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페르푸메(Perfume)라는 향을 만들어 냈다. 겸손한 노타모레는 그 향이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위대한 기억의 나무가 전해준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준 뜻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노타모레는 핀란드 숲 쪽을 향해 존경과 사랑의 소리로 중얼거렸다.“ 위대한 기억의 나무님,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건조한 나무 향의 페르푸메는 처음에는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은은하여 쉽게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심상찮다. 관세폭탄을 주무기로, 각종 비관세 수입장벽을 보조무기로 사용하며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경제규모 1, 2위를 차지하는 두 나라 사이의 마찰은 비단 두 나라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들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여러 나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미국이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을 겨냥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하자 중국이 즉각적으로 이에 대한 보복 관세를 물리기로 했고, 이에 미국은 다시 규모를 확대해 추가 상품들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2. 노타모레와 부키의 탄생노트로 옮겨 간 요정들은 스스로를 노타모레라고 했다. 노트를 사랑하는(Amore) 요정이라는 뜻이다. 노타모레는 연한 감귤색의 피부와 녹색 기운이 감도는 긴 머리칼에 날개를 가졌다. 노트로 옮겨간 후부터 한 손에는 노트를, 다른 한 손에는 펜을 든 모습으로 변했는데, 점점 더 모습이 바뀌더니 왼쪽 눈은 예전과 다름없지만 오른쪽 눈에는 유선의 줄무늬가 또렷해져갔다. 노타모레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다. 다른 요정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똑 부러지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25년 전인 1993년 문화유산 답사 열풍을 일으켰던 미술사학자 유홍준 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펴내면서 서문에 소개해 널리 알려진 글귀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유한준(俞漢雋)이 남겼다는 이 명문을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데, 바로 이 땅의 풀과 나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꽃샘추위가 간간이 기승을 부렸다 한들 화창한 봄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산마다 골마다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고 매화, 산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