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요즘처럼 청년실업율이 높을 때 자식으로부터 받는 선물 중 가장 뿌듯한 것에 명함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고 나서의 기쁨은 비교하기 힘들다. 첫 직장에 들어간 뿌듯함을 두고 두고 느끼고 싶어해 지갑 속에 자식명함을 넣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마치 기다리던 손주를 보고 손주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에 비할 수 있다.애들이 첫 출근하고 집에 돌아온 날 명함 받아왔냐고 부터 물었던 기억도 난다. 그 다음엔 명함을 한장 받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자식의 명함에 대한 특별했던 관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최근 한 경제 매체가 주관하는 포럼에 참여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의 열띤 강연이 펼쳐졌다. 학교에 다닐 때 책으로 접했던 CSR을 기업의 일원이 된 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유익한 시간이었다.한 기업에서 CSR팀장을 맡고 있는 연사의 20분 남짓한 프레젠테이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CSR팀이 없어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꽤나 진지하게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이유인 즉슨 CSR팀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각 부문, 각 팀에서 알아서 윤리경영
사람이 떠난다.일순간 그 흔적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가 머물렀던 시간만큼 빈자리는 주변을 괴롭힌다. 당사자는 가슴을 친다. 회사에서는 이를 두고 이별이라 하지 않고, 퇴사라 칭한다. 누군가 퇴사 따위는 이별과 비교할 수 없는 가벼운 거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장인에게 퇴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고뇌가 낳은 용감한 자기사랑이다. 아니, 무모한 자기학대다. 사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다. 보금자리를 박찬 뒤 바라본 세상은 은근히 고요하다. 평화롭다 생각하여 한동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한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덜 소모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어리고 멍청하단 소리를 들었다. 감정이 노출되거나 소모해봤자 부끄럽고 자기만 힘든데 뭐하러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냐는 뜻이었을 테다.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100% 솔직해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내가 얻게 된 감정들이란 누군가와 교류하면서 얻어낸 것이기에 소중하게 생각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행복도 오래가지만, 고통도 오래간 게 사실이다. 일주일 넘게 유쾌하게 살다가, 이주일 넘게 끙끙 앓기도 했다.하지만 역시 후회한 적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운전면허를 딴 후 도로주행 연습시 보여준 나의 선택에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당시는 면허시험용차로 수동기어변속차만 있어 수동기어변속 방법을 어느정도 익혀야만 면허를 딸 수 있었다.운전면허가 나온 후 도로주행연습은 혼자 운전해도 무리없다고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자율적으로 받는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도로주행교습자를 찾으면서 자동변속기어차를 원한다고 하였더니 그 교습자는 자기차는 수동기어변속이지만 자기가 손으로 기어변속을 할테니 나보고는 자동기어변속차처럼 운전하면 된다하여 그 교습자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2년째 개인 블로그를 통해 무료 취업컨설팅을 해오고 있다. 취업컨설팅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건 없다.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거나 그저 상담을 해주는 수준이다. 최근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어보면 가슴이 답답하다.‘현재 걱정인 것은 제가 꿈이 없다는 것입니다’‘진로를 정하지 못해 너무 막막한 상황입니다’‘정부에서 공기업 채용을 확대한다는데 공기업을 지원할까요. 그래도 여전히 대기업이 좋을까요?’내가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 꿈을 심어줄 수도 없고, 감히 내가 진로를 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
[오피니언타임스=이지완] 나는 버스를 탈 때면 되도록 의자에 앉는 편이다. 버스에 서있으면 갑자기 불안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사람들한테 치이다보니까 그런 것 같다. 버스를 타면 나는 얼른 뒤로 걸어가서 내리는 문 앞에 있는 2인용 좌석에 앉는다. 그 좌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그 옆이나, 뒷좌석 정도에 주로 앉는다. 그런데 어제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버스 맨 앞좌석에 앉게 되었다. 맨 앞에 앉아있으니 버스의 전면 유리창으로 도로 상황도 보이고, 버스에 비해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나
병사가 출정할 적에,나는 보았다.화려한 꽃다발과 수많은 환송인파의 물결.꽃처럼 내리는 네 어머니의 눈물은 어느새 불경한 것이 되어버린 것을.너의 충성.조국은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병사가 귀환할 적에,나는 보았다.종전도 아닌 휴전.난리통에 얼어 죽었다던 병사의 어린동생을 닮았다는 흰나비 한 마리가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줄도 모르면서 마냥 기쁘기만 한 모양인지주춧돌만 남은 너의 집터에 날아와 앉아 하루 종일 너를 기다리는 것을.꽃처럼 내리는 어머니의 눈물만이 병사, 너를 찾아 헤매는 것을.병사는 빈 상자가 되어 돌아왔다.너의 충성.조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드넓은 대학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관계를 이어오는 것은 인연이라는 말 외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젊은 남녀사이처럼 불꽃이 튈만한 나이도 아닌 60을 넘긴 남자들 사이에, 그것도 외국인과의 사이에서라면 더욱 그렇다.아내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던 첫 해, 강의날이면 차를 태워다준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서 기다렸다. 교수연구실에만 머물러 있기엔 답답해서 교정에 나가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다. 서울대에 다닐 당시 옛 모습이 몇몇 건물에 남아있어 빛바랜 흑백사진에 색깔을 입히는 듯한 느낌으
“더우시죠? 그늘막이 더위를 식혀 드릴게요”서울 종로 풍문여교에서 인사동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앞 천막에는 이렇게 써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삼각지와 강동구청, 천안 성정동 등 전국 곳곳에 지난달부터 사각형의 커다란 천막이 펼쳐져 있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국지성 폭우가 기습하는 여름, 보행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설치한 ‘횡단보도 그늘막‘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있었다.대수롭지 않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여름 위에서는 강한 뙤약볕이, 밑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후끈한 복사열을 받으며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말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11만km를 달린 벗님의 마티즈를 타고 드라이브 내내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세 청춘은 흡사 한 무리의 불한당 같다. 신호 대기 중인 차에서 옆 차선 외제차를 보고 신세한탄 좀 하다가 역사와 이념까지 논하며 썰전을 찍는다. 이러다가 언젠가 다음 의제는 세계평화가 되지 않을까.각자의 하루 일과를 성실히 마친 우린 야밤에 한 번씩 이유 없이 모여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를 한다. 수동식 창문을 손으로 돌려 내리면 불어오는 바람은 마티즈에게도 평등하게 선선하다. 그러다 문득 배가 고프면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거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태생적으로 나는 심성이 그리 곱지 못하다. 게다가 몸은 더위를 잘 타는 체질로 태어났다. 그래서 여름이 싫다. 온 몸이 끈적거리는 나날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낼까봐, 신경질을 부릴까봐, 내게 여름은 더 경계해야 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또 더워서 그러지 못하겠다.울란바토르의 여름은 몰라도 한국의 여름은 불쾌함으로 가득 차있다. 한국땅을 밟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여름마다 예민해질 것이다. 그리고 겨울마다 스스로를 감싸맬 것이다. 봄과 가을이 점차 사라지는 한국에서 우리들은 자
[오피니언타임스=이지완] 최근 를 보며 미래의 반려견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사람의 언어만 할 줄 아니까, 반려견이 건네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미리미리 공부하고 싶었다. 인간의 하루와 개의 하루는 속도가 달라서 나에게 산책 30분은 별것 아니지만, 개한테 30분은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과 같은 깊이라고 했다. ‘많이많이 준비해둬야지. 그 친구 생에 있어서 나란 존재는 어마어마할 테니까. 행복한 생을 보낼 수 있게 해줘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꽃 키우는 법에 대한 서적이 있다. 책에 적혀있는 대로 적정 규격의 화분에 씨앗을 심고, 일정한 양의 물을 정해진 주기에 따라 공급하고 온도를 맞춰주면 꽃이 잘 자라날까. 정해진 형식에 맞춰 모든 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씨앗이 반드시 완연한 한 송이 꽃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손톱보다 작은 꽃에도 제각각 고유한 성질이 있다.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과는 다르게 그 씨앗 하나를 위해 물의 양과 횟수, 햇빛의 쐬기를 조절해주는 세심함이 없다면 금방 시들거나 죽어버리는 것도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서 자장면을 먹어본다.혼자 먹다가 체할까 두려워 잘 비빈 후, 사이다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 사이다 뚜껑에 병따개를 들이밀어 힘껏 들어 올리려다 다시 내려놓았다. 한 번 열어버리면 사이다 속 생명체들이 도망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이다는 이만 잠시 보관하기로 결정하고, 젓가락에 힘을 주어 최대 수용치가 넘는 면을 휘감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몇 번의 후루릅과 이빨의 절단으로 이내 입 안은 가득 찬다. 씹기조차 불편한 많은 양이었지만 그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시인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결과론적 ‘정적 상태(狀態)’가 아니다. 어느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멈출 수 없는 언어 표현의 욕구가 극에 달해 눈만 감으면 몸서리치게 종이에 손이 가고, 컴퓨터 자판에 눈길이 가는 찰나들이 모여 만들어낸 ‘동적 상황(狀況)’이다.그래서 시적 순간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시가 날 선택했고, 나는 거부할 수 없기에 오늘도 ‘빛나는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닌다. (*빛나는 그림자: 초현실주의 대표적인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가 표현한 ‘특별한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도둑비 내릴 때가 있다. 한밤 중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잠시 왔다가는 비라서 도둑비라고 한다. 기묘하게도 난 도둑비가 내리는 날 잘 깨어난다. 다른 소리는 신경도 안 쓰면서 빗소리에만 유독 예민하다. 단순히 비를 좋아해서 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고요히 도둑비가 내릴 것 같은 날에는 편지를 쓰고 싶어져 그럴 것이다. 수신인은 없다. 그러나 가장 구구절절한 편지다. 편지는 상대방에 대한 서툰 안부인사로 운을 떼고선 나의 어정쩡한 근황을 설명한다. 내용이 구질구질해보여서 한밤중에 써야한다.
띵동♬문을 열었더니 다짜고짜 현금 5만원을 건넨다.“조선일보 1년만 받아보세요”“저는 조선일보 안 보는데요”“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있습니다”“아……”내가 머뭇거리자 경향신문, 한겨례신문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은품이 없다고 했다. 5만원을 말하는 것 같았다.“조금만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네…… 그럼 일단 알겠습니다”“안녕히 가세요”(흐리는 목소리로) “경향, 한겨레는 수준이 낮은데....”신문 유통업자는 문을 닫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매우 선명하게. 경향, 한겨
오래 전 개 한마리 집으로 들였다. 할매는 염소 같다 했고 부친은 시골 똥개 같다 했다. 나는 사슴 같아 데리고 왔다. 개는 유기견 때 버릇이 남아 마른 것을 온이 씹지 않고 넘겼다. 끼니때마다 밥을 줘도 저에겐 늘 기약 없는 마지막 음식처럼 허겁지겁 했다. 습관이었다.2번 찍은 할매에겐 운동권의 교정을 노닐던 아들이 있다. 개가 거실 바닥에 차진 똥을 쌀 때면 둘은 꼭 9시 뉴스로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더 거슬러 올라 집구석 전설을 헤아리면 이 몸뚱아리에도 좌우의 피가 두루 흘렀다. 개의치 않았다 마냥 자연이고, 습관이었다.지난
중학교 때 처음 자격증을 취득했다.당시에는 컴퓨터 하나만 잘해도 먹고 산다는 괴소문이 떠돌 때였다. 그래서 무려 컴퓨터 자격증만 3개를 취득하고, 프린트 드라이버 설치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득한 자격증이 5개가 넘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종 수료증 및 학위 취득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자기계발 담론이 제공하는 환상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해버린 것이다.자아는 종적을 감추었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대로 인간개조가 완성되었다.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슬그머니 주장해보자니 죄를 짓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