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다닌다는 것은 이 애기 저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처럼 ‘여행자’의 이름을 앞세워 길 위를 떠도는 사람은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는 흘려보내고 말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내용도 많습니다.충남 어느 도시의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깥노인 세 분이 식사 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더니, 그 중 한 분이 ‘은밀’을 가장해서, 사실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거시기, 그 말 들었어?”“무슨 말?”“홍준표가 문 닫게 한 도립병원인가 의료원
19대 대선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다닌 말은 “대통령이 되면 먼저 평양에 가겠다”였다. 남북 대화의 의지를 강조하다 나온 이 말은 그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대표적인 발언으로 꼽혀 반대세력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대상이 되었다.문 대통령이 28일 취임 후 최초 외국 방문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누가 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미국을 제일 먼저 가는 것은 지금의 한미관계 아래선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대통령이나 야당이나 공연한 소리로 공연한 공방을 벌인 셈이다.문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길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무거워 보인
국가 간 협상을 하거나 외교 마찰이 생길 때 언론은 자국의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내셔널리즘 같은 거창한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기 나라와 자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런 점에서 최근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미국 워싱턴DC의 세미나에서 한 발언을 놓고 벌인 국내 보수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보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서글프다 못해 분노 같은 게 솟아오른다. 과연 어느 나라 언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문제의 발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6.25 한국전쟁’의 휴전협상이 마무리되던 1953년 5월, 백선엽 육군 참모총장은 미국의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한다. 그는 거기서 일정에 없던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게 된다. 백 장군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폐허가 된 한국을 위해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ce Pact) 같은 것’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한다.(「군과 나(6.25 한국전쟁 회고록)」, 백선엽, 시대정신, 2016,4) 이것이 1954년 11월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출발점이었다. 한미동맹 잘
유명한 시작품들이 노래로 만들어진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로 읽을 때와 악곡이 붙은 상태에서 노래로 부를 때의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낭송으로 문맥을 음미하면서 읊조릴 때의 느낌과 악곡에 의탁해서 소절을 따라 부를 때의 느낌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노래로 바뀐 시는 악곡 자체에 익숙해져서 가사의 원래 고유성이 다소 희석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악곡이 붙어서 시의 원문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니 시와 악곡은 서로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 상호배합을 이루고 작용을 하느냐에 따라 그 반응효과는 현저히 달라진다고 하
앞서의 칼럼(▷관련기사 바로가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420년전 정유재란의 형국이다.동아시아와 한반도 상황을 볼 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딱 좋은 모양새다. 굳이 명리학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사주팔자’가 그렇게 돼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 중이다. 패권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잠재적 욕망은 이미 분출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옛날처럼 패권주의 대외정책을 음양으로 전개하면서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은 육지보다는 ‘나라 사이의 경계들이 중복돼 있거나 모호한 상태에 있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술 한잔에 시 한수로~’해학과 풍류로 한 시대를 살다간 조선후기의 천재시인 김삿갓.강원도 영월의 외지고 외진 산골짜기(와석리)에 ‘난고(蘭皐) 김삿갓 문학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2003년에 문을 연 문학관엔 김삿갓의 친필과 작품, 연구사료가 전시돼 그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한눈에 보여줍니다.김삿갓은 스무살 때 영월 동헌에서 실시된 백일장(과거)에서 조부인 줄 모른채 조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비판한 이가 조부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
중학교 때 처음 자격증을 취득했다.당시에는 컴퓨터 하나만 잘해도 먹고 산다는 괴소문이 떠돌 때였다. 그래서 무려 컴퓨터 자격증만 3개를 취득하고, 프린트 드라이버 설치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득한 자격증이 5개가 넘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종 수료증 및 학위 취득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자기계발 담론이 제공하는 환상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해버린 것이다.자아는 종적을 감추었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대로 인간개조가 완성되었다.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슬그머니 주장해보자니 죄를 짓는 것
미국 연방준비은행(이하 연준)이 최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작년 말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더니 현재 기준금리는 1.00~1.25%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1.25%로 미국 기준금리의 상단과 일치한다. 미국 연준은 올해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예정이어서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해외자금의 이탈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경제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여기서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
어항마름과의 여러해살이 수생식물. 학명은 Brasenia schreberi J.F.Gmelin“네가 나로 살아 봤으면 해/내가 너로 살아 봤으면 해/단 하루라도 느껴 봤으면 해/너의 마음/나의 마음” (2NE1 - ‘살아봤으면 해’에서)그렇습니다. 하루는 ‘너’로 살고 하루는 ‘나’로 사는 식물이 있습니다. 인간사에선 너로도 살아보고 나로도 살아보는 게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식물계에선 허황된 몽상만은 아닌가 봅니다. 첫날은 암꽃으로 살고 그 다음날은 수꽃으로 사는 순채(蓴菜)가, 만화 같은 소망이 엄연한 현실일 수 있음을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가야사 복원 사업을 정책 과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당부한 것을 두고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특정 역사에 개입한다면 국정교과서를 만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서는 가야사가 그동안 지나치게 소외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대통령의 관심을 가야사 규명의 기회로 활용하되 정치적 의도가 스며들 여지는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다.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가야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체 왕국’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남 일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가르는 것은 거의 동물적인 습성인 것 같다. 그러나 외국을 오가다 보면 남의 것을 배척하는 한국인의 제한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dual citizenship)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개각 때를 비롯해서 무슨 때만 되면 이중국적자가 문제가 되고, 이중국적이라는 이유로 인사 대상에서 탈락되거나 낙마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14년 전,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부장관이 된 연봉 60억원의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이
지난 8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의 집권 보수당은 종전의 과반의석을 잃었다. 영국 조기총선은 메이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력 강화를 위해 의석수를 늘리고자 실시했다. 그러나 영국 민심은 메이에게 등을 돌렸다. 보수당이 야당 노동당에 패한 곳에는 런던 서부 켄싱턴 지역도 포함됐다. 노동당이 켄싱턴 선거구에서 승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배경에는 당국이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4일 발생한 런던 고층아파트 화재는 이를 다
전선과 가로등 불빛이 우거진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나는 오늘 누구에게 터무니없는 고집을 피우진 않았는지내 체력 방전을 핑계로 신경질 부리진 않았는지필요한 말을 삼키고 불필요한 말을 꺼냈는지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란 생각으로 고개 숙였는지나를 아껴준 누군가에게충분히 최선을 다했는지.걸음걸이에 맞춰 뜨다 저무는 그림자와 함께현관문 앞에 서면 한숨을 쉴 때가 있었다.무언가 못 다한 미적지근한 밤이 진다.고질적으로 시달리는 불면증의 이유고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서러움을 가슴에 품는 이유고내일 새로운
세상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등용되고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면서 새삼 사람들의 처세와 사는 법에 대해 말들이 오고 간다. 학계에서 정치계로 입신하는 소위 ‘프로페서(professor)’나 언론계에서의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등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신조어이다. 정치하는 사람 중에서도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어느 시골의 토담집에서 은거하며 때를 기다린다던지 아니면 낙향하여 아예 기존의 세계랑 연을 끊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철새라는 소리를 감수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낙후된 미국 내 기반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약속했다. 지난 6월 6일 첫 작품으로 야심차게 발표한 분야가 공항관제업무였다. 그는 다른 나라 선진공항들은 GPS를 갖춰놓고 있는데 비해 미국 공항에서는 아직도 레이더에 의존하는 낡은 시설로 인해 안전을 해치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최고의 관제시설을 갖추겠으며 나라의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그러나 CNN방송에서는 이를 생중계하며 그의 발표는 간단히 말해 관제업무와 시설의 민영화 선언과 다르지 않다고
엄마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자신의 손바닥보다 훨씬 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휴대폰으로 딱히 게임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쓰다듬기만 두어 번. 지나가는 행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꼬마 녀석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녀석 때문에 나도 꼼짝 않고 알 수 없는 기다림을 함께했다. 하늘 보고, 땅 보고, 그러다 눈을 감아도 오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녀석은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전화가 울리는 것 같았다. 휴대폰 수신 불빛으로 녀석의 얼굴이 삽시간에 환하게 꽃이 폈다. 휴대폰을 한껏 귀에다 가져다놓고 들리
70년대 대학 시절, 꿈을 꾸는 한 선배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중요한 소설가로 그의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이 선배는 대학 시절 두툼한 책 한 권을 옆구리에 항상 끼고 다녔다. 그 책을 뛰어넘는 글을 쓰고 말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선배가 사주는 술을 많이 얻어마셨던 나는 예의상(?) 그 책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토마스 만의 이었다.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스위스 다보스 산 속 결핵 요양원이다. 주인공 한스가 이곳에서 요양중인 사촌을 3주 예정으로 방문한다. 그러나 그도 이곳에서 결핵이 발견되어
지난 10년간 한국에는 두 개의 고난이 있었다. 하나는 부도덕한 정권이 국민에게 가한 고난이다. 국격은 훼손됐고 정권은 국민을 대상으로 장사치 짓을 했다. 또 하나는 세월호 침몰이다. 그런데 침몰한 것은 배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있었다. 그러다가 촛불의 힘으로 더러운 권력을 걷어냈고 세월호는 고난의 몸을 드러내 국민들에게 다시 믿음을 줬다. 6월 10일에는 시청 앞 광장에서 지난 투쟁들의 성과를 축하하는 시민 축제가 열렸다. 요즘 페북 콘텐츠도 거의 축제 같은 희망과 감동의 내용들이 많아졌다.
걷거나 뛰지 말라는 경고에도 헐레벌떡 뛰어가던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마치 그것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잠시 멈춰서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을 따라가 보니 지하철 어플이 열려 있었다. 알록달록. 여러가지 색은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목적지까지 가려면 네 번의 환승을 거쳐야만 함을, 출근길 지하철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고난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안도했다. 난 한 번만 환승하면 되니깐. 우린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 어떻게든 중심에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생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