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서울의 주산, 북악산의 모습

[오피니언타임스 김정인 풍수지리]조선이 개국하면서 어디를 도읍지로 정할지를 두고 계룡산 신도안, 서울 무악(현재 신촌), 서울 한양(현재 사대문안)에 대한 찬반양론이 벌어졌는데 풍수적으로 가장 뛰어난 한양이 도읍지로 결정됐다. 서울 한양은 북악산 주산이 장대하고, 사신사(四神砂)가 겹겹으로 감싸주며, 내당수 청계천이 역수하고,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마주하며,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하여 장엄한 기운을 공급하며, 명당이 넓고 평탄하여 최고의 길지로 평가됐다. 서울은 조선조가 도읍지로 정한 이래 518년 동안 이어졌고, 600여년을 국가의 수도로 이어오면서 대한민국이 세계경제 10대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어왔다.

서울의 주산 북악산은 내사산(內砂山) 중 가장 으뜸이다. 뒤에서 도봉산과 북한산이 밀어주고 모든 산과 모든 물길이 모여든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용맥이 백두대간을 타고 행진하다가 분수령에서 갈라져 한북정맥을 이루고, 남쪽으로 행진하던 백두대간은 속리산에서 분기되어 한남금북정맥으로 올라와 안성 칠현산에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갈라져 한남정맥이 북진하여 한강을 사이에 두고 한북정맥과 마주한다.

서울 한양 땅은 북악산(342m)을 주산으로 좌로는 좌청룡 낙산(125m), 우로는 우백호 인왕산(338m), 앞으로는 안산 남산(262m)이 둥글게 감싸주며, 밖으로는 북한산(836m)을 주산으로 하여 청룡 용마산(348m), 백호 덕양산(124m), 안산 관악산(632m)을 마주하여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장풍국을 형성한다. 또한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수하여 서울을 W자로 둘러싸며 북진하여 임진강과 합류 후 서해안으로 빠져간다.

▲ 북악산 정상의 두꺼비바위, 동쪽을 향하여 머리를 내밀고 있다.

서울의 주산, 북악산 정상에 오르면 정상 꼭대기에 특별한 모양의 바위가 나타난다. 필자는 여기를 수차례 오르면서도 평범한 바위로 생각했었다. 뒤늦게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두꺼비의 형상이다. 이곳은 조선조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올랐으나 이 바위를 두꺼비바위라고 본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세종 15년, 경복궁 주산논쟁이 있었을 때 세종은 황희 정승 등 대신들과 함께 북악산에 올라 경복궁의 주산논쟁을 잠재웠다. 그 때도 이 두꺼비바위는 있었을 것이다.

두꺼비는 강한 번식력과 장수를 상징한다. 두꺼비는 풍요와 안녕, 복을 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두꺼비는 양서류 가운데 가장 머리가 좋다. 섬진강에 가면 처녀가 두꺼비에게 밥을 먹이고 함께 지내다가 홍수가 나자 물에 떠내려가던 처녀를 두꺼비가 구해주고 죽었다는 보은담의 전설이 내려온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의 모습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북악산의 두꺼비바위는 두꺼비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 있다. 고개를 내밀고 동쪽을 바라보는 두꺼비바위는 수도 서울을 품어주며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물을 맞이한다. 다산(多産)과 장수의 상징인 북악산 정상의 두꺼비바위, 가장 먼저 아침 해를 받으며 생기(生氣)가 충만해지고, 처녀의 위기를 구해준 섬진강의 두꺼비처럼 대한민국의 안녕과 번영을 가져오는 영험한 두꺼비바위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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