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명성산 자락 중턱에 자리 잡은 자인사, 사신팔장의 영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 김정인 풍수지리] 산정호수는 1925년에 축조된 인공호수이다. 산속의 우물 같다하여 산정(山井)호수라 이름 하였는데 6.25 한국전쟁 전에는 이곳이 38선 이북지역이어서 김일성(1912~1994) 별장이 있었다. 호수의 모양이 한반도 지도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 작전 구상을 위해 별장을 지어놓고 자주 머물렀다고 하는데 별장이 위치한 곳은 산정호수의 수구(水口 : 물 나가는 곳) 쪽의 바람길 이어서 별장터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산정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보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산이 있는데 호수 뒤쪽에 명성산(鳴聲山, 923m)과 남쪽에 망봉산(望峰山, 384m) 그리고 서쪽에 망무봉(望武峰, 440m)이다. 별장 우측의 망봉산은 매우 높고 험하며, 좌측 망무봉은 고개를 돌리고 있어 별장을 왜 이곳에 지었을까 의문이 든다.

4km 정도의 호수길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망무봉이 바라보는 모습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산인 명성산 아래 자인사(慈仁寺)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숲길을 지나 중턱에 오르면 사방으로 산이 둘러지고 망봉산과 망무봉이 적절한 높이로 들어오면서 바로 그곳에 자인사가 자리를 잡았다.

▲ 망무봉에서 바라본 명성산 자락의 자인사 모습

자인사는 궁예의 미륵세계를 상징하는 자(慈)와 영계에서나마 궁예(870~918)와 왕건(877~943)의 화해를 기원하는 인(仁)을 합쳐 자인사(慈仁寺)라 하였다. 이곳에는 일찍이 전장에 나가던 왕건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두 승리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그 후 이 바위는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국가의 태평과 국민의 안녕을 기원했던 바위라 하여 잿터바위라고 하는데 그 바위의 모양이 마치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의 모양이다.

산정호수에서나 김일성별장에서는 망봉산과 망무봉이 너무 높아 압(壓)을 느꼈는데 이곳 자인사 터에 오르니 명성산 자락을 배산으로 뒷산이 든든하고 좌우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준다. 주변 산들의 높이에 따라 천지인(天地人)의 혈(穴)자리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이곳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았으니 인혈(人穴)에 해당한다.

자인사 터는 주위 봉우리들이 사방에서 사신팔장(四神八帳 : 사방팔방에 귀봉들이 솟아 있음)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라성(羅城)을 이루었으며 삼길육수(三吉六秀 : 진경해의 3개의 吉方과 간병손신태정 6곳의 秀方)의 영봉들이 정기를 품어주어 부(富)와 장수(長壽)를 기약한다. 북(北)으로는 명성산 정상이 자리하고, 동(東)으로 뻗은 자인사의 뒷산은 와우형(臥牛形 : 누운 소처럼 보이는 산의 모양)의 형국이요, 남(南)으로는 망봉산, 서(西)로는 망무봉이 조응(照應)한다. 천리를 달려온 용이 호수를 만나 물을 얻은 곳, 사방의 산들이 조응하니 생기(生氣)가 응결(凝結)하여 혈을 맺는다.

명성산은 상층부가 바위산이라 기(氣)가 거친 산인데 자인사로 용맥이 입수하면서 박환(剝換:암석이 풍화작용에 의해 흙으로 변화는 과정)하여 살기(殺氣)를 벗었다. 전후좌우가 드센 듯 하면서도 안온하고, 안온한 듯 하면서도 다시 웅비한 곳이다. 궁예와 왕건의 맺힌 악연을 풀고 미륵세계 구현을 기원하며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아 자인사(慈仁寺)라 이름 한 곳, 산정호수에 가면 이곳에 들러 마음을 가다듬고 명당의 기운을 받아보자.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