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마을을 물이 감싸 돌고 마을 가운데가 봉긋 솟았다. 주변의 산들이 유정하게 감싸주며 감투봉과 문필봉이 우뚝하다.

[오피니언타임스]안동 하회(河回)마을은 조선시대 영남의 4대 길지였고, 오늘날에는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은 미국 부시대통령 부자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기도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이곳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류성룡의 9대조 류난옥은 자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설만한 땅을 구하기 위하여 풍수사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터를 정하고 3대에 걸쳐 적선을 한 후 서애의 6대조 류종해 공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 후 600여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자손대대로 보존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회마을의 입지를 제대로 보려면 하회마을 건너편에 있는 부용대에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는 하회마을 전경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산태극 수택극 태극형(太極形, 산과 물이 태극모양)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이다. 백두대간 태백산맥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 327m)을 이루고 낙동정맥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원지산, 부용대를 이루면서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물이 S자로 감싸주면서 돌아 마을이름을 하회(河回)라고 지었다. 물이 돌아가는 곳이란 의미다.

마을의 주산을 화산(花山)이라고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회마을의 모양이 연화(蓮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부용대(芙蓉臺, 64m)라는 이름도 연꽃을 상징한다. 또한 하회마을은 3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짐을 싣고 떠나가는 배의 모양인 행주형이다.

하회마을에는 고려초부터 허씨와 안씨가 살았다. 화산의 주산아래 남쪽 거묵실골에는 김해 허씨가 자리 잡았고, 뒤에 들어온 광주 안씨는 화산의 북쪽인 행개골에서 삶터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에는 화산 바로 아래가 가장 좋은 명당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뒤늦게 들어온 풍산 류씨가 화회마을 풍수적 형국을 보고 화산 끝자락인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는 쇠하고 풍산 류씨가 번성했다.

풍산 류씨가 자리한 현재의 터는 화산의 중심맥이 평지룡으로 들어와 마지막 자락에서 봉긋 솟은 후 낙동강을 만나 생기가 멎은 곳으로 화회마을의 진혈처(眞穴處)이다. 하회마을을 부용대에 올라 관찰할 때 연화부수형으로 보면 이곳이 연꽃의 꽃 수술 부위이고, 배모양으로 보면 기관실이 위치한 곳이며, 풍수적 원리로 보면 산맥이 끝나는 산진처(山盡處)요, 한 치가 높아 생기(生氣)가 응집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 대문을 나서면서 문필봉을 마주한다. 양진당의 좌향을 앞산의 문필봉에 맞추었다

자손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만한 터를 찾은 풍산 류씨는 하회마을 가장 높은 곳에 나무를 심고 이곳 산을 배산으로 하여 물을 바라보며 각각 주택의 좌향(집터 따위에서 등진방향과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방향)을 잡았다. 화회마을의 특징은 마을형상이 행주형이라 우물이 없고, 돌담이 없으며 주택이 좌향이 없다고 한다. 하회마을은 행주형이기 때문에 우물을 파면 물이 들어와서 안 되고 배모양이라 돌담을 쌓으면 무거워서 안 되고 배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운데를 정점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자연적인 택향을 하여 주택의 향이 일정하지 않다.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명당은 입향조 류종해가 지은 양진당이다. 화산의 지맥이 충효당을 지나 이곳에 머물렀다. 좌측 전면으로는 감투봉이 위치하고 안대에 해당하는 원지산에는 문필봉이 솟았다. 이곳의 정기를 받고자 문필봉을 바라보며 본체의 높이와 솟을 대문의 높이를 산과 조화되도록 맞추었다. 이곳에서 겸암 류운용(1539~1601)과 서애 류성룡이 태어났다.

하회마을은 서울의 형상과도 유사하다. 서울은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마주하는 곳을 한강이 ‘W'자로 감싸주고 하회마을은 태백산지맥과 낙동지맥이 마주 하는 곳을 낙동강이 ’S'자로 감싸준다. 풍수적 명당을 찾아 왕궁 터를 잡은 수도 서울이 600년을 이어 오면서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듯 자손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만한 명당 터를 풍수를 보고 잡은 하회마을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이 한국의 전통마을로서 자자손손 유구히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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