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오피니언타임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다. 강의 상류가 흐린데 하류가 맑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것도 몇 백리 상류라면 흐르는 동안 흙탕물이 좀 가라 앉아 어느 정도 맑아지겠지만, 바로 한 구비 위가 흐린데 이 곳 아랫물이 어찌 흐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백년하청(百年河淸) 아니냐는 뜻이다.

이 속담은 주로 요즘 같은 한국의 암담한 정치 상황을 보면서 인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윗물 격인 정치 지도자들이 맑지 못하면 아랫물 격인 국민이 맑을 수 없다. 나라 전체가 이렇게 혼탁한 것은 근본적으로 상류에서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으며 물을 흐리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이다. 이들이 솔선수범 맑아져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식이다. 일리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 윗물이고 누가 아랫물인가? 옛날에는 위정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래로 백성들을 지배해 왔다. 백성들은 결정권이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완전 하향식 구조였다. 따라서 국가가 맑으냐 흐리냐 하는 것은 거의 위정자들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픽사베이

민주주의 시대 국가의 주인은 국민

그러나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것과 같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들은 피지배자가 아니라 국가의 주인이다. 주인들이 주인들을 섬길 공복(公僕)을 골라낸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일반 국민들이 밑에서 수동적으로 위정자들의 지시만 따르거나 그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한 공복들을 선출하고, 감시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갈아치울 수도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은 민중이 윗물이고 위정자들이 아랫물이 된 셈이다.

이런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똑똑하지 못한 공복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결국 똑똑하지 못한 주인이 있기 때문 아닌가. 물론 완력이나 무력으로 주인을 억누르고 자기들이 주인행세 하겠다는 종들이 속출하는 판국에는 주인도 별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것도 참 주인이 자기가 주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 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아랫물로만 생각하고 모든 책임을 윗물에만 돌리려는 일이 너무 많다. 맑은 사회, 정의로운 국가가 오로지 위정자들의 선심에만 달렸다고 믿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좀 오래 전 일이다. 캐나다 교포 신문에 어떤 단체가 낸 ‘감사 말씀’이라는 광고가 나왔다. ‘금년 제 0회 한인 000대회를 성대히 이끌어주신 총영사관 이하 교민 단체 여러분과 특히 000협회 임원 이하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다. 물론 악의 없는 글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여러분’이 총영사관 ‘이하’이고, 회원들이 임원진 ‘이하’라고 하는 표현은 관이나 임원진은 국민과 회원들이 뽑은 심부름꾼으로 국민과 회원들을 밑에서 떠받들고 섬겨야 할 사람들이란 말이다. 민주 의식이 전혀 없이, 종래까지의 관료주의적 관존민비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노정한 것이라 보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 ©픽사베이

깨어 있어야 참된 민주주의와 올바른 역사 정착

최근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장병들에게 1박2일 휴가와 약간의 간식을 선물한 것을 두고 ‘하사’했다고 했다. 하사(下賜)란 옛날 왕이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른바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금품을 이르는 말이다. 아직도 ‘윗분’이라고 하거나 ‘윗선’이라는 말을 당연한 것처럼 쓰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 아랫사람들이고 위정자가 윗사람이라는 전근대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기는 위의 예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지도자란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미는 사람이지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관이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수동적 노예근성의 자세를 청산하고, ‘국민이 윗물이다. 우리가 어떠하냐에 따라 어떤 정부를 갖게 되느냐가 결정된다. 먼저 우리가 맑아야,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는 자주적인 주인 의식이 우리 사이에 더욱 널리, 더욱 깊이 뿌리 내려야 하리라 믿는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올바른 역사’가 이룩되는 것 아닐까?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