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 ©플리커

[오피니언타임스]“한국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 금융 산업인데 급여 수준은 반대로 가장 높다”

늘 들어왔던 말이긴 하나 지난 달 어느 세미나에서 금융 감독기관의 최고 책임자였던 분의 입을 통해 이 말을 듣는 느낌은 달랐다.

지난 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실업대책으로 희망펀드를 제안하면서 월급의 20%를 기금에 출연한다고 하자 은행지주회사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앞 다투어 연봉의 20~30%를 반납하고 있던 때였다. 금융기관들은 다른 어느 기관 단체들보다 앞장서 이 기금에 출연하고, 청년 희망펀드에 맞춘 신상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는 자신이 책임자의 자리에 있었을 때도 은행장들의 연봉을 깎았는데 자리에서 물러나자 다시 원상회복시키더라고 했다. 이번의 반납분도 얼마 안 가 원위치 할 것이다.

이달 들어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세계에서 오후 4시에 문 닫는 은행이 어디 있냐?”고 한마디 하자 은행들이 영업시간을 조정하느라고 부산하다. 최 부총리가 이 말 끝에 했다는 “그러니 우리나라 은행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니냐?”는 질책은 은행들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올해의 세계금융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 못한 87위를 차지했다. 평가 기준이 해당국가의 경제실력이 아니라 기업경영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이같은 결과에 논란의 소지는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21일 청와대에서 청년희망펀드 1호 가입신청서에 서명하고 있다.©청와대

낮은 경쟁력은 관치금융에도 책임 있어

기업인들이 은행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점은 현재의 국내 경제 상황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관치금융의 폐해가 여전하고, 줄곧 늘고 있는 가계부채, 빈발하는 금융사고 등 금융산업의 취약성으로 볼 때 무턱대고 잘못된 평가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최 부총리의 그런 질책은 은행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해야 맞다. 금융의 폐습은 우리나라에서 상당 부분 정부의 비호 아래에서 자란 것들이다. 은행들이 월급반납, 영업시간 조정 등을 하면서도 관치금융의 부활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업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금리수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수익구조가 결정되는 산업이다. 여타 제조업보다 훨씬 정책 의존도가 높은 산업, 즉 정부가 통제하기 손쉬운 업종이다.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산업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업종이 가장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정부의 몫이다.

은행 회장과 행장의 연봉은 보통 수십억 원 수준이다. 행원들도 남자 행원의 초임 연봉이 5,000만원, 여자 행원 4,500만원이고, 4명 중 1명은 연봉이 1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 금융 산업은 고임금에 항아리 형 인력구조를 갖고 있다. 뱃살만 잔뜩 찌고 하체가 부실한 성인병 환자의 모습이다. 그런 이상 체질을 만든 것이 은행만의 책임일까?

은행의 서비스 수준을 보자면 창구직원의 친절도는 높아진 듯하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에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영업의 상당 부분이 담보에 의한 땅짚고 헤엄치기 식이고, 신용만으로 은행 돈 빌려 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신용평가 기술이 낙후하다 보니 은행들조차 가짜 신용에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제조업에서는 세계에서 1등 하는 제품들이 나오지만 국내 은행이 금융상품으로 세계에서 그런 인정을 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은행의 규모가 커져야 경쟁력이 생긴다면서 덩치 키우기 경쟁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올해의 세계금융경쟁력 평가에서 81위를 차지한 우간다 국기 핸드페인팅. 한국은 87위에 그쳤다. ©픽사베이

높은 연봉은 가계와 기업의 희생 덕분 아닌지 성찰해야

관치금융의 대표적인 폐단은 낙하산 인사다. 은행 임원인사 때 정권의 눈치 보기는 고질 수준이다. 대통령과의 학연이나 지연을 고려해서 임원을 선임하는 모습은 특히 3명의 상고 출신 대통령 시절에 확실하게 눈에 띄었다.

금융은 산업의 혈액으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고액연봉도 그같은 기여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은행의 최고수준 임금에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경기 침체로 전체적인 국민의 삶이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무엇보다 높은 연봉이 가계와 기업의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는 아닌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은행 경쟁력 조사의 설문 대상이 기업경영자가 아니라 서민이었다면 결과는 더 혹독할지도 모른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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