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경제산책]

▲ 지난 16일 유튜브와 SNS에 올라온 1분27초짜리 신세계백화점 갑질 동영상. 여직원들이 고객 앞에서 무릎꿇고 사과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쳐

[오피니언타임스]법률 계약서에서 쌍방을 가리키는 ‘갑(甲)’과 ‘을(乙)’ 관계에서 ‘갑’의 행동을 뜻하는 ‘질’을 붙인 말인 ‘갑질’은 이제 거의 한국사회의 보통명사가 됐다.

지난 10월 16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 여직원 2명이 한 여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상이 공개돼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가 7년 전 구입한 목걸이와 팔찌의 무상수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직접 찾아가 판매 직원들에게 “야 너희 둘 다 똑바로 해. 지나가다 마주치면 나보고 죄송하다고 하게 내 얼굴 외워”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난리를 치는 ‘블랙컨슈머’의 이런 갑질은 동영상이라도 남아 있어 결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반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고 말로는 ‘바른 사회’, ‘정의’를 떠드는 사람들의 갑질은 동영상도 없고 더 은밀하다. 말로만 지시하니 증거도 없고 당사자들은 입을 열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공개하지도 못한다. 당하는 사람들이 아니꼽고 더럽게 느끼고 뒤돌아 침을 뱉을 지언정 학위를 따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못 본 척, 못들은 척해야 한다. 그런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이사장, 병원장, 회장, 대표, 교수 등 번듯한 직위의 사람들이어서 더욱 기가 막힌다. 필자가 듣거나 본 갑질은 이런 것이다.

▲ ©플리커

#사례1 A유명 사립대 약학대 교수는 박사과정의 제자에게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제자의 소득으로 넣어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외부 제약회사 등으로부터 수주한 연구 프로젝트 사례비가 너무 많아 종합소득세를 덜 내기 위해 제자의 소득으로 돌리려 한 것이다. 이런 요구를 두고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제자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통과가 늦어지는 것은 그 교수의 이런저런 사적인 부탁을 잘 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례2 일가족 소유인 지방의 B대형병원은 병원 이사장뿐아니라 이사장 며느리까지 갑질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장은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 밤에 연말 예배를 본다고 개인적으로 지인들을 초청해 외부업체가 운영하는 구내식당의 직원들에게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떡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그것도 직원들이 연말연시휴가와 새해 첫날을 준비해야 할 시간에 떡국을 주문한 것이다. 또한 이 병원의 젊은 며느리는 밤을 한 무더기 던져주고 껍질을 까줄 것을 요구했다.

#사례3 C 기업 회장은 계열기업을 여러곳 거느리면서 입만 열면 늘 기업내 분위기를 ‘바르게 한다’고 운운하는 사람이다. 그는 계열사 임원을 불러 자신의 아들 결혼식 때 회사 거래처에서 축하 화환을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하객과 축하 화환이 적어 자신의 체면이 구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다.
회사 임원들이 사용하는 렌터카를 1년 단위로 계약하면 비용이 싸게 든다고 렌터카 회사가 이야기해도 회장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도록 했다. 회장이 임원들을 채용한 지 몇 개월도 안 돼 수시로 해고하는 탓이다.

#사례4 D 법무사 대표의 사무소에는 직원들이 1년에 몇 번이나 바뀐다. 대표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대인관계도 넓다. 업무와 네트워크 확대를 위해 대표는 골프도 친다. 하지만 직원들이 수시로 바뀐다. 직원들이 오래 근무해 퇴직금을 받지 못하도록 1년이 되기 전에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내보내고 새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 ©픽사베이

이런 갑질 논란을 듣고 보고 있으면 한국사회가 ‘선진’ 운운 하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교수나 이사장, 기업회장 등은 입을 열면 품위를 강조하고 ‘바른 것’을 강조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정작 회삿돈과 자신의 돈을 구분하지 않고 탈세를 위해 제자를 이용하려 하고 이를 박사 학위에 연계시킨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며 임직원을 사익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이런 치사하고 부당한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하고 임직원이면 오너의 집안 일까지 거들어야 박사 학위도 딸 수 있고 월급쟁이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조직이 한국에는 적지 않다.

그들의 치사하고 더러운 뒷면을 보면 한국사회는 여전히 앞면과 뒷면이 다른 ‘이중(二重)사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회의 가치관이 더 뒤틀리고 혼돈스러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상일

  전 서울신문 경제부장·논설위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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