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 이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무산을 기대하는 것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철벽 같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말미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설명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는 의원들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며 국정교과서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 ©포커스뉴스

박 대통령의 국정화 강행의지, 사실상 대책 없어

박 대통령은 정치 투쟁을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박 대통령은 타협의 정치인이라기보다 원칙의 정치인이다. 야당으로서는 고집불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아마 배수진을 치고 싸우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절대로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은 대응하기가 난감하고 패퇴하기 쉽다.

국정화 논란 초기만 해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검·인정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국정화를 강행한다고 말할 정도로 국정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도 국정화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의견을 여러 번 제시했다. 나중에는 새누리당이 경질을 거론할 정도였다. 야당과 대립각을 세워온 보수 언론들도 처음에는 ‘이럴 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정화에 직설적으로 반대하거나 완곡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던 것이 박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순간부터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국정화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10월 중순 미국 방문 전후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조금씩 말을 바꾼다 싶더니 보수 언론과 여당 지도부가 모두 국정화 찬성으로 돌아섰다. 박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답’을 봤다고 해야 할까.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신념이나 고집을 내세우거나 몽니를 부리면 사실상 대책이 없다.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의지를 존중하고 다른 국가적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국정화를 희망하는 것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고 10월 유신에 대해서도 재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금도 부친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한강의 기적을 일군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나오는데 역사 교과서가 홀대하고 폄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결의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은 국정화에 총력 대응할 듯

앞으로 새누리당은 국정화 문제에 똘똘 뭉쳐 대응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의 공천권을 좌우할 수 있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국정화 의지가 강력한 만큼 현역 의원을 포함해 새누리당 공천 희망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28일 국정화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현행 교과서로 교육하자는 것은 적화 통일에 대비해 어린이들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라는 취지의 황당한 말을 퍼부은 것도 박 대통령의 의지를 일깨운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도 스스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충격 요법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김무성 대표도 전남방직 창업주인 아버지 김용주 전 회장의 친일 논란 이후 연일 강력한 국정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부의 확정고시로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2일까지 행정예고 기간을 거쳐 5일 고시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입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어서 국회에서는 저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반대 서명운동과 역사교과서 체험, 버스투어, 헌법소원, 대안교과서 만들기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여권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다. 고시가 확정되면 ‘마이 웨이’를 계속할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왼쪽)이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을 하는 동안 보수단체 회원들(오른쪽)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포커스뉴스

야당, 국정 혼란 감안해 전략적 후퇴도 검토해야

그렇다면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적절한 시점에 전략적 후퇴를 고려해볼 만하지 않을까. 여권에 맞서 싸움을 계속하면 경제 및 개혁 관련 입법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서민생활의 어려움도 가중될 것이다. 따라서 국정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더라도 국정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인다는 생각으로 반대 운동을 일시 유예하고 시기를 보아 가며 재점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져 주는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상황에 비춰 보면 박 대통령이 국정화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검·인정 체제로 다시 바꾼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 검정 방침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결정됐고, 참여정부가 2003년 이후 점진적으로 검·인정 체제로 전환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국정화를 이슈화할 기회는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집필진 구성에서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집필 후에도 그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게다가 집필 기간만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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