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꼼꼼세설]

[오피니언타임스] 우리나라 국민의 실질 문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 수준이라고 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성인이 38%나 된다는 것이다. OECD 국가 평균 문해율은 22%.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과 핀란드는 6.2%와 12.6%라고 한다.

보건복지부 공익광고 ‘마더하세요’ 캠페인 영상 캡쳐. ©보건복지부

실질문해율 38%로 OECD 바닥

‘성인문맹율이 0.7%(유네스코, 2015년)밖에 안되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할 수 있지만 들여다 보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글의 뜻을 알자면 교육과 일상생활을 통해 바르고 정확한 말을 배우고 어휘도 늘려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영 딴판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영어에 매달리느라 국어는 뒷전인데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한자조차 익힐 틈이 없다. 여기저기서 전문용어라는 이름의 외국어와 국적 불명 용어가 판친다. 한자교육을 안한 지가 언제인데 정치인은 툭하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공중파방송조차 설명 없인 알 길 없는 지어낸말(조어)과 줄임말을 쏟아낸다.

제주도청과 제주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27일 중앙로터리 일원에서 안전문화 운동 확산을 위한 ‘안전 대한민국 GO GO 캠페인’을 개최하고 있다.©제주도청

사대주의 조어투성이 정부 구호들

무슨 말인지 모르면 따라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건 물론 이용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특정 계층이 아닌, 남녀노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구호나 정책 홍보문구를 어느 나라 말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든 조어로 만들어 내놓는다.

보건복지부가 출산장려책의 일환으로 ‘마더하세요’라는 국적 불명의 구호를 내세우더니, 경찰청에선 ‘안전 대한민국 GO! GO! 안전은 지키GO 사고는 줄이GO’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마더하세요‘는 ’마음을 더하세요‘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마음을 더하세요’라는 쉬운 말을 두고 굳이 ‘마더하세요’라고 만든 건 ‘마더(엄마)’라는 단어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마음을 더하세요’에 ‘엄마 되(하)세요’까지 더한 ‘근사한’ 작품이라고 여겼을까, 한동안 TV광고까지 했다. 임신한 여성직원을 직장 동료나 상사가 신경써주고 배려한다는 내용 끝에 ‘마더하세요’라는 자막을 보탰다. 광고를 보고 ‘마음을 더해야지’ 내지 ‘엄마 해야지’라고 작정했을 사람이 얼마나 됐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멋있어 보였던 건가. 아니면 유행인가. 경찰청에선 아예 우리말 ‘고’를 영어 ‘GO’로 대체했다. GO의 O자엔 웃는 표정도 그려 넣었다. 우리말 ‘고’를 ‘가자’ ‘하자’라는 뜻의 영어 GO로 표현한 게 ‘창의적’이다 싶었는지 경찰서와 파출소는 물론 버스에도 써 붙였다.

‘마더하세요’에 담긴 뜻을 파악하려면 마더가 엄마인 걸 알아야 한다. ‘지키GO’는 더하다. ‘GO’를 ‘고’로 읽을 수 있고, GO의 뜻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 5130여만 명(행정자치부 주민등록 통계) 중 문맹자는 35만9000여명이다. 36만 명 가량은 ‘GO’를 ‘고’로 읽지 못한다는 얘기다.

©플리커

정책 캠페인 국민정서 고루 살펴야

65세 이상 노인 560만3200명 중 상당수, 혼인이주자 15만 명 중 미국에서 온 사람을 제외한 10만여 명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국민에게 가장 낮고 가깝게 다가가야 할 경찰의 구호를 읽지도 못한 채 멀뚱히 쳐다보는 사람이 100만명 이상일 수 있는 셈이다.

언어의 첫번째 기능은 소통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모르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무섭고, 무서우면 화가 나고, 화는 증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거리 간판이 아무리 영어 투성이고, TV자막이 조어로 얼룩지고, SNS에서 은어가 판쳐도 정부 캠페인과 구호는 그러면 안된다. 정책 홍보 문구는 이 땅 남녀노소 모두 한번만 보고 들으면 무슨 뜻인지 척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정책도 상품이다. 잘 팔자면 고객(소비자)인 국민의 정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캠페인 문구 선정에 다양한 연령·계층·직업 군이 필요한 이유다.

 박성희

 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한국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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