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종소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25일 미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양국 정상은 북핵, 경제 협력, 남중국해 분쟁 등 굵직한 현안들을 논의했다.©포커스뉴스

[오피니언타임스]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우리의 ‘균형외교’에 문제가 생겼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균형외교’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틀렸다. ‘둥근 사각형’, ‘프랑스 왕’이라는 말이 문법적으론 맞지만 내용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경향신문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1년 2월쯤으로 기억한다.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부시 정권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 세미나가 열렸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역임했던 웬디 셔먼 대사의 발표가 끝난 후 USIP의 빌 드레넌 연구원이 객석에서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지역 강대국(regional power)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라는 취지로 지적했다. 드레넌은 주한 미공군 출신으로 한국 데스크 책임자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위안부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청와대

중국의 철저한 현실외교, 외교 현장엔 국익만 있을 뿐

이 때 객석에서 대응에 나선 중국 외교관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은 패권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지역 강국이 아니며 지역 강국이 될 의사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여러 장소에서 중국 외교관과 중국 특파원들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 역할론’이 제기될 때마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여러번 보았다.

중국이 왜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일까. 답은 단순 명쾌하다. 당시 중국은 북핵문제가 자신의 국익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오히려 북핵을 자신의 전략적 레버리지로 간주한 느낌마저 주었다.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중국의 국력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2004년부터다. 이른바 ‘화평굴기’(和平屈起)와 함께 ‘유소작위’(有所作爲)란 이름으로 할 말이 필요할 때는 하겠다는 태도로 변했다. 특히 2012년 시진핑 정권이 등장하면서 ‘신형 대국관계론’을 앞세워 많은 사안에서 미국과 맞서고 있다. 물론 최근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나 시리아 문제에 대해 소극적 입장 표명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의 철저한 ‘현실주의 외교’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웃고 때로는 싸우는 것이 외교 현장이다. 외교 현장에서는 오직 국익만 존재할 뿐이다. 각국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외교다. 국력을 감안해 때로는 밀어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양보하기도 한다. 물론 침묵도 한다. 균형이란 것은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국익이 없는 외교라면 ‘눈치외교’라고 부름이 타당하다.

©픽사베이

우리도 방어외교 벗어나 국제무대에서 국익 모색해야

남중국해 문제도 그렇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국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표명할 수 있는 수준은 ‘자유 통행’과 ‘평화로운 해결’이라는 원칙 정도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국회에서 “한미정상회담에서 ‘남’자도 나오지 않았다”라는 답변은 난처함을 벗어나기 위한 우스개소리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국제규범을 벗어난 중국의 행위에 한국의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기자회견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 ‘균형자 외교론’을 내세웠다가 안팎으로 난타를 당한 적이 있다. 균형추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무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무게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균형자론은 우리 외교에 상처만 남겼다. 우리 사회도 현명해져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외교에서 걱정스런 것은 우리의 외교적 환경이 워낙 어려운 탓인지 항상 방어적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사안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성공 사례로 꼽는 중국의 방위식별구역 지정 문제나 아시아 인프라 투자개발은행(AIIB) 참여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외부에서 중요한 사안이 일어나면 조용히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다. 방어적 외교가 체질화된 듯하다.

이러한 방어적 외교는 문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과연 장기적으로 최선인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지금이라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승철

  서울대 철학과

  경향신문 워싱턴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저서 한국 외교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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