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지난 10월 31일은 핼러윈(Holloween) 데이였다. 이태원, 강남, 홍대 클럽 등에는 핏자국 드라큘라, 마녀, 좀비 등으로 분장한 젊은이들이 수백 명씩 몰려들었다. 영어 학원 어린이들은 핼러윈 데이 분장에만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씩 썼다. 해가 갈수록 핼러윈 관련 구매시장은 증가세다. 내 기억으로 핼러윈 데이는 3~4년 전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 어느새 커져 버렸다. 핼러윈 젊은이들은 “학업, 취업이나 결혼 같은 사회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는 “어른들 틈에 껴서 불편한 명절 때와는 달리 우리끼리 놀 수 있는 진짜 축제여서”라는데 좀 궁색하게 들린다.

지난달 31일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색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핼러윈은 소고기 없는 설렁탕 같아

핼러윈 데이는 기원전 500년경 켈트족의 풍습인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하인은 죽음의 신이다. 켈트족의 새해 첫날은 11월 1일인데 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다가 내세로 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10월 31일 죽은 자들은 앞으로 1년 동안 자신이 묵을 대상을 선택한다고 여겨, 산 사람들은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어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한국 민간신앙에서 동지에 귀신이 싫어하는 빨간색 팥죽을 쑤어 먹은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로마가 켈트족을 정복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교황 보니파체 4세가 11월 1일을 ‘만성절(All Hallow Day. Hollow는 앵글로 색슨족 말로 성인)’로 정해 그 전날이 ‘만성절 전야(All Hallows'Eve)‘가 되었고 이 말이 훗날 ‘핼러윈(Halloween)’으로 바뀌었다.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핼러윈 데이 밤이면 마녀·해적·만화주인공 등으로 분장한 어린이들이 “트릭 오아 트레트(trick or treat:과자를 안주면 장난칠 거야)”를 외치며 집집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얻어간다.

이처럼 핼러윈 데이는 오랜 민간신앙에서 시작한 종교적인 축제인데 최근 한국의 클럽 거리에 유행하는 핼러윈 데이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들만의 진짜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 묻고 싶다. 이태원과 홍대 앞, 강남 등에 그 많은 클럽과 라운지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록 페스티발, 재즈 축제 같은 데서 풀지 못할 스트레스가 그다지도 많으며 그럼 그것들은 젊은 그들만의 진짜 클럽이나 페스티발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핼러윈 데이는 소고기 없는 설렁탕 같다. 알맹이 없이 맹맹하다.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싸이 공연 장면. ©플리커

상업 세력 개입···자원 낭비도 심해

그럼에도 이것이 성행하는 건 세력들이 개입되어 있는 탓으로 보이는데 하나는 미국 유학을 경험한 층과 원어민 영어 학원 등의 미국주의 세력, 또 하나는 이벤트를 통해 단기수요를 창출하려는 데이(Day) 마케팅 세력이 그들이다. 미국주의야 그들의 취향이니 그렇다 치고 데이 마케팅은 이젠 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엔 참으로 데이가 많다. 발렌타인 데이에 여자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화이트 데이에는 남자들이 사탕을 선물한다. 블랙 데이에는 자장면, 빼빼로 데이에는 빼빼로, 3월 3일 삼겹살 데이에는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 11월 8일을 속옷을 선물하는 브라(Bra) 데이로 설정한 여성의류 회사도 있었다. 기업은 매출이 늘고 소비자는 기분을 풀고 서로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으니 문제다. 해가 갈수록 포장은 화려해지고 단가는 올라간다. 이걸 사면 멍청한 사람이 되고 사지 않으면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딜레마다. 뿐인가? 이날 받은 초콜릿, 사탕, 빼빼로는 대부분 책상 위에 두었다가 버려진다. 지구촌 자원낭비인 것이다.

이도령과 춘향 같은 ‘러브스토리’ 마케팅은 어떤가

그러니 생각해보자. 한국은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고 지금은 한류 극강 시대다. 한류를 찾는 1000만 명 외국인들에게 고작 핼러윈이나 발렌타인 데이를 보여줘야 한단 말인가? 한국에 젊은이들을 위한 명절이 없다고 하는데 이도령과 춘향을 만나게 한 오월 단오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이야말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한 K-축제들이다. 그러니 칠월칠석 마케팅을 해볼 만하다.

그중에 K-스타들과 함께 해볼 만한 것이 있다.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겨울 연가’, ‘대장금’의 K- 스타일 러브스토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 각 나라에서 특별한 러브스토리를 가진 77쌍의 연인들을 초대해서 춘향의 고장 남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설화가 담긴 영일만, 400년 전에 중국과 일본에 시명(詩名)을 떨쳤던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고향 강릉을 거치는 일명 ‘러브스토리 벨트(Love story Belt)’를 체험하는 K-사랑의 마케팅을 기획해보면 얼마나 멋질까.

타 문화와 교류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줏대를 기반으로 할 때 매력적이 된다. 줏대 없는 이성은 쉬 매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남들 문화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문화 수입만 하지 말고 문화 창조도 좀 해보자. K-문화마케팅의 줏대를 가져보자.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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